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 꺼내기가 쉽지 않은 문제지만 꽤 많은 한국인이 해외에 입양되었던 게 사실이고 아마 지금도 입양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처음 해외 입양인을 만난 건 10년 전 인도 델리를 여행 할 때다.
그녀는 네델란드로 입양되었고 동양 얼굴을 한 네델란드인으로 자랐다.
뿌리는 한국이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은 네델란드인인 그녀에게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한국 현실에 대한 원망 그리고 뭔지 모를 미안한 감정을 느꼈고 또한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생모를 찾고 싶은지 등의 막연한 호기심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내 속의 그 어떠한 감정도 그녀에게 표현하지 못했다.
무엇을 표현하건간에 실례가 될 것 같아서다.
대화를 이끌어가려면 상대방의 정체성이랄까 적<籍>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하는 바가 있어야 하지만 나는 그녀를 네델란드인으로 대해야 할지, 한국인으로 대해야 할지 전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네델란드인인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되었지만 단지 그렇게 단정지어 생각할 수가 없었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놀랐던 것 중 한가지가 생각보다 꽤 많은 한국인이 해외로 입양되었구나 하는 사실이다.
그만큼 많은 해외입양인 손님이 다녀갔고 또 앞으로도 예약을 할 것이다.
덴마크로 입양된 썬에 의하면 자신이 살고 있는 인구 30만 명의 도시에 50명의 입양인이 있다고 한다.
30만 명 중 20~30대가 30% 라고 가정하면 9만 명 정도인데 그 중 50명이 한국에서 입양된 입양인이라는 건 놀라운 숫자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은 한 달에 두 번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데 다른 모임과 달리 서로를 더욱 잘 이해하고 특별한 친분이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썬은 나에게 입양인에 대한 많은 얘기를 해주었다. 썬에 의하면,
동양인의 얼굴로 서양에서 산다는 건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물과 기름과 같이 절대 융합되어지지 않는다.
가족, 친척간의 “우리 한가족!” 이라는 포근한 울타리 안에서조차 살짝 찬바람을 느끼곤 한다는 것이다.
하물며 가족이라는 울타리 밖의 무심한 사회에서야 어떻겠는가?
생김새만 빼면 문화와 언어 등 모든 것이 같은 한 나라 사람인데 그렇게 느낀다는 건 놀라운 얘기다.
입양인들끼리 서로 잘 이해하고 특별한 친분이 있다고 하는 게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나는 한때 냉정한 사실만을 놓고 볼 적에 뿌리가 어떻든 간에 어느 한 사람을 만드는 것은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문화와 언어 등이고 그런 것들이 어떤 특정 사회의 구성원으로 만든다고 믿었다.
그러나 덴마크 문화속에서 자란 썬은 한국에 오고 나서야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을 수 있었으며 물과 물이 만나듯 자신이 한국인이며 이 속에 속해 있음을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문화와 언어 뿐 아니라 자신을 이루고 있는 깊은 뿌리와 피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인가 보다.
나는 이제 많은 입양인과 이야기를 나눠보았기 때문에 뭔지 모를 미안함을 느끼거나 특별히 어떤호기심이 일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냥 조금 다른 히스토리를 갖고 있는 한 사람일 뿐이고 다른 외국의 게스트들을 대할 때와 별 다름없이 똑같이 대한다. 별 다른 감정을 갖지 않으려 하고 또 그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5살 때 미국에 입양된 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한국인으로써, 객관적 의미에서는 한 사람의 불행한 일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윤은 10여 년 전부터 한국의 부모를 찾으려고 애썼다.
부모를 찾기 위해 한국의 TV에도 출연했었다.
H아동복지회와도 많은 접촉을 했는데 복지회에서는 늘 거짓말만 일삼아 더 이상 그들과는 연락하지 않는다고 한다.
복지회에서 왜 거짓말을 일삼는지에 대해선 패스하기로 하자.
이번에 친구와 함께 다시 한국에 온 것은 어떤 사람이 부모일 수 있다고 연락이 닿았고 미국에서 미리 DNA 샘플을 보내 놓은 상태인데 이제 그 결과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그녀는 자신의 생년월일이 언제인지,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만이라도 알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신이 몇 살인지 모르고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나로썬 상상할 수조차 없다.
막연하게나마 기대를 안고 한국에 왔건만 결과는 부모가 아니라는 판정이 나왔다.
그녀는 체크아웃이 하루 더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를 떠나 어느 한 호텔로 눈물을 보이면서 떠났다.
혼자 많은 것들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고 또 혼자 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그녀의 친구는 말했다.
그녀의 절망과 슬픔에 찬 얼굴, 그녀의 마지막 모습은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 그 외에 내가 모르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분명히 우리나라와 관계되어 있고 우리나라가 어느 정도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우리)는 따지고 보면 남이라 말할 수도 있지만 같은 우리나라 사람으로써 분명 무엇인가 할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주변엔 여러 사연이 있고 그것을 간직한 많은 사람들이 있다.
최소한 그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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