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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단상

네팔 - 포카라로 향하며...

by 함피 2002. 4. 2.

인도-네팔 국경을 넘은 것은 저녁 무렵 해가 긴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을 때였다.
지금까지 다녀 본 동남아시아나 중,서아시아 국경마을은 하나같이 분위기가 비슷하다.
뭔가 어수선하기도 하고 정리가 되어있지 않은 술렁술렁한 분위기에다 꽤 열악한 환경.
어쨋거나  네팔의 포카라나 카트만두로 들어가는 버스가 없어 할 수 없이 하룻밤 자야 한다.
허름하기 짝이 없는 숙소의 골방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버스가 없다고 한다.
5일간 스트라이크를 한다고 하니 최대 5일간 버스가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숙소에서 마냥 버스를 기다리는 꼴이 되었다. 달리 뭔가 할 꺼리가 국경마을에는 없다.
네팔 국왕이 살해되고 난 다음부터 네팔의 분위기가 좀 험악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 평화스럽기만 한 네팔이었는데 변해버릴까 걱정이다.

끝내 버스가 오지 않는다면 다시 인도로 돌아갈 수 밖에 없을텐데
그러면 시간과 돈 모두가 그냥 날아가 버리는 셈이다.
이런 열악한 곳에서 단지 하룻밤 자기 위해 열 시간을 넘게 달려와 비자요금을 30달러를 낸 꼴이 돼버리는 것이다.
빨리 스트라이크가 끝나길 바라지만 현재로선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일단 숙소주인에게 버스티켓 문제를 확실히 얘기한 다음 내일은 어떻하든 결단을 내려야 한다.
여행하는 동안엔 빨리 포기하고 대안을 찾거나 그냥 체념해 버리고 운명의 손에 자신을 던져버려야 할 때가 가끔 있다.

맥주를 홀짝거리며 2시간 정도 허망하게 있는데 갑자기 버스2대가 숙소 앞에 서더니 포카라, 카트만두를 외친다.
정신 없이 서둘러 짐을 챙기고 포카라행 버스에 올랐다.
08시에 출발 했어야하나 10시30분쯤 출발이다.
좀 늦었지만 버스 탄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총을 든 군인들을 여럿 볼 수 있는 몇몇 제법 큰 마을을 지나쳤는데
거의 모든 상점은 문을 닫았다. 마치 전쟁이라도 난 것 같다.
포카라, 카트만두행 버스가 쉬어가는 무글링에는 예전처럼 네팔 전통 악기인 ‘사랑기’를 파는 아이들도, 군것질 꺼리를 파는 노점상도 없었다. 휑한 바람만 불 뿐이다.
저쪽에서 서부의 총잡이 둘이 결투를 위해 서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였다.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상점들과 식당들도 문을 닫았다.
문이 반쯤 열린 식당에선 낮잠을 자던 주인아줌마가 부시시 일어나 주변을 살피곤 하였다.

다행이 문이 열린 식당을 찾아 언제 만들었는지 모를 차갑게 식은 달밧을 먹는 동안
아까부터 간간히 뿌리던 비가 제법 굵어졌고 날도 어두워졌다.
무글링마을은 더욱 스산해져서 버려진 유령의 마을처럼 변했다.
출발시간이 되어 버스에 올랐을때 비가 더욱 세차지더니
나중엔 버스지붕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가만보자니 하늘에서 엄지손가락 반만한 얼음이 떨어지는게 아닌가!
한국에서 몇 번 우박을 본적은 있지만
이렇게 큰 얼음 덩어리가 떨어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살다보면 몇 번쯤 ‘하늘이 미쳐 버린 것 같은 날’을 만날 때가 있다.
정말 굵은 빗줄기가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마구 내릴때나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지구를 흔들어 놓는듯한 천둥번개 소리가 가슴을 마구 요동치게 할 때 말이다.
이럴 때는 곧 하늘이 무너져내리고 땅이 뒤집히고 물이 넘쳐 흐를 것 같아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시작이 갑작스러우면 끝도 갑작스럽기 마련이다.
갑작스레 우박이 내리고,
갑작스레 햇빛이 반짝이는 것이다.
이런 시치미는 본 일이 없다.

한껏 물을 머금은 산이 햇빛을 받아 더욱 푸르고 싱그럽게 반짝인다.
끝나지 않을것 같은 길을 달리고 달려 마침내 저녁 6시쯤 포카라에 도착했다.
히말라야의 설산도 그대로, 평화로운 호수도 그대로, 호수 주변의 숙소들도 그대로,
포카라는 예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평화다.
Shanti Shanti~~~

2002/04/02 hampi. 민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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