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정말 정말 정말 많이 모였다.
경찰에서는 8만명이라고 추산했는데
좀 줄이는건 이해해도 이건 좀 아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다.
뭔가... 적을 대한다는 그런 느낌?
아무리 아무리 적게 잡아도 20만은 넘었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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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재밌는 피켓이 있지만 두가지가 가장 맘에 든다.
 
 

 
 
명박산성.
슬프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추악하기도 하고
멋지기도 하고
 




 
무심한 명박산성 앞에 두손 모아 간절한 마음 보낸다.
 


 
오늘도 어김없이 시민들의 유머감각이 돋보인다.
7일 다소 폭력적이었던 집회가 걱정스러웠는데
모두들 정말 자랑스럽게 집회를 이끌어 나갔다.

 


 
행진을 시작하면서 중앙선에 촛불들이 끝도없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대로를 가득메운 행진이 시작된지 30분도 넘었지만 그 끝이 어딘지 보이지도 않고
자꾸만 자꾸만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오늘도 가족이 많이 참석했다.
리헌이라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지만 사진찍고 이메일로 보내줬다.
이자리에 함께 했다는것을 자랑스러워 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곳곳에서 쓰레기를 줍는 시민들도 많다.
멋지다.
 


 
예비군 부대가 스크럼을 짜고 평화로운 집회가 되도록 노력한다.
멋지다.
 


 
꽃이 있는 풍경
 


 
이장군님 보기에 부끄럽다.
착찹하시겠다.
 

 
 
시간이 늦어지자 삼삼오오 모여 자리에 앉았다.
지하철도, 버스도 끊겨 걸어서 집까지 왔지만
우려했었던 폭력도 없었고 멋진 모습들 많이 봤기에 기분은 좋았다.





6월7일 촛불문화제가 과격시위의 양상을 띄기 시작했다.
전경버스를 끌어내고 버스에 올라 선동하는것까지는
어떤 상징적인 대항으로 봐 줄만 하다.
그러나 쇠파이프가 등장하는 등 경찰을 향한
직접적이고 적대적인 폭력이 등장한다면
이제 그것은 더이상 묵인되거나 호응 받을 수 없다.

여러가지 얘기가 있다.

시민들이 충돌이 있기전 김밥과 쵸코파이, 물, 오이 등을
전경들에게 건네주며 예전의 그 여유를 잃지 않고 있었는데
전경들은 오히려 먼저 침을 밷고, 계란, 물병, 심지어 돌을 던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말려들면 안된다.
폭력에 폭력으로 맞선다면 그들과 다를 바 없다.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경찰의 프락치라는 말도 있다.
여러가지 증거가 될만한 사진들이 이미 여러 블로그에 올라와 있다.
사실이라면 폭력이 있을 때 시민은 오히려 몇발짝 뒤로 빠져 비폭력을 외쳐야 한다.
물론 현장에 있다보면 머리끝까지 치밀어오르는 분노와
피 끓는 혈기에 폭력에 동참하고 싶어지기도 하지만
촛불문화제가 전국민적 MT가 되고
새로운 문화의 한자리로 차지하기까지
끝내 유머와 비폭력을 잃지 않고 지키지 않았나.

전경이 버스위에 올라오면
개인기! 개인기!

해산하라고 방송을 하면
노래해! 노래해!

물대포를 쏘면
온수! 온수!

경찰의 사진 불법 채증에는
V! V!


심각한 상황에서도 유머와 비폭력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너도알고 나도아는 당연한 사실과 상황을
여러 꼼수로 비켜 나가고 속이려 드는 2mb측에 대한
도덕적 우월성이었다.
옳음에 대한 당당함이었고 거짓에 대한 조롱이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폭력이 이어지면
도덕적 우월성도 옳음에 대한 당당함도 없어진다.
국민들의 동조도 없어진다.

6월10일에는 100만 시민 촛불집회가 열린다.
이때는 제발 예전과 같은 유머와 여유를 잃지 말고
당당한 마음 계속 지킬 수 있는
그런 집회가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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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9
광화문 옆 도로는 이제 포기하고
다시 광화문광장으로 모였다.
경찰이 사진을 찍자 시민들이 V를 그리며 잘 찍어달라고 조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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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너머에 전경....  모두 피곤하다.



묵묵히 이런 광경을 밤새 지켜보고 있는 이장군님.
역사는 오늘의 촛불집회를 어떻게 기록하게 될까?



광화문 광장에서도 밧줄로 버스를 끌어내려 했지만
다들 너무 지쳤다.



06:16
교통경찰들이 왔다가 시민들에게 밀려 돌아간다.
운행하는 차들이 조금씩 광화문광장으로 오고 있다.



06:32
옆 골목에서 전경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처음 집회땐 전경들이 군화소리를 척척내며 밀려올때 좀 겁났었다.
그러나 이제는 오히려 그 앞으로 더 달려가 사진 찍는다.

 
 
이미 시민들이 많이 돌아간 터라 시청쪽으로 시민들이 밀려 나간다.
 
 

06:39
어느새 전경들이 대열을 정비했고
일부는 인도로, 일부는 시청쪽으로 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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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전경이 대치하다가 전경이 소화기를 뿌리며 진압한다.
여기저기 고함소리와 함성이 들리고 구호를 외친다.
 
 

06:46
경찰이 시민 한명을 연행한다.
시민들이 뒤따르며 풀어줄것을 요구하며 대항하지만 쉽지 않다.
결국 그 시민은 연행되었다.



07:01
시민들 앞에 예비군들이 나타나 스크럼을 짜고 충돌을 방지하고 있다.
 

그러던 중 전경이 기자를 방패로 때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그 방패는 날을 갈아 날카롭게 만든것이라 한다.
경찰이 자세히 찍지 못하도록 방패로 카메라를 막으며 취재를 방해하고 있다.
 
 

몇분정도 소란이 있었고 곧 다시 대열이 정비되었다.
시민들은 시청광장으로 밀려났고
횡단보도를 건너며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07:23
할머니 한분이 덕수궁 앞 버스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린다.
한쪽에서는 소란이 있었고
한쪽에서는 다시 일상이 시작되고 있었다.


 
 
6월 10일에는 대규모 집회가 잡혀있다.
87년 6월 10일, 민주화의 초석을 닦은 지 20주년이 되는 때다.
난 87년 6월을 또렷이 기억한다.
평일이라 다음날 회사가 조금 걱정이지만
어찌됐든 참석은 해야겠다.
역사에 부끄러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한다.
.
 
6월6일 현충일이다.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비는 날인데 그것이 좀 떠들석하게됐다.
 
20:00
와우~ 정말 사람들 많이 모였다.
덕수궁 앞부터 광화문사거리까지 사람들로 꽉 찼다.
 



구호에는 박자가 생명.
80년대의 구호 박자는 좀 전투적이고 명령조인 반면
지금의 구호 박자는 뭐랄까 살짝 다정하다고 할까
부드러워졌다고 할까..
집회에서는 어떠한 문장이든 구호로 빛을 발한다.
강.아.지.도  함.께.해.요~



이런 모습들을 이순신장군께 보여주는게 안타깝다.

 
 
여기저기 재밌는 모습들이 보인다.

 

 

 

00:02
시청앞에는 텐트들이 등장했다.
그 앞쪽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하나하나 촛불을 모으고 있다.
 
 
쇠고기 문제 뿐 아니라...


 
01:51
새문안 교회 옆에서 시위가 격해졌다고 한다.
교회쪽에서는 몇백명의 시민들이 대치하고 있고
그 옆 길에서는 전경버스를 끌어내려하고 있다.


 
03:06
전경 두명이 대열에서 나오게 되었다.
시민들이 비폭력을 외치며 군중 밖으로 내보내 준다.



04:00
한 학생이 조금 물러 난 자리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다.
함께 참여하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젊은이, 괜찮네....


 
 
버스가 차지했던 자리가 시민들로 가득 찼다.

 
  
05:18
날이 밝아오고 있다.
정말 떠들석한 새벽을 보냈다.

 
 

 
계속..
 


 

 

05:25

새벽이 밝았다.

목이 터지는 구호와 노랫소리로 새벽을 맞았다.

 

05:42

사직터널에서부터 시민들을 몰고 온 경찰들이

경복궁 앞에서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그 앞으로 전경들이 줄을 지어 시민들을 몰고 있었다.

시민들은 물대포를 몸으로 막아내지만

힘 없이 뒤로 밀릴 수 밖에 없었다.

 

06:07

물대포를 앞세운 경찰들은 빠르게 앞으로 진격하며 시위대를 분산시켰고

전경들이 대열을 이루어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전경들이(특공대?) 몽둥이와 방패로 무차별 폭력을 가했다.

한 시민은 몽둥이에 머리를 맞아 구십도로 몸을 꺽으며 쓰러졌다.

 

앞으로 진격한 경찰들을 향해 골목과 인도로 빠졌던 시민들이 몰려 들었다.

아비규환이었다.

그러나 더 많은 병력이 뒤에서 몰려들었다.

 

사방에 물폭탄이 몰아쳤다.

 

심장이 뛰었다.

시민들은 여기저기로 좇겼다.
 

어느새 시민들을 인도와 안국역쪽으로 밀어낸 전경들이 인도 앞에 진을 쳤다.

시민들이 전경앞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가 섰다.

전경들도 물에 젖었다.

어느정도 안정을 되찾고

그들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니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전경들은 생각보다 어렸다.

앞에서 항의하는 시민들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이리저리 상관의 명령에 쩔쩔매며 왔다갔다 했다.

 

시민들이 여기 비었다며 조롱을 하고

그럴때 마다 상관은 대열을 맞출것을 명령했다.

시민들은 물에 젖은 몸이었지만

땀이 흘렀다.

이대로 힘없이 밀릴 수 밖에 없음에 안타까워 했다.

장벽은 높았다.

우리가 넘어야 할 장벽이다.

장벽은 높지만 희망을 잃지말아야 한다.

희망을 잃으면 모든것을 잃는거다.

 

일부는 인사동으로 밀리며 시위를 계속 했고

일부는 광화문 사거리로 발길을 돌렸다.

 

시청 앞 광장에 다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제 부터 다시 시작이다.



 



 

23:11

경복궁 옆 삼청동길을 막고 있는 전경과 대치하며

우리들의 함성은 더욱 높아졌다.

 

경복궁 앞을 시민들이 가득 메웠다.

시위 중 일부는 효자동쪽이 뚫렸다며 그쪽으로 뛰어가기도 했다.

그 와중에 사과탄인지 소화기분말인지 하얀가루가 경찰측에서 뿜어져 나왔다.

눈이 따가왔다.

 

그러나 기죽지 않았다.

시위가 계속 되면서 날씨가 점점 추워졌지만

그 열기는 절대 식지 않았다.

 

23:46

예비군부대도 도착했다.

오와 열을 맞춘 예비군들은 지쳐가는 시민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01:05

한무리의 전경들이 삼청동 반대편길에서 다가왔다.

여기저기 지친 몸을 잠시 쉬고 있던 시민들이 순식간에 모여들었고

그들을 포위하며 물러나라고 경고 했다.

 

갑작스레 시민들에게 포위된 전경들은 꼬리를 감추듯

뒤로 발길을 돌려 물러났고

우리들은 환호 했다.

 


01:29

전경버스 앞에서 태극기가 어두운 새벽을 밝히며 펄럭였고

어디선가 애국가가 선창되었다.

모두 함께 간절한 마음으로 애국가를 불렀다.

시민들의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한차례 물대포를 맞은 시민들은 꿈쩍도 하지 않으며 자리를 지켰다.

주먹을 치켜들며 구호를 외쳤고

애국가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01:42

경찰은 다시 물대포를 쏘았다.

그러나 시민들이 방어할 수 있는 것이란

대형 태극기와 얇은 비닐뿐,

날아오는 물대포를 그대로 맞으면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전경버스 위에 있던 한 시민은 바로 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대포를 맞고

훅~ 하고 촛불이 꺼지듯 내동댕이 쳐 쓰러졌다.

 

우리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지만

폭력경찰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고

비폭력을 외쳤다.

 

아이는 지쳤고 아빠는 아이를 안았다.

 

02:51

시위대의 규모를 파악하러 온것인지

안국역쪽으로 향하기 위해 온것인지

검은색 경찰차가 경복궁 앞에서 다가왔다.

 

이를 본 시민들은 순식간에 경찰차를 포위했다.

흥분한 시민들은 주먹으로 차를 두드렸고

한쪽에선 비폭력을 외쳤다.

 

차에는 겁에 질린 의경 한명만이 타고 있을 뿐.

흥분한 몇몇은 차에 달려들었지만

별 사고 없이 차를 돌려보냈다.

 

비폭력은 물리적으로 아무런 힘이 없기도 하지만

우리는 자발적으로 비폭력을 외치며 스스로에게 큰 힘을 불어넣고 있다. 

 


03:10

전경버스 앞의 구호는 멈추지 않고

물대포를 맞은 시민들이 여기저기 불을 피우며 옷을 말렸다.

 

 

부모와 함께 나온 어린아이가 지쳐 불 옆에서 잠시 설잠을 잔다.

어른들도 지쳐 고개를 숙인다. 

불 옆에서 몸을 녹인 시민들은 다시 전경버스 앞으로 모이고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시민들은 잠시 불 옆으로 몸을 옮긴다.

 

그러나 단 한번도 구호와 노랫소리가 끊기지 않았다.



04:10

중국집 배달부가 나타났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환호했다.

 

누군가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시민들을 위해 짬뽕을 시켰다.

배고픈 사람들은 누구든 먹으라고 했다.

 

십만원이 훨씬 넘는 돈을 지불한 시민은

이름이 무엇인가 묻는 기자에게

그냥 한 시민일 뿐이라고 답할 뿐이었다.

04:37

어린아이와 함께 온 아빠는

집이 수원이라 가지도 못한다며

함께 온밤을 꼬박세웠고

아이는 지쳐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잠이 들었다.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그렇게 새벽을 맞이했다.

 

누구는 쵸코파이를 사서 나누었고

누구는 우유와 빵을 사서 나누었다.

여기저기서 필요한것들을 자발적으로 사서 날랐다.

의료봉사대는 마른옷을 준비해 물대포에 젖은 시민들이 갈아 입을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계속..


17:41

날씨 좋고 평화로운 토요일 오후다.

 

유모차를 끌고 종로로 나온 시민들은 평화롭게 인도를 줄지어 걸으며

미국산 쇠고기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어둠의 대한민국,  밝혀지기를...

 

20:34

시청앞 광장에 시민들이 몰려들고 있다.

 

손에손에 촛불들고 대한민국의 어둠을 밝히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 깃발이 서울하늘에 펄럭인다.

 

시청앞 광장은 우리들의 함성으로 가득찼다.

국민기만, 서민말살

이명박을 탄핵하라.

 

꼬마들도 엄마아빠와 함께 한다.

 

21:33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이 서울 시내를 걸으며 목소리를 높인다.

한갈래는 조선호텔을 왼쪽에 끼고 행진을 시작했고

한갈래는 남대문쪽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삼삼오오 짝을 이루고 즐겁게 대화를 하기도 하고

목소리를 높여 구호를 외치기도 한다.

 

행진은 종각 4거리를 지나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

경찰들이 이곳을 막지 않은것이 의아했다.

 

22:20

안국역에서 청와대로 향하는 길에 전경버스가 길을 가로 막고 있다.

길이 막히자 목소리를 더욱 힘차게 외친다.

 

댐에 물이 차듯

행진을 하던 시민들이 전경버스 앞으로 속속 도착한다.

 

전경버스 위에서는 고등학생을 비롯한 3명의 시민이

전경쪽을 향해 절을 하며 뜻을 전했고

다른 시민들이 그들을 만류하며 버스에서 내려보냈다.

절을 하던 시민들은 다리가 풀려 버스에서 내려오는것조차 힘들어 했다.

 

이명박은 퇴진하라

협상무효 고시철회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갔다. 

 


11:05

전경버스를 흔들기도 하고 사다리를 타고 버스에 오르는 등

시민들의 시위열기가 갈수록 더해졌다.

 

그러던 중 길이 뚤렸다는 고함소리가 앞쪽에서 터져나왔다.

버스 뒤에서 진을 치고 있던 전경들이

시민들에 밀려 삼청동쪽으로 이동하고

댐이 터지듯 환호를 외치며 시민들이 달려갔다.

경복궁 옆 삼청돌길에 다시 전경버스가 진을 치고 있었다.

 

경복궁 앞과 삼청동 입구를 가득메운

시민들의 목소리는 더욱 더 커져갔다.

분명 청와대에서도 우리들의 함성이 크게 들렸을것이다.

 

계속..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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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조금 넘은 시각,  거리행렬은 명동쪽으로 가고 백명정도만 청계광장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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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거리를 한 두 차선만 남겨두고 닭장차가 막고 있다.
거리집회가 교통을 방해한다고 강조하던 경찰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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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옆으로도 모두 닭장차
택시 잡으려는 시민들은 차도 가운데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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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광장으로 향하는 길은 아예 찻길을 모두 막고
한두명이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공간만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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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에 따라야 하는 이들도 괴롭고 힘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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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한대 장전... 예전 군대 생각난다.
 
가끔 눈에 독을 가득 품고 쳐다보는 시선에 눈을 맞추었다.
이런 상황이 좀 슬프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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