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행기는 97년 8월 회사에서 하기 휴가를 받아 처음으로 해외에 배낭여행을 한것입니다.
첫 해외여행이니만큼 모든게 신기했고 재밌었고 실수도 많았지요.
여행기도 지금 보면 아주 조잡하기 그지없습니다.


1997.8.15.

 

처음 출국이라 일찌감치 서둘러 출발 3시간전인 6시에 공항에 도착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출국세와 공항세를 내고 공항을 샅샅히 구경했다

7시부터 발권이 시작되었는데 병무청에 신고를 하고 오란다.

아차.. 생각하고 있었는데 까먹었다.

출국심사를 마치고 대기실로 들어섰다.

면세점에서 담배를 살려니 보루로만 판댄다..

태국에서 현지조달하기로 하고

또 승객대기실을 샅샅히 구경했다.

구경이라곤 면세점 한바퀴 도는거 밖엔 없지만..

창밖으로 비행기가 가깝게 보인다. 이렇게 가깝게 보긴 처음이다.

앉아있는데 뚱뚱한 서양아가씨가 우리나라 팩키지 투어에

혼자 참가한것같아 말을걸어보았는데 같은 태국행이고 같은 비행기다.

팩키지 투어에 자기만 캐나다사람이고 다 한국사람이란다.

나는 팩키지는 싫고 자유여행이 좋다고 하니 자기도 다음엔 꼭 그렇게 갈거라 한다.

 

비행기에 올라 좌석에 앉아있는데 자기좌석이라며

어떤 남자가 나타났는데 그남자의 티켓을보니..으잉?

MIN BYUNG KYU 내 이름이 적혀있다.내 티켓에도 내이름,

멍청하게. 티켓에 자기이름이 써져있는지

다른사람이 써져있는지 확인도 않하다니...

승무원에게 말하니 그냥 옆자리에 앉아 가란다.

비행기에 좌석이 반도 더 남는거 같다.

9시 출발인데 9시 40분이 되서야 비행기가 움직였다..

생각보다 금방 이륙했는데 서울의 야경은 정말 너무 멋졌다....

자다 일어나다 자다 일어나다.. 위쪽으로 보이는 달은

엄청 밝아서 구름이 잘 보였고 저멀리의 수평선까지 보이는듯 했다

 

 

1997.8.16

 

방콕 돈무앙공항에 도착한것은 새벽1시쯤이었다.

짐 검사 같은것은 전혀 없이 그냥 통과다.

공항을 나와 택시를 잡으려하니 택시는 보이지 않고

밴츠들과 힌 와이셔츠를 입은 사람들 뿐이다.

방람푸를 외치니 650B 달란다.

최대한 150B 생각했는데..  공항 택시인듯 했다.

할수없이 공항을 좀 헤매다가 2명의 한국여자가 있길래

카오산에 안가냐고 했더니 화람퐁 역으로 간단다.

같이 카오산에 가자니깐 좋단다.

어떻게 갈까 공항 스낵에서 예기좀 하다가

택시를 찾으려고 위층으로 올라갔더니 바로 그곳이

일반택시 타는곳 이었다.

카오산까지 150B 을 외치니 OK 다. 너무 비싸게 불렀나?

 

그녀들은 윤씨아줌마(32)와 정씨 처녀(26)살 이었는데

나중에 알게 됐지만 국민학교 선생님들 이었다.

카오산에 도착해서 세계로에서 보았던 MARRY.V G.H 를

찾으려 하였으나 카오산과 조금 떨어진데다 뒷골목같은곳엔

엄청난 개때들..수십마리의 개가 길에 퍼질러 있어서

도저히 갈 엄두가 안났다.

할수없이 카오산에서 잡기로 하고 카오산을 뒤지다가

카오산 중앙에 있는 PRIVACY G.H에 묵기로 하였다.

트윈,에어콘,샤워실 300B였는데 트윈에 셋이 묵기로 하고 400B를 주었다.

그녀 둘은 한침대에서 자고 나는 혼자 침대에서 대자로 누워 잤다.

25살된 맥이라는 처녀가 프론트를 보고 있었는데

한푼도 안깍아준다..  20분은 예기했으나 NO! 다

맥은 처녀라기보단 아이 같았다.

난 처음엔 고등학생정도 되는줄 알았는데 25살이라니..

 

아침 8시쯤에 일어나 어딜갈까 생각하다 카오산에서 가까운

국립 박물관에 가보기로 하고 툭툭을 탔다.

박물관까지 20B, 나중에 알았지만 걸어가도 되는것을..

책엔 박물관 입장료가 20B 였지만 40B 로 올라있었다.

안에 들어가니 가방을 맡기란다. 그건 좋았다.

박물관을 구경하고 바로 옆에있는 타마삿 대학에 갔다.

콜라를 마시며 잠시 앉아있는데 사람들이 조금씩 모여들더니

어떤 행사를 시작한다.

물어보니 신입생 환영회를 한단다. 한 50명정도 되었는데

우리나라 국민학교 소풍가서 하는 게임 비슷한것들을 한다.

손붙들고 돌다가 숫자맞춰 앉기, 네팀으로 나누어 풍선

크게 불기, 나중엔 그 풍선을 발목에 묶고 서로 터트리기,

우린 거기에 같이 끼어서 놀았다.

손을 잡을때에 여자들은 내손 잡는것을 쑥스러워 하며

손가락 하나를 내밀거나 내 손가락 하나만을 잡는다.

무척 순진한 아이들이다.

 

1시에 점심을 먹으니 같이 먹잔다.

당연히 먹어야지. 돈 굳는데..

국수또는 밥이 나왔는데 난 소스 냄새가 이상하고

도저히 다 먹을수가 없어서 반쯤 남겼는데 닭튀김은 다 먹었다.

그들과 웃고 즐기다가 사진 몇방찍고 왕궁에 가려고 타마삿 대학을 나왔다.

 

한국에서 소개받은 친구를 2시에 왕궁앞 분수대에서 만나기로

아침에 전화로 약속을 했었다.

그 한국친구는 우리가 왕궁을 구경하고 나올때까지

분수대에서 기다리겠단다.

왕궁은 입장료가 조금비싸고 (125B)

복장단속을 했지만 화려하고 정말 멋있었다.

왓쁘라께오와 왕궁을 구경할때 분수대앞에서 보았던

한국 팩키지관광객 가이드를 하는 태국 대학생을 쫓아다니며

한국말로 설명을 들으면서 구경했는데

그녀는 꼽싸리 낀 우리들도 잘 챙겨주었다.

한국말을 정말 잘하는데 관광과라서 영어와 한국말을 배웠단다.

그녀 이름은 NONG,   SISTER 란 뜻이란다.

물 나오는곳이 있었는데 꽁짜니깐 물을 먹으란다.

꽁짜 좋아하면 대머리 벗겨진다고 농담까지 하면서..

그런말은 누가 갈켜줬는지..

 

왕궁을 나와 그친구와 함께 택시를 타고 라차다 거리에 있는

로빈슨백화점 지하 식품점에서 윤과 정은 과일을 먹고

나는 맥주를 마셨고 한국친군 국수를 먹었다.

한국친군 내일부터 3~4일동안 가이드를 나간단다.

윤과 정이 스테이크를 먹고싶다고 해서

어느 시원한 식당에서 300B 짜리 스테이크를 먹었는데

쇠고기를 덜 익혀서 속은 조금 뻘건색이다.

 

니꼬호텔 로비에서 예기좀 나누다가 한국친구와 우린 헤어졌다.

내일은 3place in 1day투어를 갈꺼라하니 자기들도 간단다.

우린 카오산에서 제일 싼 여행사를 찾아 헤매다가

홍익인간 앞에있는 SAN EXPRESS 에서 220B에 계약 했다.

내일아침 7시까지 오란다.

 

어제 묵었던 프라이버시 G.H에 방을 싱글,팬 (120B)에 다시 얻어서

이번엔 혼자 잤다.

 

 

1997. 8. 17

 

아침 6시30분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어제 예약했던 여행사에 정확히 7시에 나갔다.

세계로에서 여행사가 시간을 잘 안지킨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 7시 40분이 되서야 출발했다.

출발하기전 우린 아침을 해결하기위해

식당에서 빵을 급히 사고 바나나를 엄청 비싸게 (20바트에 4개정도)샀다.

투어는 많은사람들이 신청하여 꽤많은 사람들이 여행사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봉고차가 여러대와서 나누어 타게 되는 시스템이다.

우리가 탔던 봉고차엔 한국사람과 일본사람만 타게되었다.

수상시장에 가다가 코코넛 엿을 만들고 물건들을 파는곳에 잠깐 들리고..

수상시장에서 보트를 타고 한바퀴 도는데 그건 정말 시원하고 좋았다.

우리가 보트를 타고 가는도중에도 그 흙탕물에 목욕하고

설겆이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과연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궁금했다.

작은 배에타고 노를 저어가며 물건을 파는 사람들..

그런데 다 여자들이다. 남자들은 모터달린 배에 관광객을 태우고

여자들은 노젖는 배에서 물건을 판다.

모터보트가 달릴대마다 파도가 출렁거려 작은배가 더욱 위태로워 보인다.

수상시장에서 처음 코코넛을 먹어보았는데..

이게 무슨맛인지.. 영 모르겠다. 밍밍~하고 맹맹~하고.

그렇지만 시원~은 했다.

그다음 목적지는 콰이강의 다리.

중간에 연합군공동묘지를 잠깐구경했다..

거리엔 온통 일본차들, 수많은 일본관광객들..

이 묘지를 생기게 한 장본인도 일본놈들..묘하군.

콰이강의 다리 앞에 마술사가 하는..

링을 빼었다 끼웠다하는 것을 파는데 한번 해보란다.

링을 만져서 확인을 했지만 틈같은것이 전혀없는데도

끼웠다 뺐다 하는것이 신기하다.

다음은 목적지는 빅파고다라는곳.

그냥 높고 큰 탑이 있고 타이사람들이 한가롭게 쉬고있다.

숫불에 구워주는 계란이 있는데 3개에 10바트.

3개 사서 나눠 먹었는데 맛있다.

 

하루종일 차만 탄것같다.

주 목적지인 수상시장,콰이강의다리, 빅파고다에선 30분씩 시간을 준다.

싼가격으로 돌아다니기는 했지만 봉고차에서 잠잔 시간이 더 많은것 같다.

 

다시 프라이버시 G.H 에 예약을 했다.

이번엔 100바트짜리. 120바트랑 똑같은데 1층은 100, 2층은 120이다.

맥이 어떤 일본남자랑 킥복싱구경을 간다기에

일본남자한테 같이 가자니깐..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눈치다.

내가 맥한테 같이 가자고 해서 맥이 좋다고 하니

또 그 일본남자는 자기는 안간단다..

내가 T.V를 보고있는사이 일본놈이 맥 옆에서

쑥덕거리더니 맥과 자기 둘만 간단다..

일본놈은 왜이렇게 정말 재수가 없는지..

그날저녁엔 계획에 없던 300바트짜리 쑈를 보게되었다.

택시아저씨 꼬임에 빠져서 바가지쓰고!!  별다른 계획이 없었기에...

예기를 많이 들어서인지.. 별로 쑈킹하지는 않았다.

 

카오산에 돌아와서 호프집에서 길에 내놓은

테이블에 앉아 저녁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앞에 앉아있던 독일인과 함께 예길 나누며 한가로이 맥주를 마셨다.

자기가 서독에 태어난거랑  내가 SOUTH KOREA에 태어난게

행운이란다. 일본과 한국과 일본인에대한 나의생각을 예기했더니

지나가는 동양인만 보면 일본인? 한국인? 하면서 묻는다.

새벽 1시가 다되어 그와 헤어져서 내방으로 돌아왔다.

 

1997. 8. 18

 

오늘 아침은 정말 지옥같았다.

옆방의 노랑머리 남녀가 새벽 5:30분 부터 난리부르스를 쳐서

도저히 잠을 이룰수 없었다.

견디다 못해 6시쯤에 세면을 하러 나왔더니 G.H 아줌마와 문신아저씨가 있길래

옆방을 가리키며 시끄러워 잠을 잘수없다는 표정을 하니 웃고 난리가 났다.

문신새겨주는 아저씬 온몸이 문신이다.

그는 내방에 같이 들어와선 옆방에  어디 틈이라도 난곳이 없나 막 살피고..후후..

그 난리는 6시 30분쯤이 되서야 멈쳤다.

@#$# 오래도 한다.

여행사로 가서 나는 푸켓가는 V.I.P 버스를 예약하고

윤과 정은 코사무이 가는 기차표를 예매했다.

아침은 홍익인간에서 라면에다 밥(공짜)을 많이 말아서

엄청 먹었다. 이게 오늘의 처음이자 마지막 식사다.

돌아다니면서 물과 음료수등을 계속 먹으니

배가 고픈지 부른지 알지를 못하겠고

입맛도 떨어져 하루에 한두끼만 먹으면 땡이다.

오늘은 왓아룬과 왓포를 구경하기로 하고

윤,정과함께 배타는곳까지 걸어갔다.

왓아룬까지 6바트. 왓아룬은 공사중이었는데

사원은 이제 하도 많이 봐서 그런지 별 느낌이 없어져버렸다.

왓아룬의 노점상들은 세개에 만원을 외치고

뱀과 함께 사진찍으라며 안물어! 안물어!를 외친다.

정말 길고 두꺼운 구렁이다.

이젠 구경하며 다니는것보다 앉아서 쉬는것이 더 좋은것 같다

왓 아룬에서도 그냥 앉아서 탑을 보며 오후의 나른함을 즐겼다.

이것이 방콕병일지도 모르지.

다시 강을 건너 왓포로 갔는데 거기엔 큰 부처가 누워있었다.

그녀들은 내 키보다 더 큰 부처의 발바닥이 귀엽단다.

왓포를 나와 그녀들이 어젯밤에 먹은

새우튀김을 맛보여주겠다며 차이나타운에 가잔다.

버스를 한번도 못타봤으니 버스를 타고가자그래서 한참을 기다려서 탔다.

쪼그만 버스다.     이라고 하는 돈통은 듣던대로 재밌었는데 그게 용도가 많았다.

버스옆에 붙는 오토바이들을 그걸로 착착 소릴내며 비키게하고..

차이나타운에서 그녀들이 먹었다는 새우튀김파는 장소는

그냥 인도블럭만 있고 아무것도 없었다.

밤에만 장사를 하고 낮엔 싹 치워버리나보다.

할수없이 맥도날드에 가서 그녀들은 햄버거에 이것저것

많이 먹었지만 난 감자튀김과 큰 컵의 콜라를 두잔이나 마셨다.

여기와서 난 뭘 먹는다는것보다 뭘 마시는게 더좋다.

이곳에서 가까운 왓트라이밋에 황금불상이 있다길래

황금불상을 보러갔다. 번쩍이긴 번쩍였다.

밝은 조명을 불상에 비추고 있어서 더 그래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녀들이 코사무이가는 기차시간이 다되어가서

화람퐁역까지 또 걸었다.

역건물이 크고 기차가 역안에까지 들어오는건 처음봤다.

투어 머 어쩌구 하는 꼬리표를 단 사람들이 엄청 달라붙는다.

그녀들을 보내고 카오산의 여행사로 왔더니 5시다.

6시에 출발이니 아직 한시간이 남길래 푸켓에대한 정보를

프린트해 놓은것을 꺼내어 샅샅이 읽고 푸켓에서 놀 궁리를 했다.

 

1997. 8. 19

 

방콕보다 한가한 주변들의 일상이 평안함을 준다.

여행와서 정말 혼자가 된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혼자라는 불안과 함께 혼자만의 자유로움을 느끼며

버스정류장을 향해, 툭툭기사와 택시기사들의

유혹을 물리치고 난 걷기로 했다.

 

어제 저녁 6시30분에 출발한 버스는

19일 아침 11시가 되서야 푸켓에 도착했는데

여행사에서 예약한 V.I.P버스는 수랏타니에서

갈아타야했고 물수건 한장 주는일이 없었다.

중간에 휴게실에서 죽같은것을 주는게 고작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마구 달라붙는 툭툭기사한테

난 걸어가겠다고 하니 대충 로컬버스 정류장을 알려줬다.

걷고 있는데 한 노랑머리 여자도 그곳으로 가는듯해서

난 카론을 가려고 한다니까 자기는 나이한비치를 간단다.

그녀와 지도를 찾아가며 로컬버스 정류장을 찾았는데 그렇게 멀지 않은곳에 있었다.

말이 버스정류장이지 시장길가에 버스들이 그냥 서있는곳이다.

카론가는버스를 타려다 시간이 조금 남길래 시장구경을 하려고

조금 돌아다니는데 수족관 가는버스가 서 있었다.

비치에 가기전에 수족관을 구경하는것도 좋을것같아

먼저 수족관을 구경하기로 했다.

비치로 가면 푸켓타운으로 나올일이 없을것 같았기때문이다.

수족관에 관광객은 나말고 두명쯤이 더 있었던것 같다.

고등학교 아이들이 단체로 왔는지 온통 까만치마나 까만바지에

흰 브라우스를 입은 남,녀 아이들 뿐이다.

수족관은 기대했던것보다는 별로 였다.

63빌딩 수족관보다 별로다.

수족관 정문에서 고등학생에게 사진한장 부탁하고

수족관 앞 주차장에서 쉬고 있는데 고등학생들을

태우고 왔던 버스가 아이들을 태우고 떠나고 있었다.

한여학생이 손을흔들며 바이~ 하길래 손을 흔들어줬더니

아이들이 모두 소릴지르고 버스안이 난리가 났다.

 

카론비치에 와서 바다를 보니 가슴이 뚫리는것 같다.

그런데 파도가 너무 높아 수영은 도저히 못할것 같다.

하이텔 세계로가는기차 에서 보았던 Phuket island view호텔은 금방 찾을수 있었다.

버스타고 가다가 푸켓아카디아를 지나 카론비치남쪽으로

좀 들어가는가 싶더니 내가 찾던 호텔이 나타난것이다.

소리를 질러 세워달라고 해서 바로 호텔로 들어섰다.

하루 600B 달라고 하기에 2틀에 1,000B 로 계약했다.

귀중품 맡기는것도 FREE라 하여 항공권과 아직 바꾸지않은

얼마 안되는 달러를 맡겼다.

비치로 나갔는데 모래가 엄청 고와서 바닷물이 들어왔던

모래사장은 대리석 같았다.

바닷물에 몸좀 담그고 파도에 맞춰 출렁이다가

모래사장에 누워있는데 개 한마리가 해수욕을 하고 있지않는가..

내가 불렀더니 나에게로와서 같이 놀아주었다.

근데 비수기라 사람이 너무없어서 좀 썰렁했고 기대했었던 토플리스도 볼수가 없었다.

 

푸켓에 가면 오토바이를 꼭 빌려타라는 말을 들었긴한데

난 오토바이를 지금까지 한번도 탄일이 없어서

차를 빌렸으면 하는 마음에 해변앞 도로를 살피며 걸었다.

오토바이가 한대 세워져있길래 물어보았더니

어떤 아저씨가 와서 24시간에 200B 란다.

그와 1시간정도는 예기했다.

오토바이를 빌리면 아무데나 다 갈수 있고

툭툭을 두번만 타면 200B 니 같은값에 얼마나 좋냐..

등등 해서 엄청 꼬신다.

아무래도 여행사가 아닌 길거리에서 빌려주는게 맘에 걸려

돌아서는데 150B에 해주겠단다.

그래도 난 여행사에서 빌릴란다...하는 생각을 하며 걷는데

마침 여행사가 근처에 있길래 들어섰다.

여행사에 들어갔더니 차분하게 생긴 아줌마가 대번에 150B 란다.

130B 에 하자니깐 OK 다.

여권 맡기란 소리도, 보증금을 맡기란 소리도 없었고

계약서 같은것만 썼는데 사본은 자기가 갖고

원본은 내게주며 경찰이 보여달라면 보여주란다.

파통비치와 푸켓타운갈때만 헬멧을 쓰면 된다고 한다.

처음엔 엑셀이 너무 민감하고 적응이 안돼서

정말 죽는줄 알았다. 더군다나 좌측통행이니..

1시간정도 헤매고 나니 조금 적응이 되었다.

먼저 VIEW POINT를 가보기로 하고 난생 처음 오토바이를 타고

달렸다. 카타비치를 지나 VIEW POINT에 왔는데

구름이 많이 끼어서 아쉽게도 석양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카론,카타,카타노이 비치가 한눈에 보였다.

그다음엔 나이한비치에 가보았는데 생각보다 쪼그마한게 정말 아담한 비치였다.

컴컴한 밤에 한적한 아스팔트길을 혼자 달리는 기분은 좋았으나

주위가 거의 정글이라 무섭기도 하였고

모기같은것이 마구 얼굴을 때려서 무척 고생을 했다.

 

호텔을 향해 가고 있는데 어떤여자가 아는척을 한다.

아까 오토바이 빌려주는 아저씨랑 얘기할때

오토바이 타고가며 손흔들어주던 아가씨였다.

BAR에서 일하는 아가씨였는데 와서 한잔 하란다.

그녀의 이름은 "수" 란다.

맥주 한잔 하면서 예길하는데 자기는 오늘 친구와 사파리에 간단다.

사파리! 세계로에서 보았던 디스코텍!

나도 거기 안다고 하니 같이 가잔다.

수의 친구는 일본여자처럼 생겨서 타이여자냐고 물었더니

일본여자같이 생겼다는 말을 많이 듣는단다.

그런데 수의 친구가 갑자기 남자목소릴 낸다.

알고봤더니 게이였다. 정말 놀라 자빠질뻔했다.

예길많이 했는데 착한 게이다.후~

게이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괜한것이었구나 하는생각이 들었다.

 

사파리엔 서양남자들이 타이여자들을 델고 별의별짓을 다해가며 춤을 추고 있다.

레게를 부르면 딱 어울릴것 같은 차림의 까만 남자가수가 라이브로 노랠불렀다.

수는 오늘밤 나와 같이 자자고 계속 추근거렸지만 난 춤만 열심히 추었다.

새벽 3시가 다 되서야 사파리를 나왔다.

수와 그녀의 게이친구와 밤참을 먹고 헤어졌는데

먹으면서도 날 얼마나 같이 자자고 꼬시는지

하마터면 아쉬운 얼굴을 하며 헤어질때 측은한 마음이들어

수를 부를뻔 했지만..그래도 난 정조를 지켜야지!

큰 더블침대에서 대자로 누워 혼자 잤다!

내일은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좀 해야겠다.

 

 

1997. 8. 20

 

아침 9시쯤에 일어나서 아침겸 점심을 먹기로 하고

HUNGRY CORNER 에 가서 밥을 먹었다.

식당 이름이 <HUNGRY CORNER>라니.. 웃기다고 생각하며 밥을 먹었다.

태국에 와선 하루에 두끼 먹으면 많이 먹는것 같다.

계속 물과 음료수로 배를 채우기 일쑤니..

 

카오팟을 먹고 우선 드라이브를 하기로 하고 비치들을 돌아다녔다.

카타..카타노이..나이한..

프로템 등을 돌아다녔는데 난생 처음 오토바이를 타는것이라

정말 엄청 무척 재미있었다.

처음엔 속도 내는것이 두렵더니 이제는 보통 속도로는

만족을 못하니.. 사고 나기에 딱 알맞다는 생각이다.

길가에 코끼리 타고 정글트래킹 하는곳이 있었는데

코끼리가 있길래 관심을 보였더니 막 이리로 오란다.

가서 그냥 코끼리 등에 타고 사진만 찍고 싶다고 했더니 OK란다.

코끼리 등에 타고 아저씨가 사진을 3방이나 찍어줬다.

그네들한텐 전혀 도움이 안되지만 싫어하는 눈치는 전혀 없으니

친절한 태국사람들.. 괜히 미안했지만 꾸벅꾸벅 인사만 몇번하고 다시 속력을 냈다.

호텔로 돌아오는길에 호텔앞 비치에 나가보았는데

역시 파도가 너무 높고 사람들도 하나두 보이지 않아 정말 썰렁했다.

할수없이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기로 하고 호텔로 들어섰다.

수영장에선 내또래의 서양남자가 수영을 하고 있었다.

벨기에에서 왔단다.

수영을 열심히 했더니 좀 피곤하여

수영장 옆 의자에 누워 그냥 잠이 들어버렸다.

한참 자다가 배와 팔이 간지럽고 따가운거같아 일어났더니

조짐이 이상하다.. 햇빛을 받고 잔 덕에 배와 팔, 얼굴이 막 간지럽기 시작이다.

 

다시 호텔을 나와 해변을 돌아다니고 파통 비치에도 가보았는데

역시 카론이나 카타에 비해서 복잡하고 사람들이 많다.

오토바이를 반납할 시간이 되어 카론비치에 들어서는데

수가 보였다. 오토바이를 반납한다니까 옆에서 기다린다..

반납을 하고..할수없이 수의 뒷자리에 올라

수가 일하는 바에가서 맥주를 마셨다.

클럽메드에 들어갈수 있으면 가서 세계로에서 읽었던

재미있다는 쇼를 볼생각이었는데

비회원은 안되고 비회원이 입장할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낮시간과 저녁시간이었던것 같다.

암튼 쇼는 보지 못한단다.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어떤 여자가 바를 지나치며 이리로 오란다.

옆 건물 2층을 가리키며 자기 아파트니까 구경을 하라고 하는것이다.

저여자가 왜 저러나.. 무서운 생각이 들어 싫다고하니

그냥 자기 방 구경만 하란다.

갈까 말까 하다가 설마 강간당하진 않겠지.. 하는마음에 따라가보았다.

조그만방이었다. 앨범도 보여주고 잡지도 보여주고..

자기이름은 콥 인데 그냥 친구 하잔다.

그녀도 그옆의 bar 골목에서 바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름이 wall-halla bar 란다.

비수기라 사람도 없고 혼자 바를 지키고만 있는단다.

밤에 바에 놀러오란다. 자기 혼자있으니 예기를 나누면 좋겠단다.

매상올려볼 요량으로 나에게 접근하는군..하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생각하면 그녀는 그런 생각은 없었던것 같다.

앨범에 각국 나라 돈이 있었는데 우리나라 천원짜리도 있다.

 

밤이 되어 그녀의 바에 가보았다.

정말 썰렁해서 바 골목은 손님이 한 두팀 밖에 없었고

그녀의 바를 포함한 거의 모든바가 텅 비어있었다.

음악만 시끄럽게 울리고있다.

맥주를 마시고 이런저런 예기좀 하다가 내가 잠시

호텔을 다녀온사이 그녀는 바 문을 닫고 있었고

옆의 바에서 그녀가 맥주를 시켜 주었다.

그새 그 바엔 몇명의 서양남자들이 떠들썩하게 맥주를 먹고 있고

바의 여자들은 춤을추고 난리다.

비가 오락가락 하더니 12시반쯤되어 우리가 싸파리에

가려고 하니 다행이 멈춰줬고 난 다시 그녀의 뒷자리에 앉아

그녀의친구 솜과 몇명의 이름모를 친구들과 싸파리에 갔다.

싸파리에서 또 신나게 춤추고.. 비비안이라는 친구는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서울,,, 김치..하며

자기는 김치를 좋아한다나.. 파통비치에서 일한단다.

사파리는 새벽 4시쯤이 되니 사람들이 하나 둘씩 없어져서

썰렁해지기 시작이다.

콥은 어떤 서양남자를 꼬시는데 성공해서

그녀의 방에 같이 들어가고....

그녀의 친구 솜이 나를 태우고 비치까지 왔는데

솜의 방이 콥의 방 바로 옆 이였다.

솜과 난 그녀의 방 베란다에 앉아 예기를 나누는사이

베란다 밑으로 콥의 방에 들어갔던 남자가 가는게 보이길래

have a good time? 하며 막 웃고 놀려주었다.

콥은 잠깐 와서 담배 두가치를 주고 피곤하다며

먼저 잔단다..

솜과 난 새벽 7시까지 베란다에 앉아 예기를 나누었는데

자기 부모님은 농사를 짓고 자기는 농사일이 너무 힘들고

집이 가난하여 돈을 벌려고 이런일을 하며

자기도 이런생활을 하는것이 싫고 돈을 좀 벌면 당장

때려치울것이라는 예기들은 내 맘을 아프게 했다.

나는 한국에 대해 많이 예기해 주었고.. 그녀는 태국에대해

많은 예길 해주었다.

그리고 자긴 이탈리아 사람이 돈이 없어서 젤루 싫다길래

나두 돈이없다고 하니까 나는 친구니깐 괜찬단다.

그녀는 정말 나에게 친구처럼 대해주었다.

 

내가 계획했던 푸켓에서의 수상스포츠나 스노클링같은것은

파도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못했지만

친구들과 예길 나누며 태국을 더 깊이 알게 되었고

10일간의 짧은 여행이지만 푸켓에서의 2틀은 마음 편안한 휴식이 되었던것 같다.

 

다시 방콕으로 돌아와 룸피니공원을 한바퀴돌고

(이젠 버스타는것이 쉬워졌다)

제주도에서 왔다는 한 여학생을 만나서 사원등을 가이드 해주고..

저녁엔 타마삿대학앞 공터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길래

괜히 두리번 대며 다니다가 은행에 다니는 한 태국 남자를

만나서 우리 여직원 줄 팔찌를 사고 싶다니깐

어떤 시장에 데려다 주어서 싸게 살수 있었다.

비행기 탈 시간이 되어 공항으로 왔는데,,

예약 확인을 않했지만 보딩패스는 곧 받을수 있었지만

바트가 100바트정도 밖에 안남고 우리나라 돈 만오천원이

가진것의 전부 였으니..

할수없이 엄청 손해보고 만원을 바트로 바꿔서 공항세를 냈다.

김포공항에 도착했을때 내 전재산은 90바트와 5천원이 전부다.

이걸로 화려하고도 고생스러운 내 하기휴가이자 첫 해외여행을

마치게 되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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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인도,네팔을 5개월정도 여행후 태국으로 들어와
 라오스로 들아왔습니다.
 조용한 시골마을같은 나라 라오스 여행기 입니다.

98년 9월 기준 1us$ = 40 thai baht = 4000 laos kip  입니다.


1998. 9. 16.            비엔티안

 

어제 방콕을 떠나 오늘 드디어 라오스 국경을 넘었다.

사회주의 국가는 처음이라 조금 설레이는 기분이다.

9월6일에 그토록 지겨워했던 인도를 떠났고 방콕에서 고향에 온듯한

편안함으로 시간을 좀 보내다가 이제 라오스로 들어온것이다.

여행은 5개월을 넘어서고 있다.

태국 농카이에서 버스를 내리자 마자 달려드는 툭툭기사들을 뒤로하고

터미널 앞 식당에서 잠시 숨을 돌리며 아침을 먹고 있는데

일본인으로 보이는 남녀, 서양남자 1명이 국경을 넘을 태세여서

합세하여 툭툭으로 우정의 다리 까지 동행했다.

국경을 넘은후 일본남(야스), 일본여(아유미), 홍콩여(양)

그리고 나 민병규는 비엔티안까지 택시로 가기로 했다.

150B 니깐 40B 씩만 내도 10B 가 남았다.

일본남여는 다른숙소를 찾아본다고 가고 나와 홍콩여(양)은

MC&I GH 를 찾아 3베드를 150B 에 잡았는데 좀있다가 일본남여도

바로 앞방으로 방을 잡았다. 아유미는 방콕에서 일을 하는데

비자때문에 온것이라 한다. 야스가 아유미한테 할머니라고

농담을 하더니 아유미는 30살 이란다.

짜증나지 않을정도의 좀 더운 날씨다.

시장에 나가서 여러가지 약초나 동물 뼈등을 구경하고

암달러 아줌마한테 바트화를 킵(KIP)으로 바꾸었다.

국경에서 1바트에 96킵 이었는데 아줌마는 116킵을 준다.

암달라 아줌마들이 경찰신경 안쓰고 뭉태기돈을 거리에서 막꺼내도,

뭉태기돈을 그냥 주머니에 쑤셔넣고 다녀도 인도처럼 불안함이

없으니 너무 편하다. 500B만 바꾸었는데도 지폐가 주체하기 힘든

양이 되었다.

태국과 마찬가지로 거리는 오토바이가 무척 많고

헬멧은 한명도 안썼다. 거리에 경찰이라곤 없다.

한국차도 가끔 보인다.

라오스의 수도가 이렇게 시골마을 같으니 다른곳은 상상이 간다.

저녁때가 되어 식사를 하러 나섰는데 불을 밝힌 선전보드가 있어 가보니

김일성과 김정일 사진, 평양의 깨끗하고 넓은 거리와 빌딩들 사진이 걸려있다.

한 라오스 남자가 관심깊게 사진을 보고 있어서  어깨를 툭툭 쳐주고 돌아섰다.

저녁으로 베트남 요리를 먹었다.

 

1998. 9. 17.

메콩강가에 나가보았다.

붉은물이 흐르고 있고 주위는 온통 뻘이다. 길가의 흙도 붉은색,

시내에도, 심지어 호텔 내에도 붉은 먼지가 쌓이는 이유를 알았다.

이곳을 도시라고 말할 수 없지만 암튼 도시는 마땅히 쉴 수도 없고 할 일도 없는것이 사실이다.

내일아침엔 방비엥으로 떠난다.

라오링크 라고하는 큼지막한 삐삐를 막 보급하기 시작 했나보다.

선전문구가 많이 보이고 우체국 앞에선 아가씨가 판촉을 하고있다.

저녁때는 야외 분수 레스토랑에서 맥주를 마셨다.

자유로운 분위기속에서 젊은 연인들이 맥주마시는 모습들이 보인다.

 

1998. 9. 18.             방비엥

10시에 출발하는 개인버스인듯한 버스를 가까스로 잡아탔다.

예상외로 사람이 별로 많지 않아 뒤쪽은 텅 빈채로 운행하지만

짐은 아주 많아서 버스뒤쪽과 천장을 다 차지하고 있다.

중간중간 마을의 가게에 짐을 떨궈준다.

14시쯤에 아주작은 시골마을 방비엥에 도착했다.

방비엥에 도착하자 많은 게스트하우스들과 식당들이 보인다.

5000킵(약50바트)에 트윈을 두개(10,000kip) 잡아서 자연히 일본남(야스)

와 내가 방하나 일본여(아유미)와 홍콩여(양)이 다른방에 들었다.

어느정도 관광지화 되었지만 거의 영어가 통하지 않고 숫자정도만

통하는 마을사람들도 모두 순박해 보이고 아이들도 손을 벌리지 않아 더욱 이쁘게 보인다.

 

1998. 9. 19.

아침에 일어나 게스트하우스 앞 길에 나가보았다

앞 버스터미널 뒤쪽으로 보이는 멋진산을 구름이 허리를

감싸안고 돌고있고 문을 활짝열어논 길 건너편 집에선

구수한 올드팝송이 흘러나온다.

북한사람들도 저렇게 TV나 팝송을 즐길 수 있을까?

야스는 문을 열어놓은 앞집에 그냥 성큼성큼 들어가 주인하고 사이좋게 TV를 본다.

누구에게나 "사바디~" 인사하면  "사바디~" 반갑게 인사를 받는다.

근처에 동굴이 있다하여 평화로운 시골길을 걸어 가 보았다.

일단 동굴 앞 냇물에서 수많은 고기들과 같이 수영하고 놀다가

산중턱에 있는 동굴로 올라갔는데 동굴입구에선 방비엥이 한눈에 보인다.

동굴은 시원하고 향을 피워놓아 냄새가 구수했다.

아침에 아유미가 먼저간다고 갔고 양, 야스, 나 이렇게 3명이

움직이게 됐다.

 

1998.9. 20.

터미널 뒤쪽에 있는 시장구경을 나섰다.

홍콩제 담배가 600kip !

라오스에서 좋은건 맥주값과 담배값이 싸다는것이다.

맥주는 큰병이 2500kip밖에 안하니 매일 저녁식사때는

자연스럽게 맥주를 한두병쯤 마시는것이 당연시 되었다.

이곳에선 음식도 닭죽등 입맛에 맞는 음식들이 많아서 입은 항상 즐겁다.

값싼 맥주와 담배와 음식 모두 만족스럽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좋으니 고향에 온듯 푸근하다.

 

1998. 9. 21.             루앙프라방

오늘은 루앙프라방으로 가는날

방비엥에서 도착한날 못했던 도착신고를 오늘에서야 출발신고와 함께하고 버스를 기다렸다.

루앙프라방에 가면 또 도착신고와 출발신고를 이미그레이션에서 해야한다. 이름등을 적고 종이에 도장을 찍어준다.

버스를 기다려 탔는데 앞에는 "금연" "위험물적재엄금"

좀 오래된 현대의 버스다. 중고를 수입해서 사용중인듯 하다.

7시간쯤 달려 루앙프라방에 도착했는데 가는길은 산과 계곡이 그려놓은듯 아름답고 작은 산간마을은

태국 치앙마이 트레킹 할때의 고산족 마을이랑 똑같고 사람들도 비슷하다.

도착즉시 메콩강변의 viradesa G.H. 에 이번엔 조금비싼 7000kip을 주고 넓은 트윈을 잡아

야스와 함께 쓰기로 했다.

 

1998. 9. 22.

시내에 있는 푸시 언덕에 올라 루앙프라방 시가지를 한눈에 감상하고

 

1998. 9. 23.

kwangsi 폭포에 4명이 각 6000kip으로 하루종일 쏭태우을 전세내어 갔다왔다.

아름답고 꽤 높은 폭포였다.

폭포도 멋있고 주변도 깨끗하게 아주 잘 꾸며놓았다.

그곳에서 수영하고 라면먹고 라면먹으며 죽 늘어선 가게의

처녀들이랑 재미있게 웃으며 장난치다가 자고있는 쏭태우기사를

깨워 돌아왔다. 비포장 도로를 달리니 몸은 온통 먼지를 뒤집어쓴다.

일행은 미국남(짐)을 만나 4명이 되었다.

이곳 시장에선 아줌마들이 1바트에 120킵을 준다 (1달라 = 4700킵)

 

1998. 9. 24.

야스와 뉴질랜드여(헬렌)과 메콩강을 건너 작은 마을을 가보았다.

학교인듯한 건물이 보여 가보니 교실에선 수업을 하고 있고

운동장에선 아이들이 놀고있다.

아이들은 호기심에 찬 눈을 반짝거리며 금새 우리주위를 둘러싸고

우리들을 멀찍히 서서 구경하는데 다가가려하면

도망가고 사진을 찍으려해도 웃으면서 몸을 꼬거나 도망간다.

관광지를 가는것보다 작은 마을에서도 더 작은 이런 동네에

구경와서 한가하게 시간보내는것을 인도여행 할때부터 좋아했었다.

마을의 끝에 작은 사원이 있어 무더운 오후시간에 짧으나마

낮잠을 즐길 수 있었다.

승려가 베게까지 가져다 준다.

 

1998. 9. 25.             보트 1일

루앙프라방을 떠나 태국 국경과 가까운 후에싸이로 가기로 했다.

메콩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2박 3일간의 긴 보트 여행이다.

야스와 양과 헬렌과 함께 가게되어 심심하지는 않을듯 하다.

허리를 숙여야하는 지붕을 가진 작은배에 10명남짓 탔다.

우리일행을 제외하고 모두 라오스 사람들이다.

메콩강에 작은 배를 띄어놓고 고기를 잡는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지붕에 올라가 일광욕을 즐기면서 처음1박을 할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게스트하우스를 딱 하나 엉성하게 지어놓았는데 저녁식사포함

7000kip을 내라하여 마을 구경한다고 마을로 들어섰다.

인심 좋아보이는 마을사람을 만나 그의집에서 4000Kip에 식사하고 자기로하였는데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쫓아와서 3000kip에 해주겠다.. 2000kip에 해주겠다..

 맥주도 주겠다... 등등계속 말하지만 우린 이곳이 더 좋다고 그를 돌려보냈다.

집은 층계를 1층정도 올라야 방이 있는데 우리는 방앞에 마루에서 자기로 했다.

저녁식사로 라면과 밥이 나왔는데 식사를 하는도중 동네사람들이 집에 몰려와서 밥먹는 우리를 구경한다.

식사후엔 집앞에 나가보았는데 전기가 없으니 온천지가 깜깜하고 하늘엔 은하수가 떠있다.

별똥별도 하나 보았다.

이불을 깔아주고 모기장까지 쳐 주는 친절한 주인과 어린딸을 사진기에 담고 잠자리에 들었다.

 

1998. 9. 26.             보트 2일

지루한 보트여행을 계속해 오늘도 저녁때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을 둘러보고 가게에서 라면을 요리해 달라하니 밥까지 내준다.

이 마을에선 잘곳이 없는것 같아 보트에서 자려고 내려가니 라면먹은 옆 가게에서

가게마루에서 그냥 자라고 한다.

역시 마루에 앉아 우릴 구경나온 동네사람들과 서로를 구경하며 밤시간을 보냈다.

이동네는 대마초가 많이 나는듯 대마초 피우는 냄새가 많이 나고

마른 대마초를 통채로 갖고와 피워보겠냐는 동네 청년도 있다.

동네 아이들이 너무 이뻐 사진을 찍으려 하면 도망가고 수줍어하더니

나중에야 어렵게 한장 찍을 수 있었다.

돈도 받지 않으면서 이불도 깔아주고 모기장도 쳐주는 주인아줌마한테

아침에 떠날때 돈을 조금 모아 쥐어주었다.

 

1998. 9. 27.             보트 3일

어느새 보트여행 3일째가 되었다.

한참을 가다보니 메콩강 왼쪽은 태국, 오른쪽은 라오스라 한다.

태국쪽은 전봇대도 보이고 찻길도 보여서 가끔 차들도 보이지만 그대신

나무들이 많이 베어져버린 산들을 볼 수 있고

라오스쪽은 인간의 손이 미치지않은 자연 자체이다.

가끔씩 강가에서 대나무에 그물을 메달아 물에 담갔다

건지는식으로 고기잡는 사람들이 보인다.

15시쯤에 국경도시 후에싸이에 도착했다.

보트에서 같이 3일을 보낸 사람들과 인사하고 헤어져 우린 이미그레이션으로 향했다.

우선 양과 야스와 나는 출국 도장을 받았고 헬렌은 보름정도 더 라오스를 여행 한다고 한다.

마침 내일이 헬렌의 생일이어서 같이 점심을 먹으며 생일을 축하해주고 헤어짐을 아쉬워 했다.

인도에서 이미 부러져 스카치테잎으로 땜빵한 썬그라스를

헬렌이 보트 여행중 계속 빌려썼으므로 그것을 생일 선물로 주었다.

헬렌과 작별하고 작은배를 이용해 강을건너 태국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이미그레이션 직원이 1개월짜리스템프를 찍어주는것이 아닌가..

난 한국인이다 3개월로 바꿔달라 하니 미안하다고. 일본인인줄 알았다고..

얼굴이 똑같아서 그랬다고... 여권은 안보고 얼굴만 보냐??

그런데 방콕으로 가는버스가 끊어지고 없었다.

할수없이 치앙라이로 가기로 하고 각 200B에 골든 트라이앵글을 들리는 조건으로 차를 대절했다.

골든트라이앵글은 미얀마, 라오스, 태국이 3각형으로 메콩강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자유로이 드나들수 있는 국경을 가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치앙라이에 도착하자마자 양은 방콕으로 떠나고 야스와 나는 2틀정도를 치앙라이에 머물기로 했다.

라오스여행은 푸근한 사람들과 자연속에서 마음편하게

쉴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세계 최빈국중 하나인 라오스도 이제 개발의 손길이 조금씩

미치겠지만 깨끗한 사람들, 깨끗한 자연을 위해 지금상태 그대로 유지되어 졌으면 하는 이기적인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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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28일간 미얀마를 여행했다.
미얀마의 비자기간은 들어간날로부터 28일이고 방콕에서 가장싼 항공편은
일요일밖에 없으므로 들어간 날로부터 4주후의 일요일에 나오면 딱 28일이 된다.
보통의 경우, 사람들은 남의 여행기를 읽으며 아~ 나도 여기에서 이런걸 해봐야지..
또는 나도 여기에서 이런걸 느껴봐야지.. 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나또한 다른사람들의 여행기를 읽으며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이미 갔다온 곳의 여행기를 읽으면 왜 나는 여기서 이런걸 안해봤을까...
이런걸 느끼지 못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여행은 자신이 하는 것이다.
다른사람의 여행이 아닌 스스로의 여행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느끼는것도 다르며 하는일도 다르다.
어떤사람이 느낌이 더 좋았는지, 어떤사람이 더 가치있는 일을 했는지에 대해선
정답이 없다.
본인 스스로가 여행을 하는이상 본인의 생각과 느낌, 행동이 가장 정답이다.
그것이 가장 가치있는 것이며 그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 내글을 읽고 이자식 여행을 뭐 이따구로 하구있어.. 또는
음 나도 이렇게 해봐야지, 이렇게 느껴야지.. 하는생각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는 알아두되 비어있는 마음으로 여행하고 자신의 느낌을
담아오는 것이 가장 훌륭한 여행일 것이다.


2001년 10월 13일

4개월 가까이 인도, 네팔 여행을 마치고 방콕으로 돌아왔다.
이번 인도, 네팔 여행은 그동안의 여행중 최악 이었다고 할만 하다.
모든 약속과 계획들은 엇갈리고 최소되었고 또 무산 되었다.
인도비자 기간 때문에 캘커타보다 항공권이 비싼 카트만두에 가서 비행기를 타는 것도 그러했고
내가 움직일때 마다 날씨도 심술을 부려 나갈콧에서는 히말라야 콧배기도 못본 것 또한 그러했다.

아무튼 방콕에 다시 왔다.
변함없이 번잡한 카오산로드지만 놀랄만한게 있었다.
고산족이 등장 했다는것이다.
진짜 고산족인지, 물건을 팔기위해 방콕주변에서 옷을 고산족처럼 입고,
몸치장을 그렇게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작은키에 얼굴 생김새등을 봐선
어찌됐던 시골에서 온 사람들 이라는걸 알 수가 있었다.
그사람들은 투박한 악세사리와 옷을 걸친채 최신팝송이 요란한 그야말로
현대 도시의 가장 번잡한곳에서 몇가지의 잡다한 악세서리등을 팔고 있다.
그 모습은 너무나 안어울리는것이고 또 그렇기때문에 잘 어울렸으며
코미디 같이 웃기기도 하였고 또한 서글프기도 했다.
핫팬츠에 나시티를 입고 활보하는 관광객들 사이로
100년전의 모습이었을법한 사람들이 물건을 팔러다니는걸 보면 그런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관광객들은 물건을 사고 꼭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한다.

또 한가지 변한게 있다.
카오산로드에 밤이 되면 방콕의 젊은이들이 다른나라에 관광 온듯 여기저기 기웃대며 다닌다.
예전에 현지인이 없었던것이 아니지만 그 모습이 완연히 바꼈다.
젊은이들에게 독특한 데이트 코스, 또는 독특한 구경거리를 제공하는 쇼핑장소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이번에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인도여행을 마치고 태국에 들어와 동남아 어느 한군데를 여행할 참이었다.
98년엔 라오스, 99년엔 캄보디아를 다녀왔으니 이번엔 미얀마를 가려고 벼르고 있었다.
라오스와 캄보디아와 마찬가지로 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지만 육로로는 갈 수가 없는 나라여서 좀 꺼려지기는 했지만 항공편이 그리 비싸지 않아 크게 문제될건 없었다.
아무튼 난 미얀마행을 결정했고, 방콕에서 여행준비를 하고 정보수집에 나섰다.

여권에 비자받을 공간이 없어 한국대사관에 가서 속지를 더 끼워 붙이고 비자신청을 했다.
비자가 나오는데 2박3일 정도 걸리므로 그동안 칸차나부리에 가서 지내다 오기로 하고
남부버스터미널에서 칸차나부리행 버스를 타니 2시간만에 도착,
게스트하우스가 몰려있는 지역까지 릭샤를 탔다.
사실 태국에 싸이클릭샤가 있었는지 몰랐는데 싸이클릭샤를 보니 반가운 맘이 들었다.
릭샤왈라는 커미션을 받는 숙소가 있는지 그리로 데리고 가려 했지만
일단은 JollyFrog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기로 했다.
넓은 잔디밭 정원과 야자수가 잘 어우러진 멋진 숙소였지만 왠지 나에겐
그리 편안한 장소가 아니고 혼자 어슬렁대려니 조금 머쓱한 기분이다.

아무튼 다음날  VN 게스트하우스로 숙소를 옮겼다.
훨씬 나에게 어물리는 숙소라고 생각한다.
특히 방이 콰이강 위에 떠 있어서 배가 지나치며 파도를 만들면 방이 같이 흔들거린다.
문을 열어놓고 침대에 누워 강을 보며 파도와 함께 출렁거리고 있자니
모든 세상이 이렇게 급할것 없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복잡한 일상에서의 사건들이나 문제거리들은 강건너에서 일어난 작은 대수롭지 않은 일일뿐이다.
하긴 여행을 떠나오면 세상이 어떻게 되든 그런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미국이 테러를 당하든, 보복으로 테러를 하든 그런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건 방이 무지하게 덥다는 것이다.

너무 더워 샤워를 계속 해야만 한다.
샤워를 하는데 작은 도마뱀이 문틈으로 들어왔다.
내가 바로 돌아서자 내 물건을 보고 놀랐는지 흠칫 하더니 도망가 버렸다.
그 작은 도마뱀 때문에 기분이 좋아졌다.
사람, 개, 고양이, 도마뱀들이 서로 어우러져(나름대로는 충돌이
없는것도 아닐테지만)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에 좋은가.
이방인의 관망이라해도 어쨋든 나는 그런 태국이 좋다.
주인없이 길거리를 헤메느라 온몸이 지저분해져 있는 개들도 나는 사랑스럽다.

예전 우리나라 TV에서 누군가 키우던 이구아나가 도망을 쳐서 이웃집 난간에 있었는데
119대원에게 빨리 치우던지 죽여버리던지 어떻게 해버리라고 진저리를 치는
아줌마의 모습을 보았다.
사실 난 그것을 보고 조금 충격을 받았다.
물론 이구아나가 흉칙하게 생기고, 처음봤을때는 많이 놀랄수도 있고,
물린다면 바로 죽겠다고 생각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공격 할 의사도 전혀 보이지 않고 특별히 피해를 입힌것도 아닌데
죽여버리라고 말하는건 좀 너무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지독한 휴머니스트나 동물애호자가 아니더라도 그건 좀 너무 하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처음 보는것이라도 나에게 해를 입힐것인지 아니면 그냥 살아볼려고 애쓰는 생물인지
잠깐이나마 관찰 해 볼 수는 있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나도 방에 들어온 벌레같은것들을 죽이기는 하지만
일단 밖으로 내보내도록 애는 써 본다.
같지 않으면 불편해하는 사람들, 같아지려고 쫓는 사람들, 그럴 수밖에 없는......
그런것들이 짜증난다.

그렇게 한가하게 2틀을 더 보내고 방콕으로 돌아왔다.
한국숙소에 꽂혀있는 가이드북을 보고 미얀마 공부도 조금 했다.
여행준비를 할 때마다 제일 처음 결정해야하면서도 제일 곤란한건 루트를 짜는 일이다.
누군가 중요한곳을 몇군데 찝어 주거나 루트를 대신 짜 주는것도 괜찮겠지만
그러면 왠지 남의 여행을 내가 대신하게 되는 것 같고 주관도 없어지는 것 같아
되도록 스스로 하려고 한다.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처음부터 내 여행에 책임을 지게되어 그만큼 여행에 충실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은 보편적인 루트를 그대로 따라하게되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불타는 도전정신이 부족하다고 생각되지만 나는 뭐 그냥 보통사람일 따름이니까......
어쨌든 보편적인 여행루트를 따라하게 되더라도(선배여행자들이 다녔던 곳이니 최선의 선택이겠지만)
직접 여행가이드북을 훑어본 후에 그렇게 결정짓는것과 모르는 상태에서
누군가가 그렇게 결정지어 주는건 많이 다르단 생각이다.

짐을 추려 작은쌕에 필요한걸 싸고 나머지는 한국숙소에 맏겨두었다.
한달후에 찾을거라 생각하니 조금 불안 했지만 무거운걸 들고 다니는것보단
잃어버리는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다.
32리터 배낭이어서 그리 무겁고 큰건 아니지만 이동이 불편한건 사실이다.
다음 여행땐 여행이 아무리 길지라도 쌕 하나 달랑들고 떠나리라 다짐 했다.
사실 매번 그렇게 다짐한다.  

 

 

 


- 아시아의 숨겨진 황금 미얀마.

방글라데쉬항공이 가장 싼것이라 어쩔 수 없이 타고 가긴 하지만
예전에 캘커타에서 다카를 경유해 방콕에 올때 다카에 비가 많이 와서
착륙할 때 세번이나 활주로에 거의 내리다가 다시 올라가고 하며
거의 죽음을 각오해야했었기 때문에 썩 내키지는 않았다.
다카공항 활주로에 비행기가 착륙 했을때 박수치며 환호하는 사람들이 생각난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었다.

어찌됐던 가난한 여행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래도 요즘엔 무슬림국가의 비행기를 타는게 오히려 안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1시간도 채 안되는 비행이라고 해도 맥주를 마시지 못해 조금 아쉬웠다.
비행기가 착륙하기전 내가 여행할 나라가 어떻게 생겼는지
열심히 창문너머로 지상을 구경했다.
어느나라나 비행기에서 내리기전에 그나라를 공중에서 쳐다보며 앞으로의 여행을
생각해 보는건 가슴 설레고 즐거운일이 아닐 수 없다.
미지의 땅으로 착륙을 한다는건 역시 흥분되는 일이다.
보통 낯선 이성에게 강한 호기심과 흥분을 느끼듯
그렇게 나는 낯선땅을 밟으며 호기심과 흥분을 느끼며 여행을 중단하지 못한다.
 
방콕과 마찬가지로 후덥지근한 공기를 마시며 비행기에서 내렸다.
생각했던대로 아담한 양곤의 공항. 큰 공항 보다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 진다.
공중에서 본 나무가 많고 시골스러운 평온한  느낌으로
미얀마 여행을 시작한다.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하자마자 FEC를 바꾸는곳이 있다.
FEC바꿔주는 여자가 말하는게 좀 웃겼다.
"너 원래 200달러를 200 FEC로 바꿔야하는데 얼마바꿀래??"
난 100달러만 바꾸겠다고 했다.
또 그여자 하는말 "I can help you, can you help me??"    
100달러짜리 여행자수표를 한 장 바꾸기로 했다.
여행자수표는 2달러를 수수료로 내야했고 자기에게 5달러를 달라고 하여
93달러를 받았는데 친절하게도 전자계산기에 100-2-5=93 이라고 보여주며
93 FEC를 내어준다.  
자기가 먹는 뒷돈까지 계산기에 쳐서 보여주는게 웃긴다고 생각했다.
여행 끝부렵에  200달러를 그냥 다 바꿀껄 하는 생각을 했다.
한달 여행에 FEC가 그정돈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선 시내에 있는 보리수님이 운영하는 현지 식당인 Global에 가기로 했다.
그곳엔 미얀마 여행정보를 적어놓은 책도 있고 현지인 매니저에게서
도움도 받을 수 있을것이다.
공항에 대기중인 택시를 비행기를 같이 탄 한국인과 함께 시내까지 3달러에 가기로 했다.
생각보다는 길도 넓고 정비가 잘 되어 있었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우측 통행인데
차는 일본마냥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으니 도대체 뭔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운전기사는 시내까지 가면서 계속 달러를 짯으로 바꾸라고 했고
나는 운전기사가 부르는 1 $ 에 670 Kyats 보다 시내에서 환전하면
더 많이 받으리라 생각했다.
보통의 경우 서투른 삐끼나 어떻게 좀 속여보려고 하는 사람들한테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최소한 670짯은 넘는다는걸 가르쳐주는 셈이 되는것이니
시내에서 환전할때 도움이 되는것이다.
나중에 예상대로 1달러당 705짯으로 바꿨다.
현지인을 대상으로 하는 Global 이라는 간판을 단 식당에 들어섰다.
보리수님은 캄보디아에 가셨고 삔예라는 매니저가 반갑게 맞아준다.

일단 몇일은 이 식당에서 머물기로 했다. 공짜아닌가!!
밤에 술레파야(파야=파고다) 쪽으로 산책을 나섰다.
대충 미얀마를 느껴보려고 길 잃어버리지 않을정도로 걷는다는게
나중엔 아주 엉뚱한 곳에 와버리게 되었다.
보수적일 것 같은 옷을 입고는 있지만 음침한곳에서
쌍쌍이 데이트를 하고 있어서 아주 의외였다.
낮에도 손을 꼭 잡고 걷는 연인들을 자주 볼 수 있으며
사원에서도 데이트 하는것을 볼 수 있으니 미얀마인들은
연애에 있어서는 참 개방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것 같다.
아무튼 물어물어 겨우 식당을 다시 찾았다.
천정이 낮아 고개를 숙여야하는 식당의 다락방에서 미얀마에서의 첫날을 보낸다.

2틀후 White House로 숙소를 옮겼다.
이름이 이름인지라 숙소에 처음 들어갈때는 부시가 처음 대통령이 된 후
백악관에 들어가는 심정을 헤아려보며 나도 멋지게 발을 들여놓아보았다
하지만 도미토리는 침대들이 빈틈없이 붙어 늘어서 있어서 만약에 사람이 많다면
짐은 어디나 놓을것이며 그 불편함은 어떻게 할것인가 걱정되었다.
다행히 도미토리에 손님은 4명정도밖에 없어서 오히려
내 침대 옆에 붙어 있는 침대를 내 침대인양 쓸 수 있어서 좋았다.
여행자는 역시 여행자가 있는곳에 있어야 마음가짐도 여행자가 되는것 같다.

 

양곤은 생각보다 큰 도시였다.
역시 영국 식민지 시절의 건물들도 많이 보이고 특히 시내중심부는 바둑판모양으로
도로와 건물이 잘 정리되어 있어서 조금만 익숙해지면 방향을 잡아 찾아가기가 쉽다.
생각외로 인도인들도 많아서 극장에선 인도영화를 상영하는곳이 많다.
영국 식민지 시절 인도인들이 이곳으로 이주 했다고 하는데
상업적인 마인드가 떨어지는 미얀마인에 비해 인도인은 이곳에서
장사의 수완을 보였다고 한다.
아마 미얀마 남자들이 씹는 '꼰야'라는것은 인도인이 들여온것이 아닐까 한다.
인도에선 '빤'이라고 불리는데 이 빤은 도로와 구석진곳을 온통 빨간색 침으로
더럽히는 원흉이다.
뻘건물이 입안가득 모이도록 빤을 씹다가 찍~ 하고 뻘건물을 뱉어내기 때문이다.

난 사실 도시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우선 양곤에서 만나보기로 한
범례형도 만나봐야 하고, 미얀마에 적응도 해야하고,
양곤의 볼거리도 봐야하기에 1주일정도 머물렀는데
도시에 머무르다 보면 시골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도시의 재미에
어느정도 빠질 수 있어 좋다.
새벽까지 미얀마친구들과 유럽축구를 보며 맥주를 마시거나,
늦은밤 양곤강 건너에 산책을 다녀 오거나, 길거리 찻집에 앉아
미얀마 특유의 밀크티 '라뻬예'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로 밤을 보내고
낮에는 시장을 둘러보거나 길거리의 갖가지 물건을 파는 노점들을 구경하며 다녔다.
사실 무척 더웠으므로 숙소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을것이다.

몇일을 여기저기 어슬렁 대면서 시간을 보낸 후 미얀마의 자존심! 쉐다곤파야를 구경했다.
'쉐' 라는 것은 황금, '다곤'은 양곤의 옛 지명이니 말 그대로 '황금양곤탑' 이다.
갖가지 보석이 잔뜩 들어있는 거대한 금탑이 100미터나 솟아있고
그 주위엔 여러 가지 불상들이 있다.
높고 넓은 탑 주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었는데 얼마나 경건하게 보이는지
아~ 정말 여기는 불교의 나라구나~ 하고 실감할 수 있었다.
스님들이 모여앉아 뭔가를 적고 있어서 옆에 가서 들여다 보았다.
뭔가 공부를 하는것 같았는데 내가 다가가자 하던일은 다 팽개치고 모여들어서
이것저것 말을 걸고 물어본다.
나중엔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농담도 하고 결국은 서로 농담따먹기에 열중했다.
계속 스님들과 웃고 즐기며 시간을 보내다 숙소로 돌아왔다.
참 재미있는 스님들이다.
미얀마 스님들은 담배도 아무데서나 피워문다.

"다나까"라고 하는 백단나무 가루를 얼굴에 바른 여인네들,
론지라고 하는 치마를 입고 꼰야라는 시뻘건 구장잎을 씹으며 활보하는 남정네들,
나무그늘에 여지없이 진을친 거리의 찻집,
음악이 흘러나오는 복권 판매소,
사람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달리는 픽업트럭,
어디서나 눈만돌리면 보이는 금색 파야(파고다),
뜨겁고 무거운 공기,
11월 초. 양곤의 거리 풍경이다.


- 파야의 고향 바간.

몇일 후 바간이라는곳으로 이동했다.
버스는 쇼바가 좋은 일본제 중고 고속버스라고 해도 16시간동안
그다지 좋지 않은 길을 달려야 하니
뭐 편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시골길을 달리며 주변의 작은마을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모습들을 바라보는 즐거움은 잘 뻗은 고속도로를
편안히 달리는것에 비교되지 못한다.
그나마 인도의 버스에 비한다면 슈퍼디럭스울트라우등버스이니까......

원래 맨뒷좌석의 가운데가 내 자리였는데 창문 옆자리에 앉아 나는 여기에 앉을께!! 하고
차장에게 말해두었더니 나중에 온 그 자리 주인인듯한 청년에게  여기! 하며
차장이 가운데자리를 정해주었다.
가운데 자리는 에어콘바람이 잘 미치지 않고 더군다나 맨 뒷자리는 밑에 있는 엔진에서
더운바람이 위로 솟구쳐 올라 그 청년이 좀 괴로운듯 했지만 그래도 어쩔것인가...
나쁜놈이 되기로 한 이상 그대로 갈 수 밖에..  - 미안해 청년..  
그래도 밤이 깊어가니 조금 시원해졌다.
 
바간에 거의 도착할때즈음 새벽잠에 취해 있는 나를 깨운다.
한 미얀마인이 버스에 올라와서 뭔가를 일본어로 나에게 말하는데
나는 어디서나 현지인들이 일본어로 뭔가를 얘기하면 상당히 짜증이 나는 편이어서
인상을 찌프리고 잠에 취한 실눈을 치켜떴다.
그제서야 영어로 10FEC와 여권을 달라고 한다.
바간은 고고학지대라 외국인은 입장료 10FEC를 내야하는것이다.
모든것들이 다 좋은데 외국인에 대한 2중가격제는 정말 짜증난다.
그래도 입장료가 전혀 아깝지 않았던곳이 바간이었던것 같다.

일단 바간은 양곤보다는 훨씬 시골스런 모습이어서 맘에 들었다.
덜컹거리는 마차를 타고 수많은 오래된 파야들이
아예와디강 옆쪽으로 넓게 퍼져있는 올드바간을 둘러보았다.
9세기경부터 미얀마의 고대수도였다고 하는데 사원과 파야를 둘러보면
예전에 누렸던 영화를 상상할 수 있다.

나는 바간에 대해 그리 많은 정보를 수집하지 못했기때문에
마차주인이 가는대로 맡겨두고 그대로 따라갔다.
여행자를 태우고 올드바간을 둘러본 많은 경험이 있을것이기때문에
어디어디를 가자고 하는것보다 더 효율적으로 둘러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마차가 처음엔 재밌기도 하고 뭔가 운치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계속 덜컹거리면서 달리니 나중엔 좀 피곤해진다.
그래도 차를 타고 다니는것보다는 훨씬 좋다는 생각이다.
수없이 산재한 파야도 자연의 일부인 이곳에서 차는 정말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다.
덜컹거리긴 하지만 자연과 같이 호흡하며 그곳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느긋하게 둘러보는건
에어콘을 틀어논 차를 타고 붕붕대며  다니는 그것과는 확실히 다른
뭔가 좀 더 바간에 가까운, 그러니까 말하자면 마차도
바간을 이루는 자연의 일부가 되는것이다.

오래된 파야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면서 2년전에 갔었던 캄보디아의 앙코르왓을 떠올렸다.
확실히 다른 느낌이긴 하지만 전체적인 여행을 생각해 본다면 가장 비슷한 느낌일것이다.
앙코르왓에선  세부적으로 건물하나하나 신경쓰며 본 반면
바간은 전체적인 조망의 느낌이 더 강했다.
조금 높은 파야에 올라 주변경관을 보면 히야~~  하는 감탄을 내는것이다.

 

 

 

바간이 맘에 든것은 숙소가 좋았다는 이유도 빼놓을 수 없다.
내가 묵은곳은 버스터미널에서 가깝고 시골의 집들이 한가하게 늘어서 있는
NewPark 라는 호텔인데 4FEC에 그만한 호텔에 묵을 수 있는건 바간뿐이라는 생각이다.
방문을 열면 숙소정원과 한가한 시골의 주택가가 바라다 보이고
새소리가 들리는 단층 방갈로같은 숙소가 참 좋았고
싸늘할정도로 에어콘을 켜놓고 담요속에 들어가
이불속의 따듯함을 느끼며 잠들고 깨는맛도  좋았다.
무엇보다 시골의 주택가를 거닐며 그들의 생활을 기웃대며 엿보는것이 즐거웠다.
집 주위에서 흙장난치는 아이들, 엄마한테 안겨서 멀뚱대며 쳐다보는 아기,
눈이 마주치면 선하게 웃는 시골 사람들, 그야말로 모든 평화가 여기에 있는것 같았다.

시골의 시장 구경 또한 놓치기 아깝다.
비가 계속 오길래 한숨 자고 났더니 날씨가 괜찮아진것 같아 시장구경을 나섰다.
T셔츠와 론지 등 갖가지 물건을 들고 서로 팔려고 달려든다.
론지는 인도의 룽기와 같지만 인도는 그냥 침대보 마냥 터져 있는반면
미얀아것은 원통형으로 박음질을 해 놓은것이 다르다.
미얀마식 론지를 사려고 마음 먹고 있었던지라 하나 골라 샀다.

시장을 둘러보고 이동네의 몇 안되는 싸구려 현지인식당인듯한
돼지고기 덮밥 하는곳에 가서 점심을 먹었는데 느끼하기가 이루 말 할 수 없다.
그 느끼함은 1년이 넘어가는 지금도 입안으로 상상할 수 있을정도다.
저녁엔 느끼함을 달래려는 변명을 붙이고 맥주를 마셨다.
근데 혼자 맥주 마시는것도 못할 짓 이구나.

바간에서 하루만에 다녀올 수 있는 뽀빠산에 다녀왔다.
난 처음에 이름이 맘에 들고 또 론리플래닛에 나온 사진이 아주 맘에 들어서
이곳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뽀빠이라는 이름에 익숙해서인지 뽀빠산 이라는 이름이 왠지 정감이 들었다.
두시간정도 픽업트럭을 타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을 태우며 비포장 시골길을 달리는데
돈을 좀 더 주고 앞자리 왕복으로 끊길 정말 잘 했다.
돌아올때엔 정말 피곤했으니 뒷자리였으면 정말 끔찍할 뻔 했다.

현지인에겐 토속신앙인 Nat 정령신앙으로 유명한 뽀빠산은
그 모양이 불뚝솟아 있어서 생김새 또한 범상치 않아 주목받기에 충분했다.
올라가는길은 계단과 지붕이 잘 되어있었다.
원숭이들이 아주 많아서 아무곳에서건 뛰어놀거나 길을 가로막고 있는데
만약 과일봉지같은걸 들고 있다면 분명히 원숭이한테 빼앗길것이다.
원숭이들을 재미있게 관찰하면서 천천히 계단을 밟아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 내가 올랐을때엔 하필 안개가 지나가는때여서 안개가 엷게 지나갈 때
슬쩍슬쩍 보았을뿐 꽤 괜찮을것 같은 아래 경관을 보지 못했다.


- 만달레이(밍군,핀우린)

바간에서 만달레이 가는 버스는 미니버스밖에 없다고 하여 그것을 탔는데
버스 중앙에까지 작은 의자를 놓아 사람들을 꽉 채우고 출발한다.
8시간 반쯤 달려 만달레이에 도착했다.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이지만 나중에 생각 해 보면
버스를 타고 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을때가 많다.

만달레이는 역시 들은대로 먼지가 많고 큰 가로수가 많은 양곤에 비해
좀 황량한 느낌이 난다.
나는 거의 어디에든 도착하고 몇시간만에 그곳에 대한 내 마음을 정해 버린다.
만달레이에 대한 내 마음은 "썩 내키지 않는다" 였다.


- 잊혀진 거대 파야 밍군

만달레이에서 이라와디강 서쪽 상류로 1시간 반쯤  배를 타고 가면 밍군 이라는곳이 있다.
보타파야왕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파고다를 조성하려고 계획했지만
그 작업이 끝나기 전에 숨을 거두어서 미완성인채로 관광지가 되어있다.
세계의 많은 권력자들은 볼거리들을 참 많이 만들어 놓았다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뭐니뭐니해도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것 보다
자연이 만든 풍경과 장대함에는 절대 미치지는 못할것이다.
어찌됐든 밍군에 가기위해 배를 탔고 이런 몇시간의 배 여행은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
다만 나는 현지인들과 함께 배를 타는줄 알았는데 외국인 여행자를 위한 배가 따로 있어서
그 전용 배를 타고 가는건 그다지 재밌는 일이 아니었다.
머 좀 더 편하게 여행 할 순 있겠지만 편하면 편한만큼 지루함이 없지않아 있다.

거대한 밍군탑위에선 이라와디강과 그 주변이 한눈에 들어왔다.
예전에 생긴 지진때문에 탑은 여기저기 갈라져 있었는데
그만큼 더 세월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소리가 나는 종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종이라고 하는 밍군종은
그냥 방치되어 있어서 종의 표면은 온갖 낙서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종 안쪽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는게 그곳에 온 사람들이 거쳐가는 의례여서
나도 들어가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을 찍는동안 종이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것인가 심히 걱정 되었다.
종 속에 갇힌채 굶어 죽기전까지 과연 그종을 들어 올릴 수 있을것인가......
90톤이나 하는 이 종을 과연 들어올릴 수 있긴 있는건가......
머 이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사진을 찍고는 빨리 나와버렸다.
종 안쪽에도 역시 낙서가 빼곡했다.

 

만달레이로 돌아오기전에 줄줄이 엮어놓은 엽서를 한묶음 샀다.
조그마한 아이가 학교 갈 돈이 없다고 슬픈 눈을 하고는 엽서를 내미는데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다.
정말 학교를 가고 싶어하는지 어쩌는지는 모르지만 어쨋든 그런 아이들이
여행지마다 항상 여행객을 기다리고 있다가 물건을 팔려고 하는
그런 모습을 보는건 좀 서글픈 일이다.

만달레이에선 꽤 유명한 Nylon IceCream Bar 라고 하는
좀 이상한 이름의 아이스크림 가게가 Nylon 이라고 하는
역시 좀 이상한 이름의 숙소 앞에있다.
예전에 "별로 좋지 않다" 라는 뜻으로 "나이론이야~" 하는 유행어가 한때
친구들 사이에서 나돌던때가 있었던 만큼 우리나라 사람들한테는
좀 웃긴 이름이라고 생각된다.
아무튼 이름이야 어찌됐든 아이스크림은 아주 싸고 맛있다.
한컵에 100짯, 그러니까 200원 정도이니 정말 싼 가격에 그 가게 특유의
여러가지 아이스크림이 아주 다양하게 있다.
저녁때 길가 아이스크림가게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것도 그런대로 괜찮을것이다.

 


- 만달레이의 휴가 핀우린

영국 식민지 시절 영국 대령 May의 이름을 따서 메묘(Maymyo)라고 불리우는
-Myo 는 "동네" 의 미얀마 어-
만달레이 근처의 "핀우린" 은 더위를 피해 몇일 쉬기에 좋은곳이다.
만달레이에 올때부터 만달레이를 구경하기 보다는 밍군과 핀우린을 가려고
맘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만달레이는 단지 밍군과 핀우리을 가기위한 기지로 활용했다.
사람들을 주렁주렁 메단 픽업트럭이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고갯길을 올라가야하는곳이다.
올라갈수록 날씨는 점점 쌀쌀해졌다.

역시 핀우린의 사람들은 제법 두꺼운 옷을 걸치고 있었다.
조그마한 동네가 맘에 드는 곳이다.
정원이 있는 조용한 숙소를 잡고 동네구경을 나섰다.
나름대로 멋지게 장식한 마차가 다니고 있어서 그걸타고 보태니컬 가든으로 향했다.
영국식민지 시절 터키 포로들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한 일본인이 가든을 샀다나 어쨌다나......
어쨌든 관리는 잘 되고 있었고 많은사람들이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입장료를 1000짯 그러니까 2000원이나 받고 있는데
입장료 받는 여자에게 미얀마어로 이쁘다고 하면서 깍아달라고 조르니
500짯으로 깍아주었다.
사실 미얀마 처녀들은 대체로 이쁘다.

밤이되자 맑은 하늘에 달이 선명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달에 토끼가 방아를 찟고 있다는 옛말이 있다고 얘기하니까
동행한 일본인 아저씨가 자기네 나라도 그런말이 있다며 신기해 했다.
어느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먼저 생각했는지에 대해선 논쟁을 벌이지 안았다.

이곳으로 주말을 보내러 오는 만달레이 사람들이 꽤 있어서인지
하룻동안 둘러볼만한곳을 돌아보는 일일투어 프로그램이 있다.
때가 아닌지 일본인이 떠나고 난 핀우린에 외국인이라곤 나 혼자인듯 했다.
몇군데의 사원과 폭포가 입구로 떨어지는 동굴등을 픽업트럭 뒤에
타고 다니는것인데 동굴은 꽤 괜찮았다.
투어 머 어쩌구 하는것들은 별로 좋아하는편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오기에는 무리가 있을테니 이렇게 둘러보는것도 나쁘지 않다.


- 아름다운 호반 냐옹스웨

냐옹스웨는 해발 1300미터가 넘는곳인데 아름다운 인레호수가
넓게 펼쳐진 시골마을이다.
호수에선 대나무와 흙을 이용해 물 위에서 토마토라든가 작물들을 재배한다.
땅을 이용하지 않고 수면을 이용하는것이 신기했다.
호수주변엔 고양이가 점프를 하는 사원이라든가
작은 파야들이 수없이 산재한 작은 동네라든가
거의 관광객을 위한 것이긴 하지만 호수주변의 장터등 볼것들도 충분했다.
뭐니뭐니해도 맑고 파란 호수 그 자체.

우리나라의 경운기용 모터를 단 모터보트(태국의 long tail boat)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호수를 내 달리고 있고
발을 이용해 노를 젖는(아마 이런 노젖기는 미얀마 밖에 없으리라)
조그마한 조각배가 한가하게 호수를 오간다.
산으로 둘러쌓인 호수는 아주 맑고 파랗다.
이런곳을 여행하다보면 마음이 흐늘흐늘해지고
머리로는 다른 잡생각들을 하지 않아도 괜찮아진다.
보통 머리로 뭔가를 생각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왠지 불안해질 수도 있는데
이런곳에선 그냥 아무생각없이 주변을 쳐다보고 있는것으로
할일을 충분히 다 하고 있는것이다.
이런저런 다른 일들은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과거도 미래도 없이
현재의 그곳을 그냥 받아들이는것으로 충분하다.

밤에 장이 시끌벅적해서 가보니 주사위를 이용한 돈놓고돈먹기를 하고 있다.
마을사람들이 다 모인것처럼 북적거리며 그런 놀음(?)을 하는곳이 늘어서 있다.
나도 몇번 돈을 걸어보았는데 역시 난 도박쪽으로는 기술도 없고 운도 없는것 같다.
밤에 오락거리가 없는 시골마을에선 꽤 재미있는 장소가 되기도 하겠지만
가난한 현지사람들이 이런 놀이에 빠져 돈을 다 날리면 어쩌나 하고 생각했다.

밤늦게 숙소로 돌아오다가 게이를 만났다.
여자용 치마를 입고 길게 머리를 기르고 곱게 화장도 한 남자가
다른 몇명의 남자들과 내 옆으로 걸으며 몸을 밀착 하는가 싶더니
손이 다리쪽으로 쓱~ 미끄러져 왔다.
깜짝 놀라며 꽥 소리를 지르니 손으로 입을 가리며 앞서 지나가 버렸다.
앞에서 나를 돌아보더니 눈을 깜박이는데 어찌나 소름이 돋던지
기분이 꿈틀거리는 지렁이처럼 되었다.
여자들이 지하철 같은곳에서 성추행당하는 기분이 이럴까 하고 생각했다.
맹세하건데 나는 지하철 같은곳에서 여자에게 추근거린적이 없다!

미얀마에서 특히 기억나는 식당이 있다면 이곳에 있는 Four Sisters Restaurant 다.
네자매식당! 얼마나 정감있는 이름인가.
이곳 샨 주의 원주민인 인다족의 음식이 나오는데
인다족이 한국과 관련이 있는것인지 반찬이 한국것과 거의 똑 같았다.
(사실 인도에서 오래 보내고 온 터라 한국의 음식맛을 잃어 버렸을수도 있다)
마룻바닥에 앉아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푸짐하고 맛난 음식을 먹었는데
밥을 한 세그릇쯤은 먹은것 같다.
가격이 문제인데 사실 이 식당에선 가격도 문제 되지 않는다.
자기 마음 내키는대로 내고 나오면 그만이니까.

 


- 트렉 미얀마 깔로

평화로운 냐옹스웨를 떠나 쾌적한 고산 휴양지인 깔로로 향했다.
깔로로 오는 길에 구릉을 따라 경작지가 아름답게 색색이 펼쳐져 있었다.
무엇을 기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능선을 따라 이어진
노랗고 푸른 경작지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 외국 관광객도 보았는데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곳인가 보다.
깔로에선 모두들 트레킹을 한다곤 하지만 내 신발은 인도에서 부터 신어서
다 떨어진 샌들 하나밖에 없었으니 트레킹은 포기하고 여기저기 가까운곳을 둘러보았다.
언덕위에 있는 사원에 오르니 깔로가 한눈에 보였다.
산의 모양새가 우리나라와 거의 비슷하다.

숙소에서 아침을 먹을때 영어를 곧잘하는 중년의 일본여자를 만났는데
여행을 아주 많이 다닌듯 했다.
아주 수다스러운 그녀는 유명한 인도 영화노래인 "꾸찌꾸찌호따헤"를 불러제끼고
아침식사를 유쾌하게 만들었지만 도대체 한번도 끊기지 않고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게
참으로 신기한 여자였다.
과거의 예제까지 들어가며 예감에 관한한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그녀의 얘기를 듣느라
오전 한때를 모두 보내버렸다.
동네를 한바퀴 산책하고 오니 그녀는 냐옹스웨가는 픽업트럭을 기다리고 있었다.
같이 앉아  얘기를 나누다가 그녀는 냐옹스웨가는 픽업트럭을 탔고
나는 숙소로 돌아와 바고로 떠날채비를 했다.
나와 그녀는 정반대로 여행하고 있으면서 한번 만날 수 있었지만
나와 같은 루트로 여행하는 사람과는 절대 만날 수 없을거란 쓸데없는 생각과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는것과의 연관성에 대한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며
바고로 향했다.


- 거대불상, 거대파야 바고

바고에 도착하자마다 두 숙소에서 나온 삐끼에 둘러쌓이는 신세가 되었다.
밤새 버스를 타고 와서 새벽에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내린지라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데 숙소 삐끼들이 양 옆에서 떠들어대니
이건 그야말로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결국 두 숙소 다 가보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부처님이 55m 나 되는 길이로 누워있는 사원에선
내가 미얀마인으로 보이는지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
하긴 론지를 입고 피부도 검게 그을렸으니 미얀마인과 다른건 하나도 없다.
열반에 들기 하루전에 길게 누워 세상 시름을 모두 포용하고 잊은 것처럼
은은히 미소짓고 있는 부처님.
그 앞에 앉아 부처님 얼굴을 계속 쳐다보았다.
그리곤 깨달았다.
아.. 나의 내공으론 쳐다보는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구나.
목과 허리가 너무나 아팠기 때문이다.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양곤의 쉐다곤파야보다 더 높은 파야가 바고에 있다.
쉐모도파야라고 하는 이 파야는 높이가 114m 에 이른다고 한다.
새벽에 공양을 위해 줄을지어 파야를 뒤로한채 마을로 향하는
스님들의 무리는 그것 자체로 볼거리였다.

여행을 하며 가끔 종교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는때가 많다.
그리고 가끔씩 도가 지나친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감히 상상도 못할것들을 만들어 놓는다던가
한 없이 존경스러운 이야기들뿐만 아니라 끔찍스러운 잔인한 짓까지
그것이 나쁜쪽이든 좋은쪽이든 종교적인 신념은
인간에게 상상도 못할 힘과 용기를 가져다 주는 것 같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꼭 탈이 나게 마련인것을.
미래는 불안을 의미하고 불안은 알지도 못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미래의 삶을 위해 현재의 삶을 희생하도록 강요한다.
그리하여 결국 현재의 삶도 미래의 삶도 파괴되어 버리는 아이러니.

이곳 바고에서 가까운곳에 온통 금으로 덮혀있는 바위가 있다고 한다.
짜익티요파야 라고 하는 이 신성한 파야를 꼭 봐야하지 않겠냐며
숙소에서 끈질기게 택시투어를 권유했다.
그렇지만 난 정말 보고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런건 보고싶은 마음이 생겨야 보러갈 수 있는거다.
신기하게도 바위가 떨어질 위치에서도 밑으로 굴러 떨어지지 않는다거나
미얀마인에게 신성시 된다고해서 꼭 보고싶어지는건 아니니까.
별로 가고 싶지 않다고 하니 처음 불렀던 투어가격이 떨어졌다.
가격은 떨어져도 바위는 떨어지지 않듯 보고싶지 않은건 보고싶지 않은거다.

길을 지나칠때 삐끼인듯한 사람이 오더니 한 숙소를 가르키며
여자가 있다고 한다.
난 무슨말인지 몰라 난 묵고 있는 숙소가 벌써 있다고 얘기를 했다.
그래도 옆에 붙어서 계속 여자가 숙소에 있다는것이다.
음... 숙소에서 매춘을 하는가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양곤의 미얀마 친구들이 바고는 매춘이 나름대로 유명하다고 알려줬다.
유일하게 바고만 숙소에서 아침식사 제공이 되지 않는다!!.

- 미얀마 여행을 마치며

이제 다시 양곤으로 돌아왔다.
화이트하우스의 빨래하던 자매중 동생이 반갑게 나를 반긴다.
언니는 다른곳으로 일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언제나 밝은 모습의 어린 동생이 보기에 좋다.

나중에 범례형과 연락이 되어 형집에서 몇일동안 신세를 졌다.
전기와 물이 좀 문제이긴 해도 번듯한 아파트로 이사한지 얼마되지 않았다.
외국에서 생활하기가 쉽지 않을텐데도 늘 씩씩한 형이 보기에 좋다.

항상 그렇듯 떠나올땐 늘 아쉬움이 남는다.
그동안의 여행동안 만났던 미얀마 사람들, 여행자들, 겪었던 많은 일들,
모든것들이 한번씩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그중에선 영원이 사라지는것들도 있을것이고 몇년이 지난 후에도
문득문득 떠오르는것들이 있을것이다.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무거운 마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벼운 마음으로 방콕에 착지 한다.
또 여행이 시작될터이니......


hampi 민병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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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서 태국 방콕을 거쳐 캄보디아로 갑니다.


1999. 11. 14.  일  Erypt, Cairo - Kuwait,  KuwaitCity - Thailand, Bangkok

드디어 이집트를 떠나는 날이 되었다.
정들었던 시장통, 언제나 복잡한 거리, 사람들, 숙소에서 일하는 후세인과 작별했다.
모두들 살람 알레이쿰~
356번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면세담배가 무척 싸서 10달러에 2보루를 샀다.
이제 아시아로 다시 날아간다.
저녁때에 쿠웨이트시티에 도착했는데 갈아타고 갈 비행기는 계속 무슨 작업중이고
태울 생각을 않는다.
방콕을 거쳐 마닐라로 가는 비행기라 승객의 대부분이 필리핀 사람들이다.
지루한 기다림 끝에 수리가 끝났는지 3시간이 더 지난 새벽 3시에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승무원들은 빨리빨리 먹고 마시게 하고 빨리 재우려고 하는 것 같았다.
이륙한지 1시간도 안돼 동이트기 시작한다.
하늘이 아름답게 물들었다.


1999. 11. 15.  월  Thailand, Bangkok

오후 1시쯤 방콕에 도착했다.
집에 온 듯 편안한 마음으로 공항을 빠져나와 카오산으로 향했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만남의 광장에서 한국책을 읽고
맥주마시며 아무걱정없는 마음이 되어 잠이들었다.


1999. 11. 19.  금  Thailand, Bangkok - Aran - Cambodia, Poipet - Sisophon - Siemreap

그동안 캄보디아 대사관에 가서 비자를 받았고 가이드북이 없었던지라
캄보디아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며 지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캄보디아로 떠나기위해 숙소를 나왔다.
택시를타고 북부 버스터미널에 간다음 아란행 새벽5시 버스를 타고
국경 마을로 향했다.
이른새벽이라 사람은 몇 명 타지 않았다.
아침 9시30분쯤 아란에 도착.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식당에서 우선 아침을 먹었다.
오토바이택시를 타고 시내에 들러 돈을 조금 더 찾은 후 국경으로 향했다.
캄보디아 국경에서 보건증이 없다는 황당한 이유로 50밧을 내야하며
그러면 약을 준다는 말에 한참을 싸우며 그넘들의 수작을 물리쳐보려 했지만
도저히 도장찍어줄 생각을 않해 어쩔 수 없이 50밧을 지불했고
도장을 받을수 있었다. 무슨 약을 주었는데 받자마자 버려버리고 이미그레이션을 나왔다.
영화같은 장면들이었다.
거리의 아이들, 비포장도로의 먼지, 큰 짐수레를 끄는 사람들,
과거로 훌쩍 뛰어넘어온 것 같았다.
픽업트럭을 타고 우선 시소폰까지 가야하는데 한놈이 접근하더니
시소폰까지는 100밧이라며 픽업트럭이 대기중이니 따라오라고 한다.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 모습이 다 보이는 순진한 놈이 어떻게 사기를 치려고 하는건지....
정말 고맙지만 내가 픽업트럭을 찾아갈테니 괜찬다고 하고 짐싫는 픽업트럭들을 골라
50밧에 시소폰까지 가자하니 서두르며 태우려고 한다.
앞자리의 남자를 비키게 하고 나를 태워서 좀 미안했지만 앞으로 가게될 길이
지구상에서 둘도없는 험한길이란 소릴 들었기에 어쩔수가 없었다.
도로는 말이 도로지 도무지 도로라고 말 할 수 없을만큼 끔찍했다.
폭탄을 맞은 듯 푸욱~ 파인곳은 늪처럼 되어 있었고 비가 많이 온 후인지
군데군데 물이 넘쳐나고 있어서 자기네 앞마당으로 차를 비켜가게 해주고
돈을 받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슬아슬한 다리 같은곳이 나오면 앞에서서 손짓으로 차가 빠지지 않게 도와주고
돈을 받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리도 비좁아 불편한 몸을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하며 그 길들을 지나쳤지만
그래도 나는 제일 좋은 운전석 옆자리라 뒷자리와 짐칸에 탄 사람들을 생각하면
불편하단 생각을 하는것조차 미안한 것이리라.
드디어 시소폰에 도착, 픽업트럭을 갈아타고 시엠립으로 향했다.
그 지옥같은 도로를 겨우겨우 통과하여 저녁 7시쯤 시엠립에 도착해서
한국인 숙소인 Global homestay에 짐을 풀었다.
숙소에 계신분은 생각외로 친절하여 트럭이 앞에 도착하자 뛰어 나와
나를 반겨주셨고 숙소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모두 너무 친절했다.
밤엔 앞마당에서 다 같이 모여 맥주를 마시며 얘기했다.


1999. 11. 20.  토  Siemreap

주변을 한바퀴 돌아보는데 결혼식이 열렸다.
일본남자와 캄보디아 여자의 결혼식이었는데
일본남자는 캄보디아남자보다 더 캄보디아 남자처럼 생겼다.
사진찍고, 술과 음식도 얻어먹었다.
한 아가씨가 자꾸 이것저것 챙겨주어서 다른사람들이 장난으로
야유를 보내고하여 좀 쑥스러웠지만 즐거운 결혼식 장면이었다.


1999. 11. 21.  일  Siemreap

아침 8시 앙코르 사원군으로 향했다.
입장료가 1일에 20달러, 3일에 40달러, 6일에 60달러인데 난 3일권을 끊었다.
좀 비쌌지만 다들 돈은 아깝지 않다고 말을 한다.
혼자 돌아다니고 싶었지만 현지인과 같이 들어가야 한다는 조건도 있어서
하루 5달러에 기사딸린 오토바이까지 대여했다.
Taprohm 사원에서 나무뿌리가 사원의 벽이나 기둥에 얽혀서 같이 살아가는 모습도 보았고
앙코르 왓!  앙코르왓도 보았다.
다행히 트래블게릴라에서 써놓은 두꺼운 가이드북이 있어서 한장한장 읽어가며
앙코르왓을 둘러볼 수 있었다.
정말 규모도 크고 웅장한, 인간이 만든것중에 가장 영감이 뛰어나다는 사원답다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독일사람들이 광고찍는 모습도 보았고, 한국 여행 프로그램 찍는것도 보았다.
그렇지만 가장 눈에 띄는건 캄보디아 사람들.
물건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그 작은돈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가장 많이 보았다.
그들에게 미소 뛰우며 거절하는것조차 미안했다.
순박한 사람들에게 줄 것은 미소밖에.....
내가 웃으면 그들도 같이 수줍은 미소를 보인다.

1999. 11. 22.  월  Siemreap

아침8시에 오토바이가 대기중.
Bayan사원으로 향했다. 수많은 얼굴이 조각되어져 있다.
Ankor thom 사원군도 보았고....
숙소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Grand Circit을 둘러보았고 Preah Khan에서
Neakpean으로 가는도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닉펀 가게앞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린다.
작은 소녀가 차가운거라고 하며 콜라를 사라고 한다.
나는 벌써 춥다고 했다.
꼬마는 자기가 무슨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며 배운 것을 말하는 것 같았다.
"cola!  very cold!" 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캄보이아말을 할 줄 알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반응을 보이지 않자 흙장난을 시작한다.
바싹마른 꼬마다.
비가 어느정도 그쳐 손을 흔들어주고 자리를 떳다.
또 다른곳에선 경찰이 오더니 경찰 뺏지를 5달러에 사라고 한다.
날씨가 축축해서 앙코르왓에서 석양을 감상하리라는 계획은 무산됐다.


1999. 11. 23.  화  Siemreap

개별여행은 처음인 부부 여행자를 만나서 오늘은 그들이 빌린 차를 타고
움직이기로 했다.
이미 가본 사원들과 또 여기저기 안가본 사원들을 둘러보았다.
매일저녁엔 맥주를 마신다.
가까이에 있는 디스코텍에도 가는데 그곳에 있는 많은 여자들은
거의 모두 베트남 여자들이라고 한다.


1999. 11. 25.  목  Siemreap

시장을 구경했고 천막을 쳐 놓고사는 빈민촌을 구경했다.
빈민촌엔 위험하니 않가는 것이 좋겠다고 숙소주인이 말을 했기에
오래 머무르지는 못했다.
숙소의 주인은 여행을 오래 한 권국근씨 이지만 지금은 권국근씨가
잠깐 한국에 갔고 그의 형이 맡아서 일을 하고 있었다.
숙소주인과 몇 명의 여행자와 함께 톤레삽 호수에 나가 배를 1시간 30분정도
빌려 탔다.
호수위에는 슈퍼마켓, 주유소 등 없는 것이 없었다.
말로만 듣던 보트피플...  모두 베트남사람들이라 한다.
수초있는곳을 벗어나니 망망대해다.
세계에서 가장 큰 호수라는 것이 실감났다.
파도까지 쳐서 바다라고 하면 믿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석양을 보고나니 곧 어두워졌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가져간 맥주를 마시고 돌아왔다.
다른 배위에서 열심히 손 흔들던 꼬마가 생각난다.

그럭저럭 주변을 돌며 사람들사는 모습을 구경하고......


1999. 11. 27.  토  Cambodia, Siemreap - Sisophon - Thailand, Aran - Bangkok

새벽에 일어나 픽업트럭을 타고 또 그 최악의 도로를 달려
태국으로 넘어왔고 방콕 시내로 들어오자 국왕 생일을 준비하느라
도시가 휘황찬란하다.
가로수마다 전구를 수없이 많이 늘여뜨려 놓아서 가로등이 없더라도
대낮처럼 밝을 것 같았다.

태국에서는 또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표가
거의 매진되어서 12월 2일 표를 간신히 구했다.

이로써 9개월간의 여행이 끝났다.
나는 무엇을 버렸고 무엇을 얻었을까...

한국에 가자마자 바로 또 일본가는 비행기표를 끊어 가야한다.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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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집트로 왔습니다.


 1us 달러 = 약 3.4 이집트 파운드

1999. 10. 20.  수  Turkey, Istanbul - Egypt Cairo

예약해놓은 공항행 미니버스가 왔다.
손님은 나 혼자.
Ataturk 공항에 도착해 보니 카이로 행 비행기가 1시간 30분 delay 되었다한다.
항공사측에서 버커킹에서 간단히 식사할 수 있는 식권을 주긴했으나
공항에서 1시간 30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항상 공항에서 이렇게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했으므로 공항만 생각하면
지루한 기다림만 생각날 뿐이다.

드디어 보딩이 시작되고 짐을 첵크 하는데 x-ray를 거친 가방을 모두 열어서
내용물을 확인하고 비행기 문앞에서도 다시 가방을 열어 검사를 했다.
어제 있었던 비행기 납치사건 때문에 그런다고 이해는 하지만
내 배낭은 한번 까발리면 다시 추스르기가 쉽지 않아 욕이 절로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낭옆쪽 그물망 안에 있던 큰 맥가이버 칼조차 찾아내지 못하고
단지 작은 손톱깍기를 갖고 이걸 들여보내느냐 마느냐 생각하며
요리조리 돌려보는 모습이 웃겼다.
17시 15분 출발 예정이었으나 21시가 다 되어서야 이륙을 한다.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어 조금 하늘로 오르니 이내 육지의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1시간 30분의 짧은 비행이 끝날무렵 드디어 Cairo가 보인다.
또 다시 새로운 땅에 도착했다.
항상 그렇듯 새로운 땅에 도착하면 설레임과 두려움과 기대감이 한꺼번에 밀려오며
살아있는 나를 온몸으로 느낀다.
visa fee 15달러를 은행창구에서 내고 우표같은 것을 받아 여권에 붙이고
얼마를 환전할까 고민했다..
버스비와 오늘하루의 숙박비, 약간의 여유돈만 있으면 되겠다 생각하고
5달러만 환전하기로 했다.
환전해주는 놈이 한번 더 쳐다본다.   " 그래 5달러만 환전 한다구!! "
모든 심사를 마치고 공항에서 나오니 더울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시원한 바람이 분다.

400번 버스타는곳을 경찰한테 물어 기다렸는데 영 오지 않는다.
택시기사가 옆에 붙어앉아 버스는 끊어졌으니 택시를 타고 가라고 한다.
택시를 탈 수 있는 돈조차 환전하지 않았으니 일단 버스를 계속 기다렸다.
밤 11시가 넘어서고 있었고 외국인 여행자는 나 혼자였고
이집트인조차 몇 명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낯선 이집트의 버스승차장에서 5달러어치의 이집트 파운드를 든채
버스를 기다리는 꼴 이라니....
기다리고 기다리던 버스가 드디어 왔다.
Maidan Tahir까지 가서 Sultan Hotel을 찾아야 한다.
한참을 달려 마이단 타히르에 도착했다.
엷은 밤안개가 끼어있고 주변은 이리저리 뻗어있는 고가도로 때문에
황량해 보이는대다가 고가도로 넘어로 보이는 높이 솟은 Hilton Hotel이
괴기스러워 보였다.
밤거리를 물어물어 40분쯤 걸어 술탄호텔을 찾아내었다.
론리플래닛의 지도가 그나마 정확해서 길찾는데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만
낯선곳에서 밤12시가 넘은 시간을 헤맨다는건 그리 쉬운일은 아니었다.
도미토리를 잡았다. 숙소엔 키부츠에서 일했던 한국인이 여러명 있다.


1999. 10. 21.  목  Cairo

이집트에서의 첫 아침을 맞이했다.
숙소에서 그리멀지 않은 고고학 박물관을 가기로 했다.
가는길에 여행사에 들러 방콕행 비행기표 가격을 대충 알아보았다.
대충 400달러 정도에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박물관에 카메라를 갖고 가면 돈을 더 내야 했지만
표검시관이 카메라를 보지 못해서 그냥 들고 들어갈 수 있었다.
무척이나 넓고 전시품목이 많은 박물관이었다.
한참을 중간에 쉬고서야 다 둘러 볼 수가 있었다.

연구원이 드나들다 문을 살짝 열어놓은듯한 방 안에서
사람들이 미이라를 놓고 작업 하는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유명한 투탄카멘의 황금마스크도 보고 원숭이와 개의 미이라도 보고..
숙소로 돌아와 저녁에 찌개와 밥을 해 먹기 위해 쌀과 야채를 샀다.
이스탄불에서 한국인커플이 고춧가루와 다시다를 주어서
그것으로 충분히 찌개를 만들수가 있다.
술탄호텔에선 간단한 취사도구와 가스랜지가 있어서 밥을 해 먹을수가 있다.
한무리 있던 한국인들이 Aswan으로 떠났고..
또 다른 한국사람들이 오고..  이곳에선 한국인을 자주 만난다.
이집트는 다른 사람들이 말했던것처럼 그리 지저분하지도 않았고
여행하기에도 크게 불편하지 않아 괜찮다.
거리의 사람들에서 아프리카를 가끔 느낀다.


1999. 10. 22.  금  Cairo

늦게까지 게으름을 피우다 아침10시쯤 일어나 또 밥과 찌개를 만들어 먹었다.
이렇게 밥과 찌개를 만들어 먹으니 밥먹는 시간이 정말 좋다.
카이로의 유명한 시장인 칸칼리 수크를 가보기로 했다.
30분정도를 걸어 칸칼리 시장에 닿았다.
시장이야 어디나 비슷하다.
사람이 매우 많고, 시끄럽고, 활기차다.
나는 쇼핑할 물건도 없고 돈도 없어 눈에 들어오는 상점이나 물건도 없었지만
돌아오는길에 이집트냄새가 물씬 풍기는 편지지와 편지봉투를 샀다.
저녁엔 역시 밥과 찌개를 끓여 한국인 2명과 함께 먹고
설거지는 그들에게 시킬 수 있었다.
2틀동안 2팀의 한국사람들을 배웅했다.


1999. 10. 23.  토  Cairo

기차역에 가서 내일밤에 떠나는 Aswan행 기차표를 예매했다.
처음엔 full이라 그러더니 다른창구에 물어보니 표를 준다.
기차표엔 영어라곤 없어서 어느칸의 어느자리인지 다시 물어서
따로 적어놔야 했다.
이집트에 오면 외국인 등록을 해야한다고 해서 Mogamma 빌딩까지 가서
알아봤지만 그것은 3-4개월전에 없어졌다고 한다.
괜히 빌딩 찾아 걷느라 힘만 뺐다.
드디어 피라미드에 가기로 했다.
버스 타는곳을 찾지못해 한참을 헤매다 엉뚱한 미니버스를 2번이나
갈아타는 바람에 시간을 많이 허비 했다.
어쨌든.. 피라미드가 보이기 시작한다...
높이... 솟아 있다.    크다..
피라미드 주위에는 온통 사막이고 낙타몰이꾼들이 낙타를 타고 돌아다니며
손님을 끌고, 경찰도 낙타를 타고 순찰을 다닌다.
단체 관광객이 많아 혼자 다니는것이 조금 궁상맞긴 했지만
말로만 듣던 피라미드를 직접보는 것이 너무 좋다.
피라미드 주위의 낙타몰이꾼이나 말 주인들은 하나같이
do you know how much? 로 물어온다.
인도에선 how much do you want? 로 물어왔었다..

한 낙타 몰이꾼이 한시간동안 피라미드를 돌아보는데 5파운드에 하자그래서
좋다고 하고 탔는데 타고 조금 가려니 멀리 사막까지 가고
하루종일 타는걸로 하자는둥 한시간에 5파운드는 너무 싸다는둥 다른말을 해 온다.
이 쓰바~  내가 젤 싫어하는게 나중에 딴말 하는거야.
인도에서 낙타사파리중 낙타에서 내려 뛰어본적이 있어서 바로 뛰어내렸다.
그러니 또 낙타주인이 따라오며 OK OK 그냥 한시간에 5파운드 하자..
미안하다... 그럼 4파운드에 하자... 하며 계속 따라다녔지만
한번 딴말 한 넘 한테는 아무것도 않한다.
돌아올때는 Sphinx 앞쪽에서 913번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1999. 10. 24.  일  Cairo - Aswan

저녁을 지어 먹으려고 하는데 한 일본인이 식당에 있길래
같이 먹을래? 하니 좋단다.
어짜피 쌀과 야채가 남으므로 밥을 많이 하고 찌개도 많이 끓여
함께 먹고 남은 쌀과 야채를 그에게 주었다.
저녁을 다 먹고 숙소 쇼파에 앉아 얘기 하는데 그가 내 카메라를 보더니
삼발이가 필요하지 않냐고 묻는다.
있으면 좋겠지만 살 입장이 못된다 하니 자기한테 있으니 그걸 준단다.
괜찬아보이는 Tripod 였는데 선뜻 나에게 준다니 놀랍다.
자기 카메라는 좋지 않은거라 이 삼발이는 나한테 어울릴꺼라 한다.
그는 암스텔담으로 일을하러 떠날꺼라 한다.
얘기를 주고받다 헤어져 기차역으로 향했다.
기차에 올랐는데 다리를 쭉 피고 앉아도 충분할 정도로 좌석이 꽤 넓고
에어콘도 시원해서 반바지를 입은 다리에 소름이 돋을 정도 였다.
무슨 생각인가를 하다 곧 잠이 들었다.


1999. 10. 25.  월  Aswan

아침 10시쯤 아스완에 도착했다.
역시 키부츠에서 일을 했다는 한국여자 2명을 만나
숙소를 구하러 여기저기 헤메다 Al orabi 호텔에 묵기로 했는데
Triple 룸이 있어 묵자니깐 어떻게 방을 같이 쓰냐고 한다.
그런거에 익숙해지지 않아서 그런거겠거니 생각하며
아깝지만 돈을 더 주고 싱글룸에서 묵기로 하고 펠루카를 알아보기로 했다.
펠루카는 작은 배를 말하는데 모터 없이 바람으로만 움직여 조용한 것이 참 좋다.
1박2일이나 2박3일간 코몸보 등지로 항해를 한다.

그런데 이 한국여자들,  육로로는 아부심벨에 갈 수 없게된지 오래됐는데도
아부심벨 투어를 할거라고 한다..
아부심벨로는 비행기로밖에 갈 수 없다고 하니 분명히 책엔 투어가 있다는데
무슨말이냐고 따진다.. 나 참.. 키부츠에서 일을 했음에도 정보에 그리도 무지하다니..
숙소주인은 아부심벨을 간다는 소릴 들어서 계속 붙잡고 아부심벨 비행기표를 싸게
끊어주겠다느니 헛소리만 하고 또 한국여자들은 계속 숙소주인에게 붙잡혀 있다가
45파운드면 충분한 펠루카 2박3일을 60파운드나 주고 계약 한 것이다.
펠루카를 같이 탈려고 마음 먹었던 나는 얘기도 없이 먼저
계약한 그들을 황당해 하며 스스로 펠루카 선장을 찾아나섰다.
동행을 찾아 유리한 입장으로 계약하려고 여기저기 숙소마다 찾아가
펠루카 탈 사람이 없나 찾아 보았지만 관광객은 많지않아서 관광객조차 잘 보이지 않는다.

계속 길거리를 헤메며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역시 한 펠루카 선장이 접근해 왔다.
펠루카 선장이 접근하길 기다리고 있던차라 반가운 마음이었지만
짐짓 관심없는척 하고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얼마냐고 물으니 40파운드란다.
1시간의 흥정 끝에 25파운드에 1박2일간 모든 식사포함, 코몸보까지 가기로 했다.
일단 25파운드에 계약 하고 펠루카 구경을 했다.
배위를 평평한 마루처럼 나무로 고정시킬 수 있어서 편하게 갈 수 있을 것 같다.
숙소로 돌아와 그녀들에게 25파운드에 계약했다고 말하자 왜 우리한텐
말하지 않고 바가지쓰게 나뒀냐고 따진다.
정말 기가막혀서.. 말이 안나왔다.
나한텐 아무런 말도 안하고 숙소주인과 얘기하다 먼저 계약한게 누군데..
정말 이해 안가는 처녀들이다..
저녁때엔 나일강변으로 나가 시원한 바람을 맞았다.


1999. 10. 26.  화  Aswan - Comombo

아침을 대충 때우고 시간이 되어 펠루카 있는곳으로 향했다.
원래 6명이 함께 가기로 되어 있다고 하더니 2명은 오지 않아
나를 포함 4명이 가게 됐다.
호주 남여 커플과 오스트리아 남자 1명이 동행이다.
엔진이 없어 너무 조용하고 좋다.
바람은 반대방향에서 부는 것 같은데 지그재그로 강을 오가며 앞으로 나아간다.
동행이 된 사람들과 얘기하다 음악을 틀어놓고 조금 잤다.
저녁때가 되어 코몸보 건너편 선장의 고향마을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저녁과 맥주를 마시며 얘기좀 하다 배 위에서 잤는데 새벽엔 무척 추웠다.
작년에 라오스에서 메콩강을 따라 2박3일간 보트를 탄적이 있었는데 그땐 엔진소리가
너무 크고 보트도 편하지 않았는데 이번 펠루카는 엔진이 없어 정말 좋았다,
강에 물고기들이 정말 많다.


1999. 10. 27.  수  Comombo - Luxor

펠루카에서 아침을 먹고 건너편 코몸보로 향했다.
코몸보 신전을 보고 올 동안 펠루카는 강가에서 기다린단다.
기둥과 문양이 아름다운 신전이었다.
언젠가 어떤 영화에서 본적이 있는 신전이다.
기차역을 향해 좀 더 펠루카를 탔고 10시에 기차역에 도착 했는데
다행히 10시30분에 룩소르가는 기차가 있다고 한다.
룩소르까지 2등칸이 2.2파운드.
기차가 왔는데 바닥은 먼지가 많은 콘크리트로 되어있고
좌석엔 먼지가 수북히 쌓인 완전 고물 기차다.
오후2시쯤 룩소르에 도착했는데 앉아있는동안
검은 반바지가 회색으로 변할 정도로 먼지가 쌓여있다.
날씨가 알맞게 더웠다.

숙소를 잡고 강의 서쪽에 왕가의 계곡등 옛 이집트 왕과
왕비들의 무덤을 둘러보는 WestBank Tour를 신청하려고
숙소에서 일하는 애와 흥정을 시작했다.
65파운드라고 하는데 40파운드면 되는걸 알고 있었다.
결국 40파운드에 하기로 하고 대신 다른사람들이 물어보면
학생할인하여 65파운드에 계약했다고 말하는 조건이다.
그애를 잡고 맥주파는곳에 가자하니깐 길 안내를 하는데
맥주파는곳 못미쳐 가서 가르쳐주며 사오라 한다.
자기는 무슬림이니 맥주파는곳에 가지않겠다고 하며 남들이 보니까 또 안된단다.
오늘도 저녁을 쿠샤리로 먹고 맥주를 마셨다.


1999. 10. 28.  목  Luxor

아침식사포함 숙박비가 5파운드 답게 아침식사가 정말 간단하게 나왔다.
숙소비도 2파운드나 깍은것인데 안깍았으면 정말 배아팠을 것 같다.
8시30분에 투어용 버스가 왔다.
15명쯤 이곳저곳에서 태우고 Westbank로 향했다.
Guide가 딸린 투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왕비의 계곡, 핫셉수트 신전, 왕가의 계곡 등을 둘러볼 것이다.
어떤 양놈이 버스를 타더니 얼마에 계약했냐고 물어본다.
갑자기 물어와 흠칫 놀라 얼마로 얘기해야하나 잠깐 생각하다가
Secret이라 하니 이 버스가 비밀버스냐고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뒤에서 60파운드라고 하니 자기는 왜 65파운드냐고 하고
학생증이 있으면 60파운드라고 하자 그때서야 그가 돈을 지불한다.
크흑~ 만약 내가 40파운드에 계약했다고 말했다면 모든사람들이
다 난리가 났을꺼였다.

무덤이 참 많았는데 무덤을 장식한 그림이나 글씨등엔 모두 의미가 담겨있었다.
누구의 무던인가가 무덤에 들어서면 벽에 새겨져 있고
왕이 신에게 꽃등을 바치고,  그가 죽은 후 배에 자신의 육신과 영혼을 싣고 떠난다.
핫셉수트 신전에선 5000년전에 무역을 했던 그림도 볼 수 있는데
오래되었지만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 있다.
설명을 듣는 도중 지금 이 자리가 몇 년 전 테러범들이 총기를 난사해
관광객들이 죽었던 곳이라 한다.
오후 2시쯤 투어가 끝났다.
점심을 먹고 곧 잠에 빠졌다.
저녁때에나 일어났더니 옆 침대에 일본넘이 들어와 있다.
룩소르 템플에 가보았는데 조명이 괜찬아서 temple이 멋있게 보였다.
만약 낮에 보았다면 더 멋없게 보였을 것이다.
숙소로 돌아와 옆에 있던 일본넘에게 맥주 마실꺼냐니깐
엄청 좋아한다.
맥주를 같이 사와서 마시며 얘기하다 잠이 들었다.


1999. 10. 29.  금  Luxor - Cairo

Temples of Karnak으로 향했는데 미니버스 운전사가 좀 먼곳에 세워주고
다 왔다고 거짓말을 하는 바람에 조금 걸어야 했는데 아침부터 뜨거워 지는지라
짜증이 난다.
덕분에 당나귀 마차를 얻어타고 즐겁게 갈수 있었지만 치사하게 그런 거짓말을 하다니..
Temple은 정말 컸다.
수많은 큰 기둥, 오벨리스크, 예전엔 정말 규모가 굉장했을 것 같다.
숙소로 돌아와 Check Out 하고 계속 숙소에서 시간을 보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내다 기차역에 나갔다.
23:30 정확하게 기차가 왔다.
언제나 그렇지만 혼자 마땅히 할게 없으므로 무슨 쓸데없는 생각인가를 하다
잠이 들었다.


1999. 10. 30.  토  Cairo

아침 9시30분에 카이로에 도착했다.
역에서 술탄호텔까지 걷는데 배낭이 무거워 팔이 다 저렸다.
역시 술탄호텔엔 한국인들이 있어서 그럭저럭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시장에도 다니고 수피댄싱을 알아보러 여기저기 다니다
저녁때엔 오랜만에 한국말로 떠들며 맥주를 마셨다.


1999. 10. 31.  일  Cairo

한 한국여자가(황씨) 여권과 돈을 모두 잃어버려 같이 한국대사관에 가기로 했다.
한참을 헤맨 끝에 대사관을 찾았는데 나는 어느정도 대사관의 불친절과
기계적인 인간대면에 대해, 또 한국인이, 더군다나 그런 공관에 있는 한국인이 한국인을 어떻게 대하는지
몇번 경험을 한적이 있어서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황씨는 태극기를 보자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했고 여권과 돈을 잃어버린데 대해
어느정도 문제 해결의 기대를 걸고 있던 터라
행정관의 태도에 너무 기가막혀 했고 울음까지 터트리게 되었다.
내가 보아도 정말 그 여자 행정관은 너무하다 싶다.
어려운일을 당해 찾아온 사람인데 따듯한 말한마디는커녕
어떻게 해주길 바라냐는 되물음과 밥먹다가 급히 나왔다고 하며
어려운걸음 한 듯 구는 모습이 정말 외국에서 한국인 만나 기뻐하다
뒤통수 맞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결국 그 여자 행정관하고는 말을 하지 않고 예전에 전화통화한 영사가 있는데
그 영사와 말을 하기로 했지만 안에 있으면서 나오지는 않고
전화로 밖에 통화할 수 없는데다 그 여자 행정관과 일을 끝마치라는
말에 또 황씨는 기가막혀 했다.
아스완에서 전화통화를 시도 했을땐 친절하게 대해주며 카이로에 오면
자기를 찾아오라는 말에 또 기대를 걸었다고 하는데
안에 있으면서 나오지는 않고 자기가 나와봐야 문제가 해결 되는 것은 아니니
일단 여자 행정관과 일을 보라고 하니 앞이 더 깜깜해 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여행증명서를 발급받기로 하고 서류작성을 했다.
이스라엘에 가서 계속 키부츠에서 일하며 여권을 다시 만든단다.
우울한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라면을 사서 같이 끓여 먹었다.
위로를 해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같이 웃고 떠드니 괜찬아진 듯 하다.
얘기하고 있는데 옆에 일본넘들이 무슨 계획을 짠다.
오늘새벽에 피라미드 정상에 오를계획은 짠다한다.
나도 같이 끼기로 했다.
경찰에게 걸렸을 때의 구체적인 행동요령과 피라미드까지의 잠입 위치 등 작전을 세우고
일본인 3명과 나 이렇게 4명이 새벽3시30분에 떠나기로 했다.


1999.  11. 1.  월  Cairo  피라미드의 정상

새벽3시 알람시계가 도미토리에 울려댔다.
준비를 하고 나오니 덥던 낮과는 달리 선선하고 추위를 느낄정도다.
택시를 잡고 피라미드로 향했다.
피라미드 근처 마을에 내리며 10파운드를 주니 더 달라고 한다.
10파운드를 던지듯 택시기사에게 주고 빠른걸음으로 마을로 들어섰다.
개들이 어찌나 짖어대는지 한참을 피라미드에 접근하지 못하고 숨어있어야했다.
경찰들이 순찰을 돌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주위가 잠잠해지고 피라미드가 밤중에도 육중한 모습으로 앞에 보인다.
조심조심 발길을 옮겨 등반할 포인트까지 움직였고 드디어 등반을 시작했다.
피라미드의 바위들이 조금 높았으나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거의 다 올라왔나싶어 고개를 들어보면 아직 저 멀리 정상이 보이고
밑을 보니 까마득한게 현기증이 난다.
피라미드 아래에서 개들이 몰려와 짖어대기 시작한다.
속도를 더해 헐떡거리며 올라갔다.
땀이 등을 적시고 다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한참을 올라 드디어 정상!!
기자 마을이 저 아래 멀리 보인다.
밤안개가 엷게 끼어있다.
별이 잘 보였으며 바람이 쌀쌀하게 분다.
모두들 손을 잡고 피라미드 등반 성공을 자축했다.
이집트 기자의 3대 피라미드중 가장높은 쿠푸왕의 것에 오른것이다.
드디어 조금씩 날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이제 후레쉬를 사용하지 않고 사진을 찍을 수 있겠다 싶어
사진을 찍으려고 할 때에 갑자기 경찰이 불쑥 올라와
권총을 뽑아들며 STOP 하며 외친다.
설마 이곳까지 경찰이 올라오리라곤 생각을 못했으므로
모두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빨리 내려가라는 경찰과.. 해뜨는 장면을 보지도 못하고 내려가야하는 아쉬움,
그 와중에도 사진한방 찍고 내려간다하여 사진 한방 찍고,
힘들여 올라왔던 피라미드를 쫓기듯 내려왔다.
밑에 내려오니 경찰이 몇 명 기다리고 있다.
여권을 내놓으라고 한다.
미리 모든 물건들을 빼놓고 왔던지라 모두들의 몸엔 몇파운드의 돈밖에는 없었다.
같이 갔던 여자가 돌아갈 차비를 숨겨 놓았었고 남자들은 가지고 있던
몇파운드의 돈을 다 내놓을 수 밖에 없었다.
제법 겁을 주려고 소리도 지르고 협박도 하지만 속으론 웃기기만 했다.
피라미드를 벗어나 마을에 도착해 서로 웃으며 50%정도 성공한
피라미드 등반을 얘기했다.
숙소로 돌아와 부족한 잠을 다시 청했다.
아침 8시다.

저녁을 먹고 쉬고 있는데 터키에서 만났던 유타까와 마리코가 왔다.
서로 반가워하며 지나간 여행 얘기를 했고 나에게 줄 선물이 있다고 하더니
방에 들어가 신라면 한봉지를 갖고 나타난다.
키부츠에서 다른 한국인한테 얻은 모양이었다.
내일 모래 Siwa Oasis로 유타까와 함께 떠나기로 했다.


1999. 11. 2.  화  Cairo

주변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다 찌개와 밥을 해 먹고
맥주와 함께 마리코와 유타까와 얘기하며 밤시간을 보냈다.


1999. 11. 3.  수  Cairo - Alexandria - Marsa Matruh

아침을 해 먹고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알렉산드리아까지 20파운드나 했지만 에어콘버스라 편하고 시원하게 갈 수 있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와 행 버스는 이미 끊어진 상태였고 마르사마트루에 가서
하룻밤 잔다음 시와로 가기로 했다.
4시간쯤 걸려 마르사마트루에 도착해서 숙소를 잡고 저녁을 먹으러 시내를 헤맸지만
마땅히 싼곳이 없어 8파운드나 주고 그릴치킨 반마리와 밥을 먹었다.
이집트인들이 신혼여행으로 이곳에 온다고 하더니 모든게 비싸다.


1999. 11. 4.  목  Marsa Matruh - Siwa

새벽6시30분에 일어나 시와로 떠날 준비를 했다.
버스를 타고 달리기 시작하는데 곧 사막이 나타났다.
끝없는 사막을 달린다.
정오가 되기전 시와에 도착했다.
작은 마을, 사막의 마을답게 거의 모든 건물이 흙색이다.
Yousef 호텔의 도미토리를 4파운드에 잡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의 모든 식당이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식당이라 그리 싼편은 아니었다.
마을의 중간엔 예전에 살았었고 지금은 낡은 흙벽과 골목만이 남은
작은 마을이 있어서 예전의 생활 모습을 어림잡아 짐작할 수 있다.
마을의 작은 언덕에 올라보았다.
저 멀리 사막과 오아시스가 보인다.
오아시스보단 호수라고 하는게 맞겠다.
인도의 자이살메르와 비슷하지만 조금 더 작고, 더 시골스럽다.
이곳에서도 예외없이 시간이 되자 사원에서 "알라~ 아크바르~ ~"를
외쳐대기 시작한다.
한가지 나쁜점은 이곳에선 맥주를 팔지 않는다는 것이다.


1999. 11. 5.  금  Siwa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갔더니 Gas가 떨어졌다고 한다.
다른식당에 갔더니 마찬가지다.
너무 동떨어진 마을이다보니 내일이나 모래에 가스가 온다고 한다.
대충 딱딱한 빵으로 만든 샌드위치를 먹었는데 너무 먹기가 힘들다.
먹을것과 물을 챙겨 근처 Fatnas Island로 향했다.
가는길에 당나귀마차도 얻어타고 한참을 걸어 오아시스 중간에 위치한
섬 같은곳에 도착했다.
쉬기에 좋게 꾸며놓고 티나 음료수를 파는 작은 가게가 있다.
함참을 쉬다가 사막으로 향했다.
한참을 걸으니 폭4미터 정도의 수로가 나타났다.
차가 다니는 다리를 건너 또 걸었다.
이윽고 나무라곤 없고 온통 고운 모래뿐인 사막에 서게 됐다.
막막한 리비아 사막이 끝없이 펼쳐져있다.
너무 막막하여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을 것 같았다.
외로움은 다른사람의 여지가 있어야 느낄 수 있는것일게다.
한참을 아무도 없는 사막에서 방황하다 되돌아오는 길을 걸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는데 마을까지 가는 길을 너무나도 멀었다.
다행히 사막투어 갔다오는 짚차를 얻어타고 마을로 돌아올 수있었다.
짚차를 얻어타지 못했다면 깜깜한 밤까지 걸어야 했을 것이다.
저녁을 먹고 오니 숙소에 5명의 일본인이 더 와 있었다.
내일은 자전거를 빌리기로 했다.


1999. 11. 6.  토  Siwa

아침을 먹고 자전거를 빌렸다.
주위의 몇군데 볼거리들을 둘러보기로 하고 출발,
작은 언덕 자체가 무덤인곳에 갔는데 여기저기 사람의 뼈가 뒹굴고 있었고
몇 개의 미이라도 부분적으로 보았다.
다음엔 Oracle temple and Alexander, 무너진 벽돌 건물들이 언덕위에 있다.
언덕 위에서의 경관이 괜찮았다.
아래 마을에선 꼬마들이 따라와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역시 시골 아이들이라
부끄럼을 탄다.
아래보이는 시골길로는 계속해서 당나귀마차가 오가고 저 멀리에선
당나귀들이 꽥꽥~ 울어댄다.
Temple of Umm Obayda Amon을 거쳐 Spring of Cleopatra에 있는 찻집에서
차한잔 마시며 높은 하늘에 떠 다니는 뭉게구름을 보며 시골의 여유를 즐겼다.
Dakrour Mountain에 다다랐을때는 해가 거의 질 무렵이 되어 산이라기보단
언덕 정상에 올랐을땐 해가 지고 있었다.
사막 너머로 해가 진다.
해가 보이지 않게되자 온통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과 그 위에 또 끝없이 펼쳐진 붉은 하늘.
내일은 또 사막위로 붉은 해가 뜨겠지.
50파운드나 하는 Desert tour를 내일 떠나기로 신청했다.


1999. 11. 7.  일  Siwa

아침을 먹고 사막투어 준비를 했다.
저녁으로 먹을 음식과 물을 준비하고 비스켓도 챙겼다.
12시쯤 짚차가 왔다.
또다른 짚차엔 서양에서 온 6명의 여행객이 우리와 같은 투어를 떠난다.
항상 그렇듯 떠나기전 마을을 이리저리 돌며 무언가를 준비하더니 이윽고 출발.
곧 사막을 달리기 시작한다.
한참 사막을 달리더니 조그마한 호수에 도착했다.
사막 한가운대에 물고기가 헤엄치는 호수가 있다니..

조금 머물다 다시 사막을 달렸다.
Jeep 지붕위에 올라 광할한 사막을 달리는 기분이 무척 상쾌하고 색달랐다.
사막 가운대에 온천이 있다고 하더니 정말 계란 비린내가 나는 따뜻한 물이
솟아나는 Hot Spring에 도착했다.
우리나라의 목욕탕처럼 되어있어서 물에 들어갈 수 가 있는데
짧은 반바지로 갈아입고 몸을 담그니 조금 더운 날씨였지만 따뜻한물이 기분 좋았다.
한참을 물속에서 놀다가 조그마한 언덕에 올라보았다.
조개화석과 조개껍질이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예전엔 이곳도 바다였나보다.
해 질 시간이 되자 Jeep을 타고 석양을 감상하기 좋은곳으로 이동해서
석양을 감상했다.
오늘도 사막 저 너머로 해가 진다.
온천과 조금 떨어진곳에 천막을 쳐 주어서 모닥불을 지피고 얘기하며
가져간 도시락을 먹었다.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모닥불의 분위기가 썩 그럴 듯 했다.
Sleeping bag을 모닥불 옆에 깔고 누워 가끔씩 떨어지는 별똥별을 헤어렸다.
오늘밤은 달조차 뜨지 않고 구름도 한점 없어 별이 더욱 많아 보인다.
그렇게 별속에 파묻혀 누워있다가 잠이 들었다.
별 지붕이 좋아 천막 안으로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또 별똥별 하나가 떨어진다.


1999. 11. 8.  월  Siwa

새벽에 일어나 어제 졌던 해가 다시 떠오르는걸 감상했다.
역시 광활한 사막위로 해가 떠오른다.
새벽부터 온천에 몸을 담그고 우아하게 tea도 한잔 했다.
다시 Jeep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사막에서 별을 세며 보낸밤이
무척 인상깊은 Jeep 투어였다.
머리가 좀 긴듯하여 머리를 잘랐는데 이발사가 대충대충 머리를 자르기 시작할때부터
내가 왜 이 촌구석에서 머리를 자르려 했나 후회되기 시작한다.
대충자른 머리는 역시 대충 이상하게 되었다.
한국에 갈때까진 좀 길어지겠지.
낮잠좀 자고 내일 아침7시 Alexandria행 버스를 예약했다.


1999. 11. 9.  화  Siwa - Alexandria

7시에 버스가 출발했다.
그동안 정들었던 이 작은 마을, 마을의 교통 수단인 당나귀들,
조그만곳에 모여 복작거리는 사람들, 저멀리 보이는 황량한 사막과 이별하고
또 지평선이 양쪽으로 보이는 곧게뻗은 길을 따라 알렉산드리아로 향한다.
중간 휴식시간에 어제 준비해논 Rice with meat 도시락을 먹었다.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하자마자 기차표를 끊었고 저녁 8시쯤 카이로에 도착했다.
금방 눈을 비비게 만드는 먼지들, 보행자를 아랑곳 않는 차들,
귀청을 울리는 경적소리, 바쁘게 걸어 다니는 사람들.
시골에서 도시로의 이동이 실감났다.
복잡한 거리를 걸어 Sultan 호텔에 오니 집에 온 듯 마음이 푸근하다.
라면을 끓여 내내 차만 타느라 허기진 배를 꽈악~ 채우고
시와에서 마시지 못했던 맥주를 들이켰다.


1999. 11. 10.  수  Cairo

14일 방콕행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쿠웨이트 항공이라 쿠웨이트에서 3시간정도 기다려 Transit 해야한다.
이제 이집트에서 4일의 시간이 남았고 여행은 8개월째, 조금씩 지쳐간다.
수피댄스를 보기위해 칸칼리수크 근처 모스크로 향했다.
저녁 7시30분부터 입장이라 조금 기다린후 입장할 수 있었는데 꾸역꾸역 사람들이
모여들더니 거의 9시가 다 되어 시작한다.
북들과 현악기, 손바닥만한 심벌즈등으로 연주가 시작되고
한사람씩 나와서 재주를 부리기도 한다.
남자무용수가 화려한 옷을 입고 등장하고 주위를 악기든 사람들이 돌며 춤을 춘다.
가운데 무용수는 빙글빙글 제자리에서 돌며 걸쳤던 치마를 돌리며 위로 벗겨낸다.
작은 사원에서 하는 연주라 소리가 박력있다.
무료 입장이지만 모두들 아주 만족하고 박수가 끊이질 않는다.
숙소로 돌아와 맥주를 마시는데 한국여자 2명이 유럽에서 오는길이라며 들어온다.
그중 한명이 인도에 너무 가고 싶다며 이것저것 물어와서
그녀에게 큰 인도 지도를 주었다.
의욕이 넘치는 그들을 보니 보기에 좋다.
새벽 5시가지 그들과 마리코와 얘기 했다.


1999. 11. 11.  목  Cairo

저녁때 마리코와 유타까가 떠나는걸 배웅하고 호텔에서 일하는 Hussain과
차를 마시며 얘기했다.
후세인의 신에 대한 얘기는 아주 재미있었는데 그는 카이로 대학을 나와
변호사를 하다가 그만두고 호텔에서 일 한단다.


1999. 11. 12.  금  Cairo

한국애들과 시내를 걷기로 하고 게지라섬으로 향했다.
게지라섬은 고급 주택가와 Sports Club등이 많이 보인다.
해질무렵 라이온 다리를 건너 이집션 박물관 앞 공터에서
시간을 보내다 돌아왔다.
저녁을 먹고 맥주를 마시며 또 하루가 가고...


1999. 11. 13.  토  Cairo

숙소주변을 빈둥대고 다니면서 이집트 사람들과 거리를 구경 했다.


1999. 11. 14.  일  Erypt, Cairo - Kuwait,  KuwaitCity - Thailand, Bangkok

드디어 이집트를 떠나는 날이 되었다.
정들었던 시장통, 언제나 복잡한 거리, 사람들, 숙소에서 일하는 후세인과 작별했다.
모두들 살람 알레이쿰~
356번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면세담배가 무척 싸서 10달러에 2보루를 샀다.
이제 아시아로 다시 날아간다.
저녁때에 쿠웨이트시티에 도착했는데 갈아타고 갈 비행기는 계속 무슨 작업중이고
태울 생각을 않는다.
방콕을 거쳐 마닐라로 가는 비행기라 승객의 대부분이 필리핀 사람들이다.
지루한 기다림 끝에 수리가 끝났는지 3시간이 더 지난 새벽 3시에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승무원들은 빨리빨리 먹고 마시게 하고 빨리 재우려고 하는 것 같았다.
이륙한지 1시간도 안돼 동이트기 시작한다.
하늘이 아름답게 물들었다.

                                                                          이제 태국을 거쳐 캄보디아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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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서 터키로 들어왔습니다.
이란에서 목말라하던 맥주를 마실 수 있어서 정말 좋았죠..^^
약 1달 정도의 여행기 입니다.


                                                                          1 USD = 약 450,000 TL (Turkish Lira)


1999. 9. 12.  일  IRAN Maku - Bazargan  -  TURKEY Dogubeyazit

나는 왜 항상 국경을 넘을 때 나 혼자일까.
인도에서 파키스탄 넘을때도 다른사람들은 그곳을 넘는 여행자가 많으니
분명 여행자를 만날 수 있을거라 했지만 나혼자 넘었고,
파키스탄에서 이란국경을 넘을때도 나혼자 였다.
지금 이란에서 터키를 넘는데도 나혼자... 난 왜 이럴까.....
이란측 이미그레이션과 터키측 이미그레이션이 한건물에 있는데
완전 시장통이었다.
이란과 터키사람들로 꽉차있고 줄을 길게 서 있는데다 짐들도 많아서
자리잡고 서있기도 힘들다.
이란쪽에서 외국인이라고 빨리 통과시켜주어 조금 빨리 통과했다.
터키쪽에서도 여권을 막흔들어대며 이미그레이션 직원에게 보이니
먼저 앞으로 오라고 한다.
> 어디에 가냐?
> 터키.
> 이곳이 터키인데?
> 터키 여기저기 다 갈꺼다.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통과하긴 했으나 2시간은 걸렸다.
터키측 국경을 빠져나오니 미니버스가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두바야짓까지 가서 숙소를 잡고 처음으로 터키에서 밥을 먹었는데
맛없는 빵은 항상 큰 바구니에 담겨져 있어서 맘껏 먹을수가 있었고
밥에 고기나 야채로 만든 스프같은 것을 곁들여 먹었는데
난 빵이 익숙치 않아 밥만 먹느라 양이 좀 적은 듯 했다.
환전을 했는데 1달러에 45만 리라 정도 된다.
돈의 단위가 크니 밥한번 먹으면 80만 리라정도... 대단한? 액수다.
터키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달러가 오른다고 한다.
조금 있으면 곧 1달러에 50만 리라가 될거라고 한다.

국경마을이라 군인들이 참 많은데 그들은 영화속의 엑스트라처럼 걷고있고
이 동네도 어찌보면 영화셋트처럼 어딘가 모르게 엉성한 분위기다.
우리나라와 같이 헌병이 있어서 지나 다니는 군인들의 용모등을 검사한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날씨가 싸늘하고 오늘은 구름이 끼어 Ararat 산이 보이지 않는다.

저녁 6시쯤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계속들리고 있어 그리로 가보니
결혼파티가 열렸다.
사람들이 손을잡고 원을 크게 만들어 춤을 추고 있다.
나이많은 아저씨부터 어린소녀까지 춤을추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Tea에 관해 재미있는게 하나 있는데 인도에선 짜이라 부르며
좀 진하고 우유까지 첨가한 tea 이고
이란에선 차이라고 부르고 맑은 tea.
터키에선 샤이라고 부르고 역시 맑은 tea 이다.
서로 엇비슷하며 어느 자리에 앉기만 하면 tea를 마시는 모습들이 또 비슷하다.
 

1999. 9. 13.  월  Dogubeyazit - Erzurum

두바야짓에서 하루 더 머물까 하다가 에르즈람으로 향했다.
중간중간 마을에 들려 사람들을 태우고 가는데 마을에서 떠나는 사람들을 전송할 때 양쪽볼을 맞대고 가볍게 키스하고 떠나는 버스에 손을 흔들어 전송한다.
에르즈람에 도착하자마자 고등학생2명이 따라붙어 숙소비를 조금 띵겨 먹을 요량으로 계속 따라다녔지만 중심지까지 길 안내만 한 꼴이 되었고 난 그들을 따돌리고 겨우 숙소를 잡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계속 싼 나라만 다녀서 숙소값이 정말 비싸게 느껴진다.
별로 좋지도 않은 방이 거의 4달러정도가 되다니..

이 도시에 여행자는 나 혼자인듯하다.
길을 거닐다 대학생이라고 하는 터키청년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의 아버지가 대사관에서 일해서 파키스탄,인디아,러시아등 여러나라를 가 보았다고 한다.
내가 인터넷을 쓰고 싶다하니 에르즈람엔 인터넷까페가 아주 많고 값도 싸댄다.
길 안내 받고 그와 헤어진후 메일확인을 했다.

인터넷을 끝내고 옆에 청바지가게가 있어 들어섰더니 주인이 나를 너무 반긴다.
음... 살거 아니고 쫌만 둘러보겠다고 했는데도 너무 친절하게 대해준다.
사실 이런 깨끗한 청바지가게를 본지가 너무 오래된 것 같아 들어서게 된 것이다.
주인아저씨는 이쁜 유리잔에 담긴 tea를 한잔 내주고 이런저런 얘길 물어본다.
바지는 25달러정도 되는데 질은 괜찬은 것 같다.
그가 말하길 터키에서 알아주는 브랜드라고 한다.
즐겁게 얘기하고 나와 밤길을 걸어 숙소로 향했다.
딱히 볼것도 없는 도시인데다 썰렁하기도 하여 내일은 다른곳으로 이동해야겠다.
 


1999. 9. 14.  화  Erzurum - Usufeli

버스정류장을 찾느라 한참을 헤멘후 미니버스로 유스펠리로 향했다.
가는 길 중간에 Tortum이라는 곳이 있는데
작은 시골이라 갑자기 내려서 구경하고 싶어졌다.
차에서 내리니 동네 꼬마와 학생들이 다 몰려든다.
빨리 앞에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가서 일단 피한 후 밥을 시켜 먹었다.
밥을 먹고 나와 동네를 주욱 돌아보니 이건 작아도 너무 작고
외국인 여행자는 내가 처음인지 모두들 신기한 눈빛으로 구경한다.
유스펠리로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옆 찻집에서 샤이를 마시던 사람이 들어오라고 막 손짓한다.
샤이를 한잔 사주며 이런저런 얘길 물어본다.
유스펠리로 간다고 하니 곧 미니버스가 올테니 여기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잠시후 미니버스가 나타나니까 그 아저씨가 나가서 버스를 잡고
내가 갈곳을 설명해주고 나를 태운다.
빠이빠이하고... 곧 유스펠리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숙소를 잡고 주변을 거닐었다.
작은 동네지만 앞에 계곡물이 흐르고 산이 보이는 아름다운 동네다.
여름에는 이곳에서 트레킹을 하지만 지금은 겨울이라 트레킹은 없단다.
동네를 한바퀴 돌아본후 숙소앞에 앉아 있는데 트레킹 가이드라고 하는 사람이 말을 걸어온다.
지금은 시즌이 아니라서 쉬고있다고 하는데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자기도 한국에 아는 친구가 있는데 이름은 "비야 한" 이라고 한다.
나도 그녀를 책을 통해 안다고 했다.
그의 집에 같이 가자고 하여 따라나섰다.
트레킹때 찍은 사진들도 보고 Tea도 한잔 하며 얘기 했는데
이녀석 결국 내 카메라를 사고 싶어한다.
미놀타 카메라를 보여주며 이것을 주고 돈도 더 얹어 줄테니
카메라를 팔라고 한다.

> 너 카메라도 좋은데 왜 내것을 살려고 하냐?
> 너 카메라가 정말 좋아보여 난 좋은 카메라를 살려고 벼르고 있었어
> 이건 내가 네팔에서 정말 큰 맘먹고 산거고 내가 정말 아끼는 카메라야
  그리고 그동안 여행하며 찍어서 정도 많이 들었어 미안해.
> 그래.. 할수없지..  나중에라도 다시한번 잘 생각해봐.
> 그럴게... 하지만 난 내 카메라가 좋아,,, 미안.
숙소로 돌아와 낮잠을 즐긴후 저녁을 먹었는데 말이 안통해 한참을 헤메야만 했다.
 


1999. 9. 15.  수  Usufeli - Trabzon

아침에 계곡 건너편을 돌아본후 12시에 트라브존으로 가기로 했다.
우선 미니버스를 타고 Artvin으로 향하고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는
큰 버스로 갈아탄다고 한다.
그런데 아트빈에 너무 늦게 도착한 때문인지 버스가 떠나버렸고
2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서두를 것 없는 입장이기도 하고 아트빈을 돌아볼수 있어서 괜찮았지만
짐짓 화난 표정으로 여행사에 앉아있는 아가씨한테 막 따졌지만 영어도 안통하는데다
여행사의 이쁜아가씨는 내가 막 따져도 생글생글 웃고 있어서 나도 따라 웃을 수밖에.....

평평한 길이라곤 없는 언덕마을인데 인도의 다르질링과 비슷하단 생각이 든다.
이리저리 마을을 둘러보다가 전화국인듯한 곳에 들어가서
아저씨한데 인터넷 써도 되냐고 하니깐 그 사람의 사무실로 데려가서
자기의 업무용 컴퓨터를 쓰라고 하고 tea까지 준다.
내가 잘못찾아 들어온 것을 알았지만 일단 이렇게 된거 인터넷을 조금 이용하고.....
돈을 내야 하냐니깐 그냥 가라고 한다.
우체국으로 간다고 하니 계단 밑에까지 내려와서 우체국이 있는곳을 가리켜준다.
언제나 그렇듯, 환하게 웃는 표정과 고맙다는 손짓 등으로 인사를 하고 우체국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집에 전화한번 하자.. 전화카드사서 간단히 잘 있다고 통화했다.
여기저기 옷가가에 들려 구경하다가 결국 청바지를 한 장 사게 되었다.
계속 반바지만 입기엔 날씨도 춥고, 하나 있는 긴 면 바진 찢어져서 입을 수가 없다.
드디어 버스가 와서 트라브존으로 향한다.

얼마쯤 가니 흑해가 나오고 흑해를 따라 계속 서쪽으로 달린다.
흑해가 왜 흑해인가 했더니 해변가가 지저분해서 바위들이 모두 검은색이고 해변가에 쓰레기들도 많아서 그런가보다....(농담)
밤이라서 그런지 바다는 정말 검은색으로 출렁이고 있다.
버스가 중간에 고장이 나서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10시가 다 되서야
트라브존에 도착했다.
한참을 걷다보니 러시아 시장이 나오고 숙소가 많이 보여 싸 보이는 곳에 들어섰더니 러시아 창녀들이 진을 치고 있다.
숙박을 위한곳이 아닌듯했다.
다행히 창녀가 없는 한 숙소를 잡아 짐을 풀었다.


1999.  9.  16.  목  Trabzon

기독교인들이 이슬람교의 박해를 피해 절벽위에 건물을 짓고 살았다는
스멜라 유적지가 트라브존 근처에 있다.
그곳까지 갔다오는 투어가 있는 버스정류장에 갔더니 이미 오늘은 끝났고 매일 10시와 11시 두차례 있단다.
할 수없이 내일 가기로 하고 Russian bazzar를 둘러보았다.
긴 통로식으로 된 시장에 없는게 없을정도로 많은 물건들을 팔고 있다.
두꺼운 대학노트로 여행하기 몇 일 전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 했는데
벌써 몇장밖에 남지 않아 일기장으로 쓸 노트를 하나 샀다.

같은가격에 도시의 중심부와 가까운 maydan 근처로 숙소를 옮겼다.
시내의 중심부는 돌로 포장 해놓아서 더욱 운치가 있고 넓은 마이단 공원엔 음료나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거리를 거닐며 오랜만에 도시의 활기를 느낀다..
차들이 지나칠때마다 돌포장 길에서 두두두둑~~ 하는 소리가 들린다.
저녁으로 바로 앞에 보이는 흑해에서 잡았을 생선구이를 먹었다.
저녁 8시밖에 안됐는데 문닫은 상점들이 많다.
생선이 좀 니글거려 맥주한잔 하려했는데 맥주 파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아 콜라 한 캔 사서 마시고..


1999.  9. 17.  금  Trabzon

10시에 스멜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위해 여행사에 갔더니
인원이 3명밖에 되지 않아서 11시에 인원을 더 모아 출발한다고 한다.
할 수없이 11시에 다시 여행사로 나가 버스를 탔다.
페루인, 스위스인, 나 이렇게 외국인 3명과 나머지는 다 터키인이다.
미니버스로 50분쯤 달려 스멜라에 도착했다.

아래에서 보면 절벽에 건물이 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태국에서 만든 학생증이 파키스탄과 이란 그리고 이곳 터키에서도
많이 활용할 수 있어 정말 좋다.
모든곳은 아니지만 일부.. 입장료등을 학생할인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입장료를 끊어 스멜라로 가기위해 산길을 올랐다.
복원작업하는 곳이 많았는데 예전에 그렸을 벽화등을 볼 수 있다.
항상 느끼는것이지만 종교란 인간에게 상당한 힘을 주는 것 같다.
그것이 옳은것이든 그른것이든.

페루와 스위스에서 온 남자들과 얘기를 나누었는데 스위스남자는
한달의 휴가를 받아 여행 왔다고 한다.
휴가가 한달씩이나 되다니..  페루인은 인도에 갈것이라고 하여
인도에 대해 여러 가지 얘길 해주었다.
산을 내려왔지만 오후3시에 돌아간다고 한다.
시간이 남아 우체국에서 옆서를 사서 쓰고....  오는길에 otogar에서 내려달라하여
내일 저녁 Kaysery행 버스를 예약했다.
케이세리에서 다시 괴레메행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시내로 돌아와 밥을 먹고 Ayasofia Museum 으로 향했다.
입장료가 50만 리라나 했지만 오래된 성당이라는 것 외엔 별 볼 것은 없었다.
더군다나 입구에서 아이들이 버릇없이 까불어 대는 바람에 기분까지 좋지 않았다.
시내로 돌아와 흑해가 보이는 Kale park에 나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다.
연인들이 데이트를 하고 있었고..
숙소거실에서 터키인들과 이런저런 얘길 하며 시간을 보내다 방으로 들어왔다.
 


1999. 9. 18.  토  Trabzon - kaysery - Goreme

시내의 거리와 공원과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다 다섯시쯤 오토가르로 향했다.
오토가르의 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버스에 올랐다.
흑해연안을 따라 버스는 계속 달린다.
해가 지고 있었다.
하늘은 붉게 물들었고 바다는 보라색이 되었다.
중간에 버스에서 빵과 콜라를 주어 먹고 비디오를 틀어주었지만
난 잠이 들었다.
휴게소에 설때마다 화장실에 가는데 갈때마다 10만 리라나되는 돈을 내야해서
무척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곳이든 화장실에선 돈을 받는다.


1999. 9. 19.  일  Goreme

아침 7시쯤 Kaysery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괴레매행 버스에 올랐고 곧 괴레메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주변을 한바퀴 돌아보는데 서양 남자 두명이 있길래
어디 묵냐고 했더니 자기들 묵는 숙소에 한국인도 있으니 거기에 가보라 한다.
도미토리에 한명의 한국여자가 (정씨) 묵고 있었다.
일단 도미토리도 싸고 깨끗하지 않은 물이지만 작은 수영장도 있어서 괜찮았다.
오랜만에 한국인을 만나는데 그녀는 이스라엘의 키부츠에서 일을 끝마치고
여행 중이라고 한다.

같이 Open Air Museum에 갔는데 스멜라와 같이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의
박해를 피해 숨어살면서 통로속에 많은 벽화를 남겼다.
버섯처럼 생긴 기암괴석들이 볼만하다.
작은 시골마을 이지만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곳이라 식당이 도시보다도 비싸다.
해질무렵 숙소옆 언덕에 올라 마을을 바라보았다.
작고 조용한 마을주위로 기암괴석들이 주변에 둘러쳐져있는 아름다운 광경이다.
시즌이 되면 마을사람보다 관광객이 다 많이 보일 것이다.
아무튼 도시보단 좋은 느낌이다.

밤 11시30분에 디스코클럽에서 velly dancing show가 있다길래 정과 함께 가 보았다.
사람이 별로 없어서 오늘은 쇼가 없단다.
맥주마시고 춤추고 놀았다.
바위를 깍아 만든 디스코 클럽이다.
지금 묵고 있는 도미토리도 바위를 깍아 만든 숙소...


1999. 9. 20.  월  Goreme

박물관쪽으로 가다가 왼쪽으로 꺽어져 swards valley 라는곳으로 들어섰다.
기암들 사이로 샛길이 나 있는데 인적이라곤 없는 길을 혼자 걷자니 망망한 어느 별을 혼자 걷고 있는듯한 느낌을 준다.

한참을 여기저기 헤집고 돌아다니다 보니 길이 말이 아니었다.
땅은 저 밑에 보이는데 바위 위에서 어떻게 내려 서야할지 난감하다.
억지로 기다시피하여 포도나무가 심어진 경작지로 내려설 수 있었다.
목이 말라 포도를 따먹었다.
포도를 먹으면서 걷자니 토마토밭이 나타났다.
잘익은 토마토를 하나 따 먹었다.
저~ 쪽에서 농부가 나를 부른다.
언덕위의 좁은 토마토밭에서 토마토를 따고 있었다.
늙은 농부는 나에게 담배도 권하고 토마토도 권한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니 그냥 바라보며 웃을 수 밖에..

다시 기암 사이를 걸었다.
걷다보니 넓게 퍼진 기암들 사이에 떨렁 혼자인데 다시 돌아갈길이 걱정되었다.
포도나무 옆 그늘에 앉아 포도를 한알씩 따먹으면서 어떻게 돌아가야하나 생각하며
살랑살랑부는 바람을 친구삼아 지친몸을 쉬었다.
다시 한참을 걸어 아스팔트길을 찾아내어 돌아올 수 있었는데
오는 길이 너무 멀고 더워서 정말 힘들었다.

숙소에서 일하는 아흐메드가 수영을 하잔다.
그가 물위에 떠있는 지저분한것들을 걷어내더니 팔둑에 공기주머니를 차고 돌아왔다.
짜식.... 터프한척 하더니.. 물이 깊은데 수영을 못하니 공기주머니를 달아야한대나....
물이 너무 차서 1시간도 안돼서 몸을 덜덜떨며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옆에 있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축구를 하길래 내가 기웃거렸더니
아흐메드가 함께 가서 축구를 하잔다.
이리뛰고 저리뛰고.. 오랜만에 축구를 하고 있는데 축구공 주인인듯한 아이가 공을 갖고 집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축구는 끝나버리고 말았다.


1999. 9. 21.  화  Goreme

지하도시를 보러 Navsehir에 가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Kaymakli까지 갔다.
미로처럼 굴을 파서 거실, 방, 부엌 등을 만들어 놓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깊은곳에 개미굴 같고 미로같은 굴을 팠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숙소로 돌아왔는데 어제 축구할 때 만났던 아이린(13살 소녀)를 만났는데 자기집에 가자고 한다.  
숙소 바로 옆이었는데 집 마당엔 포도가 탐스럽게 열려 있었고
집안의 모든 바닥엔 카펫이 깔려있다.
아이린의 엄마와 언니가 반갑게 맞아 준다.
앨범을 보여주는데 그 집안은 독일에서 이사온 모양으로
엄마와 아버지의 젊은 시절과 아이들의 아기사진은 독일에서 찍은것들이다.
tea와 그집의 정원에서 땄을 포도등을 먹고 즐겁게 시간을 보냈는데
더욱이 아이린의 언니인 17살 짜리 처녀가 이뻐서 더욱 즐거웠다. ^^

아이린이 영문숙제가 있다고 도와달라고 한다.
영문숙제는 지진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잃어 버린것에 대한 것이었는데
생각해보니 터키에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 세계가 떠들석 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손짓발짓으로 겨우 알아들어 영문숙제를 도와줬다.
나도 인도의 델리에서 터키에 지진이 일어났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아직도 여진이 남아 약한 지진은 가끔 일어난다고 한다.

영문숙제
We are likely to think of the future.
We live dreaming of something.
Nobody knows what will happen tomorrow but something is bound to happen.
So, we have hope for the future.

Thousands of people went to bed on Aug. 16, 1999.
However, something terrible happened to them next morning.
All of a sudden, those who lived on the fourth floor got run into those
who then slept on the first floor.
Who in the word could think this would happen?
They lost all they got, such as lovers, families, houses, and so on.
God gave them their lives and then took them back again.

A lot of people got into sleep for good.
There remained nothing to turn back.
Once they got killed, we could not revive them, nor give them hope and love again.

Nevertheless, the world keeps going.
We have to figure out the source of problems and check whether or
not our environment or surroundings are safe.
We must construct building as strong and safe as possible,
and get ourselves prepared for disastrous accidents in advance.

We have our fingers crossed that horrible quakes like this never happen again,
with the deepest sympathy to those who were victimized by it.
 


1999. 9. 22.  수  Goreme - Kaysery - Malatya

말라티야의 근처 Nemrut Dagi 라는곳은 산꼭대기에 2000년전에 만들어놓은 조각상들로 유명한곳이다.
말라티야를 가기위해 먼저 케이세리로 향했다.
밤 11시 3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예약하고 케이세리 시내구경을 나섰다.
공원인듯한곳에 갔다가 여고 3년생들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는데 그들은 한국과 같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큰 걱정이라고 한다.
같이 사진 찍고 보내주기로 했는데 아이들이 모두 성숙하고 이뻐서 즐겁게 시간을 보낼수 있었다.
헤어질때는 6명이나 되는 아이들과 터키식 양볼 뽀뽀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공원 바로 옆 대형마켓을 한바퀴 돌고 식당에서 콜라 한 캔 마시며 시간죽이기를 했다.
밤 10시쯤 오토가르로 돌아와 버스를 기다리는데 예약한 버스회사의
사람들이 어찌나 재밌던지 시간가는줄 모르고 기다릴 수 있었다.
밤 11시 40분에 버스가 왔다.


1999. 9. 23.  목  Malatya

새벽4시쯤 말라티야에 도착했다.
너무 이른시각이라 근처 허름한 차이가게에서 잠과 추위에 시달리며
날이 새기를 기다려 아침 6시쯤에 숙소 하나를 잡을 수 있었는데
일하는 아이를 깨워 억지로 방에 들 수 있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배낭을 던져놓고 침대속으로 기어들었다.
정신없이 자다 일어나 tourist information center를 찾아
Nemrut Dagi 투어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투어는 미니버스로 산 정상 근처 호텔까지 미니버스로 이동,
일출과 일몰, 하룻밤의 숙박과 저녁식사, 아침식사포함 30 us달러 라고 한다.
내일 오후 12시 30분발 투어를 가기로 하고 말리티야 시내를 둘러보았다.

터키는 어느도시든 중심부에 공원과 야외찻집을 꾸며놓아서 보기에 좋고 그곳에서 여유롭게 차 마시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정말 잘 사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우리나라보다 잘 살지는 못하더라도 어딜 보던지 더 여유가 있어 보인다.
어디서건 가깝게 공원을 접할수 있고 그곳에 앉아 차를 즐기며 담소하는 모습은 우리나라에선 보기 힘든 것이다.
차도나 인도를 보더라도 쾌적하게 꾸며놓은 것은 우리나라와 비교 할 수 없을만큼 유로워 보이고 더 선진국화 되어있는 것 같다.
언젠가는... 우리도 여유를 찾을 수 있겠지.


1999. 9. 24.  금  Malatya

10시쯤 투어를 위해 나섰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Sabri란 사람이 왔는데 그 사람과
다른 또 한사람이 산 위의 호텔 주인이며 운전도 한다고 한다.
Korea에서 왔다고 하니 한국에 자기 친구가 있다고 한다.
이름은 비야 한.
유스펠리에서도 한비야 친구라는 트레킹 가이드를 만났는데
이곳에서도 만난다.
같이 얘기를 하다가 자기 여자친구와 함께 근처 호수로 Picnic을 가지 않겠냐고 한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 결국 Tour는 내일로 미루고 그들과 함께 호수로 향했다.
그녀의 여자친구는 삼랏 이라고 하는데 퉁퉁한 체격에 좋은 인상 이었다.
쇠고기와 닭고기, 야채등을 사서 호숫가에 앉아 바베큐를 해 먹고 맥주도 마셨다.
조용한 호수였다.
보트를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건너가 수영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나는 발을 조금 담근후 잠이 든 것 같다.

저녁 부렵이 되자 해가 지는 동시에 둥근 달이 떴다.
오늘이 한국에선 추석인가..
추석..... 2년째 추석을 타국에서 보내는구나.
말라티야에 돌아왔는데 내일이 군 입대일이라 빈방을 찾을 수가 없다.
군대에 들어갈 많은 젊은이들이 그들의 애인들과 또는 가족들과 걷는 모습이 보인다.
결국 빈방을 한 개도 찾지 못하고 나는 사브리의 집에 가서 자기로 했다.
사브리는 집에 가면 자기의 여자친구를 만났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한다.
그의 집은 조금 떨어진 시골에 있었는데 그의 집에도착해서
소개는 시켜주지 않았지만 그의 어머니, 부인, 아들, 여동생이 있었던 것 같다.
부인은 시골 아줌마였고 사브리의 말처럼 서로 이혼을 원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어쨌든 그는 내옆에서 잤다.


1999. 9. 25.  토  Nemrut Dagi

아침 6시반쯤에 일어나 대충 세수를 하고 그의 차로 다시 말라티야에 왔다.
그는 다른팀의 투어 가이드를 나가기 위해 어딘가로 떠나고 나는 아침 7시부터 시내를 헤매게 생겼다.
차이한잔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인터넷까페를 찾아 메일 확인하고
11시 40분쯤 돌아오니 Tour 떠날 사람이 나까지 7명정도 되었다.
12시에 드디어 출발, 중간에 점심식사후. 4시쯤 Nemrut 산 꼭대기 근처
Gunes 호텔에 닿았다.

4시 30분쯤 다시 차를 타고 산꼭대기로 올랐다.
산 정상은 자갈무덤이고 그 동쪽과 서쪽에 돌 조각상들이 흩어져 있다.
해질 무렵이 되자 다른 호텔에서 터키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왔다.
바람이 차서 1시간쯤 지나자 추위에 떨어야 했다.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관도 좋고 돌조각상들도 괜찮았다.
해가 지는 모습을 본후 호텔로 돌아오자 저녁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저녁을 먹고 맥주도 한잔하고 같이 간 관광객들과 카드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산꼭대기까지는 전기가 들어오지않아 밤 10시가 되자 발전기를 꺼서 주위가 암흑 이었다.
촛불을 켜놓고 일기를 썼다.
내일은 산 정상에서 일출을 봐야하기 때문에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한다.
 


1999. 9. 26. 일  Malatya - Antalya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일어나라 한다.
호텔에서 일하는 아이가 각각의 방을 두드리며 사람들을 깨우고 있었다.
5시 30분쯤 산에 올랐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몹시 추웠는데 벌써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6시쯤되자 해가 붉게 올라오기 시작한다.
산 정상에서 일출을 보긴 처음인 것 같다.
언제나 해는 뜨고 지는 것 일테지.
해가 완전히 올라오고 사람들이 모두 내려가는 것을 본후 내려왔다.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서둘러 내려갈 준비를 하고 다시 말라티야로 향했다.
11시쯤 도착해 관광안내소 앞에 가니 사브리와 그의 여자친구가 와 있었다.
같이 얘기좀 하다 헤어져 Antalya행 표를 예매 했다.
오후 3시쯤 안탈리야로 출발...
인도의 불편한 버스에서는 잠을 잘 잤는데
터키버스는 너무 편해서 그런지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어쨋든 버스는 달리고 밤은 깊어간다.


1999. 9. 27.  월  Antalya

새벽4시쯤 안탈리아에 도착했다.
원래 7시에 도착 예정인데 항상 이렇게 빨리 도착해서 새벽부터 떨게 만든다.
스낵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6시쯤 버스를 타고 Kaleici 지역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려 Kaleici 거리를 걷는데 골목골목이 모두 Pension(게스트하우스)
이었고 온통 꽃향기로 가득했다.
아무도 없는 골목길을 꽃향기를 맡으며 걷는기분이 너무 좋아 피곤함이 싹 가시는 듯 했다.
몇군데를 헤매다 겨우 도미토리에 아침식사 포함 2,300,000리라에(5달러) 숙소를 잡았다.
펜션의 정원에도 꽃향기가 가득하다.
주방도 쓸 수가 있어서 한국음식을 만들어 먹어야겠다고 생각 했다.
아침식사후 주변의 볼거리들을 둘러보고 tram을 타고 종점까지 가서
발 아래로 펼쳐진 바다와 Konyaalty해변을 보았는데 바닷물이 아주 파란색 이었다.
녹색은 보이지 않고 파란색만으로 된 바다.
지중해의 파란물결...
도시의 바다인데도 물이 너무 맑았다.

돌아올땐 배가 많이 몰려 있는곳으로 가보았는데 Tour에 참가하라고
각 배에서 나와 호객을 한다.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tour가격은 계속 내려가고.. 재밌다.
저녁때는 일본애들과 얘기하다가 닭죽을 해먹기로 하고
시장을 본후 마늘과 양파, 감자, 고추만 넣고 밥과 닭을 끓였는데
맛이 괜찮았다.
돈을 좀 많이씩 걷은 것 같아 미안했지만 맛있다고 다들 잘 먹으니 다행이다.
내일은 일본인들이 일본음식을 대접하겠다고 한다.

이 도시 근처엔 Perge, Aspendos 등 유적지와 폭포등 불것들이
주변엔 있는데 여행사의 투어는 너무 비싸고
이 숙소에서 그냥 차로 돌아보는 투어는 15us달러지만
승용차를 렌트해서 둘러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두명의 독일 남자와 한명의 오스트레일리안 중국여자가 있어
내일 차를 rent해서 둘러보자고 제안했다.
처음엔 양놈들이 좀 머뭇거리며 생각해 본다고 하더니
나중에 좋다고 OK 했다.
어린넘들이라 얘기는 잘 통하지 않는다.


1999. 9. 28.  화  Antalya (Perge) (Aspendos) (Manavgat 폭포)
                         (side 해변) (Kursunlu 폭포)

아침 10시쯤에 차를 렌트해서 우선 "페르게"로 향했다.
많은 기둥들이 있었고 예전엔 좋았을테지만 이제는 폐허가 된
목욕탕이 있었다.

"아스펜도스"는 자금도 가끔 공연을 한다고 하는 큰 원형 극장인데
입장료를 내지 않고 위쪽 언덕으로 올라가 담을 넘어 극장의 맨위에서
극장을 구경했다.
이곳에서 클래식 콘서트 한번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마나브갓 폭포는 폭포 주위로 레스토랑만 즐비하고
아무 기대도 않했던 쿠르순루 폭포는 산책할 수 있는길이
폭포 아래쪽으로 길게 나 있어서 쉬거나 걷기에 좋았다.

시데 해변은 온통 가게만 즐비했고 ....
돌아오는길엔 밤이 된데다가 시내에서 길을 잘 몰라 시내를
몇바퀴나 뱅뱅 돌고.. 아무튼 차를 렌트해서 여유롭고 싸게 돌아다닌 것 같다.
차 빌리고 기름까지 넣고 다 해서 1인당 10달러 정도가 들었다.


1999. 9. 29.  수  Antalya

아침에 숙소에 막 도착해 짐을 푼 다까시 가족을 다시 만났다.
파키스탄에서 처음 만나 이렇게 계속 만나게 되다니
정말 인연이 있는 모양이다.
다까시의 어린 딸 나나미도 나를 만나 너무 즐거워 하는 모습이다.
약속도 없이 어떻게 같은 숙소를 이리도 잘 찾아 만나게 되는지.
델리와 자이살메르에서 만났던 유타카도 다시 만났다.

다까시 가족과 함께 해수욕을 가기로 하고 코냘티 해변으로 향했다.
아주 작은 자갈이 깔린 깨끗하고 파도가 없는 해변이다.
많은 사람들이 수영이나 선텐을 하고 있었다.
수영하고 맥주마시고 낮잠자고.. 이게 분명 지중해라는 바다인데
어떻게 이렇게 파도가 하나도 없을수가 있는지 신기하다.
다른 일본인들이 닭죽을 먹었다고 자랑하는 바람에 다까시가 닭죽을 해달라고 조른다.
다 같이 시장으로 향해 이번엔 생강, 터키인삼, 마늘등을 더 사서
닭죽을 끓여 7명이 함께 먹었는데 모두들 맛있다고 좋아한다.
밤 늦게까지 다까시 가족과 함께 도착한 마리코와 이야기하고
게임하며 놀다가 늦게 잠이 들었다.


1999. 9. 30.  목  Antalya

오늘 아침식사는 어제사온 반찬과 빵을 사서 먹고..
머리를 짤랐는데 상체와 머리 마사지까지 시원하게 받았다.
점심을 굶은채 맥주를 마셨더니 취하는 것 같아 한참 자고 일어났더니
저녁준비를 하고 있다.
오늘 저녁은 마리코가 준비를 한다.
좀 기름지고 간장을 사용한 반찬뿐이라 조금 니글거렸지만 아주 많이 먹었다.
식당에서 사먹는 음식만 먹다가 이렇게 해 먹으니 너무 좋다.
오늘도 일본친구들과 밤늦게까지 떠들며 놀다가 늦게야 잠자리에 든다.

 

1999. 10. 1.  금  Antalya

요즘은 계속 다까시 가족과 유따가, 마리코와 함께 일본음식을 해 먹는다.
아침엔 김치를 만들었다.
오늘 저녁엔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오후에 나가 환전을 하고 계속 숙소에서 빈둥대며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혼자 저녁을 먹었는데 다까시 가족이 저녁준비를 하길래
또 저녁을 먹었다.   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애들도 김치를 아주 좋아한다.
오늘도 밤늦게까지 체스게임하며, 맥주 마시며,, 놀다가
새벽이 되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1999. 10. 2.  토  Antalya

아침을 먹고 숙소 옆 바위투성이인 해변으로 가서 낚시하며 놀다가
돌아와 맥주를 마시고...
항상 그렇다... 여기 저기 놀러다니고 맥주 마시는 것이 하루의 일이다.
내일은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 바다낚시를 하기로 했다.
 


1999. 10. 3.  일  Antalya - Bodrum

오늘밤 12시 보드룸행 버스를 숙소에서 예약하고 바다로 나갔다.
낚시배가 대기중이어서 곧 바다 가운대에로 나갔다.
긴 낚시줄 끝에 추가 달려있고 그 위로 올라가며 5개정도의 바늘이 달려있어
새우미끼를 끼우게 되어있다.
낚시줄을 늘어뜨리고 고기가 미끼를 물면 그 진동을 손가락으로 느끼는 것이다.
모두들 몇마리씩 고기를 쉽게 잡았다.
낚시가 실증날때가 되자 모두들 바다로 뛰어든다.
튜브를 타고 일행들과 같이 바다에서 수영하며 놀다가
보트위에서 누워 일광욕을 하고 이곳에서 장기투숙하는
유까의 비키니 몸매를 감상하다가 오후 2시쯤되어 돌아왔다.
잡은 고기가 다 합해 4Kg 정도 되었는데 고기 손질을 하느라
손에서 비린내가 가시지 않는다.

저녁때는 일본애들이 고기를 퀴겨서 맛있게 먹고 모여서 같이 놀다가
10시반쯤 작별을 하고 버스를 타러 나갔다.
오토가르에선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작별하고 서로 부둥켜안고 난리다.
24시가 되자 대기중이던 버스가 일제히 떠나기 시작했고 배웅나온 사람들과
떠나는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간다.
피곤했는지 곧 잠이 들었다.


1999. 10. 4.  월  bodrum

아침 8시 도착 예정이었으나 7시쯤 보드룸에 도착했다.
이곳저곳을 헤맨끝에 숙소를 잡고 보드룸 성으로 향했으나
월요일은 휴관이라 내일 다시 오기로 했다.
tour용 호화 여객선들이 즐비한 항구를 한바퀴 돌아보고
보드룸 성 사진을 찍기위해 언덕까지 먼길을 걸어 겨우 사진 한방찍고 숙소로 돌아왔다.
햇볕이 따갑다.
낮잠 한숨자고 부두 근처 거리를 걸으며 갖가지 배들을 구경하며 걷다가
오토가르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왔다.
내일 오후 1시쯤 떠나는 파묵칼레행 버스를 예약했다.
 


1999. 10. 5.  화  bodrum - Pamukkale

보드룸 성으로 향했다.
성에서 지중해가 보인다.
유럽의 단체 관광객들이 몰려와 내가 나갈때가 되자 성안과 입구가
꽤 혼잡해 졌다.
성 밖 바다에 호화 유람선이 몇척 떠 있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오토가르에 옮겨논후 한시까지 시간을 보내야 하므로
거리를 거닐며 시간을 보내고 점심을 먹은후 버스에 올랐다.
뭔가 이상하다 했더니 버스는 Denizli 까지 밖에 안가고
데느즐리에서 갈아타야 했다.
파묵칼레까지 direct로 가냐고 몇번을 확인 했었는데.....  화가 많이 났으나
어쩔 수 없었다.

작은 마을인 파묵칼레에 도착해 숙소를 잡았다.
수영장과 넓은 정원이 있는 괜찬은 숙소지만 손님도 몇 명 없고
싸서 지내기에 좋다.
주인은 이 숙소를 인수한지 얼마 안되는데 한국 가이드북에 E-mail을
보내 책에 나오도록 하려고 한다길래 도와서 E-mail을 보내주었다.
숙소에서 파묵칼레의 석회봉이 보인다.
하얀색이면 멋있을테지만 중간중간 노란색으로 변색되어 있어서
그리 깨끗해 보이진 않는다.

 

1999. 10. 6.  수 Pamukkale

아침을 먹고 석회봉으로 올랐는데 입장료가 백오십만 리라나 하여
다시 길을 돌아 뒷길로 석회봉을 올랐다.
가이드북에서 사진으로 보는것같이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신기한 모습들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석회봉보다는 뒤쪽 언덕에 있는 원형극장과 뭔지모를 오래된 건물이 조용하고 시간 보내기에 좋았다.
원형극장에서 Antalya에서 같이 차를 렌트했던 Julia 라고 하는
호주국적의 중국여자를 다시 만났다.
날씨는 따듯하고 나른한 우리나라 가을 날씨와도 같다.
저녁을 함께 먹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와
석회봉에서 내려오는 물을 써서 석회가 많이 묻어있는 수영장에서
수영을 조금 했는데 물이 따듯했다.
저녁때는 Julia가 묵고있는 숙소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먹었다.
 

 

1999. 10. 7.  목  Pamukkale - Denizli - selcuk

아침에 차이한잔하고 데니즐리를 경유해서 셀죽으로 향했다.
데니즐리에서 유스펠리에서 만났던 트레킹가이드를 다시 만났다.
그도 여행중이라고 하는데 제법 큰 배낭을 메고 여행중이다.
내 카메라를 보더니 또 카메라 팔생각 없냐고 묻는다.
셀죽에 도착해 숙소를 잡고 바로 옆에있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유적을 돌아보았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약 기원전 500년전부터 세우기 시작해서 완성 되기까진 120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하는데 헤로스트라투스라는 작자가 불을 질러버려 재건 했으며 그 당시 가장 유명했던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의
2배의 규모로 만들어 졌다 한다.
지금은 거의 무너져 예전의 웅장함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숙소로 돌아와 숙소주인들과 시간을 보냈는데
숙소가 편하고 좋긴한데 여자라면 주인 남자를 조심해야 할 것 같다.

 

1999. 10. 8. 금  Selcuk (Ephesus)

아침에 일어나 에페수스로 향했다.
에페수스는 소아시아 고대 이오니아지방의 12개 도시중 하나였는데
그리이스의 3대 건축 양식인 도리아식, 코린트식, 이오니아식중
이오니아식 건축양식이 탄생한곳이며 그것은 예전에 경제적으로
매우 부유했음을 말해주는것이기도 하다.
벌써 많은 단체 관광객들로 입구가 붐빈다.
배낭여행자도 가끔 보이지만 모두 다 Couple이라
혼자온 사람은 나 혼자인 듯 하다.
큰 원형극장과 아직까지 아름다운 도서관건물등 구석구석
돌아보고 입구쪽으로 나오니 단체관광객들로 꽉차있어
시장에 온 것 같다.
아직까지 발굴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곳도 있다.
다시 길을 걸어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쉰후 아르테미스신전과
에페수스에서 나온 유적들을 전시해놓은 박물관으로 향했다.
가슴에 수많은 유방이 있는 아르테미스상과
멋진 대리석조각들이 많이 보인다.
내일 밤 9시발 이스탄불행 버스를 예약했다.
 

 

1999. 10. 9.  토  Selcuk - Istanbul

하루종일 숙소에서 빈둥대며 시간을 보내다
시간이 되어 오토가르로 나섰다.
드디어 이스탄불로 간다.


1999. 10. 10.  월  Istanbul

아침에 이스탄불에 도착, 여행자들이 몰려드는 술탄 아흐멧 지역으로 갔다.
Konya pension을 잡았는데 그곳에 또 다까시 가족과 마리코가 있는게 아닌가..
헤어져있던 몇일동안의 여행 얘기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그들과 함께 갈라타 타워로 향했다.
타워에 올라서자 이스탄불이 한눈에 보이고
유럽과 아시아를 좁은 보스포루스 해협이 가르는 것이 보인다.
저멀리로 모스크의 아름다운 실루엣이 환상적이다.
돌아오는길에 갈라타교 밑의 배위에서 구워파는 고등어 샌드위치를 먹고
주변의 시장구경을 하고 돌아왔다.
시종 걸어다녀 다리가 무척 피곤하다.
저녁은 오랜만에 다까시가족과 마리코 몇몇 다른 일본인들과 함께
중국식 식당에 가서 여러 음식을 시켜 많이 먹었다.

 

1999. 10. 11.  월  Istanbul

숙소가 너무 춥고 시설도 않좋아 좀더 싼 Orient Hostel로 숙소를 옮겼다.
마리코와 이스탄불 대학에 갔는데 신분확인은 물론 가방검사까지 하고
들여보내 주지 않으려 했지만 어렵게 정문을 통과해서 대학을 둘러보았다.
그리 크지는 않았는데 각 건물마다 금속탐지기로 검사를 한다.
대학이 아니라 무슨 정보기관이라도 되는것인가...
밥을 싸게 먹을수 있다고 하여 식당을 찾았으나 식당까지 문을 닫은 후여서
대학을 나와 이집션 바자르로 향했다.
활기찬 시장을 둘러본후 Topkap 궁전을 구경했는데
화려한 보석과 그릇들이 많았고 특히 큰 다이아몬드 앞에선
여자들이 자리를 쉽게 뜨질 못하고 있다.

술탄아흐멧 지역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한국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오늘은 숙소의 디스코 바에서 밸리댄싱 공연이 있는날이다.
바에서 맥주를 마시며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가슴을 아슬아슬하게 가린 여자가 나와 밸리댄싱을 추기 시작하고 분위기가 고조되자 한명 한명 가운데로 끌어와 춤을 추게 하고
결국 나중엔 모두가 나와 춤을 추게 되었고 그 사이 댄서는 사라져 버렸다.
즐겁게 춤추고... 즐겁게 놀았다....

 

1999. 10. 12.  화  Istanbul

보스포로스해를 가로질러 흑해 근처까지 운항하는 배를 타고
Anadolu Kavagi까지 가면서 이스탄불의 여러 모습들을 감상하고
이번엔 버스를 타고 이스탄불의 아시아쪽인 Uskudar 까지 와서
유럽쪽으로 지는 해를 보고 아름다운 모스크의 실루엣을 감상한후
숙소로 돌아왔다.

밤에는 전구를 여러개 달아놓아 번쩍이고 있는 블루모스크 앞에서
맥주를 사 와서 마시며 마리코와 이런 저런 얘기하며 이스탄불의
밤은 깊어가는데 저쪽 앞에선 남녀가 너무너무나도 뜨거운 장면을 연출하며 볼거리까지 제공하고 있지만....
너무 추워 숙소로 돌아왔다.

 

1999. 10. 13.  수  Istanbul

이스탄불의 신시가지인 Taksim 광장과 Istiklal 거리를 가보기로 하고
에미노뉴에서 버스를 탔다.
현대적인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곧 탁심광장에 도착했다.
분수주위에 사람들이 앉아 얘기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곳에서 다까시를 만났는데 일본 대사관에 간다고 한다.
이스티크랄 거리를 거닐었다.
길 가운대로 이쁜 트램이 천천히 오간다.
번화가 답게 세련된옷을 많이 볼 수 있으며 자유스런 젊은이들을 느낄 수 있다.

술탄아흐멧 지역으로 돌아왔더니 장이 열려있다.
매주 수요일이면 장이 열린다는데 야채와 과일이 특히 많이 보인다.
귤이 보이길래 조금 사서 먹었는데 역시 우리나라 귤이 맛있다.
그저께가 터키에 온지 한달이 된날이라 얼마나 썼는지 확인을 해보았다.
540달러.   헉... 눈이 튀어나온다.
한달에 540달러라니 인도, 파키스탄, 이란에 비해 약 3배.

 

1999. 10. 14.  목  Istanbul

내일 아침에 마리코가 이스라엘로 떠난다고 하여 같이 이집션 바자르에가서 애플티를 사고 한국식당에가서 볶음밥을 먹었다.
이곳 터키에서 시리아, 요르단을거쳐 이집트를 가려고 했었지만
시리아, 요르단은 포기하고 바로 이집트로 가기로 했다.
돈도 거의 다 떨어져 가는데다 혼자의 여행이 지친것도 같다.
 

1999. 10. 15.  금  Istanbul

새벽에 마리코를 떠나보내고 다까시가족이 싸고 정말 좋은 숙소를 잡았다고 하여 술탄아흐멧에서 5분거리인 Galata hostel로 숙소를 옮겼다.
주방을 사용할 수 있고 옥상에서 바다가 보이는 숙소였는데
특히 주인인 이스마엘이 너무 좋아 맘에 든다.
이스마엘이 빵을 사와서 아침을 숙소에서 먹었다.
Tea는 무료여서 아무때나 마시고 싶을 때 마시면 되었다.
한국인커플이 한팀 묵고 있고 나머지 몇 명은 다 일본인이다.
한국인 커플에게 이집트에 대한 정보를 얻고 저녁으로 그들이 만든
찌개와 밥을 먹었다.
찌개와 밥,,,


1999. 10. 16.  토  Istanbul

지하궁전을 가보았다.
뭔지모를 스크린과 괴기한 소리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밑엔 물이 있고 그위를 다니며 구경하는것인데 지하에 이렇게
거대한 공간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저녁으론 일본애들이 일본음식을 만들어 맛있게 먹었다.
매일 이렇게 쌀밥을 먹으니 너무 좋다.


1999. 10. 17.  일  Istanbul

블루모스크 주위를 한바퀴 산책하고... 이렇게 저렇게 시간을 보낸다.


1999. 10. 18. 월  Istanbul

내일모래 떠나는 카이로행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저녁때 매블라나교단의 종교의식중 하나인 매블라나춤을 보러
한국인커플과 함께 공연이 있다는곳에 갔다.
관광객을 위한 공연은 아니었고 자기들끼리의 종교의식을 하는것인데
소수의 관광객이 관람하려고 찾아오기도 한다.

기도가 시작되고 춤을추는 사람들이 검은옷을 입고 천천히 인사를 하며 입장한다.
여러신도들의 기도가 계속되는 가운데 검은 망토같은 옷을 벗고 서서히 춤을 추는데 6명정도 되는 사람들이 스스로 돌면서 또 원을 그리며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 것이다.
양팔을 벌리고 한 손바닥은 하늘을,  한 손바닥은 땅을 향하는데 알라신한테 받아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의미 한다고 한다.
음악이 격렬해지면 기도하는 사람들의 소리도 격렬해지고
상체와 고개를 리듬에 맞춰 흔든다.
춤은 더욱 빨라져 점점 더 빨리 돌고... 돌고.. 보는 사람이 어지러울 정도 였다.
기도가 거의 끝날무렵 춤도 끝나고 한사람이 무언가를 낭송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에 맞춰 아민~ 아민~~ 한다.
모든 의식이 끝나고... 늦은 밤길을 오래도록 걸어 돌아왔다.


1999. 10. 19.  화  Istanbul

새벽에 한국인 커플이 떠났고 리라를 조금 남겨두고 달러로 바꾸었다.
저녁때는 닭을 3마리사서 닭죽을 끓여 15명이나되는 사람들이
함께 먹었다.

밥을 거의 다 먹었을때쯤 한 일본인 여자가 왔는데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를 찾아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남자는 이곳에 있다가 어제 다른곳으로 떠나버린 것이다.
이런 운명의 장난이..
아무런 약속도 없이 남자를 찾으러 이 먼 터키까지 찾아오다니...
만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그 남자가 떠난곳에 있는, 여행자들에게 유명한 몇몇 숙소에 이스마엘이 전화를 걸어 확인을 했지만 그 남자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여자는 또 그가 떠났다는 도시로 그를 찾아 떠날 것이다..
오늘 이스탄불 출발 런던행 이집트항공 여객기가 공중납치 당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내일 내가 타고 갈 비행기도 이집트항공인데 결항이나 되지 말았으면 한다.


1999. 10. 20.  수  Turkey, Istanbul - Egypt Cairo

예약해놓은 공항행 미니버스가 왔다.
손님은 나 혼자.
Ataturk 공항에 도착해 보니 카이로 행 비행기가 1시간 30분 delay 되었다한다.
항공사측에서 버커킹에서 간단히 식사할 수 있는 식권을 주긴했으나
공항에서 1시간 30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항상 공항에서 이렇게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했으므로 공항만 생각하면
지루한 기다림만 생각날 뿐이다.

드디어 보딩이 시작되고 짐을 첵크 하는데 x-ray를 거친 가방을 모두 열어서 내용물을 확인하고 비행기 문앞에서도 다시 가방을 열어 검사를 했다.
어제 있었던 비행기 납치 때문에 그런다고 이해는 하지만
내 배낭은 한번 까발리면 다시 추스르기가 쉽지 않아 욕이 절로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낭옆쪽 그물망 안에 있던 큰 맥가이버 칼조차 찾아내지 못하고 단지 작은 손톱깍기를 갖고 이걸 들여보내느냐 마느냐 생각하며 요리조리 돌려보는 모습이 웃겼다.
17시 15분 출발 예정이었으나 21시가 다 되어서야 이륙을 한다.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어 조금 하늘로 오르니 이내 육지의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1시간 30분의 짧은 비행이 끝날무렵 드디어 Cairo가 보인다.

또 다시 새로운 땅에 도착했다.
항상 그렇듯 새로운 땅에 도착하면 설레임과 두려움과 기대감이 한꺼번에 밀려오며 살아있는 나를 온몸으로 느낀다.
visa fee 15달러를 은행창구에서 내고 우표같은 것을 받아 여권에 붙이고 얼마를 환전할까 고민했다..
버스비와 오늘하루의 숙박비, 약간의 여유돈만 있으면 되겠다 생각하고
5달러만 환전하기로 했다.
환전해주는 놈이 한번 더 쳐다본다.   " 그래 5달러만 환전 한다구!! "
모든 심사를 마치고 공항에서 나오니 더울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시원한 바람이 분다.
400번 버스타는곳을 경찰한테 물어 기다렸는데 영 오지 않는다.
택시기사가 옆에 붙어 버스는 끊어졌으니 택시를 타고 가라고 한다.
택시를 탈 수 있는 돈조차 환전하지 않았으니 일단 버스를 계속 기다렸다.
밤 11시가 넘어서고 있었고 외국인 여행자는 나 혼자였고
이집트인조차 몇 명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낯선 이집트의 버스승차장에서 5달러어치의 이집트 파운드를 든채 버스를 기다리는 꼴 이라니....                      

                                                              이집트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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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에서 이란으로 들어왔습니다.
15일간의 이란 여행기입니다.

1 USD = 9,100 Rials (파키스탄 퀘타의 블랙마켓에서)


1999. 8. 29.  일  Pakistan, Taftan  -   Iran, Mirzaveh - Zahedan - Bam

아침 8시쯤 타프탄에 도착했다.
사막위에 썰렁한 마을과 썰렁한 국경이 있다.
남은 파키스탄 돈으로 짜이를 마시고 돈뭉치를 든 환전꾼들을 뒤로하고
이미그레이션이 문을열길 기다렸다.

8시30분이 되자 출국심사를 시작한다.
간단히 끝내고 드디어 이란땅에 발을 디뎠다.
입국심사를 끝내고 짐검사를 하는데 카세트 테입 6개를 모두 들어보고
봉해서 이란에 있는동안 뜯지 말라고 한다.
(속으로)"안뜯긴 뭘 안뜯어.. 나를 따라다녀라..."

자헤단까지 가기위해 5인용차를 탔는데 검문소를 4번정도 지나쳤다.
그때마다 여권을 보여줘야 했는데 대충 앞장만 보고 통과..
자헤단 터미널에 내리자 마자 Bam에 가는 표를 끊었다.
시간이 좀 남아 바로 옆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뭐가 있는지 잘 몰라하니
날 끌고 주방으로 데려가더니 음식을 하나 하나 보여준다.
닭고기와 밥으로 이란에서의 첫 식사를 했다.
조금 비싼 듯 하지만 첫 식사라 바가지 쓰는셈 치고 그냥 먹기로 한다.

12시쯤 Bam으로 출발, 가도가도 사막이다.
5시간 반 정도 걸렸는데 덥고 건조하여 죽는줄 알았다.
사막을 하루종일 달렸다.
이란의 도로는 잘 닦여 있지만 주변이 삭막한 사막이라 마음까지 메마르는 것 같다.
Bam에 내려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는데 숙소의 방명록에 이곳에 사는
한국사람의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숙소주인과도 친구라 하여 전화를 걸어주어 통화 할 수 있었다.
저녁 7시쯤 숙소로 온다고 한다.
대우자동차 공장이 근처에 있는데 그곳에서 근무 한다고 한다.

과연 저녁때 김영룡 이라고 하시는 분이 오셨다.
그분집에 같이 가서 미역국에 된장찌개, 김치를 먹으니 너무 좋다.
집은 넓었지만 가족은 서울에 있고 혼자 산다고 한다.
넓은 공단을 한바퀴돌아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한국분을 만나 음식까지 대접 받으니 너무 기분이 좋다.


1999. 8. 30.  월  Bam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준비를 하고 Arg-e Bam (밤 성)으로 향했다.
아침이 아니면 햇빛이 뜨거워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기 때문에
아침일찍 서둘러야 했다.
20분쯤 걸어서 도착했는데 입장료가 15,000Rials 나 했다.
흙벽돌의 성과 예전의 마을인듯한 건물들이 세월을 말해주듯
군데군데 허물어진채, 그러나 아직까진 볼만한 모습으로 서 있다.
벌써 햇빛이 강렬하게 비추고 있어서 흙담벼락들이 바짝바짝 말라가는 느낌이다.
성 안에 차이하네(찻집) 가 있는데 나이드신 할아버지가 혼자 앉아 있다.
성을 구경하는 사람도 나 혼자여서 더욱 적막하다.
차이를 한잔 마시고.. 돌아오는길에 아침으로 이란식 snadwich를 먹었다.
1,900Rials. 무척 싼가격에 아침을 때울 수 있어서 좋다.
쏘시지를 썰어 계란을 풀어 같이 튀기고 피클과 토마토를 넣은 길쭉한 샌드위치이다.
값에 비하면 괜찮은 것 같다.
머리도 시원하게 짤랐다.

낮엔 너무 뜨거워 움직일 수가 없고 도미토리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에어콘이 아니고 에어쿨러가 설치되어 있지만 인도와는 달리 소음도 없고
무척 시원하여 에어콘을 설치 해놓은 것 같다.
오후에 파키스탄 퀘타에서 헤어졌던 다까시 가족이 왔다.
가는길이 같으니 헤어져도 또 금방 이렇게 만나게 된다.
저녁때엔 김영룡님이 오셔서 저녁을 함께 하고..
내일은 다까시 가족과 함께 김영룡님의 집에 가서 저녁을 함께 하기로 했다.

 

1999. 8. 31.  화  Bam

아침일찍 Bazaar에 나가보았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상점들이 아직 문을 열지 않았고
몇몇 상점들이 문을 열고 청소를 하고 있다.
차이를 한잔 할까 하고 물어보니 나를 데리고 차이를 파는 골목길로 데려다 준다.
골목길 바닥에 버너와 주전자를 놓고 할아버지가 차이를 팔고있고
몇몇 아저씨들이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저씨들과 함께 차이를 마시며 어디서왔냐, 직업은 뭐냐, Good Morning,
등을 얘기 했다.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아 론리플래닛, 페르시아어가 나와있는 부분을 펴들고
그들이 얘기할것이 있으면 단어를 가리키며 나에게 보여준다.
아침 9시도 안됐는데 벌써 해가 뜨겁게 달아올라 더워지기 시작한다.
카셋트에 넣을 건전지를 사려고 했는데 파는곳을 쉽게 찾을 수가 없어
한 이란인에게 물어보니 나를 데리고 다니며 건전지를 살때까지 옆에서 도와주었다.
정말 친절한 사람들이다.

오늘도 구름한점 없이 파란 하늘이다.
건조하고 뜨거운 하루가 시작된다.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상점들도 문을 닫는다.
너무 뜨거워 거리에 사람들도 보이지 않으니 문닫고 낮잠자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오후 5시가 다 되어 늦은 점심을 또 샌드위치로 때우며 젊은 주인과 얘기를 했다.
>너희나라에선 마이클잭슨 볼수 있니?
>볼수 있지 물론.
>좋겠다. 이곳에선 볼수가 없어. 별로 좋지 않아. 여자들도 봐. 다 저런모습이야.
>......
>이곳이 난 싫어.
>앞으로 좋아지겠지. 좋아질꺼야...
이란인이 외국을 동경하며 이란을 안좋아할줄은 정말 몰랐다.
이런 저런 사람 다 있겠지.

오후8시쯤 김영룡님이 오셔서 다까시 가족과 함께 집으로가 한국음식을
만들어 먹고 집에서 만들었다는 밀주까지 한잔 마셨다.
이란에선 술 구경도 못하니 집에서 만들어 마실 수밖에..
저녁을 먹고 얘기를 나누고있는데 다까시의 딸 나나미가 열이 나고 아픈가보다.
산책을 나가려고 했으나 나나미가 아파 그냥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은 쉬라즈로 가야할 것이다.

 

1999. 9. 1.  수  Bam - Shiraz

물이 나오지 않아 대충 이만닦고 어제 갔었던 골목길의 차이파는곳에 갔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의자3개가 앞에 놓여져있고 가끔씩 손을 떠는,
곧 쓰러질것같은 주인 할아버지, 매일 차이를 마시는 것 같은 똑같은 손님,
구면이라 아침인사를 하고 말없이 차이를 마시고 일어섰다.
숙소에서 인도 델리에서 만났던 요시꼬와 사또미를 다시 만났다.
쉬라즈에 간다고 하여 오후3시에 쉬라즈행 버스를 같이 탔다.
교통비는 정말 싸다. 2달러 안쪽으로 모든 것이 해결이다.
다까시 가족은 나나미가 아파 좀더 머문다고 한다.
2번정도의 검문을 받고 새벽4시에 쉬라즈에 도착했다.
아직 어두운데다 낯선 도시라 이리저리 두리번대다가
한 이란인에게 Meidan Shohada에 어떻게 가냐고 하니 나도 지나치는 길이니
같이 택시를 타자고 한다.
그런데 그가 택시비를 지불하고 마이단 쇼하다에 같이 내리더니 잘 가라고 하고
또 택시를 잡는 것이 아닌가 그는 이곳까지 우리를 데려다주기위해 일부러 온 것이었다.

Toos 호텔에 3bed를 각각 15,000Rial에 잡아 머물기로 했다.
낮이 됐는데도 Bam에 비해 그리 뜨겁지가 않다.
역시 도시라 Bam보다는 활기차다.
큰 시장을 둘러보고 거리를 구경했다.
이곳의 여자들도 그리 답답한 모습은 아니고
겉옷은 칼라가 있는 옷을 입은 여자들이 많고 스카프도 화려한 칼라를 많이 했다.
밤이되니 시원하다.
숙소주인이 차이도 갖다주고 포도와 난도 갖다주었다.. ^^

 

1999. 9. 3.  금  Shiraz

이란의 공휴일이다.  이슬람국가는 금요일이 휴일이다.
쉬라즈에서 꼭 가봐야할곳. 페르세폴리스 (PersePolis) 에 가기로 했다.
아침일찍 미니버스정류장으로 가서 미니버스로 40분쯤 걸려 Marvdasht 에 도착
또 택시를 타고 페르세폴리스 앞까지 갔는데 택시에서 내려 택시비 때문에
요시꼬와 택시기사 아저씨가 한참을 싸웠다.

늙은 아저씨는 벼락벼락 소리지르는 요시꼬가 황당했던지 손을 벌벌 떠는게 보였다.
택시기사는 올 때 합승을 했어야하는데 우리 셋이 뒤에 다 타지 않고 한명은
앞에 타서 합승을 하지 않고 그냥 왔으니 조금 더 내라고 하고
요시꼬는 절대 그럴수 없다며 싸우는데 젊은 여자가 늙은 아저씨한테
그리도 소리를 지르며 대드는 것을 보니 나와 사또미는 질려서 말을 할 수가 없다.
하도 소리를 지르니 주변에서 이란인들이 모려들 정도였다.
결국 요시꼬가 이겨서 2,000Rial만 주었고 그 늙은 아저씨는 벌벌 떨며 떠났다.
사실 나는 그 택시기사 아저씨 편이라 아무말 없이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말은 정말 사실 이었고 거짓말을 하거나 돈을 좀더 받아보려고 수작을
부리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영어를 못했지만 이란말로 무엇을 말하려하는지 이해가 갔다.
여행자들이 상황파악을 재대로 하지 못한채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다투는 것을
그동안 여행하면서 많이 보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러고싶지 않다.
여행은 즐거워야하고 내가 마음을 열고 현지인을 대하면 상대방도 마음을 여는 것이다.
릭샤비 200원 때문에 싸우고 보석같은것엔 10배씩 바가지를 쓰는 여행객을 보면
안쓰러운 생각이 드는 것이다.

기둥과 벽에 새긴 부조들이 볼만한 페르세폴리스를 둘러보고 돌아왔다.
저녁으로 첼로케밥을 먹었는데 좀 짠듯하여 입안이 불편하고 물이 먹힌다.
밥을 먹고 오는길에 극장안을 보니 사또미가 울고있는게 아닌가.
극장에 들어가려고 하니 앞에서 막았는데 저사람의 친구라고 하니 그냥 들어가란다.
왜 우냐고 하니 요시꼬와 아까 택시기사와 싸운 것을 얘기했었는데
자기는 이란인들이 좋은데 요시꼬는 항상 그렇게 싸우며
얘기하면서 자기한테도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헤어지고 혼자 여행하는게 어떻냐고 하니 자기는 가이드북도 없으며 혼자는
여행을 하지 못하고 또 파키스탄을 거쳐 인도로 돌아가서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돈도 얼마남지 않았다고 한다.

마음이 맞지 않는사람과 여행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맘먹고 헤어지지 못하는 사또미가 참 바보 같기도 하고 가엾게도 보인다.
저녁때엔 다까시가족이 또 같은 호텔로 왔다.
신기하게도 다까시 가족과는 계속 같은 호텔에 묶게 된다.
나나미는 다 낳아서 활기차다.
내일은 비자연장을 해야한다.

 

1999. 9. 4.  토  Shiraz

론리플래닛 이란편은 틀린부분이 많아 비자연장 하는곳을 헤메다 결국
택시를 타고 찾아갔다.
예전에는 연장이 좀 더 됐지만 지금은 5일밖에 연장을 해주지 않는단다.
책엔 1,000Rial이 든다고 했지만 이것저것 14,000Rial이나 내야했다.
내일 아침 9시에 찾으러 오라고 한다.

숙소 프론트 앞에서 이란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영어를 하는 한 남자가 자기의 여자친구가 한국여자인데 연락이 안되니 도와달라한다.
한국에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하면 그여자와 통화할수 있는지
한국발음을 영어로 적어달라고 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한국말로 말을 해야겠단다.
그녀는 너를 남자친구라고 생각 않할지도 모르잖냐고 하니
그녀와는 몇 달전 이 숙소에서 만났는데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자기와 함께 방에서 담배도 피우고 밤도 같이 보냈으며 같이 테헤란으로 여행떠나자고
그녀가 제안을 했지만 일 때문에 자기는 가지 못했다고 한다.
할수없이 전화를 걸어 그녀를 바꿔달라는 말을 한국발음의 영어로 다 적어주었다.
현지인들이 거짓말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인도부터 여행하면서 한국여자와 연락이 안된다느니 하는말을 여러번 들었다.
여행하며 무슨일을 하건 내가 욕하거나 상관할바는 아니지만
만약 현지인들의 말이 사실이고 현지인을 정말 사랑한 것이 아니라면
그냥 하룻밤 상대였다고 나중에라도 그들에게 말해주길 바란다.

 

1999. 9. 5.  일  Shiraz - Esfahan

여권을 찾으러 갔다.
9일까지 연장이 되있었다.
단지 4일이 더 남아있을뿐이다.
5일연장해서 어떻게 터키까지 가냐고 하니 그건 너의 문제라고 한다.
다까시와 터미널에가서 밤9시 출발 에스파한행 버스를 예약했다.

낮에 할 일이 없어 영화관에가서 영화를 봤는데
느리고 재미없는 화면만 계속 이어져 잠이 들었다.
중간중간 휘파람을 불어대서 깨어보면 여자 주인공이 남자주인공의 뺨을 때리거나
얼굴을 가까이하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저런 장면에 휘파람을 불어대다니...
저녁9시 출발버스는 30분 늦게 출발했다.

 

1999. 9. 6.  월  Esfahan

아침 7시쯤 붉은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며 에스파한에 도착했다.
숙소를 잡아 조금 잔후 에맘 호메이니 (Emam Khomeini) 광장에 가 보았다.
넓은 광장이다.
주위엔 상점으로 둘러쳐져 있고 모스크가 붙어있고 다른쪽은 시장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 광장을 한바퀴 도는 마차도 있어서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저녁때엔 Shiraz에서 같은 방을 썼던 사또미와 요시꼬가 같은 숙소로 왔다.
그들은 내일 Mashad로 떠난단다.
같이 저녁을 먹고... 사또미는 다시 요시꼬와 친해진 것 같지만... 속이야 알수가 없다.

 

1999. 9. 7.  화  Esfahan

아침식사를 숙소에서 했는데 비싸기만하고 음식은 형편없었다.
숙소 방명록에 이곳에서 3일간 비자를 연장할 수 있지만
가끔 연장을 시켜주지 않는다고 한다.
저녁때는 sio se pol 다리 밑의 차이하네에가서 차이한잔하는데
주변에 이란인이 와서 여러명이 같이 앉아 시샤를 나눠피웠다.
같은 도미토리에 Jin이라는 일본친구가 있는데 5년간 여행중이라고 한다.
대단한넘.


1999. 9. 8.  수  Esfahan

터미널에가서 타브리즈행 버스를 예약했다.
또 Emam광장에 나가 바람좀 쐬고...
내일은 비자를 연장하고 타브리즈로 떠난다.


1999. 9. 9.  목  Esfahan - Tabriz

아침에 우선 비자를 연장하러 갔다.
내 여권을 보자마자 한번 연장했으니 더 이상 연장은 안된다고한다.
내 그럴줄 알고 일부러 기간을 꽉채워서 갔던거다..
터키까지 가야하니 갈 시간을 줘야할 것 아니냐며 계속 이런저런
말다툼 끝에 겨우 3일을 연장받을수 있었다.

비자연장 스탬프옆에 EXIT라고 써놓고 오는 12일안에 이란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한다.
그래... 나도 더 이란에 있고 싶지 않다..
숙소로 돌아와 일단 Check-out을 하고 빈침대에서 낮잠을 잔후
다까시가족과 작별한 후 터미널로 향했다.
버스비가 조금 비싼만큼? (사실 비싸지 않다, 3달러) 고급 볼보 에어콘 버스에다
빵과 음료수까지 준다.  게다가 14시간의 거리...
정말 싼 이란의 교통비 덕에 퀘타에서 환전한 90달러가 15일 여행하고도
조금 남게 생겼다.
에어콘을 너무 세게 틀어놔서 새벽에 보니 기온이 8도.
대단한넘들..  8도면 추울만도 한데.. 에어콘 끌 생각을 않한다.
황량한 사막을 또 달린다.


1999. 9. 10.  금  Tabriz

이란여행하며 가장비싼 3달러가 조금 안되는 숙소를 잡았다.
또 처음으로 도미토리가 아닌 싱글이다.
한숨자고 점심을 먹은 후 싸구려 T를 하나 사고
터키와의 국경마을인 마쿠까지 표를 예약했다.
이미 한국에서 갖고온 T는 다 늘어나서 못입게 되었다.
저녁때 숙소앞에 공원이 있어 가보니 작은 놀이시설들을 만들어놓았다.
둥근 원통형 나무구조물이 세워져있고 그 안에서 오토바이를 타는 묘기도 부리는데
내가 궁금해하며 기웃대자 그냥 올라가서 보라고 한다.
원통형 나무구조물에서 원숭이와함께 오토바이를 탄다.
원심력 때문에 떨어지지 않겠지만 아슬아슬하게 정말 잘 탄다.
구경하는사람들은 원통형 맨 위쪽에서 바라보고 있는데 그곳까지 올라온다.


1999. 9. 11.  토  Tabriz - Maku

아침을 간단히 달걀로 때우고 12시쯤 터미널로 향했다.
오후1시 버스였지만 그 버스는 취소되었고 2시30분으로 변경되었다 한다.
할수없이 차이한잔하며 기다린후 버스에 탔다.
마쿠에 저녁6시반쯤에 도착했다.
숙소를 잡고 여권을 보이려하는데 여권이 없다..
아..........  타브리즈의 숙소에서 여권을 맡기고 찾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어쩐지 나는 여권 맡기는걸 싫어하는데 숙소에서 우기는 바람에
억지로 맡긴 것이 잘못이었다.
숙소주인이 타브리즈의 숙소로 전화를 걸어 내일 아침 6시 버스로
내 여권을 보내달라고 전화를 해주었다.
내일 정말 잘 도착할지 걱정된다.
내일이면 이란 비자도 끝나게 되는데 만약 여권이 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된단말인가.
여권을 잃어버리고 마쿠까지 오도록 까맣게 모르고있었다니...
그동안 마음이 좀 헤이해져있었나....

노크소리에 잠이깨어 시계를 보니 밤 12시 30분.
호텔주인이 Passport 라고 한다.
얼른 내려가보니 한 택시기사가 타브리즈에서 내 여권을 가지고 온 것이다.
내일 버스로 보낸다더니 내일 비자가 끝난다고 했더니 서둘렀던 모양이다.
택시비로 80,000 Rial을 달라고 한다.
여권찾은 것으로 다행이고, 스스로 각성해야하기에 군소리없이 돈을 지불했다.
휴~~ 정말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래도 교통비가 싼 이란이었기 망정이지 터키였으면 아마 9달러정도가 아닌
90달러정도 였을 것이다.
암튼 여권을 다시 찾아 너무 기쁘다.

 

1999. 9. 12.  일  IRAN Maku - Bazargan  -  TURKEY Dogubeyazit

나는 왜 항상 국경을 넘을 때 나 혼자일까.
인도에서 파키스탄 넘을때도 다른사람들은 그곳을 넘는 여행자가 많으니
분명 여행자를 만날 수 있을거라 했지만 나혼자 넘었고,
파키스탄에서 이란국경을 넘을때도 나혼자 였다.
지금 이란에서 터키를 넘는데도 나혼자... 난 왜 이럴까.....
이란측 이미그레이션과 터키측 이미그레이션이 한건물에 있는데
완전 시장통이었다.
이란과 터키사람들로 꽉차있고 줄을 길게 서있는데다 짐들도 많아서
자리잡고 서있기도 힘들다.
이란쪽에서 외국인이라고 빨리 통과시켜주어 조금 빨리 통과했다.
터키쪽에서도 여권을 막흔들어대며 이미그레이션 직원에게 보이니
먼저 앞으로 오라고 한다.
> 어디에 가냐?
> 터키.
> 이곳이 터키인데?
> 터키 여기저기 다 갈꺼다.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통과하긴 했으나 2시간은 걸렸다.
터키측 국경을 빠져나오니 미니버스가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계속...............이제 터키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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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에서 파키스탄으로 들어왔습니다.
이 여행기의 시작은 인도 입니다.


1 USD = 54 PRS.


1999. 8. 22.  일  India, Amritsar - Pakistan, Lahor

싱호이가 아파 선뜻 떠나지 못하고 있다가 10시쯤되어

조금 낳아진듯해서 작별을 하고 일어섰다.

벌서 햇빛이 뜨겁게 내리쬐고 있다.

버스스탠드에서 아~따리따리따리 라고 외치며 손님을 모으는 버스에 올랐다.

11시쯤 아다리 마을에 도착, 릭샤를 타고 Waghar Border,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에 도착했다.

파키스탄과 인도의 국기가 나란히 펄럭이고 있다.

그런데 국경이 너무 썰렁하다.

국경을 통과하는 사람이 3~4명 밖에 보이질 않고 외국인은 나 혼자다.

파키스탄 입국수속을 마치기도 전에 환전하라고 사람이 달려든다.

드디어 파키스탄 국경을 넘었다.

5개월간의 인도,네팔 여행이 머리속에서 죽~ 되살아났다 사라졌다.

동시에 이 낯선 나라에 대한 기대감과 공포와 설레임이 밀려왔다.

남아있는 100 인도 루피를  120 파키스탄 루피로 바꾸고

일단 20달러만 환전했다.

폐차같은 미니버스를 타고 어느마을 까지 가서 다른 미니버스로 갈아탄후

라호르역에 도착했다.

국경에서 라호르역까지 같은 미니버스를 탔던 젊은이가

자기집에 나를 초대하고 싶다고 같이 가자고 했지만

파키스탄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현지인의 집에 가는 것은

별로 안좋을 것 같아 그냥 숙소를 찾아가기로 했다.

역앞에서 릭샤를 타고 YWCA를 가려고 했지만 40Rs나 달라고 하여

미니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43번 미니버스를 찾아타고 American Center 근처에 내렸는데

YWCA를 찾을 수가 없다.

헤메고 있자니 길 건너편에서 젊은이들이 오라고 손짓을 한다.

너희들이 이리오라고 손짓을 했더니 길을 건너 한무리의 젊은이들이 몰려온다.

YWAC를 찾고 있다고 하니 미니버스를 타고 자기들이 가는길 중간에 내리면 된다고

같이 타자고 한다.

미니버스가 와서 탔는데 1분쯤 달리니 과연 YWCA가 나왔다.

미니버스의 차비 3Rs.를 내려고 하자 차장이 그냥 내리란다.

시설이 형편없고 물도 잘 나오지않는 도미토리가 125Rs. 나 한다.

파키스탄의 첫인상은 인도와 거의 비슷하지만

도로가 인도보다 넓고 정비도 잘 되있다.

사람들도 듣기와는 달리 좋은 인상이어서 마음이 놓인다.

배가고파 뭘좀 먹으려니 숙소근처가 원래 사람들이 없는곳인지

사람들도, 가게도 많이 보이지 않는다.

무척 무덥기도 하여 에어콘 바람도 맞을겸 올 때 보았던 McDonald에 갔다.

세금이 많이 붙어 비싸긴 하지만 시원한 것이 조아 계속 앉아 있다가

의사가족을 만나게 되어 콜라도 얻어 마시고 얘기도 많이 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의사의 아들에게 인도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니

인디아는 우리의 적이고, 인디아는 무척 나쁘고,

카시미리 지방에서 무슬림들을 많이 죽이고, 그들은 무슬림이 아니고

그러그러하니 인디아는 싫단다.

조그만 아이였지만 인도에대한 적대심이 확고했다.

숙소에들어가 샤워를 하려하니 물이 잘 나오지 않는다.

어렵게 샤워를 하고.. 이제 파키스탄에서의 첫밤을 보낸다.



1999. 8. 23. 월  Lahor - Rawalpindi


가이드북이 없는 여행이 이렇게 힘들줄이야.

여행객이라도 많으면 정보얻기가 쉬울텐데

어제 겨우 하루 Lahor 에 머무는 여행객을 만났을뿐이다.

라호르보다는 라왈핀디가 할인기차표 예약하기가 쉬울 것 같아

아침에 TDCP로 가서 라왈핀디행 버스를 탔다.

에어콘이 나오는 고급 버스, 정말 오랜만에 이런버스를 타 본다.

고속도로가 DAEWOO에 의해 만들어졌다더니 우리나라에 비해

손색없고 과연 휴게소에 들리니 DAEWOO 마크가 선명히 빛나고 있다.

고속도로는 왕복6차선인데 차는 별로 없어 한산한 고속도로다.

라왈핀디에 도착해 기차역으로 향했다.

숙소를 찾아야 하는데 찾을길이 막막하다.

기차역앞에 다다르니 택시들이 많이 있길래 택시기사들을 다 불러모았다.

이근처에 묵으만한 숙소중 제잎 가까운곳이 어디냐고 물으니

대충 길을 가르쳐준다.

길을 가는 도중 이곳을 떠나는 일본인 여행자를 한명만나

그가 묵었던 숙소를 가리켜주었다.

조금 헤맨 끝에 숙소를 찾아 방을 잡았다.

날도 덥고 방안도 못지않게 더워서 시내도 둘러볼겸

밖으로 나가 거리를 거닐었다.

파키스탄에 오기전엔 파키스탄에 대해 안좋은 말을 많이 들었는데

막상 와보니 사람들도 괜찬은 편이고 길이나 다른 편의 시설들도

인도에 비해 더 좋은 느낌이다.

오늘 사업을 한다는 한놈이 접근했는데 아무래도 사기꾼 같다.



1999. 8. 24.  화  Rawalpindi


역앞 Concession office에서 외국인 학생 할인 letter를 받았다.

방콕에서 만든 학생증이 많이 도움이 된다.

기차표 예약하는곳에 가서 Quetta행 기차표를 끊으려 하니

1주일 후에나 자리가 나올것이라 한다.

세상에 1주일 이라니...

1주일동안이나 이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어떻게 안되겠냐며 계속 서서 졸라대니까

내일 모래 군인용 자리가 하나 있는데 18시 이후까지

군인이 표를 끊지 않으면 그 표를 주겠단다.

일단 희망을 걸어본다.

숙소를 같은 가격에 좀더 좋은곳으로 옮기고 여기저기 다니며 구경하다가

일찍 예약소에가서 졸라볼 작정으로 17시 30분쯤 갔는데

아직까진 군인이 표를 끊지 않았다고 한다.

드디어 저녁6시가 넘어 기차표를 손에 쥐었다!

기쁜마음으로 시내를 돌아다니다 담배를 사려다가 88담배를 발견했다.

12Rs. 400원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두갑 사고 Max5집 카세트 테입도 하나 샀다.

700원 정도로 싸고 음질도 좋다.



1999. 8. 25.  수  Rawalpindi


근처에 괜찬은 유적지가 있다고 하여 Taxila라고 하는곳에 가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40분쯤 달려서 도착했는데 Taxila 박물관 까지는

또 통가를 타야만 했다.

박물관을 둘러본후 Sirkap유적지를 가려고 하는데

당나귀 마차가 가고있어 얻어탈 수 있었다.

길 주변에 나와있는 사람들이 모두 손을 흔들어주며 함성까지 질러댄다.

나도 같이 손을 마구 흔들어 주었다.

Sirkap유적지는 예전건물의 기초 터만 남아있었는데

인도, 스라바스티에서본 기원정사와 비슷한 분위기다.

풀 자르는 벙어리 영감님이 풀을 자르다 말고 절터를 안내하며 보여준다.

무척더워 물 한잔 얻어마시고 나무 그늘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쐬며

영감님과 시간을 보냈다.

햇빛이 내리쬐는,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는 한적한 유적지에

영감님과 나만이 나무 그늘에 앉아 담배를 피는 씬이다.

사진을 찍어주니 무척 좋아하신다.

Sirkap에서 조금 떨어진 Jandial에 갔으나 작은 규모의 돌 건물만 있을뿐이다.

큰 길가옆 구멍가게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대학생들과 잡담을 나누며

더위를 식히다가 돌아가는 길을 걸었다.

버스가 언제 올지 몰라 일단 걷고보자 했는데 마침 대학버스가 와서 선다.

Taxila까지 대학버스를 타고 나와 라왈핀디행 버스에 올랐다.

시골의 푸근한 분위기에 흠뻑 취해 있었던 것 같다.

어디를 가던지 시골사람들은 순박하고 인심이 좋다.

저녁을 먹는도중 비가 내렸다.

숙소로 돌아오자 본격적으로 천둥번개까지 치며 비가 내린다.

내일 새벽까진 그쳤으면 좋겠다.



1999. 8. 26.  목  Rawalpindi - Quetta


새벽 5시쯤 숙소를 나와 역으로 향했다.

역에서 다시 자리를 배정 받고 기차에 올랐다.

6시가 되자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4개의 침대가 있는 Compartment를 배정 받았는데

방도 넓고 침대를 앞으로 잡아당기자 싱글침대와 같은 크기가 된다.

쿠션도 좋고 에어콘도 나와 시원하고.. 이렇게 좋은 기차는

처음 타보는 것 같다.

50%나 할인을 받을 수 있었기에 에어콘 기차를 탈 수 있다.

밤이 될 때까진 내방에 아무도 들지 않아 넓은 방을 혼자 쓸 수 있었다.

점심은 닭고기가 들어간 도시락을 사 먹었는데 55Rs라 조금 비싸지만

닭고기가 거의 반마리에 식빵, 인도에서 먹었던 "난"이라고 하는

빵까지 있어 배는 충분히 채울 수 있었다.

에어콘이 강하게 나오진 않아 햇빛이 강한 낮에는

선풍기까지 틀어야했지만 밖에 나갔다오면 방이 얼마나 시원한지 새삼 느낀다.

기차에서 땀 안흘리며 자보긴 여행중 처음이다.

오히려 잘때는 조금 추워서 룽기를 몇번이고 고쳐 덮어야 했다.

같은 코치에서 일본인 가족을 만났는데

부부가 딸을 데리고 여행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1999. 8. 27.  금  Quetta


30시간 정도 달리자 사막이 끝없이 펼쳐져 평평한 대지가 끝없이 이어진다.

파키스탄 사람들에게 인도를 물어보면 인디아는 우리의 적, 이라는 말이

맨처음 나온다.

외국인은 일본인 가족과 나 밖에 없어서 기차가 정차 했을 때 밖에 나가면

그들은 신기한 듯 쳐다보지만 모두들 순한 눈빛이고 순진한 사람들이라

여행이 즐겁다.

언덕길이 나오기전 기관차를 기차의 맨 뒷부분에 하나 더 붙여서

기차의 맨 앞과 뒤에서 기차를 끈다.

모래와 바위뿐인 산을 힘겹게 넘고나니 Quetta에 도착했다.

오후4시 도착 예정이었으나 밤 8시에 도착했다.

38시간동안 기차에 있었으나 에어콘칸이라 편안했다.

Muslim 호텔은 빈방이 없어 근처에 조금 더 비싼 숙소를 잡고

저녁을 간단히 때웠다.

밤이라 그런지 시원하다.

내일은 이란돈을 환전해야한다.

이란돈은 이곳에서 환전하는 것이 가장 유리하기 때문이다.



1999. 8. 28.  토  Quetta - Taftan


아침을 간단히 때우고 일본인 가족과 함께 시장으로 환전을 하러갔다.

가게에 들어가서 하는것보다 환율을 높게 부르는 길거리에서

환전을 하려 했으나 아무래도 중간에 술수를 부리는 것 같아

그만두고 가게에서 환전을 했다.

1달러에 10,000리알 정도를 예상했으나 9,100리알 이상은 힘들었다.

Taftan 가는버스를 예약했고 일본인 가족은 하루 더 머문단다.

오후 5시에 떠난다던 버스는 오후7시가 되서야 출발했는데

큰버스에 10명도 안되는 사람을 태우고 곧 사막을 달리기 시작한다.

밤이지만 사막이라 건조하고 더워 입술이 트기 시작한다.

콧물이 나오는 것 같아 닦으니 코피가 나온다.

사방이 깜깜한 사막을 달리는데 예전엔 이구간에서 버스강도가

자주 일어났었다고 하여 좀 겁이난다.

중간에 저녁을 먹기위해 한번 정차 했지만 파키스탄 돈은 10Rs가 전부라

남이 먹는 것을 구경만 해야했다.

건조한 사막을 또 달린다.



1999. 8. 29.  일  Pakistan, Taftan -  Iran, Mirzaveh - Zahedan - Bam


아침 8시쯤 타프탄에 도착했다.

사막위에 썰렁한 마을과 썰렁한 국경이 있다.

남은 파키스탄 돈으로 짜이를 마시고 돈뭉치를 든 환전꾼들을 뒤로하고

이미그레이션이 문을열길 기다렸다.

8시30분이 되자 출국심사를 시작한다.

간단히 끝내고 드디어 이란땅에 발을 디뎠다.

입국심사를 끝내고 짐검사를 하는데 카세트 테입 6개를 모두 들어보고

봉해서 이란에 있는동안 뜯지 말라고 한다.

자헤단까지 가기위해 5인용차를 탔는데 검문소를 4번정도 지나쳤다.

그때마다 여권을 보여줘야 했는데 대충 앞장만 보고 통과..

자헤단 터미널에 내리자 마자 Bam에 가는 표를 끊었다.

시간이 좀 남아 바로 옆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뭐가 있는지 잘 몰라하니

날 끌고 주방으로 데려가더니 음식을 하나 하나 보여준다.

닭고기와 밥으로 이란에서의 첫 식사를 했다.

조금 비싼 듯 하지만 첫 식사라 바가지 쓰는셈 치고 그냥 먹기로 한다.

12시쯤 Bam으로 출발, 가도가도 사막이다.

5시간 반 정도 걸렸는데 덥고 건조하여 죽는줄 알았다.

사막을 하루종일 달렸다.

이란의 도로는 잘 닦여 있지만 주변이 삭막한 사막이라 마음까지 메마르는 것 같다.

Bam에 내려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는데 숙소의 방명록에 이곳에 사는

한국사람의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숙소주인과도 친구라 하여 전화를 걸어주어 통화 할 수 있었다.

저녁 7시쯤 숙소로 온다고 한다.

대우자동차 공장이 근처에 있는데 그곳에서 근무 한다고 한다.

과연 저녁때 김영룡 이라고 하시는 분이 오셨다.

그분집에 같이 가서 미역국에 된장찌개, 김치를 먹으니 너무 좋다.

집은 넓었지만 가족은 서울에 있고 혼자 산다고 한다.

넓은 공단을 한바퀴돌아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한국분을 만나 음식까지 대접 받으니 너무 기분이 좋다.

                                                                         계속 이란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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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8. 11.  수  Pushkar - Delhi

아침도 뷔페로 먹고 check out 한후 이스라엘친구의 방에 갔는데

MDplayer 2개와 앰프, 성능좋은 스피커가 있어서 큰 오디오를 튼것같이

숙소가 울릴정도다.

거리를 소다니며 시간을 보내다가 숙소로 돌아와 옥상에 올랐다.

오후 5시부터 일식이 시작되었다.

30분후엔 초승달처럼 해가 작아지더니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그름이 엷게 끼어있어서 눈이 부시지 않아 일식을 보기에 더 좋았고

사진을 찍기에도 더 좋았다.

짐을 챙기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는 정확하게 오후7시45분에 델리를 향해 출발했다.



1999. 8. 12.  목  NewDelhi

새벽녘에 델리에 도착했는데 표를 예약할때는

뉴델리역 앞까지 간다고 했지만 올드델리에 세워놓고 Last stop 이라한다.

우다이푸르에서 푸쉬카르 올때도 그러더니 꼭 마무리가 좋지 못하다.

할 수 없이 릭샤를 잡아 뉴델리역으로 향했다.

이번여행에 벌써 3번째 델리다.

릭샤를 내려 파하르간지 메인바자르로 들어서니 역시 호텔삐기가 붙는다.

버스 때문에 신경질도 조금 나 있는데다 피곤하기도하여 신경이 예민해져있는데

싫다고 해도 자꾸 따라붙길래 소리를 냅다 질렀더니 중얼거리며 물러난다.

정말 미치도록 덥던 5월초의 델리와는 달리 지금은 견딜만 하다.

델리는 역시 한국인이 많아서 몇 명의 한국인을 만났다.

이란비자를 받기위해 우선 한국대사관에 가서 추천장을 받았다.

그곳에는 바라나시 숙소에서 짐을 몽땅 도둑맞은 한국인 2명도 있어서

보기에 안타까웠는데 나중에 인도를 꼭 다시 오리라 한다.

추천장을 받고 이란대사관으로 가서 비자신청을 했다.

관광비자는 내주지 않고 1주일 통과비자만 내주는데

이란에서 비자연기가 잘 될지 모르겠다.

비자는 오는 월요일에 와서 찾아가라 한다.

저녁때는 Navrang G.H.에서 살고있는 하리씨가 돼지도리탕을 만들어

술과 함께 먹었다.

오랜만에 술과 함께 돼지고기를 먹으니 너무 좋다.



1999.  8.  13.  금  Delhi

13일의 금요일.

어젯밤에 바라나시에서 자이푸르로 가는 기차에서 만났던

캐나다 국적의 미얀마 아저씨를 다시 만났다.

그는 아그라에서 남현주와 함께 내렸었는데 오늘 파리로 날아간다한다.

캐나다 여권을 갖고 있어서 자유로운 여행을 할 수 있는데

자기는 미얀마 정부가 싫지만 자기 집안은 Royal Family라

대부분 가난한 미얀마 사람들한테 너무 미안하단다.

32살의 그는 앞머리가 벗겨졌는데 대머리에 어떤여자가 오겠냐고 농담도 한다.

평생 여행을 다닐것이라 한다.

저녁때 숙소옥상에 올라갔더니 수백개의 연이 하늘에서 날고 있다.

각 건물 옥상에서 연을 날리는데 우리나라의 가오리연과 비슷하지만

꼬리가 없어 중심을 잘 잡지 못한다.

가끔 연줄이 끊어져 숙소 옥상으로 연이 떨어지는데 날려보려고

시도 해봤지만 잘 되질 않는다.

수백개의 연이 도시의 하늘을 뒤덮은 모습은 어쨋든 색다르다.



~ 1999. 8. 18.  수  Delhi
그동안 한국사람들 많이 만나 술 마시고.. 얘기도 많이 나누며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냈다.

15일, 인도와 우리나라 독립기념일을 맞이했고,

16일, 이란비자 스티커가 붙은 여권을 찾았고

내일 암리차르로 간다.

인도비자 기간이 15일 남았다.



1999. 8. 19. 목 Delhi - Amritsar

낮시간은 여기 저기 한국사람들하고 시간을 보내다가

밤 8시에 뉴델리역으로 향했다.

기차는 30분쯤 연착한 21시40분에 도착했는데

내 자리가 있는 열차칸을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매야만 했다.

잠을 자려고 누웠더니 작은 나방이 유난히 많아 계속 나방과 모기에

시달리느라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1999. 8. 20.  금  Amritsar

아침9시쯤 암리차르에 도착했다.

시멘트바닥에 지저분한 메트리스가 20개정도 깔려 있는

황금사원 순례자숙소에 짐을 풀었다.

공동샤워장에서 인도인들과 함께 샤워를 하고 황금사원으로 향했다.

사원에 들어갈땐 물이 고인곳에 발을 담근채 지나쳐야 하고

계단을 조금 내려가면 연못중앙에 황금색 사원이 보인다.

홍콩에서 왔다는 싱호이라는 여자를 만났는데

항상 장난기가 있는 얼굴을 하고 있다.

그녀는 아프리카와 유럽을 거쳐 2년째 여행중이라 한다.

순례자식당인 Sri Guru Ranga 식당에 가서 공짜로 주는 짜파티를 먹고

숙소로 돌아와 낮잠을 잤다.

저녁때 파키스탄에서 넘어온 한국여자를 만났다.

파키스탄은 생각보다 안전하고 인도보다 더 깨끗하단다.

밤 10시에 사원에서 하는 간단한 의식을 보러 갔는데

특별히 볼 것은 없었다.



1999. 8. 21.  토  Amritsar

아침에 사원에서 들리는 노래소리에 깨어 잠을 설치다가

사원을 한바퀴 산책하고 다시 순례자식당으로 갔다.

아주 넓은 식당엔 사람들이 항상 만원이고

바닥에 천을 깔고 주욱~ 앉아 있으면 짜파티를 나눠준다.

다시 사원에 갔는데 싱호이가 있어서 같이 사원 안에서 행해지는

인도인들의 기부와 음악연주 하는 것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오후부터 싱호이는 배가 아프다고 숙소에 누워 배를 감싸쥐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1999. 8. 22.  일  India, Amritsar - Pakistan, Lahor

싱호이가 아파 선뜻 떠나지 못하고 있다가 10시쯤되어

조금 낳아진듯해서 작별을 하고 일어섰다.

벌서 햇빛이 뜨겁게 내리쬐고 있다.

버스스탠드에서 아~따리따리따리 라고 외치며 손님을 모으는 버스에 올랐다.

11시쯤 아다리 마을에 도착, 릭샤를 타고 Waghar Border,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에 도착했다.

파키스탄과 인도의 국기가 나란히 펄럭이고 있다.

그런데 국경이 너무 썰렁하다.

국경을 통과하는 사람이 3~4명 밖에 보이질 않고 외국인은 나 혼자다.

파키스탄 입국수속을 마치기도 전에 환전하라고 사람이 달려든다.

드디어 파키스탄 국경을 넘었다.

5개월간의 인도,네팔 여행이 머리속에서 죽~ 되살아났다 사라졌다.

동시에 이 낯선 나라에 대한 기대감과 공포와 설레임이 밀려왔다.

남아있는 100 인도 루피를  120 파키스탄 루피로 바꾸고

일단 20달러만 환전했다.

폐차같은 미니버스를 타고 어느마을 까지 가서 다른 미니버스로 갈아탄후

라호르역에 도착했다.

국경에서 라호르역까지 같은 미니버스를 탔던 젊은이가

자기집에 나를 초대하고 싶다고 같이 가자고 했지만

파키스탄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현지인의 집에 가는 것은

별로 안좋을 것 같아 그냥 숙소를 찾아가기로 했다.

역앞에서 릭샤를 타고 YWCA를 가려고 했지만 40Rs나 달라고 하여

미니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43번 미니버스를 찾아타고 American Center 근처에 내렸는데

YWCA를 찾을 수가 없다.

헤메고 있자니 길 건너편에서 젊은이들이 오라고 손짓을 한다.

너희들이 이리오라고 손짓을 했더니 길을 건너 한무리의 젊은이들이 몰려온다.

YWAC를 찾고 있다고 하니 미니버스를 타고 자기들이 가는길 중간에 내리면 된다고

같이 타자고 한다.

미니버스가 와서 탔는데 1분쯤 달리니 과연 YWCA가 나왔다.

미니버스의 차비 3Rs.를 내려고 하자 차장이 그냥 내리란다.

시설이 형편없고 물도 잘 나오지않는 도미토리가 125Rs. 나 한다.

파키스탄의 첫인상은 인도와 거의 비슷하지만

도로가 인도보다 넓고 정비도 잘 되있다.

사람들도 듣기와는 달리 좋은 인상이어서 마음이 놓인다.

배가고파 뭘좀 먹으려니 숙소근처가 원래 사람들이 없는곳인지

사람들도, 가게도 많이 보이지 않는다.

무척 무덥기도 하여 에어콘 바람도 맞을겸 올 때 보았던 McDonald에 갔다.

세금이 많이 붙어 비싸긴 하지만 시원한 것이 좋아 계속 앉아 있다가

의사가족을 만나게 되어 콜라도 얻어 마시고 얘기도 많이 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의사의 아들에게 인도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니

인디아는 우리의 적이고, 인디아는 무척 나쁘고,

카시미리 지방에서 무슬림들을 많이 죽이고, 그들은 무슬림이 아니고

그러그러하니 인디아는 싫단다.

조그만 아이였지만 인도에대한 적대심이 확고했다.

숙소에들어가 샤워를 하려하니 물이 잘 나오지 않는다.

어렵게 샤워를 하고.. 이제 파키스탄에서의 첫밤을 보낸다.

                                                                           .........파키스탄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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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7. 17.  토  Nepal Pokhara - India Sonauli - Gorakpur

새벽에 소나울리행 버스를 탔다.

8시간쯤 걸렸는데 요즘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산사태가 나고

길이 유실되어 억지로 통과하느라 애를 먹고,    또 몇분후

대형사고는 피했지만 다른버스와 옆을 스치는 사고가 일어나

시간을 많이 지체했다.

소나울리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고락푸르까지 3시간만에 도착했다.

작년에 왔던 길이라 모든게 낯익다.

고락푸르역 주위에 숙소를 잡고 내일아침 6시에 곤다행 기차를 타기로 했다.



1999. 7. 18.  일  Gorakpur - Gonda - Balampur - Sravasti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역으로 향했다.

5시에 출발한 기차는 7시 30분에 곤다에 도착했고,

다시 8시30분발 발람푸르행 기차를 탔는데 짧은 구간만 운행하는

기차라서 그런지 기차 상태가 끔찍하다.

1시간후 발람푸르에 도착해서 릭샤로 Jeep차 있는곳으로 이동하고

조그만 Jeep차에 18명이나 꾸겨타고 스라바스티로 향했다.

영어가 정말 안통하는 관광객 없는 깡시골이다.

이동으로서의 하루를 보내 드디어 기원정사가 있는 스라바스티에 도착.

지금은 한적한 시골마을이지만 예전엔 꽤 번성한 도시였고

부처께서 한때 하안거를 보내셨던곳이 바로 기원정사이다.

스리랑카절의 순례자숙소에 짐을 풀었는데 먼저 와 있어야할

미성누나를 보이질 않는다.

저녁때가 되어서야 미성누나가 왔는데 룸비니의 대성석가사에 들러

한국음식도 많이 먹고 잘 지내다 왔다 한다.

나도 룸비니를 지나쳐 왔지만 작년에 갔었던지라 안갔던 것이 후회된다.

한국음식 얘길 하니..   그리워 입맛만 다실 수 밖에..

기원정사에선 원숭이들이 뛰어다니고,. 가끔 소를 몰고 가는

인도인들이 보이고.. 바람이 살살 부는.. 조용한 시골이다.



1999. 7. 19.  월  Sravasti - Balampur -Gorakpur - Varanasi

기원정사와 마헤트를 돌아보고 스리랑카 절 앞 나무그늘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낮잠을 즐겼다.

도대체 할 일이 없는지라 오후에 바라나시로 떠나기로 했다.

작년에 가보지 못했던 라자스탄 지역을 가려고 마음 먹고 있었기에

바라나시를 거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길을 되짚어 Jeep을 타고, 기차를 타고 해서 밤 10시 30분쯤

고락푸르에 도착했다.

바로 바라나시행 기차가 밤 11시에 있어 탈 수 있었지만

침대는 얻지 못하고 인산인해인 2등칸에서 겨우 엉덩이를 조금

붙일 수 있었다.

딱딱한 나무의자라 엉덩이가 배기고 졸리지만 불편해서 도저히

잠들수도 없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하며

빨리 바라나시에 도착하기만 바랄 뿐이다.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지옥같은 기차여행이다.



1999. 7. 20.  화  Varanasi

드디어 새벽 6시30분쯤에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려 역으로 나올때는 정말 지옥에서 걸어 나오는듯한 느낌이었다.

1년만에 다시보는 강가강.

여전히 인도인들은 이강에서 수영하고, 빨래하고, 기도하고, 태운시체를 버리고,

목욕하고 또 마신다.

Kumiko house의 도미토리를 갔더니 상태가 끔찍하다.

그러나 네팔에서 먼저 떠났던 남현주를 그곳에서 다시 만났고

끔찍하긴 하지만 아침과 저녁식사 포함해서 80Rs. 인것이 맘에 들어

묵기로 하였다.

점심은 작년의 그 푸짐하고 맛있던 라면을 기대하고, 작년에 묵었던

Shanti G.H.에서 라면을 먹었는데 요리사가 바뀌어 영 맛도 없고

양도 적게 준다.

작년의 "저런" 이라는 이름의 요리사는 G.H. 옆집의 아가씨를

집적대더니 결국은 결혼해서 캘커타로 갔다고 한다.

기차역에가서 25일 자이푸르행 기차를 예매하고,

미성누나도 곧 뿌나로 돌아갈 기차표를 예매했다.

오랜만에 mail 확인을 했는데 놀라운 소식은 주식이 1020 포인트까지

올랐다는 것이다.

여행을 끝마쳤을 때 여행비 만큼만 올라있기를 바란다.

저녁은 숙소에서 아주 많이 맛있게 먹었다.



1999. 7. 21.  수  Varanasi

새벽 6시 30분에 일어나 강가에 나가 새벽바람을 맞았다.

아래층에 묵고있는 일본아저씨는 사진이 취미인지

늘 강가에 사진기를 대 놓고 살았는데 나 역시 사진에

관심이 많은지라 같이 사진을 찍으며 얘기를 나누었는데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 많은 얘기는 할 수 없었다.

하루종일 강가에 나가 인도인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낸다.

Kumiko House에서는 아침과 저녁을 주는데 아침은 빵과 버터,

삶은 계란, 오이, 토마토, 차 가 나오고 저녁엔 밥과 커리

또는 수프, 감자등 야채를 주고 역시 차가 나왔다.

처음엔 조금 지저분한듯하여 별로 맘에 안들었지만

지내다보니 편안하고 특히 저녁을 기다리며 오늘은 뭘까 하며

기대하는 맛이 좋다.

하루에 2,3번씩 비가 온다.



1999. 7. 22.  목  Varanasi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배를타러 나갔다.

1시간동안 가트주위를 돌며 새벽의 상쾌함을 즐겼는데

강 가운데에서 아주 큰 물고기의 등줄기를 보았다.

이곳에 돌고래가 산다는 소릴 작년에도 들었지만

그냥 내려져오는 소리겠지하고 지나쳐 버렸는데

사공이 정말 Dolphin 이라고 한다.

오후엔 현주와 미성누나와 함께 Maan 이라는 영화를 보러갔다.

영화관에 에어콘은 없고 천장에 fan이 돌고 있어서 조금 더웠고

영화가 상영되는 중간에 검표원이 돌아다니며 표를 검사한다.

긴 인도영화의 중간엔 꼭 휴식시간이 있는데 그시간엔 장사치들이

돌아다니며 거의 시장판을 방불케한다.

보통 델리나 캘커타의 영화관은 에어콘도 시원하고 하여

더울때는 에어콘바람 맞으러 영화관에 가곤 했었는데

이곳은 영 별로다.


누구나 인도영화를 처음보는 이 들은 유치하다고 웃고

시도때도 없이 나오는 집단가무를 보고 웃지만

나는 이제 인도인들과 같이 심각할땐 같이 심각해지고

웃을땐 같이 웃는다.

늦은 점심을 먹고 강가에 와서 망연히 앉아 해질녘의 강가를 감상했다.

피리장사가 멀리서 El condo pasa를 피리로 애잔하게 부르는데

잔잔한 강물과 함께 울려퍼지는 피리소리가 너무 듣기 좋다.

연주가 끝나자 박수가 나온다.


한 할아버지가 손자인듯한 10살즘 된 아이를 업고 강가 가트로 나간다.

그 손자는 팔, 다리가 불편하여 혼자 옷을 벗을 수 조차 없다.

할아버지가 옷을 벗겨주고 강물위에 엎드리게 한 후

한손은 몸을 떠 받치고 한손은 다리로 물장구를 치게하여

운동을 시켜준다.

그렇게 한시간동안이나 운동을 시켜주고 물밖으로 나와

몸을 닦아주고, 반바지를 갈아입히고, 웃옷을 갈아입히고,

손으로 머리의 물기를 털어주고 다시 소년을 업어 계단을 올라 집으로 돌아간다.

너무나 잔잔하고 평화스럽고 감동스러운 모습이어서 눈물이 난다..

성스러운 강가강은 여전히 잔잔하게 흘러간다.



1999. 7. 23.  금  Varanasi

매일 새벽에 강가에 나가보지만 항상 구름이 끼어있어 해뜨는 것은 볼 수가 없다.

시원한 그늘에 앉아 인도인과 농담따먹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데 숙소앞 강가에서 여대생 두명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미대에 다닌다고 한다.

그림그리고 있는 모습을 찍었더니 주소를 적어주고 사진을 보내달라 한다.

난 보내준다고 약속하면 꼭 보내준다.

현주가 새로산 펀자비드레스를 입고 사진찍고 싶다하여

뱅글과 빈디를 사러 나갔는데 하도 여러 가게를 돌아다니는지라 녹초가 되었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다시 나가 사진을 찍어 주었다.

사진을 찍고 숙소앞 강가에 앉아있는데 어제의 그 할아버지와 손자가 나타났다.

오늘도 할아버지가 손자를 운동시켜주고 있다.

매일 저녁무렵에 나오는 듯 하다.

오늘 미성누나가 뿌네로 떠난다.

내일 새벽 4시 기차라 오늘 밤에 역에 나가 waiting room에서 시간을 보낸단다.

내일 모레면 나도 Jaipur로 간다.



1999. 7. 24.  토  Varanasi

오늘도 새벽산보를 즐기고 아침을 먹는데 사람이 많아 4조각의 토스밖에

먹질 못했다.

현주는 빨래를 숙소옥상에 널었는데 원숭이들이 다 찢어놓았다고

빨리 옥상에 올라가서 원숭이들을 쫓아 버리란다.

옥상에 올라가니 원숭이들이 옷들을 다 찢어버리고

갖고 놀고 있다.   옷은 이미 산산 조각 나서 다 버리게 되었다.

오후엔 4명의 일본 여대생이 또 들어와 저녁식사때는 15명정도가

함께 모여 식사를 했다.

식사후 강가에 나가 저녁시간을 즐기는데 저 멀리서 번개가 친다.

비오기 전이라 그런지 무척 덥다.

샤워를 하고 누웠는데도 더위가 가시지 않는다.



1999. 7. 25.  일  Varanasi - Jaipur

새벽에 일어나 바라나시에서의 마지막 보트를 즐겼다.

현주는 아그라로 나는 자이푸르로 향하기 위해

17시에 기차역으로 향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기차는 오지 않는다.

나중에 10시간이나 기차가 연착한다고 방송이 나온다.

그것도 Expect 한다고 하니 10시간후에 올지 않올지도 모를 일이다.

밖으로 나가는것도 귀찬고 하여 무작정 플랫폼에서 시간을 보냈다.

기다리다가 한국인 자매를 만나 그런대로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또 같은 자이푸르행 이었다.

그렇지만 10시간을 플랫폼에서 기다리는 것이 쉽지는 않다.

많은 사람들이 플랫폼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어

몸 편히 앉아있을수도 없다.

지옥같은 기다림의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새벽 3시쯤 기차가 왔다.

17시 출발 기차가 03시에 도착하다니...

기차가 출발하자마자 누워 잠을 청했다.

편안히 누울 수 있는것만으로 너무 편안하고 행복함을 느낀다.

그렇지만 몸은 끈적거리고 뜨듯한 바람만 들어올 뿐이다.



1999. 7. 26.  월  Jaipur

오후 3시쯤 남현주가 아그라에서 내렸다.

작별인사를 하고 또 지루한 시간을 보낸다.

역시 끈적거리는 몸으로 후끈후끈한 공기를 마시며

뒤척뒤척 시간을 보내다 드디어 20시간만인 밤 11시에

자이푸르에  도착했다.

기차역에서 가까운 주정부가 운영하는 숙소의 도미토리에 짐을 풀고

숙소앞 가게에서 자매들과 음료수를 마셨다.

처음엔 숙소에서 도미토리가 full 이라고 하며 비싼 방을 권해

다른곳에 가려고 하자 그때서야 도미토리를 내어주어서

기분이 상해버렸다.

12개 정도 되는 침대에 3명의 손님밖에 없었지만 full 이라고

거짓말을 했던 놈을 째려본후 들어와 잠을 청했다.

시골이어서 숙소찾기가 쉽거나 싼 숙소가 가까운곳에 있었으면

숙소를 옮겼을텐데 밤이 깊어 숙소 찾기도 수월치 않고

긴 기차여행으로 몸도 지쳐있어 그냥 잘 수 밖에...



1999. 7. 27.  화  Jaipur

아침에 일어나 숙소를 옮겼다.

거짓말하는 숙소엔 더 있을 수 가 없다.

예전에 큰 저택을 개조해 만들었다는 숙소는 앞에

잔디밭 정원도 있고 잘 운영되는 것 같아 맘에 든다.

자매와 함께 그 유명한 바람의 궁전이라고도 하는

Hawa mahal을 보기위해 나섰는데 말이 끄는 통가가 있길래

통가를 타고 시내를 달렸다.

핑크시티라는 자이푸르의 애칭답게 궁전 위에서 보는 자이푸르시내의

건물은 온통 분홍색으로 칠해져 있다.

하와마할을 구경하는도중 샌들이 망가져버렸다.

작년에도 샌들이 망가져 고생을 했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여행 4달만에 망가져 버렸다.

5Rs. 주고 꼬매긴 했는데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하와마할은 성안의 여자들이 자신들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서

시가지의 축제등을 볼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하는데

격자형 창문들이 늘어져 있지만 앞에서 보는것과는 달리

그리 넓은 건물은 아니었다.

그다음엔 예전에 쓰던 천문대인 Jantar Mantar 로 향했는데

정교하고 다양한모양의 기구들과 건물들이 볼만했다.

장소를 옮겨 지금도 마하라자가 살고있다고하는

CityPalace의 마당에서 좀 놀고..

보석가게등을 한,두군데 들리는 조건으로 10Rs.에 시내의

유명관광지를 1시간동안 관광하라는 릭샤왈라들이 많은데

괜찬은 것 같기도 하지만 가게에 들리면 좀 피곤해질것같아

그만두기로 했다.
저녁엔 호사스런 내부장식을 자랑하는 Raj Mandir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한편 보았는데 정말 내부 장식이나 시설이 자랑할만 했다.



1999. 7. 28.  수  Jaipur - Jodhpur

아침식사를 하고 밤 11시 출발인 조드푸르행 기차를 예매했다.

그동안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 남매와함께 100Rs.에

하루종일 릭샤를 타고 자이푸르 주변 관광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대신 가게를 한군데만 들리잔다.

Amber Fort, Zorawar Gate, Monkey Temple 등을 돌아다녔는데

릭샤왈라가 재밌는친구여서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원숭이사원 올라가는 길옆에 늘어져 있는 원숭이들에게

땅콩을 하나씩 나누어 주는 일 또한 재미있다.

시간이 되어 자매는 Ajmer로 떠났고 나는 조드푸르행 기차를 기다렸다.



1999. 7. 29.  목  Jodhpur - Jaisalmer

새벽에 조드푸르에 도착했다.

우선 기차역 식당에서 아침을 먹으러 들어갔는데

"친구따라 인도가기" 여행사의 배낭여행팀도 아침을 먹고 있다.

임충규씨도 만나 얘기를 조금했는데 작년에 처음 인도갈 때

임충규씨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봤던터라 내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밤 10시 50분발 Jaisalmer행 기차표를 예매했다.

짐을 보관소에 맡기고 Mehrangarh Fort로 향했다.

입장료와 촬영권이 각각 50Rs.나 되어 입장료만 끊고 안으로 들어섰다.

성 문을 지나칠때는 젊은 사람들이 북을 연주하며 welcome! 한다.

높은 언덕위에 성이 있는데다가 성이 또 높으니 조드푸르 시가지가

한눈에 펼쳐진다.

밝은 보라색으로 칠한 집들이 참 보기에 좋았는데

저 멀리에는 망망한 사막이 보인다.


성을 내려와 성을 찍으려고 했으나 건물등에 가려서 제대로 찍을수가 없다.

1시간을 넘게 돌아다닌 끝에 겨우 한 상점의 옥상에 올라가는 것을

허락받아 옥상에서 겨우 찍을수 있었고, 상점주인이 사진한방

찍어달라고 하지 않을리 없다.

사진 몇방 찍어주고 꼭 보내주기로 약속했다.

기차역으로 돌아와 waiting room과 ITB를 오가며 시간을 보내다

기차를 탔다.

많은 군인들이 기차를 탄다.

파키스탄과 가까워지니 역시 Jaisalmer에도 부대가 많은가보다.

터번을 쓴사람들이 많은데 화려한 분홍색의 긴~ 터번을

빙빙돌려 쓰는 모습이 신기하다.

사막지역에 왔다는 것이 실감난다.



1999. 7. 30.  금  Jaisalmer

새벽 5시 30분에 누군가 깨워 일어나니 자이살메르 역에 도착하고 있다.

기차역을 나서니 각 숙소에서 나온 사람들이 역 광장에

일렬로 Jeep차를 주욱~ 세워놓고 숙소 펫말을 들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아.. 그 어디가 이처럼 숙소 구하기에 편할까..

포카라에 도착했을 때 손님들을 끌어가기위해 펫말을 들고나온 사람들이 생각났다.

맘먹고 있던 숙소의 jeep을 타고 숙소로 향했다.

아직깜깜해서 아무것도 안보인다.


날이 서서히 밝아오자 자이살메르성이 그모습을 드러낸다.

아주 크고 당당하게 사막위에 솟아있다.

조드푸르도 비슷하지만 그곳은 좀 더 큰 도시라 별로였고

이곳은 작은 마을인데다 성이 아주 가깝고 규모도 커서 정말 멋있다.

온통 집들이며 성이며 사막의 흙 색깔이다.

아....................    자이살메르....


성에 가보았다.

성 안에는 작은 마을이 있다.

성의 가장자리에 앉자 사막이 보인다.

사막이 끝없이 펼져져있다. 끝없이...

오후에 샤워를 하고 방에 누워있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

밖으로 나가보았다.

모래바람이었다.   모래바람..  이것이 말로만 듣던 그 모래바람인가..

온통 주위엔 금빛 모래로 가득하고 시야는 50m 앞도 분간할 수가 없다.

그러더니 갑자기 소나기가 퍼붇는다.

금새 앞이 환해지며 모든 것이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던 성이 금빛 모래바람속에서 역시 같은 금빛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집들의 옥상엔 비에 굶주렸던 사람들이 나와

팔을벌려 비를 맞이하고 아이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좋아한다.

정말 행복한 모습들 이었지만 비는 금방 멈춰버리고

바람만 살살 분다.

방과 물건들과 침대가 고운 모래로 뒤덥혔다.

해가 질때는 태양이 다시한번 온세상을 금색으로 물들여 놓는다.

망망한 대지 아래로 해가 진다.



1999. 7. 31.  토  Jaisalmer

옥상식당에서 성이 잘보여 숙소가 맘에들고

더군다나 수렌다 라고하는 주방장과 친해져서 더 재밌다.

그는 내 식성을 알아서 토스트를 만들때도 계란에

고추를 썰어넣어 매콤하게 만들고 특별 요리도 많이 만들어 준다.

동네가 작아 돌아다니는데 무리가 없다.

어젯밤 수렌다에게 어디에서 자냐고 물어봤더니 옥상에서 잔단다.

나도 같이 옥상에서 자기로 하고 수렌다와 숙소에서 일하는 애와 함께

옥상에 누워 하늘을 이불삼아 잠을 청했다.

그렇지만 구름이 끼어있어 별은 보지 못했고 바람은 시원했으나

새벽이 되자 조금 추웠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몸에 모래가 묻어 꺼끌꺼끌하고

입속에서도 모래가 씹힌다.

오늘은 방에서 자야겠다.



1999. 8. 1.  토  Jaisalmer

새벽부터 비가 내리는가 싶더니 아침에 일어나보니

제법 많이 내리고 있다.

하늘을 보니 쉽게 그칠 것 같지 않다.

숙소 앞 길은 금새 강처럼 되어버렸다.

오후가 되면서 장마비가 내리듯 지루하게 비가 내린다.

한 두 방울씩 천정에서 물이 새기 시작한다.

오늘부터 Camel Safari를 가기로 했으나 비가오니 무기한 연기다.

하루종일 비가 오락가락 하더니 결국 전기까지 끊겼다.

숙소에서 한발자국도 나가지 않은채 식당과 화장실과

방을 오가며 하루를 보냈다.



1999. 8. 2.  월  Jaisalmer

그쳤던 비가 새벽부터 다시 내리기 시작하더니

침대위 천장에서 빗물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대충 침대를 옮기고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한두군데가 아니라 여러군데의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고 바닥은 거의 물바다가 되었다.

모든 것이 축축하다.

덥지 않아서 좋긴 하지만 축축한것보다는 조금 더운 것이 낳을 것 같다.


오후에 비가그쳐 Gadi Sagar 호수에 가보았다.

흙탕물에서 많은 인도인들이 수영을 하고 있다.

자이살메르의 색은 온통 금색.



1999. 8. 3.  화  Jaisalmer

새벽부터 다시 천장에서 물이 떨어진다.

침대의 가장자리가 다 젖어 웅크리고 다시 잠이 들었지만

몸쓸꿈만 자꾸 꾸게되어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지는 못했다.

바람이 거칠게 불고 날은 잔뜩 흐려있다.

내일 Camel Safari를 가기로 했는데 날씨가 괜찬아졌으면 좋겠다.

아침에 노정희라는 한국여자를 한명 만났다.

3명의 일본인과 함께 숙소에 도착했는데 역시 방학을 이용해서 온

짧은 기간의 여행객이다.

오후에 숙소에서 보이는 언덕에 올라갔다.

오르는길 중간에 대충 천막 같은 것을 쳐 놓고 사는 빈민촌이 있는데

아이들이 나와 신기한 듯 구경한다.

사진을 찍어주자 차렷자세로 몸이 굳는 아이들이 순진하다.

언덕에서 마을과 성이 잘 보인다.

저녁때 다시올라 석양을 보려했으나 구름이 끼어있어 지는해는

보지 못했다.

내일 safari는 노정희씨와 2명의 일본인이 가기로 했다.



1999. 8. 4.  수  Jaisalmer  Camel Safari

다행히 날씨가 나쁘지 않다.

사파리하는 인원은 프랑스에서온 여자 두명이 더 늘어서

6명이 되었다.

오후 2시쯤 Jeep을타고 몇군데의 Jain교 temple을 돌아본후

오후 5시쯤 낙타들이 기다리고 있는곳에 도착했는데

가는도중 그동안 비가 많이 와서 호수처럼 변한 벌판을 많이 지나쳤다.

풀을 되새김질하여 계속 씹고있는 낙타가 신기하고 귀엽게 생겼다.

드디어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걷는다.

우리 인원이 6명이고 가이드는 3명이지만

낙타는 7마리여서 2명의 가이드가 한 마리의 낙타에 타고

조수인듯한 가이드는 계속 걷는다.

사막이라곤 하지만 군데군데 풀들이 있어서 낙타들이 중간에 풀을 뜯곤한다.

하지만 허허벌판에 낙타에 몸을 싣고 일렬로 서서 행진하는 모습은

색다르지 않을 수 없다.

2시간쯤 가니 온통 모래뿐인 사막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낙타몰이꾼은 저녁준비를 하고 우리들은 모래언덕으로 나가

신기한 사막을 즐겼다.


모래가 너무 고와서 몸이나 다른 물건에 묻으면 털어내기가 쉽지않다.

건조하고 황량한 사막을 보고있으면 내몸까지

바짝 말라 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말똥벌레들이 많아서 낙타가 동글동글한 x를 싸면 그것을 뒷발로 굴려

그들의 집으로 가져간다.

어느새 사방에서 말똥벌레들이 날아든다.   하지만 착륙을 잘 하지는 못해서

날다가 앉을 때 때르르 구르는 모습이 정말 웃긴다.

저녁은 사브지, 밥, 짜파티 였는데 좀 맵게 만든 커리가 맛있어서 양껏 먹었다.

모래가 씹힌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모래도 씹히지 않고 맛있게 먹었으나

노정희씨는 아직 인도음식에 적응을 못했는지 통 먹지를 못하고

내가 손으로 먹는 것을 지저분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디저트로 일본인 아쯔시바가 가져온 위스키를 마셨다.

해가 지고 매트리스를 피고 누우니 별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더니

금새 하늘에 가득해진다.

낙타몰이꾼들은 잘 자라고 하더니 낙타들을 몰고 가버린다.

어디선가 옅은 구름이 밀려와 별들을 가리는가 싶더니

반달이 밝게 떠서 별빛을 죽여놓는다.

바람이 시원하게 분다.



1999. 8. 5.  목  Jaisalmer Camel Safari

해가뜰 때 반달은 아직도 하늘 꼭대기에 있었다.

새벽녘엔 추웠지만 사막에서의 아침은 색다른 맛이라 괜찬았다.

낙타들을 몰고 낙타몰이꾼들이 다시 왔다.

날씨는 좋지만 점점 햇빛이 뜨거워진다.

또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걷는다.

오후엔 점심을 먹고 너무 뜨거워 그늘에서 낮잠을 잤는데

너무 더워 잠도 잘 오지 않았고 팔을 문지르면 소금이 하얗게 보일 정도였다.

지나가는 염소치는 할아버지한테 Bidi를 두 대 빌려 맛있게 피우고

짜이한잔 마시고 다시 출발.

오후 5시반쯤 처음 낙타를 탔던곳에 도착했다.

Jeep이 기다리고 있다.

날씨가 너무 더워 조금 힘들었지만 낙타타는 것은 무척 재미있었다.

Jaisalmer에 도착하니 큰 도시에 온 느낌이다.

그토록 하고싶었던 샤워를 시원하게 하고 콜라한잔 마시니 기분이 상쾌하다.

주방장 수렌다가 반갑게 다시 맞아준다.



1999. 8. 6.  금  Jaisalmer - Udaipur

오후3시30분 출발 조드푸르를 경유해서 우다이푸르로 가는 버스를 예약했다.

그동안 친하게 지냈던 주방장 수렌다와 작별하고 버스에 올랐다.

노정희씨는 델리로 간다고 한다.

끝날 것 같지않은 사막을 가로질러 버스는 밤9시30분쯤 조드푸르에 도착,

다시 우다이푸르행 버스로 갈아탔다.

계속 사막의 밤을 달린다.

옆자리에 인도인들과 얘기를 나누며 자이살메르에서 조드푸르까지 왔던

독일인 Martin이 앉았는데 한 인도인이 오더니 Martin보고 자기 옆자리에 와서

얘기를 하잔다.

Martin은 자기 자리를 지키고 싶다고 하고, 술이 좀 취한 인도남자는

같이 얘기하고 싶다고 옆자리로 오라고 하고...

계속 인도남자가 조르는통에 결국 자리를 바꿔

그 술취한 인도남자와 얘기를 조금 하고 와야했나보다.

나중에 내옆자리로 돌아온 그와 마주보며 실없는 웃음을 지을 수밖에..



1999. 8. 7.  토  Udipur

새벽 4시에 우다이푸르에 도착했다.

기다리고 있던 릭샤를 타고 작디쉬사원 근처에 방을 잡기로 했다.

자연히 Martin과 함께 방을 찾아 헤매게 되었는데

그는 다른 서양놈들과는 달리 내 의견을 물어보며 내 의견에 따라하겠다고 한다.

어둠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새벽에 방을 찾느라 돌아다니는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50Rs. 짜리 싱글을 두 개 잡아 곧 잠이 들었다.

피곤한 버스여행에다 새벽부터 숙소찾느라 돌아다녔으니 몸이 말이 아니다.

10시쯤 일어나 아침을 먹고 첫 여행지에선 언제나 그렇듯 주위를 돌아다녀보았다.

피촐라 호수주변 Ghat에선 인도아줌마들이 빨래나 목욕을 하고 있었다.

호수중간의 섬에는 LakePalace가 고급스런 모습으로 서있다.

걷다보니 CityPalace가 나와서 앞마당을 걸으며 산책을 즐겼다.

007영화 Octopussy를 이곳 우다이푸르에서 찍었다고 해서 이곳 식당들은

그 비디오를 밤마다 틀어준다.

Martin과 함께 비디오를 보며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맥주를 마시며 얘기했다.

저녁은 내가 샀고 맥주는 그가 샀으니 다음날 아침은 다시 내가 사기로 했다.



1999. 8. 8.  일  Udaipur

Martin과 아침을 먹고 CityPalace로 향했다.

궁전내부는 많이 보아서인지 그저 그랬고 주변 거리들을

산책하는 것이 더 좋았다.

코끼리가 앞에 가고 있어 따라가보았다.

중간중간 사람들이 집에서 나와 짜파티를 주니 코끼리가 잘 받아 먹는다.

사두가 길에 나와 코끼리를 구경한다.

피촐라호수의 가운데에선 현재는 LakePalace라는 고급호텔로 사용되는

궁전이 밤에는 불빛을 호수에 반사시키고 있다.

저녁때 Martin과 또 맥주를 마시고..

Martin은 오는 11일에 있을 개기일식을 보러 구자라트주로 간다고 한다.

나는 비자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고 델리에서 이란비자도 받아야하기에

내일 푸쉬카르로 갔다가 델리에 가야한다.



1999. 8. 9.  월  Udaipur -  Pushkar

Martin과 작별하고 오후1시에 우선 Ajmer행 버스를 탔다.

가는길에 대리석 공장이 아주 많이 보인다.

가도가도 대리석.

인도는 싸구려 식당의 식탁도 대리석이고

싸구려 숙소의 내장도 대리석으로 되어있는곳이 많다.

다 이곳에서 나오는 대리석인 것 같다.

저녁8시쯤 아즈메르에 도착해 푸쉬카르행 버스를 다시 갈아탔다.

밤9시쯤 푸쉬카르에 도착했다.

첫눈에 작은 마을임을 알 수가 있었다.

Kanhaia G.H.에서 나온 삐끼가 따라붙었다.

이런저런 말로 호텔자랑을 하더니 한국인도 3명이나 있으니

만나보라고 한다.

일단 따라가 보기로 했는데 숙소에 가보니 한국인이 있다는 말은

거짓말인 것 같았다.

일단 숙박계를 쓰라고 해서 숙박계를 보니 다른 한국인은 없었다.

왜 한국인이 없냐고 하니 그들은 어젯밤에 도착해서 아직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지금 밤에 도착했는데 왜 나보곤 지금 쓰라 하냐고 따지니

지금씨즌엔 한국인이 많이 오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삐끼는 아들이었고 또다른 아들이 있고 아버지와 엄마가 주인이었는데

그 4명의 거짓말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주인은 아들이 어제 다른곳에 갔다가 오늘 와서 잘 모르고 한말이라느니..

한국인이 써놓은 방명록을 일단 보라느니 하며 계속 시간을 끌었다.

환영한다는 의미에서 일단 짜이와 스낵을 먹으란다.

일단 짜이와 스낵을 얻어먹었지만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한국인이 있고 없고는 중요한게 아니라고.. 한국인이 써놓은 방명록을

덮어버리고 하루종일 버스에 시달려 피곤한 몸이였고

시간은 이미 밤11시가 다 되어가고 있지만 숙소를 나와버렸다.

내가 그냥 귀찬은 맘에 그 숙소에 머문다면 또 무슨 거짓말을 할지 모르고

그들은 다음에 올 다른 한국인에게 또 거짓말을 할것이 뻔하므로

다시는 그런 거짓말을 하게 할수는 없었다.

좀더 나쁘고 화장실도 딸리지 않은 곳에 방을 잡았지만

그런 거짓말을 하는 숙소에 머무는것보다는 낳다는생각이다.

피곤하다.



1999. 8. 10.  화  Pushkar

생각과는달리 푸쉬카르는 너무 관광지화 되어서 번잡하기는 우다이푸르와 마찬가지다.

길을 걸으면 Japanese란 소리를 100번도 더 듣는 것 같다.

내일 일식이 있는날인데 날씨가 맑았으면 좋겠다.

이곳에서 좋은건 뷔페가 40Rs. 라는 것이다.

그리 비싸지도 않으면서 양껏 먹을 수가 있어서

대체로 많이 먹는 나로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숙소근처 옥상식당에서 식당종업원들과 이런저런 얘길하며 오후를 보냈다.

내일 일식을 본후 바로 떠나기위해 오후 7시 45분 델리행 버스를 예약했다.



1999. 8. 11.  수  Pushkar - Delhi

아침도 뷔페로 먹고 check out 한후 이스라엘친구의 방에 갔는데

MDplayer 2개와 앰프, 성능좋은 스피커가 있어서 큰 오디오를 튼것같이

숙소가 울릴정도다.

거리를 쏘다니며 시간을 보내다가 숙소로 돌아와 옥상에 올랐다.

오후 5시부터 일식이 시작되었다.

30분후엔 초승달처럼 해가 작아지더니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그름이 엷게 끼어있어서 눈이 부시지 않아 일식을 보기에 더 좋았고

사진을 찍기에도 더 좋았다.

짐을 챙기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는 정확하게 오후7시45분에 델리를 향해 출발했다.

                        ...... 이제 델리로 가서 파키스탄-이란- ,.....   으로의 여행준비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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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USD = 71.5 Rs.(네팔루피)


1999. 7. 4.  일  NEPAL, Kathmandu

지겨운 버스여행을 마치고 오후 1시쯤 카투만두에 도착했다.

18시간의 버스여행이었다.

Thamel지역의 Mont Blanc G.H.에 방을 잡고 주변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거의 변한 것은 없는 것 같다.

한국에서 일을 한 경험이 있어 한국말을 잘 하는, 지금은

가죽제품 장사를 하는 아이도 다시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숙소에서 5월초에 고아에서 만났던 아야코를 다시 만났다.

아니 이게 왠일이냐 하면서 서로 너무 반가워 했다.

그 동안의 여행얘기를 하며 계속 시간을 보내다 밤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네팔에 오면 좋은 카메라를 하나 살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앞으로의 여행도 많이 남았고 돈이 여유로운것도 아니어서 어떻게 할까

누나와 상의좀 하고 저녁을 먹으러 나섰는데 숙소앞에서 아야코와 가애가

얘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도 바로 지금 만났는데 그전엔 4월에 인도의 라자스탄에서 만났었다 한다.

늘 여행자들은 얽히고 섥히며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난다.

저녁을 먹은후 다시 만나기로 하고 미성누나와 Villa Everest

한국식당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며 행복해 했지만

미성누나가 660 Rs. 나 바가지를 썼다.

숙소로 돌아와 가애, 아야코와 얘기를 나누며 새벽 2시반까지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다.

가애는 내가 작년에 묵었던 Cozyconer G.H. 에 묵고있어 가애를

바래다 주기위해 두 숙소의 사람들을 깨워 문을 열게해야 했었는데

새벽의 정막한 타멜거리를 걷는것도 괜찮았다.


1999. 7. 9.  월  Kathmandu

그동안 카메라 가격을 알아보느라 계속 NewRoad를 몇번이고

왔다갔다하며 살까말까 고민하다가 큰맘먹고 400달러짜리 카메라를 샀다.

이것과 똑같이 한국에서 살려면 90만원정도이니 싸긴 싼거였다.

구름이 계속 끼어있어서 히말라야는 볼 수 없었지만


날씨가 시원하여 지내기엔 정말 좋았다.

숙소옥상에서 승려인듯한 숙소주인의 동생에게 저 산 너머에

히말라야가 있냐고 가깝게 보이는 산을 가리키며 물으니

저 Hill 너머에 히말라야가 있다 한다.

산이라고 부르는 것은 네팔에선 오직 히말라야이고

히말라야가 아닌 것은 Hill 이라고 부른단다.


작년에는 카투만두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작은 언덕 마을인

나갈콧트에 가서 정말 웅장한 히말라야를 보았었다.

창문이 침대 바로 옆에 길게 있는 숙소였었는데 새벽에 눈을뜨니

새하얗고 정말 높은 히말라야가 내옆에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왼쪽 저 끝에서 오른쪽 저 끝까지 180도로 펼쳐진

정말 그 숨막히는 광경에 황홀해 했었다.

가애는 먼저 인도로 떠났고, 아야코와 난 거의 매일

Snowland 보석가게에서 주인인 Usman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뿌네에서 만났었던 미성누나의 후배인 이덕임님과 미성누나가

다시 포카라에서 만나기로 했었기에 내일은 포카라에 간다.


1999. 7. 10.  토  Kathmandu - Pokhara

새벽에 일어나 포카라행 버스에 올랐다.

작년에 비해 길은 매우 좋아진 것 같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넘고 넘어 드디어 버스가 포카라에

도착 하자마자 수많은 사람들이 숙소 팻말을 들고 있다가

몰려들어 서로 손님유치를 위해 경쟁을 한다.

이덕임님이 묵고있을거라 얘기했던 숙소로 찾아가니

몇일전 떠났다고 하고 그녀의 메모만 볼수 있었다.

damside 와 lakeside를 수소문한 끝에 바로 어제 카투만두로 떠났고

미얀마에 들어간다는 소식이다.

할 수없이 댐사이드에 숙소를 잡았다.

그 숙소엔 남현주라는 대학생도 있어서 그 숙소의 일본인 친구들을

소개 받았는데 모두들 개성이 강한 애들이어서 나름대로

"퍼포먼스","오모시로이가이","간호사"로 별명을 붙여 부르기로 했다.

현주는 몸이 않좋아 한국음식을 먹어야한다길래 숙소 주방을 빌려

수제비를 많이 끓여 숙소에 묵는 사람들이 다같이 저녁을 먹었다.

비수기라 관광객들도 없고 한가한게 좋다.


1999. 7. 11.  일  Pokhara

어제 수제비를 얼마나 많이 했던지 남은 것이 있어서

그것으로 아침을 때웠다.

포카라에선 시간이 천천히 간다.

모든 모습들이 모두 평화스럽고 한적하다.

오후가 되자 마차푸차레의 웅장한모습이 조금 모습을 드러낸다.

멀어서 낮게 보일거라는 생각과는달리 아주 높게 솟아있다.

호수주위를 거닐고 동네를 산책하며 시간을 보내고

밤엔 옆 숙소에 묵던 다른 두명의 한국인이

위스키와 맥주를 사갖고와서 같이 마시고..

"오모시로이가이"와 라마크리슈나에 대해 얘기했다.

그도 인도를 여행하려고 하는데 오직 사두를 보고

뭔가 배울 수 있길 바란다고 한다. 그렇지만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니...

아무튼 정말 재밌는 놈이다.


1999. 7. 13.  화  Pokhara

낮엔 햇빛이 강해 더위를 느끼지만,

매일 밤이되면 비가온다.

우체국에가서 옆서를 보내고 돌아오는길엔

댐사이드와 레이크사이드 갈라지는 삼거리의 큰 나무그늘에 앉아

더위를 식혔다.

왼쪽엔 아기가 혼자 누워 자고있고,

오른쪽에선 엄마가 이미 나오지 않을 젖을 다 큰 아기에게 물리고 있다.

길가에는 수레에 과일들을 주렁주렁 메달아 놓은 과일쥬스장사들이

덥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날은 맑지만 히말라야쪽은 구름이 덮혀있어 산은 볼 수가 없다.


1999. 7. 15. 목  Pokhara

어제 미성누나가 인도의 불교 유적지인 Sravasti를 가기위해

Sonauli행 버스를 예약했고, 나는 좀 더 있다가 스라바스티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새벽6시에 레이크사이드에서 미성누나를

바래다주고 오는길에 마차푸차레와 안나푸르나가 보이기 시작한다.

서둘러 숙소로 돌아와 사진기를 챙기고 나갔다.

아름답다고 해야겠다.

꼭 시즌에 다시와서 트레킹을 해봐야겠단 생각이다.

30분정도 맑게 산이 보이다가 점점 구름이 피어나기 시작하고

어느새 산을 덮어버린다.


오늘 바라나시에서 왔다는 일본인이 한명 더 들어왔는데

캘커타에서 카메라를 도난 당하고 청바지의 아랫배 부분이

면도칼로 찢겨져 있다.

다행히 복대에서 돈을 꺼내가진 못했지만 인도루피가

복대와 함께 조금 찢어졌다한다.


저녁땐 일본애들이랑 바비큐파티를 한다고 준비를 했다.

숙소옥상의 큰깡통속에 장작을 피우고 닭고기와 양파, 배추등을 사다가

꼬치에 끼워 간단하게 파티를 했다.

퍼포먼스는 자기의 주특기인 몸에 불을 갖다대며 쑈를 보여주고....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오모이로이가이는 (오모시로이 = "재미있다"는 일본말)

대단한 대마초 애연가였는데 대마초의 역사에 대해서

열변을 토했다... 결국 대마초는 좋은 것이다 라는 얘기.

그는 대마초를 피며 이상한 행동을 하며 원맨쑈를 한다고 하는데

내일 모레 내가 떠난다고 하니 내일은 특별히 나를 위해

대마초 파티를 열테니 관람하라고 한다.

그가 말하는 신과 가까워지는 신성한 상태가 어떠한건지

볼 수 있게됐다.


1999. 7. 16.  금  Pokhara

저녁이 되어 "퍼포먼스", "간호사"와 함께 "오모시로이가이"의 방으로 갔다.

그의방엔 라마크리슈나 와 시바의 사진을 액자에 끼워 모셔두어서

꼭 인도인의 방 같았다.

의식을 시작하기전 사진앞에 촛불을 밝히고 절을 한다.

그리고 대마초에 취한 상태에서 무엇을 먹으면

정말 맛있어진다고 하며 과일과 쵸코렛을 준비해둔다.

의식은 시작됐고 신에게 가까이 갔는지 어쨌는지 오모시로이와 퍼포먼스의

이상한행동을 보며 간호사와 나는 계속 웃었고,, 그들은 더 웃는다.


1999. 7. 17.  토  Nepal Pokhara - India Sonauli - Gorakpur

새벽에 소나울리행 버스를 탔다.

8시간쯤 걸렸는데 요즘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산사태가 나고

길이 유실되어 억지로 통과하느라 애를 먹고,    또 몇분후

대형사고는 피했지만 다른버스와 옆을 스치는 사고가 일어나

시간을 많이 지체했다.

소나울리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고락푸르까지 3시간만에 도착했다.

작년에 왔던 길이라 모든게 낯익다.

고락푸르역 주위에 숙소를 잡고 내일아침 6시에 곤다행 기차를 타기로 했다.

                                                                              .....이제 다시 인도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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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5. 16.  일  Mysore


오전에 Chamundi Hill 다녀왔고 오후엔 Devaraja Market을 구경했다

오래간만에 Internet을 했는데 집에 전화 하라는 메일이 와있어 무슨일이 있는지

걱정이 되어 전화를 해봤더니 연락이 없어 걱정되었단다.

비싼 전화는 자주 못해도 옆서는 자주 보내야겠다.

오후 7시가 되자 과연 궁전의 둘레를 따라 설치해 놓은 수천개의 전구에 불이 들어왔다.

음....  정말 멋있다.

마이소르에서의 기쁨 또 하나는 탈리가 맛있다는 것이다.

특히 탈리를 좋아하는데다 깨끗하고 큰 탈리 전문식당에서 먹는

탈리맛은 정말 기가막히다.



1999. 5. 17.  월  Mysore - Ernakulam


다음 행선지는 에르나꿀람을 경유해서 코치로 가는 것이다.

21시 15분발 버스를 예약하고 12시에 게스트하우스 check out 하고

주변을 산책하거나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며 버스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인도에서 좋은 것은 시간보내기가 좋다는 것이다.

항상 길거리엔 많은 사람들이 있고.. 먹을거리, 볼거리들이 있어

지루한 시간보내기도 금방 때울 수가 있는 것이다.

21시15분 출발인 버스는 22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1999. 5. 18.  화  Ernakulam - Kochi


밤새 버스는 달려 오전 10시쯤 에르나꿀람에 도착했다.

녹색 융단의 땅 께랄라(Kerala)주에 도착한 것이다.

바로 Fort Kochi 지역으로 이동 하기위해 배타는곳(Jetty)로 향했는데

생각보다 멀고 길을 헤매게 되어 오래도록 걸어야 했다.

차가 아주 많아 길 걷기가 유쾌하지 않다.

배를 타고 Kochi로 향했다.

에르나꿀람의 도심지와는 달리 한적한 곳에 오니 한결 기분이 낳아지는 느낌이다.

중국식 어망 (Chinese Fishing Net)이 보이고 아라비아해가 출렁이고 있다.

해변에서 가까운곳에 Chiramel Residency (Heritage Inn) G.H.를 잡아 묵기로했다.

우선 바닷가를 거닐며 바닷바람을 쐬고 중국식어망을 올리는 사람들이

오라고 손짓해 가봤더니 거대한 어망에 비해 고기는 그리 많이 잡히지는 않는다.

나도 어망 올리는 작업을 조금 해보려고 했지만 생각외로 작업이 거칠고

힘과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라 뒤에서 지켜보다가 고기가 얼마나 잡혔나

세어 보는 것 밖에는 할 수가 없다.

한쪽 옆에는 싱싱한 생선을 많이 파는데 한국말을 하는 아저씨도 있다.

하나, 둘, 셋,  여기서 사서 저기서 먹어!

생선를 사서 가까운 공터앞 식당에 가져다 주면 약간의 요리비를 받고

요리 해주는 시스템이다.

저녁식사로 큰 생선을 사서 먹었다.

내가 묵고있는 게스트 하우스는 1층은 주인집이고 2층은 손님을 위한

방과 넓은 거실이 있는데 거실엔 그집 아들과 딸이 예전에 갖고 놀았을

장난감들과 인형들이 많은데 예쁜 한복을 입은 한국 인형도 있다.

여름철이라 손님이 없어 그 넓은 거실과 방을 나혼자 쓸 수 있는데다

좌변기와 깨끗한 욕조가 딸린 넓은 더블룸이 100Rs. 로

그리 비싸지 않아 지내기엔 정말 좋다.

여행기간 동안 정말 좋고 싼 숙소로 기억된다.

내가 비수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여름에 남인도는 덥다고 생각하지만 서쪽은 덥지도 않고 여행객이 없어

상대적으로 싼데다 한적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도 맥주 한잔 않할 수 없다.



1999. 5. 19.  수  Fort Kochi


아침식사후 잠이들었다가 깨어보니 비가오고 있다.

몬순이 시작 되려나보다..

거실에서 TV를 보거나 잡지를 뒤적이며 시간을 보낸다...

주인집의 하인은 2층에서 놋쇠 와인잔과 그릇들을 광택제로 윤이나게

하나하나 정성들여 닦거나 쪼그리고 앉아 TV를 보고 앉아있다가도

빠앙~ 하는 주인집 여자의 차소리가 들리면 어느새 차고로 나가 차고문을

열어준다.

내가 외출했다가 돌아올때도 잠긴 현관문을 열어주며 인사를 한다.

그와 얘기좀 하고 싶었지만 그는 영어를 못하는 듯 하다.



1999. 5. 20.  목  Fort Kochi


오늘도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넓은 거실에 앉아 MTV를 본다.

Tony Braxton 의 Unbreak my heart을 듣는다.

창밖으로 비가 내린다. 그런데도 새들이 지저귄다.

넓은 거실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

비가 조금 그쳐 Dutch Palace에 가 보았다.

말만 궁전이지 그냥 조금 큰 집에 박물관을 만들어 놓은 것

같았는데 벽화는 괜찬았다.

오래도록 걸어 돌아왔다.

 

1999. 5. 21.  금  Fort Kochi


포르투칼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인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St. Francis 성당에 가 보았다.

묵고있는 숙소와 공터를 마주하고 있어서 언제나 길을 나설때면

보이던 성당이다.

포르투칼 출신의 Vasco da Gama가 이성당의 마당에 임시로 묻혔다가

나중에 고국으로 옮겨졌다 한다.

매일 아라비아해를 보면서 산책을 한다.

내일은 수로유람(Backwater Trip)을 위해 알라뿌자로 향한다.



1999. 5. 22.  토  FortKochi - Ernakulam - Alapuzha


올땐 배를타고 왔지만 나갈땐 버스를 타고 에르나꿀람으로 향했다.

버스를 갈아타고 히프와 허리가 아프다고 느낄때쯤 알라뿌자에 도착했다.

ATDC에서 월요일에 Kollam을 향해 떠나는 Backwater trip을

150Rs.에 예약했다.

비수기라 월, 수, 금요일 밖에 운행을 하지 않는단다.

저녁내내 비가 내린다.



1999. 5. 23.  일  Alapuzha


어젯밤에 모기와 벌레들의 공격을 받느라 온몸을 긁으며 잠을 설쳤다.

덕분에 아침 9시가 넘어서까지 침대에서 뒹굴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마땅히 볼거리가 없는 도시인데다 시끄럽고 복잡스럽고 또 비 때문에

길이 질퍽거려 나다니기가 쉽지 않지만 아침에 낯모르는 현지인으로부터의

Good morning 소리는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

점심은 탈리식당에서 오랜만에 탈리를 먹었는데 종업원들이 사리입은 여자들이다.

여자종업원이 있는 서민식당은 처음이다.

거리를 걷다가 지금있는 룽기도 조금 싫증나고 하여

남인도 특유의 현란한 무늬가 있는 룽기를 하나 샀다.

수로주변으로 감자나 바나나, 각종 과일들을 즉석에서 튀겨파는 가게들이 있길래

포테토칩을 사서 맥주와 함께 먹었는데 방금 만든 포테토칩이라 정말 맛있었다.

내일은 Backwater trip을 하는 날이니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1999. 5. 24.  월  Alapuzha - Kollam


다행히 시바신이 돕는 듯 어제 밤새 억수로 비가 오고 오늘 아침엔 비가 그쳐 있다.

10시 30분에 보트가 출발했다.

크지않은 배였는데 지붕이 있고 지붕위엔 의자를 놓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경치를 감상할 수 있게 되있다.

여행인원은 모두 15명 이었는데 인도인 가족 4명과 나머지는 프랑스, 덴마크, 잠비에

등지에서 온 배낭여행자 들이다.

좁은 수로를 지나칠땐 주변의 집에서 나온 꼬마들이 손을 흔든다.

모두들 밝은 모습들이다.

계속 좁은 수로를 따라가다 넓은 호수가 나타난다.

넓디 넓은, 바다같은 호수위에 손바닥만큼 조그만배 위에 서서 노젖는 할아버지가

그림같은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육지엔 온통 코코넛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고 드문드문 집들이 보인다.

점심시간이 되자 육지의 식당이 있는 곳에 멈춰섰는데 식당이라기보단

수로유람 손님만을 위해 집을 짓고 음식을 파는 듯 보이고 주위에 다른집들은

보이지도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인 바나나 잎을 식탁에 깔고 그 위에 탈리를 주는데

다른 여행객들은 숟가락이 없다고 불평을 하며 숟가락을 구해 먹었지만

나는 항상 그렇듯 손으로 탈리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

다시 수로유람은 시작되고 한가한 오후 시간이 지나간다.

유럽에 체류하는 잠비에에서 왔다는 친구와 얘기를 많이 했는데

이렇게 싼가격에 이런 여행을 할 수 있는 인도가 너무 좋단다...... 그래, 나두 좋다..

넓은 호수가 다시 나타나더니 오른쪽 둑 위로 파도가 높게 치는 바다가 보인다.

그러다 이내 다시 수로로 접어들고...

저녁6시 30분쯤 Kollam에 도착했다.

가끔씩 비가 와서 조금 추운 듯 하였지만 정말 괜찬은 boat trip 이었다.

Kollam에선 가이드북과는 달리 G.H.의 가격이 많이 올라있었지만

배에서 내릴 때 명함을 주었던 Rakshimi Tourist Home을 70Rs.에

잡을 수 있었다.

오늘도 기어이 알콜숍을 찾아 맥주를 사와서 마셨다.



1999. 5. 25.  화  Kollam - Thiruvananthapuram - Kovalam


아침을 먹고 남인도의 유명한 해변인 꼬발람으로 향하기 위해

우선 티루바난다뿌람으로 향했다.

가는도중 가끔씩 비가 왔는데 창문이 없는 버스라 커튼같은 천을

내리는 것으로 대신하여 비를 막는다.

창문없는 버스의 창가에 1시간을 넘게 앉아 있으려니 손이 곱을 정도로

추위에 시달려야 했다.

티루바난다뿌람에서 다시 꼬발람행 버스를 갈아타고 또 어느정도 달리자

꼬발람 해변이 나타났다.

숙소삐끼들을 뿌리치고 바닷가에서 10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방에서 바로 바다가 보이는 숙소를 잡아 짐을 풀었다.

새삼 이정도의 방이면 한국에서 얼마나 할까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여기선 2,000원도 안되는 돈으로 골라 잡을 수 있다.

주위를 돌아다녀 보았는데 비수기라 어디나 썰렁한 모습들이다.

파도가 높게 치고 있고 비가 오락가락 한다.

오늘 저녁도 숙소옆 식당에서 맥주를 마셨는데 관광지 답게

70Rs.나 받는다.

맥주엔 비수기가 없는건가.....



1999. 5. 26.  수  Kovalam beach


오랜만에 해가 반짝인다.

등대쪽으로 난길을 따라 산책을 할 샘 이었는데

생각보다 먼길을 따라 다시 해변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맑은날씨여서 여전히 파도가 높게 쳤지만

바다로 뛰어들었다.

몇몇 여행객들이 나와함께 파도타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계속 물속에 있었더니 추워져 해변으로 나왔는데 티루반드럼에

써커스공연 왔다는 네팔인을 만났다.

나를 보더니 "한국사람 이세요?"  한다.

한국에서 5년간 일을 해서 한국말을 곧잘 하는 친구다.

이런저런 얘길하다 헤어지고 숙소로 돌아와 잠시 낮잠을 즐겼다.

저녁7시부터 한 식당에서 케에누 리브스 주연의 Matrix라는 영화를

틀어주길래 저녁을 먹으며 영화를 보고

숙소에 돌아왔는데 다시 배가 출출하여 맥주를 2병이나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1999. 5. 27.  목  Kovalam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해변의 식당에 인도서민들을 위한 탈리 같은 것이

있을리가 없기에 이리저리 돌아다녀 보다가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 위에

탈리집을 발견했다.

그 탈리집은 12시전엔 다른 것을 취급하다가 12시가 되면 탈리를 주는데

오랜만에 푸짐하게 먹는것이라 정말 맛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해변을 산책하고 오늘은 어제 그 식당에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틀어주길래 또 영화를 보며 저녁을 먹었다.

오늘도 파도소리를 안주삼아 맥주한잔하고.....

내일은 인도의 남쪽 땅끝,

벵갈만과 인도해협과 아라비아해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깐냐꾸마리를 향해 가기로 했다.



1999. 5. 28.  금  Kovalam - Kanyakumari


짐을 싸서 숙소를 나오니 해변가 식당에서 마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리는 남자친구가 오기로 했다며 몇일째 이곳에서 묵고 있는 일본여자다.

같이 아침을 먹고 사진한방 찍고 버스 타는곳으로 향했다.

3시간 30분쯤 걸려 깐냐꾸마리에 도착해 역시 기다리고 있던 숙소삐끼를

점심을 먹으며 따돌리고 숙소를 잡았다.

스와미 비베카난다의 기념관이 있고 성지 비슷한곳으로 인도인들에게 알려져 있어

우선 관광온 인도인들이 많이 눈에 뛴다.

동네는 크지 않고 걸어다니기에 적당하다.

바닷가에 간디기념관이 있어 가보았다.

2중 지붕에 구멍이 서로 떨어져 뚤려있는데 간디의 생일인 10월 2일에

간디의 유회가 놓여있던 자리에 햇빛이 든다고 한다.

비는 새지 않냐고 하니 구멍이 어긋나게 뚤려있어 비는 절대 안샌다고 한다.

꾸마리 가트에서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세 개의 이름을 가진 바다를 바라보았다.

수많은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그곳에서는 제법 큰 호텔의 야외식당에서 저녁을 근사하게 먹고 맥주도 마셨다.



1999. 5. 29.  토  Kanyakumari


자고 있는데 왠 날벼락같은 어떤여자의 주문외우는 것 같은 음악이

새벽5시부터 온 동네에 크게 울려퍼져 도저히 더 잠을 이룰 수 가 없다.

할 수 없이 밖으로 나가 일출을 보려했으나 구름이 많이 끼어 있어

일출은 보지 못하고 구름뒤로 밝은 그것밖에 보이지 않는다.

많은 인도 관광객들이 나와 일출을 보려고 했기에 해변은

거의 인산인해, 새벽부터 북적거린다.

아침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부족한 새벽잠을 더 잤다.

오후엔 관광객상대의 상점들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맛있는 탈리집이 많아 점심은 항상 푸짐하게 먹는다.

저녁무렵이 되자 또 확성기에서 노래소리가 울려퍼진다.

매일같이 이렇게 시끄러운곳에서 어떻게 사나싶다.

오늘저녁엔 위스키를 한병사서 위스키콕을 만들어 마셨다.



1999. 5. 30.  일  Kanyakumari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한다.

오늘새벽 5시에도 음악이 울려퍼졌는데 똑같은 음악인데도

어제와는달리 듣기가 좋았다.

비베카난다 기념관은 육지에서 500m 가량 떨어져 있는 섬에 세워져 있는데

항상 많은 인도인들이 줄을 서서 입장하고, 오가기 위해 배를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져 있어 선뜻 나서고 싶은 생각이 안든다.

점심은 항상 다른식당에서 탈리를 먹으며 맛을 비교해 보려고 하지만

커리맛은 크게 다르지 않아 비교를 할 수 가 없다.

거리는 항상 인도관광객들로 가득하고 그 틈에 잡상인들..

언제나 거리는 북적댄다.

신기한 것은 많은 관광객들이 머리를 밀어버린 사람들이 많은데

온가족이 다 머리를 밀어버린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심지어 어린 여자아이까지 머리를 밀어놨는데 정말 귀엽다.

왜 머리를 빡빡깍고 다니는지 모르겠지만 한가족이 모두 빡빡인걸 보면

나름대로 무언가가 있는듯하다.

오후에 사람들 틈에 이리저리 쓸려 다니다 얼떨결에 비베카난다 기념관에

가게 되었다.

조그마한 섬자체가 기념관이었는데 비베카난다의 큰 동상이 있고

많은 인도인들이 경의를 표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늘저녁엔 어제 미쳐 다 마시지 못했던 위스키를 마저 비웠다.



1999. 5. 31.  월  Kanyakumari


오늘도 거리를 쏘다니거나 낮잠을 자며 시간을 보내고

내일발 뱅갈로르행 버스를 예약했다.


1999. 6. 1.  화  Kanyakumari - Bangalore


마찬가지로 새벽 노래소리에 깨어 일출을 보려고 나왔는데

역시 구름이 끼어있어 선명하게는 볼 수가 없었다.

이제 서서히 북쪽으로 이동을 할 때가 왔다.

오후 3시쯤 뱅갈로르행 버스에 올랐다.

밤새 버스는 달린다.



1999. 6. 2.  수  Bangalore


아침 8시쯤 뱅갈로르에 도착했다.

버스만 꼬박 17시간을 탄 셈이었다.

역 근처에 숙소를 잡고 여느 인도와는 사뭇다른 MG Road에가서

밥먹고 보통의 인도와는 다른 세련된 도시와 건물과 사람들을 구경하며

거리를 배회했다.

작년에 이곳에 왔을때는 KFC가 있어서 비싼가격에도 불구하고 닭고기를

실컷 뜯었던 것이 생각난다.

이번에도 KFC에 들러 오랜만에 닭튀김을 뜯었다.

뿌네에 사는 김미성누나한테 메일이 와 있어서 전화를 했더니

내 옆서를 받고 방학기간동안 북쪽으로 여행 가려던 것을 포기하고

기다리고 있었단다.

내일은 뿌네행 기차를 예약해야겠다.



1999. 6. 3.  목  Bangalore


뱅갈로르는 인도의 실리컨밸리 답게 인터넷사용료가 아주 싸서

그동안 확인하지 못했던 메일들을 모두 확인하고 답장을 모두 보내주었다.

뿌네행 기차표를 예매했는데 자리가 없어 Waiting list에 일단 올랐지만

카르나타카주에선 tourist quota 가 확실하게 보장 되 있어서

자리를 확보하는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길어서 보기싫던 머리도 깍고...



1999. 6. 4.  금  Bangalore - Pune


체크아웃타임이 다른곳과는 달리 아침 9시 30분 이라 짐을 일단 역에 보관하고

다시 MG road에 나가 영화를 한편 보았다.

역으로 돌아와 waiting list인 기차표를 confirm 받았다.

오늘이 99 크리켓 월드컵, 인도와 다른나라의 시합이 있는 날이라

다들 크리켓을 보고 듣느라 난리다.

한 청년이 역 광장에 앉아 소형라디오를 듣고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계속

score를 물어보며 지나간다..

저녁8시30분에 기차가 왔다.

기차가 움직이자 배웅하는 사람들과 떠나는 사람들의 아쉬운 작별의 소리가 커지고

모두들 bye bye를 외치며.. 기차는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나는 그저 작별하는 인도인들을 보며 멍청히 앉아있을따름이다.

새삼 외로워진다.



1999. 6. 5. 토  Pune


밤새 기차는 달려 오후4시쯤 뿌네에 도착했다.

우선 미성누나한테 전화를 걸어 뿌네대학 정문에서 만나기로 하고 릭샤를 탔다.

매연이 심해서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은 강도처럼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만 내놓고 탄다.

누나는 작년 그대로 그 모습이다.

누나의 후배(이덕임)도 있어서 같이 술한잔 하기로 하고 시내로 나섰지만

괜찬은 맥주집들은 모두 입장료를 받고 있어 할수없이 맥주를 사서 집앞

공터에 앉아 마셨다.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꽤 많은 맥주를 모두 마셔 버렸다.

미성누나의 아파트는 스님이 살던곳이라는데 적당히 넓고 깨끗하여

지내기에 너무 편하지만 신세지는 것이 좀 미안하다.



1999. 6. 6.  일  Pune


아침밥을 김치와 김치국으로 먹었다.

위장이 반가워하는 소리를 듣는다. 얼마만의 김치 인가...

오늘이 두경우,박경숙님 부부 아이들의 생일이라 점심은 더 잘 먹을 것 같다.

바로 몇걸음만 걸으면 두경우,박경숙님의 집이다.

두경우님은 다람살라에 가 있어서 박경숙님과 아이들(두레, 두메) 그리고

수니따 라는 일하는 인도아줌마가 있다.

두경우,박경숙님 부부와 아이들은 지난번 다람살라에서 만났던지라 반갑게

인사를 하고 푸짐한 점심을 먹었다.

내가 아무리 탈리를 좋아한다고하지만 역시 뭐니뭐니해도 우리나라 음식만한게 없다.

한국사람들이 많으니 한국말로 얘기할 수 있어서 좋고

게다가 맛있는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 정말 호강한다.

저녁때는 집에만 있기가 심심하여 오토바이를 타고 밖으로 나섰다.

이곳에 유학온 한국인들은 모두들 오토바이로 자가용을 대신하고 있다.

큰식당엘 갔는데 언덕자체를 잔듸밭, 놀이터, 수영장,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정말 거대한 식당 이었다.

일요일밤이라 waiting list에 올려놓고 기다려야 식사를 할 수가 있단다.

그냥 시원한곳에 앉아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는데 박경숙님의 고향집 얘기는

정말 재미있었다.



1999. 6. 7.  월  Pune


가까운 호수주변으로 소풍을 가기로 하고 누나와 덕임님이 김밥을 싸고

나는 카메라 하나 달랑들고 나섰다.

뮬시레이크 라는곳으로 갔는데 마땅히 자리펴고 놀 장소가 없어 큰 호수가

내려 보이는 언덕위에 앉아 싸간 도시락을 먹고, 수다떨고, 잠도 조금잤다.

호수는 정말 아름다웠지만 주변에 공원이라던가 하는 사람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 전혀 없다.

쇼바가 마땅치 않은 스쿠터를 2대에 나눠타야 했고 포장은 됐으나

울퉁불퉁한 길을 빨리 달릴 수가 없어 30Km 남짓되는 길을 2시간이나 달렸다.

오는길에 뿌네대학 앞쪽에 우리나라 88담배를 싸게 판다고 하여

300Rs. 주고 한보루를 샀다.

저녁때는 닭죽인지 삼계탕인지 아무튼 닭과 양념, 밥을 넣고 푸욱~ 끓여

배불리 먹고 옆 아파트에 새로오신 한국 아저씨가 맥주도 갖고와서

숨이 막히도록 먹고 마셨다.

뿌네에 와서 영양보충한다.



1999. 6. 11. 금  Pune


그동안 찍었던 사진 5롤을 뽑았다.

보내준다고 약속했던 사진들을 정리하고 나머지는 앨범에 넣어

집으로 소포를 부쳤다.

이덕임님이 이제 뿌네를 떠난다고 저번에 갔던 큰 식당에서

근사하게 저녁 한끼를 내기로 했다.

고급 인도요리를 수영장이 딸린 정원에서 우아하게 식사한다.

그렇지만 두레와 두메가 가끔씩 칭얼거려 우아함이 조금 깨지긴 했다.

그리고 이덕임님은 Nepal을 가기위해 바라나시로 떠났고

나도 내일 엘로라 동굴군이 있는 아우랑가바드로 떠나기로 했다.

미성누나도 함께 갔다가 아잔타 동굴군에서 헤어져 나는 캘커타에 가고

미성누나는 다르질링 밑에 미릭 이란곳에 머물고 있는다고 한다.



1999. 6. 12.  토  Pune - Aurangabad


오후 12시쯤되어 시바지나가르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 주변에 여행사들이 진을 쳐놓고 버스예약을 받는다.

1시30분발 버스를 타고 아우랑가바드로 향했다.

언제나 버스여행땐 광할한 대지를 보며 참 넓기도 넓구나 감탄한다..

저녁 6시쯤 도착해서 YouthHostel에 방을 잡았다.



1999. 3. 13.  일  Aurangabad (Ellora)


아침일찍 Ellora로 향했다.

엘로라동굴군을 어떻게 구경 했냐하면..

먼저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쭉 걸어가서 1번 동굴부터

16번동굴을 향해가며 차례차례 구경을 했는데 사실 그것들은

동굴이라기보단 절벽의 면을 파서 만든 "공간" 이라고해야 맞을 것 같다.

1번 동굴부터 12번 동굴까지는 불교사원인데 공간의 정면 끝엔

우리나라 불상과는 사뭇다른 불상들이 조각되어 있다.

엘로라동굴군에서 유일하게 입장료를 받는 16번 동굴은 힌두사원인데

절벽을 위에서부터 깍아 내려가 만든 큰 기둥같은 사원이

가운데 버티고 서 있고 그주위를 또 파 들어가 공간들을 만들어 놓았다.

힌두사원 안에는 링가상이 모셔져 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옆으로 난 길을 통해 16번 동굴의 위쪽으로 올라갔다.

힌두사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코기리 네 마리가 사원의 옥상에 해당하는 부분에 조각되어져 있는데

그러고 보니 사원자체가 큰 링가상으로 보인다.

몇세기에 걸쳐 만들었다고 하지만 어떻게 이 거대한 사원을

이처럼 detail하게 조각해놓았는지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16번 동굴을 보고나자 왠지 17번부터 34번 동굴은 별 매력을 못느껴

보다가 그만두고 내려와 길옆 식당에서 탈리로 점심을 먹고

짜이를 마시며 더위를 식혔다.

오는길엔 10명이면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은 Jeep차에

21명이 짐짝처럼 구겨져 타고 왔는데 나는 갑자기 옆문이 열리지 않을까

걱정할 만큼 문에 납짝하게 달라붙어 겨우겨우 아우랑가바드로 돌아왔다.

저녁때는 같은 숙소에 머무는 3명의 일본인과 밤늦도록 카드 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1999. 6. 15.  화  Aurangabad - Fardapur(Ajanta)


아침에 아잔타 동굴군을 향해 버스를 탔다 3시간만에 조그만 동네인

Fardafur에 도착했는데 이곳이 Ajanta 동굴군을 구경할 기지가 된다.

마을에 내리자 마자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Korea 라고 했더니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빨리빨리" 한다.

점심을 먹고 아잔타로 향했다.

이번에도 Jeep차에 짐짝처럼 구겨타고 아잔타에 도착하니 특이한 돌을 파는

상점 주인들이 제일먼저 반긴다.

수정 같은 돌을 손에 쥐여주며 한국말로 "선물, 선물, 갔다가 와서 우리가게 와요"

라고 말한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오긴 왔었나보다..

계단을 오르니 아잔타의 29개 동굴군이 한눈에 보인다.

천여년동안을 숨어 빛내고 있었을..  놀라운 조각과 벽화를 품은 동굴들...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고 계곡아래로 보이는 빨간 꽃을 활짝피운 꽃나무들이

유난히 아름답게 보인다.

천천히 동굴들을 감상하고 계곡아래 그 꽃나무들이 서있는 산책길을따라 내려왔다.

숙소로 돌아와 작은 마을을 기웃거리며 구경하고 아이들과 놀면서

저녁시간을 보냈다.

큰 도미토리에 손님이라곤 누나와 나, 호주에서 왔다는 여자 이렇게 3명 뿐이다.



1999. 6. 16.  수  Fardafur(Ajanta) - Jalgaon - Bhusaval - Calcutta


누나와 Mirik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기차를 타기위해 잘가온까지 버스를 타고 간다음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부사발로 향했다.

부사발은 비가와서 그런지 상당히 지저분하고 질퍽질퍽한 도시다.

부사발 역에는 어느역이나 그렇듯 많은 인도인들이 기차를 기다리며

멀뚱히 앉아있고 염소들, 개들, 그리고 한 마리의 닭이 돌아다니고 있다.

나도 멍청히 앉아 동물들이 밥먹는 인도인들틈을 기웃거리는 꼴이나

나를 구경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기둥마다 붙어있는 SAMSUNG 마크가 외로움을 더욱 가중시킨다.

Waiting List 20번 이던 것이 6번으로 고쳐졌다.

오후1시30분에 드디어 캘커타행 기차가 도착했다.

기차안에서 자리배정을 받으라 했지만 끝내 난 자리를 배정받지 못했고

이리저리 눈치를 봐가며 엉덩이를 들이 밀어야 했다.

그나마 날씨가 그리 덥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그렇다해도... 가끔.. 과연 지옥이 따로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너무나도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1999. 6. 17.  목  Calcutta


14시간만인 오후 3시30분에 캘커타에 도착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지옥같은 시간을 보낸터라

캘커타의 Howrah역에 내리고선 고향에 온 듯 기뻐했다.

캘커타는 벌써 여러번 와 본터라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하우라역앞 배타는곳에서 배를 타고 후글리강을 건너 바부가트 까지 간다음

거기서 또 버스를 타고 Sudder St. 근처까지 갔다.

이 거리는 아무것도 변한게 없는 듯 보인다.

이번에도 Salvation Army G.H. 의 도미토리를 잡았다.

역시 캘커타엔 한국사람들이 많았다.


 ~ 6. 30.  수  Calcutta


나는 캘커타에서 한국책을 얻어 읽거나 사진을 찍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 여행과 인생을 얘기하고, 인도영화도 보고,

보태니컬 가든에 가서 세계에서 가장큰 나무도 보고, 사실 나무라기보단

숲 이라야 맞을 것이다.

멀리서 그 숲을 보고 어찌 나무라고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수시로 변하는 거리의 모습들도 재미있다.

배수가 잘 되지 않아 비가오면 강으로 변하고, 거지들의 잠자리,

거지나 여행객들의 식당, 쓰레기장 등, 그 모습이 정말 다양하다.

다람살라에서도 한명의 남자를 만난바가 있지만 한국인이면서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어밖에 할줄 모르는, 아니 한국어를 할줄 모르는

김가애 라고 하는 한국인을 다시 만났다.

2차대전 당시 아버지가 일본으로 건너갔다 한다.

한국이나 일본, 어느쪽 나라에서도 확실한 정체성을 갖지 못하는

그녀는 결국 일본이 싫다고 내년에 미국으로 건너간다고 한다.

그동안 목말라하던 한국책을 많이 읽었다.



1999. 7. 1.  목  Calcutta - NewJalpaiguri


친구들과 이별하고.....

저녁 7시 15분 출발 기차다.

뉴잘패구리역에서 파키스탄쪽의 행동으로 보이는 폭탄테러로

인도군인들이 많이 죽었다고 몇일전에 보도가 있었기에

군인들이 들어와 금속탐지기등을 이용해 검문을 한다.

기차안에서 편두통으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곧 잠이 들었다.

기차가 출발하면서 부터 계속 비가 오락가락 한다.



1999. 7. 2.  금  NewJalpaiguri - Siliguri - Mirik


오전 10시쯤 뉴잘패구리에 도착했다.

작년에 다르질링에 가봤던터라 이곳도 낯설지는 않다.

사이클릭샤를 타고 실리구리 버스스탠드에 도착하니

미릭으로 가는 Jeep차가 손님들을 불러모은다.

11시에 Jeep을 탔지만 사람이 다 차기를 기다려

12시 30분이 되어서야 출발했다.

시내를 빠져나오자 곧 차 밭이 펼쳐지더니 고갯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갑자기 구름속으로 들어가는가 싶더니 10m 앞도 분간할 수 없을정도로

짙은 구름속을 달리기 시작한다.

길 아래의 낭떠러지는 하얀구름으로 뒤덮여 가늠할 수가 없어서

만약 바퀴 한쪽이라도 빠져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한없이

밑으로 떨어질것만 같다.

드디어 미릭에 도착 했다.

다르질링보단 아주 작은 마을이어서 미성누나가 묵고있는

숙소를 찾는건 그리 어려운일이 아니었다.

호수가 보기에 좋은, 작고 평화스러운 마을이다.

누나는 책을 읽고 호수주변을 산책하며 신선같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한다.



1999. 7. 3.  토  Mirik - Siliguri - NEPAL Kakarbita - Kathmandu


오후1시에 실리구리행 버스를 탔다.

구불구불한 길을 내려가서 실리구리에 도착,

까까르비타가는 Jeep을 타고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작년엔 네팔쪽에서 다르질링쪽으로 왔지만 이번엔

길을 반대쪽으로 가게 된다.

곧 까까르비타 국경에 도착했다.

먼저 인도측 Immigration에가서 출국도장을 찍고

다리를 건너 네팔측 출입국 관리소에서 비자와 입국도장을 받았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비자피는 15일에 15달러.

국경앞의 버스정류장에서 바로 카투만두로 가는 버스표를 끊었다.

네팔에도 비가 많이 왔는지 도로에 물이 많이 차 있다.

저녁 6시에 출발한 버스는 밤9시에 저녁식사를 위해 잠시 멈췄고

또 다시 끝날 것 같지 않은 울툴불퉁하고 칠흑같이 어두운길을 버스는 달린다.


'''''''''''''''''''  네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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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5. 5. 수 Delhi -> Goa

새벽에 잠시 멈추는 듯 하더니 기차는 계속 달린다.

남쪽으로 내려오니 조금은 시원해 졌고 새벽에 바람을 맞으니 서늘함까지 느낀다.

밤 10시쯤 고아의 Madgaon에 도착했다.

베나울림 해변으로 가기로 하고 그곳의 Parm grove cottage에 방을 잡았다.

바람이 상쾌하게 분다.

지옥같던 어제의 그 불화덕을 생각하며 샤워를 하고

시원하게 맥주 한병 마시니 정말 천국이 따로 없구나.

1999. 5. 6. 목 Goa benaulim -> anjuna

아침에 일어나 해변에 나가 보았다.

작년에 보았던 검은 기름이 없어졌을까 했더니 꼴바해변과 마찬가지로

검은 기름이 해변에 밀려나와 있었다.

그 기름들은 해변의 모래까지 검은색으로 물들여 놓았다.

숙소로 돌아와 안주나해변으로 옮기기로 하고 짐을 꾸렸다.

베낭을 메고 길을 나서니 날은 다시 후덥지근해 지고... 베낭은 무겁고... 길은 멀다.

Anjuna beach에 도착해 숙소를 잡고 주위를 걸었다.

덜하긴 하지만 이곳도 마찬가지로 기름이 해변에 밀려나와 있다.

곳곳에서 오토바이를 빌리라고 소리친다.

저녁때 네팔 라면인 WaiWai를 발견했다.

4개를 사서 숙소부엌에서 끓여 숙소 주인도 좀 주고 아주 배불리 먹었다.

아라비아해에서 부는 바람은 시원하고 야자수나무들이 바람에 출렁이는 것이 보기에 좋다.

남쪽해변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고 북쪽 해변으로는 붉은색 바위들이 절벽과 가지각색의

해안을 만들어 놓고 있다.

1999. 5. 8. 토 Goa -> Hospet

아침8시쯤 짐을들고 Hampi를 가기위해 길을 나섰다.

9시20분쯤 Panjim에 도착했는데 마침 9시 30분에 Hospet행 버스가 있었다.

아침도 먹지 않은채 오래도록 버스만 타게 됐다.

지루하고도 먼 길 이었다.

중간에 빵꾸까지 나서 2시간이나 길에서 지체해야만해서 거의 13시간에 걸쳐

밤 10시쯤 호스펫에 도착했다.

Malligi hotel에 방을 잡았다. 큰 호텔 이었지만 여러종류의 방이 있어 그래도 싸게 방을

잡을 수 있었다.

오늘은 하루 왼종일 버스만 탔다.

1999. 5. 9. 일 Hospet -> Hampi

버스정류장에 가서 함피행 버스를 기다렸다.

이미 대기중인 함피행 버스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타고있어서 다음 버스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다음 버스가 도착하자 서로들 자리를 차지하러 수건이나 모자를 창밖에서

버스 의자위에 올려놓고 달려들어 먼저 자리를 잡으려 아수라장이 된다.

나도 뒤질세라 뛰어들어가서 운좋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함피에 가까워지자 바위산들이 보이고 바위조각상이나 사원등에 외국관광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작년에 와 보았건만 모든 것들이 새롭고 보기에 좋다.

숙소호객꾼을 뒤로하고 우선 아침을 먹기위해 식당으로 들어섰다.

토스트로 간단히 아침을 때우고 나와 골목으로 들어서니 결혼식이 열리고 있어

많은 사람들로 북적댄다.

이 조그만 동네에 드나드는 버스가 만원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오후가 되자 햇볕은 뜨겁고 무더워진다.

강변에 나가니 몇몇 인도인들이 물에서 놀고있고 둥근배를 타고 빗딸라사원까지

40Rs.에 가잔다. 그냥 돌아서서 오다가 코코넛 한통을 5Rs.에 마시고...

저녁식사후엔 석양을 보기위해 숙소에서 가까운 비루팍사 사원 옆 언덕에 올랐다.

그 언덕은 언덕 자체가 하나의 큰 바위여서 그것만으로 놀랍다.

다시봐도 이 놀라운 자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바위산..또 바위산... 바나나숲, 야자수들,, 다시 끝없는 바위산.. 그곁을 흐르는 강..

바람이 서늘하게 불고.. 노을이 살짝 지고 있다..

1999. 5. 10. 월 Hampi

새벽에 일어나 일출을 보겠다는 생각은 무리였고 7시쯤에야 일어나 Vittala사원으로

향했다. 벌써 햇볕이 뜨겁다.

빗딸라사원으로 가는길은 멀고 아침식사 전이라 금방 피곤함을 느낀다.

작년과는 달리 기둥을 두드리지 못하게 철저히 감시하고 하지 못하게한다.

작년엔 감시원이 같이 와 소리 잘 나는 기둥을 가르쳐 주고 같이 두드리고 했었다.

- 빗딸라사원의 기둥은 하나의 화강암을 깍아 만들었다고 믿어지지 않을정도로 정교하고

신비롭게도 두드리면 속이 빈것같이 통통소리가 나서 Musical Pillars라고도 불린다.-

한참을 사원에서 한가하게 나른함을 즐기다가 돌아왔다.

강가에 나가보았다.

가는길에 이발소 아저씨가 나와 머리를 깍으라길래 좀 긴듯하여 머리를 깍고,,

많은 인도인들이 강가에서 빨래도 하고 수영도한다.

강가그늘에 망연히 앉아 흐르는 강물과 끝없이 펼쳐진 바위산들을 감상하는건 정말 즐겁다.

함피에선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구름흐르듯 모든 것이 slow로 움직이고 평화로운 작은 마을도 그렇게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

오늘도 동네 아이들은 타이어를 굴리며 동네를 뛰어다니고, 옆서를 팔려고 외국관광객에게

몰려다니고 이유없이 손잡고 한참을 따라다닌다.

이동네에서 바쁜사람들은 단체관광온 인도 관광객들 뿐인 것 같다.

강가에서 시원한 바람과함께 물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느릿느릿

시간들을 강으로 흘려보냈다.

1999. 5. 11. 화 Hampi

어젯밤엔 오랜만에 이곳에선 금지되었다는 맥주를 두병이나 사서 마셨다.

Holy Place라 금지 되었다는데 그런이유로 한병에 60Rs.나 받는다.

맥주를 마시고 일본애들과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고.... 기분좋게 잠이 들었다.

아침식사전 산책삼아 아츠유타사원에 작은 언덕을 넘어 다녀왔다.

마치 잊혀진 밀림속에 은밀한 성과같이 보이는 그곳엔 다람쥐들만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강가에서 만난 인도인 두명과 얘기좀 나누고 사진 찍고

오늘밤 또 결혼파티가 있으니 꼭 오란다.

밤에 결혼 파티 구경을 하러 비루팍사 사원에 갔더니 수많은 인도인들이 사원마당에

자리를 깔고 앉아 있다가 달려와 악수하자, 이름이뭐냐.. 등등 정신없게 만드는통에

도저히 더 있을수가 없어 컴컴한 길을 걸어 다시 숙소로 돌아왔으나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약간의 비가 오는데도 더워서 잠을 잘 수가 없어 샤워를 몇번씩 하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1999. 5. 12 수 Hampi

요즘엔 사원에서 무슨 축제가 있는지 비루팍사 사원에 수많은 인도인들이 몰려서 길을

걷기가 불편할정도로 애나 어른이나 떼로 달려들어 "what's your name? "

"which contry?" 하며 질문공세와 모두들 악수를 청하고 하여 길 걷기 불편하다.

저녁때쯤 석양을 보러 마탕가힐에 올랐다.

오르는길엔 수많은 원숭이들이 곳곳에 있었는데 그들은 사람이 옆에 지나가도

신경쓰지 않고 멀뚱대기만 한다.

힐의 정상에서 바라보는 주위 사방의 경계는 정말 영원히 잊지 못할 놀라운 경관이다.

가끔 옥상식당에서 밥을 먹다 주변 경관을 보고 지구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한적도 있었다.

해가 구름 사이로 서서히 지고 있다.

완벽하게 빨간색이 된 태양은 길고 긴 여운을 남기고 서서히 서서히 돌산넘어

아래로 떨어진다.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이런 경관을 다시 보게 될 날이 있을까.....

1999. 5. 13. 목 Hampi -> hospet -> Mangalore -> Madikeri

할 일없이 식당에 앉아 시간 보내는것도 참 어렵구나.

어떻게 된 것이 Check out time이 오전 10시라 10시부터 16시까지

식당에 앉아 시간을 보내야 했다.

태양은 이글대고... 너무 더워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하릴없이 앉아 음악감상과

외국애들이랑 잡담을 하며 시간 버리기에 열중했다.

16시쯤 Hospet행 버스를 탔는데 이건 완전히 인산인해.

버스안은 자리다툼으로 난장판이고 두발 놓을자리도 간신히 차지해 겨우 설 수 있었다.

버스도 느릿느릿.... 30분이면 충분할줄 알았던 Hospet까지 1시간이나 걸렸다.

17시30분에 예약해 놓았던 Mangalore행 버스가 출발 했다.

중간에 Hubli에서 식사시간으로 1시간이나 정차했고 번개치는 밤속을 버스는 또 달린다.

1999. 5. 14. 금 Medikeri

아침 6시쯤 Mangalore에 도착. 바로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내려 Medikeri행 버스를

기다렸다. 다행히 6시 45분쯤 Medikeri행 버스가 있어 곧 탈 수 있었다.

야자수가 우거진 숲속을 4시간 30분쯤 달려 메디케리에 도착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관광객이라곤 나혼자 밖에 없는듯하고 숙소도 잡기가 너무 어렵다.

심지어 숙소에서 이곳에 왜 왔냐고 되묻고 외국인은 묵을 수 없다고 하는곳도있다.

작년에 Kodaikanal이 너무 좋았기에 Medikeri란 곳도 같은 고지대의 산림휴양지라

코다이카날과 비슷한 환경을 생각하고 왔더니 영 이상한곳에 오게 되버린 느낌이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무거운 베낭을 맨체 숙소 구하러 다니느라 몸은 이미 녹초가 되었다.

지금 30리터 밖에 안되는 베낭을 메고 다니는것도 힘든데 다른 여행객은 어떻게

그리 큰 베낭을 메고 다닐 수있는지 정말 존경스럽다.

결국 싼 숙소는 구하지 못해 200Rs.나 되는 숙소를 잡아 겨우 한숨 돌리고 밥을 먹고나니

비가 억수같이 오기 시작한다.

주위를 돌아다녀 보려던 계획은 취소하고 낮잠을 즐기고.... 계속 잤다.

내가 이곳에 왜 왔던가..

괜히 차비와 비싼 방값과 시간만 날린꼴이 되었다.

내일 아침 바로 Mysore로 떠야겠다.

작년 코다이카날에선 정말 신선같은 나날을 보냈었다.

발아래 언덕 밑으로 보이는 경관은 정말... 정말 아름다웠고 서늘한 날씨는

그동안 더위에 지쳤던 몸을 식히는데 충분하였다.

매일 서늘하고 평화스런 성당이 있는 길을 따라 산책을 하였고

호수와 정원이 꾸며진 유원지 비슷한 길을 걸으며 신혼여행온 인도인들의

행복하고도 간질스런 모습들을 훔쳐봤었다.

그런데............ 아 메디케리... 나를 실망시키는구나.

1999. 5. 15. 토 Medikeri -> Mysore

아침에 버스정류장에 나가자 마자 마이소르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어제부터 왜 이리 잠이 쏟아지는지 버스가 달리자 마자 잠이 들었다.

몇시간 후에 잠이 깨었는데 숲이 우거진 평원을 달리고 있다.

마이소르에 도착해 버스정류장 부근의 Maharaja Palace의 돔이 보이는 숙소를

잡아 짐을 풀었다.

조금 쉰후 마하라자궁전으로 향했다.

화려하고 넓은 궁전 내부는 수 많은 인도관광객들이 이미 꽉 차 있다.

줄을 서서 일렬로 정해진 코스를 따라 구경하는 시스템이다.

인도에서 이런식으로 둘러보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내일 일요일은 궁전의 외곽에 달린 수천개의 전구에 불이 들어온다니 볼만 할 것 같다.

돌아오는길에 갑작스런 비를 만나게 되어 몸이 흠뻑젖고 말았다.

벌써 몬순이 시작되는 것인가..

이동넨 길거리에서 잭플룻을 많이 팔고있는데 그 달콤한 냄새가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

1999. 5. 16 일 Mysore

오전에 Chamundi Hill 다녀왔고 오후엔 Devaraja Market을 구경했다.

오래간만에 Internet을 했는데 집에 전화 하라는 메일이 와있어 무슨일이 있는지

걱정이 되어 전화를 해봤더니 연락이 없어 걱정되었단다.

비싼 전화는 자주 못해도 옆서는 자주 보내야겠다.

오후 7시가 되자 과연 궁전의 둘레를 따라 설치해 놓은 수천개의 전구에 불이 들어왔다.

음.... 정말 멋있다.

마이소르에서의 기쁨 또 하나는 탈리가 맛있다는 것이다.

특히 탈리를 좋아하는데다 깨끗하고 큰 탈리 전문식당에서 먹는

탈리맛은 정말 기가막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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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0개월간의 인도 - 네팔 - 파키스탄 - 이란 - 터키 - 이집트 - 태국 - 캄보디아 - 태국 - 대한민국

으로의 여행을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이부분은 여행의 시작이자 인도여행의 시작입니다.


                                                              1 USD = 42 Rs. (인도루피)

1999. 3. 24 수. BangKok Thailand -> Delhi India

드디어 인도로의 출발 날짜가 되었다.

만남의 광장에 앉아있는데 한국여자가 방콕 관광에 대해 물어와

사원들과 왕궁을 쉽게 돌아볼 수 있는 코스를 가르쳐주고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냈다.

15시에 동행하게된 일행과 만나기로 되있어 작별을 하고 길을 나섰다.

여행은 늘 아쉬운 작별과 반가운 만남이 교차하며 내 마음에 수많은

사연들을 남기고 또 그렇게 잊혀져간다.

Aeroflot 좀 작은 비행기다 러시아 승무원들은 등치도 큰데다 웃지도 않았지만

뒷좌석이 흡연석이고 승객들도 많지 않아 담배를 피우고 싶으면

뒷좌석에 가서 피울 수 있었다.

통로를 사이에 두고 바로 옆 좌석에 일본여자 두명이 앉아있어 얘기를 했는데

인도는 이번이 처음이라서 무척 겁이 난단다.

인도여행 경험담을 얘기해주며 걱정말라하고 같이 택시를 타고

파하르간지까지 가기로 했는데 둘은 1주일간 인도여행을 온 것이라 하여

우리 일행들을 놀라게 했다.

드디어 델리에 도착.. 아 다시 인도 속으로 들어왔구나....

나는 인도냄새를 한번 깊숙이 들이마시며 빨리 인도를 다시 느끼려고 했다.

밤이 깊어가고 있어 서둘러 택시를 잡아타고 파하르간지로 향하는데

왠지 좀 엉뚱한 길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늘어 다시 한번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려하는지를 확인시키고 밤길이라 내가 착각을 하는 거겠지 하며

마음을 놓았는데...

역시.. 이놈이 엉뚱한 메인바자르의 Tourist office앞에 차를 세우는 게 아닌가.

그때부터 택시기사, 여행사 인도인들, G, 나 이렇게 모두 소리를 높여가며

말싸움을 하게된 것이다.

스님은 뒤에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애초부터 목적이 다른 사람들이니

말이 통할 리 없었다.

그런데 여행사인도인은 여행자들이 죽은 사진과 신문기사들을 스크랩 해놓고

그것을 일본여자들에게 보여주며 겁을 주고 밤이 깊어 위험하니

일단 여행사안으로 들어오라고 하고 이 얘기 저 얘기 뒤죽박죽이 되어

도대체 정신이 없게 된 것이다.

그 와중에 히데코는 스님을 붙잡고 두려움에 떨며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정말 신고식은 제대로 한 것인가..

어느새 시간은 밤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아무튼 숙소를 잡아야 하겠기에 그 난장판을 벗어나 숙소를 구하러 다녔으나

주변엔 비싼 호텔 뿐인지라 조금 헤멘 끝에 겨우 triple 200 Rs. 하는 호텔을

잡을 수가 있었다.

일본여자들은 방에 들어가더니 문을 걸어잠갔고 우리일행 3명은

그 밤에 또 welcome India 파티를 한다고 한국에서 갖고 온 팩소주와

비행기에서 갖고 온 포도주를 마시며 인도여행의 시작을 자축했다.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겁에 질리고 기가 죽은 히데코가 1주일동안 어떻게 견뎌낼지

걱정되지만 치예는 영어도 할 줄 알고 믿음직스러워 둘이 그런대로 잘 버티리라 생각한다.

아무튼 인도여 내가 다시 왔다!!!

1999. 3. 28. 일. Delhi -> Manali

마날리로 떠나는 날이 되었다.

델리는 거의 변한 게 없었다. 그 동안 뉴델리 역앞 파하르간지로 숙소를 옮겼고

치예와 히데코가 아그라를 하루만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바람에 또 우리를 놀라게 했다.

작년에 보지 못했던 꾸뜹미나르와 바하이사원등을 돌아다녔고,

작년에 사진 찍은 노점상을 하는 "상"이라는 친구의 사진을 건네주고

또 사진을 찍었지만 다음에 다시 와서 건네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매일저녁 위스키파티를 즐겼다.

19시에 출발한 버스는 밤새 북쪽을 향해 달린다.

공기가 점점 차가워진다.

운행도중 서너번의 휴식시간을 갖었는데 그 시간은 단잠만 깨우는 것이어서

심심한 입을 달래주는 단 짜이도 별 맛을 느끼지 못하며 입안에 털어넣을 뿐이다.

아침 9시쯤에 쿨루계곡에 닿았는데 저 멀리 눈덮힌 히말라야자락이 보인다.

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점점두터워진다.

계곡을따라 마날리까지 난 길이 군데군데 유실돼 있어서 사람들이 돌을 쌓고

자갈을 만들어 보수공사를 하고 있다.

11시에 마날리에 도착. 역시 중심지는 소란스럽고 매연과 먼지로 가득하다.

적당히 방을 잡고 주변을 산책했다.

사방이 산으로 막혀있는지라 조금 답답한 기분이 들었지만

히말라야가 지척으로 보이니 상쾌하다.

필시 히말라야 눈이 녹아 흐르는 강물은 정말로 차가워서

발을 담그자마자 뼛속까지 차가움이 느껴진다.

내일쯤엔 조용한 곳으로 숙소를 옮기기로 했다.

1999. 3. 31. 수. manali

마날리의 날씨는 새벽과 밤에는 아주 추워서 침대 속으로 나를 가두고

해가 나는 낮에는 적당히 더워져 외투를 벗게 만든다.

스님은 그냥 마날리 중심가에 있겠다고 해서 G와 Vashisht 사원근처로

숙소를 옮긴 후부터는 매일아침 게스트하우스 바로 옆에 있는

온천으로 목욕을 하러 간다.

새벽6시에 나가도 많은 인도인들이 벌써 자리를 잡고 있지만 그리 비좁지만은 않아

아침에 모든 씻기를 마치기에는 정말 편하고 좋다.

물에는 많은 부유물이 떠 있어 조금은 지저분하지만 물은 정말 따듯해서

탕속에 10분정도만 몸을 담그고 있어도 땀이 흐른다.

상쾌한 목욕을 마치고 게스트하우스 뒤로 보이는 산에 올랐다.

폭포를 거쳐 샘물이 흐르는 곳에 가보려 했으나 체력 때문인지

산이 가파라서인지 폭포까지 가자 그만 지쳐버려 큰 바위 위에 앉아

양옆으로 보이는 계곡과 눈덮힌 히말라야 자락을 즐기는 것으로 등산을 마쳐야 했다.

오후엔 우연히 알게된 Raja의 악세서리 가게에 가서 밥도 얻어먹고

짜이도 얻어마시며 얘기를 나누게 되어 작년에 얼핏들은 얘기를 Raja한테 물어보았다.

- 무슬림들은 정말 자기나라보다도 종교를 제일 중요하게 여기느냐??

그의 대답은 그렇다! 였다.

종교가 나라를 만든다. 종교는 가족과 같다.

그렇지만 전쟁을 하는이유는 바로 국가라는 것 때문이다.

머 대충 이런 예기들을 했는데 굳은 신념과 믿음으로 얘기를 했기에

그것에 대해 어떠한 토를 달거나 반대의견 한마디조차 꺼내질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인간의 생각이란 늘 거기에서 거기로 한길인데 왜 저 옆에 서서

걸어가느냐 하는 것으로 싸운다.

그렇지만 발자국을 같이 남길 수는 없다.

내가 너가 아니듯.

1999. 4. 7. 수. Dharamsala (Mcleodganj)

마날리를 떠나 계속되는 계곡길을 거쳐 Mandi에서 2틀정도 머물고 이곳 다람살라에 왔다.

스님은 계속 마날리에 머물겠다하여 작별했다.

다람살라오는길은 계속 산길이었는데 저 멀리에는 평원이 보이는 아름다운 길이었지만

아슬아슬한 절벽길을 전속력으로 내달리는 버스는 순간순간 마음을 조이게 하는 것이었다.

티벳인들이 많으니 티벳에 온거 같고 음식도 수제비,칼국수등을 입맛에 맞게

먹을 수 있으며 묵고있는 도미토리도 25Rs.로 부담이 없으니 지내기에 정말 좋다.

길거리를 어슬렁 거리다 Sunrise 짜이가게 앞에서 여행객들과 이런저런 수다떨며

짜이 마시는것도 좋았고 할 일이 없을땐 박수폭포쪽으로 산책을 갖다오던가

왕궁앞 남걀사원에서 티벳승려들이 기도하는 모습, 오체투지라고 하던가..

보고만 있어도 내가 허리가 다 아픈, 온몸으로 절을 하며 기도하는

정성스런 티벳인들의 모습, 손뼉을 마주치며 따지는것같은, 토론하는 장면도

구경하고 네충사원에서 은은히 퍼지는 아름다운 풍경소리를 들으며

잠깐 눈 붙이고 있으면 하루는 금방 가곤 하였다.

왕궁의 반대편에 있는 St, John 성당은 버려진 성당같이 외벽은 낡고

주위의 무덤들은 을씨년스러워 보였지만 안엔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아

흠뻑 분위기에 취할 수 있었고 성당의 스테인글라스 창문이 보기에 좋았다.

Nadi라는 작은 마을로의 산책은 더욱 다람살라가 마음에 들게하는 것이었다.

앞마당에 원숭이들이 놀고있는 Tushita Meditation Center를 지나

TCV라는 티벳어린이 학교를 거쳐 Dall 호수에 다다랐는데 호수엔

큰 물고기들이 한가하게 놀고 있다.

조금 먼길을 걸어 Nadi라는 마을에 도착했지만 히말라야가 가깝게 보이고

한발짝만 앞으로 다가서면 그만큼 앞으로 확 다가서는 히말라야를 보니

한번 올라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Dall 호수부터 따라오던 개는 중간중간 마을을 지나칠 때마다

마을 개들의 텃새 때문에 싸움을 해야했지만 결국 다람살라까지 따라와

다람살라에서 살기로 한거 같다.

이후 계속 그 개를 다람살라에서 볼 수 있었다.

1999. 4. 19. 금. Srinagar

스리나가르에 오는길은 정말 멀고도 험했다.

다람살라를 출발 파탄콧까지의 길엔 군인들과 부대들이 많이 보이고

도로에 다니는 차들의 반은 군용차들이었다.

파탄콧에서 잠무가는 표를 끊기위해 한차례 전쟁을 치르고 가까스로 표를 끊어

잠무에 도착, 숨돌릴 새도 없이 Tourist Reception Center에 가서

다음날 새벽에 출발하는 버스표를 끊고 계속 길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다.

TRC주변엔 스리나가르의 하우스보트 삐끼들이 진을 치고 있었지만

직접 가서 보고 결정하겠노라 단호한 맘을 먹고 있어서 그들의 입에바른 달콤한 말들,

먹히지 않자 몹시 위험하다는 협박성 말들이 귀찮을 뿐이었다.

오는길에 검문도 있었는데 버스에서 모두 내려 검문을 받아야했고

버스하체까지 거울을 이용해 조사를 했다.

검문이 끝나고 길이 2,547m 의 굴을 통과하는데 희미한 노란 불빛이 비추고 있고

바닥엔 물이 차 있어서 땅굴같은 느낌이었다.

이윽고 산을 내려와 꽃이 만발한 벌판을 달려 스리나가르에 도착해

한참을 걸어 Dal lake에 도착, Lotus House보트를 잡아 묵기로 했다.

더블에 340Rs. 다소 비싼듯하지만 잘해주려고 하는 주인과 깍듯한 Servant가 맘에 든다.

외국여행자들은 가끔 한두명만 눈에 뛸뿐 거의 여행자들은 가족동반 인도여행객들이다.

외국여행자들이 많은것도 문제지만 없는것도 문제여서 길만 나서면

하우스보트 주인들이 따라붙어와 호수주변 걷는게 여간 어려운일이 아니었다.

시내곳곳에 진을 치고 군인들이 경계를 하고 있고 건물마다 입구에선 검문을 한다.

같이 왔던 일본인이 먼저 스리나가르를 떠났고 나는 남아서

스리나가르의 구시가지에 있는 사원들과 호수주변에 있는

무굴정원들을 자전거를 타고 돌아보았고 시카라를 두시간정도 빌려 호수를 돌아보았다.

자전거로 달호수를 가로지르는 좁은길을 가로질러 Nagin lake로 향하는길 주위는

마치 시골에 온 듯 작은 마을들이 보이고 스치는 작은 집안에선 꼬마들이 손을 흔들고...

나도 손을 흔든다.

나긴호수 에 다다르자 역시 HouseBoat주인들이 길에나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 하지만 난 내일 여길 떠나.. 그냥 호수 구경 온거야....

아쉬운 눈빛을 보이는 아저씨를 뒤로하고 페달을 밟는다.

매일같이 달호수에선 여러사람들이 시카라 위에서 수초를 걷어내고 있고

인도관광객을 태운 시카라들이 느릿느릿 움직이고 숄이나 잡화, 보석등을 파는

장사치들이 시카라를 타고 장사를 하고 있다.

거리엔 수시로 코란 외우는 소리가 사원에서부터 울려퍼지고

온몸을 검은천으로 감싸고 눈만 망사로 되어있는 옷을 입은 여자들이 지나다니고,

신문엔 테러로 인도군인들이 죽었다는 기사가 가끔 실린다.

저녁마다 푸짐하고 맛있는 저녁식사에 배가 터지도록 먹는다..

내가 어디서 이런 음식을 푸짐히 먹어보리....

1999. 4. 23. 금 Srinagar -> Jammu

간단하게 아침을 때우고 Tourist Receprion Center 로 향했다.

7:30에 잠무행 버스는 떠났다.

어제 5명의 군인이 폭탄테러로 죽었단 소식 때문인지 출발한지 얼마 안되어

차에서 내려 검문을 받아야했고 군인들의 모습도 예전보다 더 날카로워진 모습들이다.

10시간 동안의 버스여행동안 많은 생각들을 했고

그 생각을 다시 영어로 번역해 생각하다 막히는곳이 있으면

사전을 찾아 메꾸는식으로 10시간을 금방 때웠다.

17시쯤 Jammu에 도착해서 버스터미널 근처에 숙소를 잡고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술파는곳을 찾아 맥주를 사다 마셨지만 밤새 더위와 모기에 시달렸다.


1999. 4. 24. 토 Jammu -> Patankot -> Kagil -> Dharamsala (Mcleodganj)

새벽5시 30분에 숙소를 나와 다람살라행 버스를 찾으니 우선 파탄콧으로 가란다.

파탄콧근처에 내려 템포를 타고 버스정류장까지 가야했다.

다시 까갈까지 가는 버스, 까갈에서 다람살라, 다람살라에서 맥레오드간지.

한번도 쉬지않고 바로바로 연결되는 버스를 운좋게 타고 왔건만

잠무에서 다람살라까지 꼬박 7시간이 걸렸다.

오랜만에 다시 다람살라에 오니 역시 한국인들이 있어 맥주와 위스키로 목을 축이고..

다시 Paljor Gackil G.H. 에 도미토리를 잡았다.

1999. 4. 25. 일 Dharamsala Mcleodganj

우연히 청전스님을 만나게 되어 인사를 했다.

스님도 이곳에 왔다고 하여 다시 만나게 되겠구나 생각했는데

역시 예상대로 길에서 만나게 되었다.

오래간만에 다시 만났으니 술한잔 않할 수 없다.

맥주를 마신후 다시 양주 큰병을 다 마셔버려 나중엔 정말로 오랜만에 취하게되었다.

엉망으로 취하고 어떻게 들어와 잠을 잤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1999. 4. 26. 화  Dharamsala

5월1일에 달라이라마의 Public Audiance (공동 만남의 시간)이 있다고 하지만

4월 30일에 델리로 행해야 한다.

G와 만나기로 약속했으니 만나서 또 어디로 갈지 상의 해 봐야겠다.

델리에 간다하니 청전스님이 유서라도 서놓고 가라고 농담하실정도로

델리는 불화덕이다.

청전스님께서 커피를 직접갈아 두잔 대접해 주셨다.

Pune에서 공부하시는 두 경우, 박경숙씨 부부도 만났는데

작년에 인도여행중 만났던 김미성누나를 예기하니 미성누나한테

내예기를 많이 들었는데 이곳에서 나를 다시 만나니

무척 재미있어 하신다.

1999. 4. 28. 수  Dharasala

오전에 우체국에 가서 Srinagar의 하우스보트에서

하루치 방값을 잊고 치루지 않았던 130Rs.에 조금 더 보태 150Rs.를 보내주었다.

잘 도착하길 바란다.

우체국에서 masumi라는 일본여자를 만나 남걀사원에 산책가서 오후시간을 보냈다.

더운날씨지만 그곳은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몇일전부터 시작된 집단 기도소리와

이름모를 악기소리가 어우러져 평화롭고 아늑한 분위기를 느끼며 편안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티벳인들은 또 오체투지(섰다가 주욱~ 덮드리는 식으로 하는 기도)를 하루종일 하고 있다.

보기에도 힘든데.... 저들은 무엇을 빌며 저리도 열심히 기도 할까....

1999. 4. 30. 금 Dharamsala Mcleodganj -> Delhi

짐을 정리하고 숙소값을 치뤘지만 버스는 오후 출발이라

계속 숙소에서 낮잠자거나 강아지와 놀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 6시30분쯤 델리행 버스가 출발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붉은달이 해처럼 떠오르고 있다. 오늘이 보름 이던가...?

날은 어두웠지만 지대가 낮아지니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뜨거운 바람이다.

뜨거운 대지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느낌이든다.

무슨이유에선지 중간쯤 오래 정차를 했고 잠에취해 어리버리 하던 나는

그동안 모기에 물려 내가 내팔 만지는 것이 징그러울정도로 울퉁불퉁해졌다.

껌껌한 대지를 버스는 또 달린다.

1999. 5. 1. 토 Delhi (Pahar ganj)

새벽 6시에 Delhi에 도착했다.

아침이라 그러지 아주덥진 않다. 물론 낮엔 돌아다니기 힘들정도로 덥겠지.

작년에 인도땅을 처음밟은것도 5월3일 델리에서였다.

그때도 더워서 숙소 옥상에서 계속 자야했고 하루에 몇통씩 물을 사 마셔야 했다.

그 더운땅을 어떻게 5개월동안 빨빨대며 돌아다녔는지 지금 생각하면 그땐 참 용감했다.

지금은 작년처럼 그렇게 다닐 수는 없을 것 같다.

Navrang G.H.를 100Rs.에 잡았는데 더워서 도저히 방에 있을 수가 없다.

더군다나 5층방이라 더 덥다.

fan에서는 더운바람이 불고 물조차 데워져있어 따뜻한물이 나온다.

창문이라곤 없는 감옥같은 방에서 샤워를 하고 젖은몸으로 바로 침대에 눕는다.

몸이 물에 젖은 상태에서 바람을 맞으면 그런대로 시원해지기 때문이다.

침대도 뜨거워 물을 뿌린다.

한시간이면 젖었던 모든 것들은 바짝 마르기 때문에 베게도 적시고,

수건도 적셔 몸에 얹어놓는다.

잘때는 룽기를 물에 담궜다가 덮고 잔다.

자다보면 바짝말라 방금 다리미질이라도 한것같이 따뜻해진다.

그러면 다시 룽기를 물에 담궜다 덮고 잔다.

거리는 이글대는 햇볕과 수많은 사람들과 릭샤,

자동차, 소, 개들과 쓰래기들, 소똥,

장사치들의 수레 그리고 끝내 없어질 것 같지 않은 먼지와 소음으로 가득하다.

1999. 5. 2. 일 Delhi

새벽에 갑자기 더워져 깨어나 보니 fan이 돌지 않는다.

더운날씨에 새벽 6시부터 정전이라니..............

할수없이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섰다.

새벽이라 방보단 밖이 조금 견딜만 했다.

짜이 한잔 마시고 숙소 앞에 망연히 앉아 있었다.

온통 일본인들 뿐이다.

뜨거운 도시가 다시 깨어나기 시작한다.

Golden Cafe에가서 샌드위치로 간단히 아침을 때웠다.

거리는 다시 장사치들의 소음과 먼지로 가득차기 시작한다.

그속을 쓸쓸히 걸어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후끈한 공기와 뜨거운 침대가 나를 맞는다.

만져지는 모든 것들이 뜨뜻하다.... 계속 뜨뜻하다.

저녁식사후 숙소로 돌아와 보니 다시 정전이 되있었다.

방에 가봤자 fan도 돌지 않고 거리보다 더 뜨거울 것 같아 뉴델리역쪽으로 걸었다.

역시 많은 사람들, 그보다도 더 많은 쓰레기들이 거리에 가득하고

발전기 돌리는 소리와 오토바이, 차들의 경적소리가 더욱 정신없게 만드는 데다가

인도인들의 Hello~~ Japanese~~ 곤니찌와~~ 소리들이 더욱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숙소로 돌아왔더니 어제도 맥주를 마시고 있던 라자스탄에서 왔다는 인도인이

또 맥주를 마시고 있길래 40Rs.에 한병 얻어 마셨다.

권수는 오지 않을 모양이다.

1999. 5. 4 화 Delhi -> Goa

새벽에 MainBazaar에 나가 서서히 시작되고 있는 혼돈을 바라보며 달고 뜨거운

짜이 한잔과 비리 한 개피로 또 하루를 시작한다.

간단히 아침을 때우고 니자무딘역으로 향했다.

화염속을 기차는 달린다.

오후 1시쯤되자 U.P.(우타프라데시)주의 중앙으로 향하기 시작하는데

기차밖에서 불을 때고 있는 듯 더운공기가 불어온다.

모두들 햇빛 가리개용 창문을 닫고 수건을 물에 적셔 머리에 엊어놓는다.

기차안의 온도는 40.1도.

더위란 무엇인가 절실하게 느낀다.

사막에서 그 더위에 긴팔 긴바지를 입고 몸을 가리는 이유를 이제 알겠다.

무엇이든 시원한 것이 없으면 미쳐버릴것만 같다.

기차는 방금 화로에서 나온 쉿덩이 같고 살에 닿는 공기 또한 너무 뜨거워져 있다.

1999. 5. 5. 수 Delhi -> Goa

새벽에 잠시 멈추는 듯 하더니 기차는 계속 달린다.

남쪽으로 내려오니 조금은 시원해 졌고 새벽에 바람을 맞으니 서늘함까지 느낀다.

밤 10시쯤 고아의 Madgaon에 도착했다.

베나울림 해변으로 가기로 하고 그곳의 Parm grove cottage에 방을 잡았다.

바람이 시원하게 분다.

지옥같던 어제의 그 불화덕을 생각하며 시원하게 맥주한병하니 정말 천국이 따로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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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일본은 배낭여행이 아니고
운좋게 친구네집에 가게 된건데
나중에 인도에 다녀온 이후에도 인도에서 사귄 친구네집에
몇 번 갔다왔었다.

1997. 12. 27 토

 

JAL 11시 45분 출발 비행기이다.

10시반에 파키스탄 사람을 만나기로 했기에 서둘러 나갔는데

아직 보이지가 않는다.

그 돈많은 파키스탄 사람덕분에 비행기를 공짜로 타게 되었는데

한국말도 일본말도 영어도 못하는 그의 형을 일본에 데려다주고

호쿠오카에서 도쿄까지 가는 신칸센을 태워주면 나와 일본친구"M"의

임무는 끝이다.

그 파키스탄인과 그의 형을 만나서 드디어 출발이다..

그런데 출국심사때 앞 사람들을 너무 오래 기다렸기에

11시 40분이 되서야 출국심사가 끝났다.

심사대를 빠져 나오자 마자 무전기를 든 아가씨가

내 이름을 막부르면서 날 찾는다.

비행기가 나와 일본인친구"M"과 파키스탄인 이렇게 3명때문에

떠나지 못하고 있으니 2번 게이트로 마구 뛰란다.

우리 셋은 비행기까지 뛰어서 마지막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우리가 오르자 비행기가 곧 움직였다.

 

좀 나는가 싶더니 어느새 후쿠오까에 도착해서 하카타까지

지하철로 3정거장, 하카타에서 그 파키스탄말밖에 못하는

사람을 도쿄에 보내느라고 한참을 왔다갔다 소란을 피우고

한국에 있는 그의 동생, 도쿄에 있는 그의 또다른 동생에게

전화를 엄청 많이 했다.

모두 집전화와 연계된 내 카드로 했으니 다음달 전화세가 걱정이로세.

오랜 소란과 전화 끝에 그를 16시쯤 신칸센에 무사히 태워 보내고..

이제 우리(나와 M)의 목적지인 구마모토로 출발이다.

버스로 2시간쯤걸려 19시쯤 구마모토에 도착했다.

2시간거리의 차비가 우리나라 돈으로 2만원이 넘으니 엄청난 물가다.

M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M의 부모님들이 날 반갑게 맞아주었다.

집은 아주 좁았고 방가운데 상(코다쯔)을 놓고 구석엔 곤로가 타고 있었다.

거실겸 방과 그옆에 있는방이 전부였다.

M의 동생은 우릴 태워주자마자 곧 친구 만난다고 나가버리고..

자리에 앉자마자 녹차를 주었는데 항상 녹차를 마실수 있도록

마호병과 아주 쪼그만 차 주전자를 상 옆에 두고 있다.

우리는 한국에서 가져간 선물들을 꺼내놓았다.

김치라면, 소주, 김, 비누, 머 이런것들이었는데,

김치라면을 보고 오~오~ 하며 놀라워 한다.

곧 회를 내놓기에 참나무통 맑은소주를 마셨는데 무척 맜있단다.

아버님이 곧 일본소주,맥주,일본청하를 다 꺼내놓아서

우린 4가지 술을 이것저것 짬뽕으로 다 먹어가며 예길 했는데

M과 그의 부모님은 5년만의 상봉이라 예기가 참많았다.

M이 한국말을 좀 하는데 난 일본말을 전혀 못하니

M이 통역 해 주느라 바쁘다.

부모님은 참 좋은 분들인거 같다.  

하~~~  품!    피곤하다~~~  

 

 

1997. 12. 28 일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또 녹차를 준다.

그런데 녹차를 다 마시면 또 따라준다. 또 다 마시니

또 따라준다. 으.. 계속 마시다간 끝이 없게 따라줄것 같아서

반쯤 남겼다.

밥과 된장국에 반찬은 두개.

국을 젖가락으로 먹으려니 조금 힘들지만,

일본 된장국은 달짝지근 해서 맛이 괜찮았다.

오늘은 "리에"라는 친구를 만나기로 M이 약속을 했다.

리에를 만나러 가는데 M은 운전을 너무 못하는거 같아서

정말 불안해서 죽는줄 알았다.

신호대기때 시동을 꺼트리고 늦게 출발해도 뒤에서

빵빵거리진 않았다.

리에를 만나서 셋이 구마모토 동물원에서 구경이라기 보단 그냥 자연을 즐겼다.

구마모토 동물원에서 에즈호수가 보였다.  

그곳을 나와 에즈코 호수 옆에 있는 금룡 이라는 라면집에서

라면과 만두를 먹었는데 만두는 맛이 똑같고..

라면은 허연 기름끼 많은 국물에.. 조금 달다.

레코드점에 갔는데 작은 싱글CD가 무척 많이 보인다.

오락실이 2층에 있는데.. 별 오락이 다 있었고...

가전제품 파는곳 "DEODEO" 에 갔었는데 젤 탐나던건 작은 핸드폰.

정말 작다.   리에의 핸드폰도..

그런데 방송이 넘 시끄러워서, 연실 머라머라~ 데오데오~ 데오데오~~   으~~

여기저기 다녔는데 빠칭코가 엄청 많다.

우린 다 같이 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하고 카레와 반찬등을 사서

집에 들어갔다. 카레밥을 먹으면서...

이번엔 맥주,소주,청하,샴페인을 짬뽕으로 먹었는데

일본술은 사실 맛이 별로다. 소주도, 청하도..

참 편한건 아버님과 어머님과 나 이렇게 셋이서 담배를 같이

피운다는 거다.

리에를 데려다주고 WONDER CITY라는 게임장에 갔다.

많은 게임들.. 포켓볼, 야광볼링장 등이 있었다.

게임 조금 하고..

구마모토 공항까지 드라이브~

공항에서 집에 올때는 내가 운전을 했는데

반대차선과 반대운전석에 곧 익숙할수 있었다.

 

 

1997. 12. 29 월

 

오늘은 M이 "레이코"라는 친구를 만나기로 했단다.

레이코는 영어를 배우고 싶어하는데..

기본적인 회화도 두세번 차근차근 말해야 알아 들으니....

구마모토성을 함께 가기로 했는데 지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니 비가 오고 있었다.

구마모토성은 나중에 가기로 하고 오늘은 시모또리라는

거리에서 쇼핑만 했다.

무엇을 사든지 세금 5%가 붙는다.

오늘은 레이코의 차를 타고 나녀서 차탈때 불안하지 않아서 좋았다.

저녁에 집에 들어왔는데 부모님이 오늘밤에 회사에서

회식이 있다길래 그곳까지 모셔다 드리고..

M이 오야코돈부리 라는 음식을 만들어준다길래 쇼핑하고

집에와서 음식을 해 먹었는데 맛은 괜찬았다.

밤에 아버님은 않오시고 어머님만 오셔서

오늘은 맥주만 마셨다.

녹차를 마시다보면 저녁먹을 시간이 되고..

저녁을 먹기전엔 으레히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다 보면.

저녁식사 시간이 되어 저녁밥과 술을 같이 먹게 되고...

거기에 기본으로 녹차는 항상 대기중..

머 그런 시스템이다.

 

 

1997. 12. 30. 화

 

저녁에 아버님이 초밥을 사주신다기에 4명이 같이 나갔다.

술 파는곳에 가서 술을 엄청 사고..

음식이 뺑뺑 돌아가면 앞으로 가져와 먹는곳에서 초밥을 먹고..

집에와서 아까 샀던 술을 마셨다.

감자소주 라는걸 먹었는데 이것도 맛이 없다.

역시 우리 소주가 제일이여....

소주를 엄청 먹고... 밥을 또 먹으란다.

밥에 과자가루 같은걸 뿌리더니.. 녹차를 붇는거다.

하루에 녹차를 12잔도 더 마시는거 같은데...

또 녹차에 밥을 말아 먹다니.. 그것도 젖가락으로...

오차스케 라는 음식 이란다.  오차=차!

맛이 좋았다.

술 마신 다음에 먹으면 좋단다.

 

첫날 목욕을 하는데 쪼그만 욕조에 하얀 물이 있길래

저렇게 쪼그만데 어떻게 들어가나 했는데..

발을 넣으니 밑으로 쑤욱~ 들어간다.

바닥보다 한참 깊어서 몸이 들어가기에 딱 좋았다.

우유목욕하는 효과 내는것을 물에 탔다고 한다.

 

술마시고 뜨거운 욕조에 들어가 있으니... 참 좋다~

 

 

1997. 12. 31 수

 

오늘은 레이코를 만나서 아소산에 가기로 했다.

2틀전에 화산이 터져서 2명이 죽었다고 한다.

아소산에 갔는데 분화구 있는곳까진 못들어가게 했다.

산위 화산박물관 앞에 넓은 초원같은곳에

물이 고여있는곳 까지만 가서 구경하고..

분화구에선 하얀 연기가 계속 뿜어져 나오고 있다.

집에왔을때 아버님의 친구가 있었는데,

그분의 되지도 않는 영어를 해석 해서 듣느라 정말 힘들었다.

3일에 아소산과 아막사고쿄(아막사의 5개의 다리)를 구경시켜 준단다.

오늘 갔던 아소산보다 더 멋있는곳도 많다고 한다.

내일은 새해가 되니 일본말로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를

배우고 나도 우리말을 가르쳐 주었는데 아버님은

내가 우리말과 영어로 쓴 종이에 내 싸인을 해달란다.

기념으로 갖고 있겠다고..후~  멋있게 싸인해서 주었다.

아버님도 일본말을 쓰더니 싸인을 해서 나에게 준다.

여럿이 모여 사진찍고.. 웃고.. 즐기고..

아버님은 술에 곧 떨어지시고..

그 친구분과 새벽2시까지 술을 엄청 먹으며 예길했다.

 

 

1998. 1. 1. 목

 

드디어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 먹는 음식이라며 큰 접시로 3접시나 되는 음식들을 먹고

새해에 먹는 술도 한잔 마셨다.

오늘은 사원에 간단다.

사원에가서 돈던지고 새해 소원을 빌고..

또 돈내고 사람이 마루위에 서서 막대기 끝에 천을 달아서 머리에

갖다대주면 사람들이 합장하고.. 운수보는 종이를 뽑아서

운수보고 운이 나쁘면 나무에 주욱~ 메달아 놓고..

모두들 가족끼리 나온 많은 사람들..

사원앞 길엔 먹을것 파는 사람들..

대충 그런 풍경이다.

 

에즈코 호수가 집하고 가까워서 호수로 산책을 갔다.

물에 한가로이 떠다니는 오리들.. 새들..

오리한테 먹이를 주고있는 아저씨..

강아지를 델고 산책나온 사람들...

조용하고... 평화롭고... 한가로운... 오후다.

 

오늘 저녁은 청하만 먹었다.

 

 

1998. 1. 2. 금

 

레이코와 리에를 만나기로 했다.

만나서 구마모토성을 구경했다.

구마모토성에선 구마모토가 한눈에 들어왔다.

깊은 우물이 많다.

구마모토성엔 한국사람도 많이 오는지 한국말로

설명이 되었었다.

잘못된것도 있는데 "5세이하 어린이는 유료입장"

펜이 있었으면 "무" 자로 고쳐주는건데..

교통센터 지하로 와서 우동에 볶음밥..

상가마다 쇼핑백을 테잎으로 봉 해서 팔고 있는데

지불한 돈보다 더 비싼것들이 들어있을수도 있다고 한다.

집에 올때는 전철을 타고 왔는데 시내 차도에 전철이 다니는게

이국적이다.

내일은 아버님 친구분이 아막사고쿄를 구경하고 아소산 전체를

모두 돌아보기로 한 날이다.

아침 8시에 출발이니 내일은 일찍 일어나야 한다.

저녁엔 소바를 먹었는데 우리나라의 메밀국수,

 

오늘도 청하만 마셨다.

 

 

1998. 1. 3. 토

 

아침에 일어나 서둘러 준비를 하는데

곧 아버님의 친구분이 오셨다.

아버님은 일이 있어서 함께 못가시고

어머님만 동행 하셨다.

먼저 아막사고쿄로 출발.

아마쿠사고쿄는 여러개의 섬들로 이루어진 지역인데

섬들을 연결하는 다리가 5개 있다고 해서

아막사고쿄 이다. 고=5, 쿄=다리.

 

나와 M은 뒷자리에서 재밌는예기들을 하며

M은 한국어 공부, 나는 일어공부등을 하면서 이동했다.

나는 주로 M의 발음을 교정해주고..

나는 주로 밖에 보이는 풍경, 바다가 일어로 뭐냐..

섬이 일어로 뭐냐.. 등등을 묻고.. 피곤하면 좀 자다가..일나고..

아막사고쿄를 구경하고 어느새 아소산을 오르고있다.

아소산을 오르기 전에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가운데 숫불이 피고.. 그옆으로 꼬치를 바닥에 푹푹~ 꽂아서

먹는건데...   살아있는 물고기도 꽂혀있다.

아소산을 올랐는데 이번엔 12/31일에 갔던 아소산과는

다른곳이었다.

산정상이 아주 넓게, 멀리 펼쳐지고 있고..

그밑으론 논과 집들이 펼쳐져 있었다.

산은 모두 갈대같은것들로 덮혀있는데. 그것들을 축구장같이

곱게 깍아놓고 깍은것들은 소를 먹인단다.

산은 온통 황금색으로 물결치고 있다.

 

내일은 여행을 마치고 드디어 한국으로 가는 날이다.

후쿠오카 공항 9시40분발 비행기이다.

후쿠오까까진 2시간쯤 걸리니 적어도 6시엔 출발 해야 한다.

오늘 구경시켜준 아버님의 친구분이 내일 아침 6시에

공항까지 태워 주신단다..

정말 고마운 분이다.  더군다나 나에게 위스키 한병을 선물했다.

스키야키라는 음식을 먹었는데 야채들과 고기를 끓는물에 데치면서

먹는데 생계란을 밥공기에 넣고 적셔서 먹는다.

조금먹으니 생계란은 먹기에 이상했지만 고기는 맛있어서 많이 먹었다.

마지막이니 짐을 정리하고.. 술은 조금만 마시고. 잤다.

 

 

1998. 1. 4. 일

 

새벽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어두운 새벽에 비를뚫고 구마모토를 빠져나간다..

아버님과 어머님, 아버님친구분은 출국심사대로

빠져나갈때까지 우리를 배웅해 주셨다.

이제 M은 부모님과 1~2년은 만나지 못할것이다.

 

기내방송에서 서울은 지금 마이너스 나나도(영하7도) 라는 말이 나오자

모두 함성을 질러댄다.

보통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구마모토에 비하면 추운거지.

 

비행기에서 내려서 찬바람이 약간스치자

일본사람들은 연실 사무이~ 사무이~ 한다.

 

M은 짐이 많아서 하숙집까지 같이 가서 짐을 풀고

나와서 우리집(원주)에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

청량리역에서 기차표를 끊는데 끊어주는 아줌마를 보니..

일본이 친절하긴 하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선 저런태도 저런말투는 본일이 없다.

 

암튼 무사히 여행을 마쳤다.

친구 M 덕분에 8일간의 여행에 들어간돈은

모든 교통비,잡비를 합해서 1만4천엔.

이정도면 IMF시대에 절약여행을 했다고 생각된다.

이렇게해서 나의 두번째 해외여행은 끝이 났다.

 

다음여행은 인도.. 인도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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