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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보고

<책>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by 함피 2004. 10. 29.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이런 말은 아마 몇번이고 들어봤을것이다.
"죽기로 결심하면 못할것이 무엇이냐.."
"죽을 용기가 있으면 그 용기를 갖고 더 잘 살아보겠다"

머 이런 류의 말들.

그러나 이런 말들은 그저 말로써 그 가치를 지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죽기로 결심..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피치못할 사정으로)죽어도 괜찮겠다' 하고
마음을 먹었던적이 몇번있다.
한번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니까
결심이었는지 아니면 한때의 철없는 순간적인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으나
그때의 그 상황과 그 느낌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것을 보면
확실히 가볍지는 않은 생각이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랬던적이 있었다.

그리고 2000년 인도 카시미르지방의 스리나가르,
그러니까 파키스탄과 인도의 영토분쟁과 종교분쟁, 현지인들의 독립까지 얽혀있어
한시도 총소리가 멎지 않는곳에 발을 들여놓기전에 그런 생각을 했었다.
평화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달라이라마가 티벳 망명정부를 세워놓고 있는
다람살라에서 몇일을 보내며 그곳의 상황에 대해 알아보고 있었다.
누구는 괜찮을거라하고 누구는 위험하니 여행을 하지 않는게 좋겠다고 했다.
이런 엇갈린 답이 나오리라는것은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난 틈만나면 스리나가르에 대해 여행자들에게 묻곤 했었다.
아마 여행하리라는 결심이 어느정도 서있는 상태에서
괜찮을거라는 답을 더 많이 듣고 싶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죽게 되더라도 일단은 그곳에 가 봐야겠다 하고 결론을 지었다.
총에 맞거나 폭탄이 터져 죽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는것 아닌가..
바로 1분 후에 차에 치여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무엇이 다른가 하고 생각했다.
스리나가르에 가까워질수록 군용차가 많이 보이고 검문검색을 하고
방탄복을 입고 총알을 장전한채 이리저리 움직이는 군인이 많아졌다.
그래도 난 두렵다거나 쓸데없는 상상으로 우울해지는일이 없었다.
죽어도 좋다! 라는 기본적인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괜한 걱정으로 초조해하지 안았던것 같다.

오히려 스리나가르의 궁전같은 하우스보트에서 평화롭고 여유있는 생활을 즐겼고
자전거를 빌려 전쟁의 흔적이 남아있는 시가지를 유람하듯 다녀오곤 했다.
시가지의 벙커속에선 군인들이 총을 장전한채 번쩍거리는 눈을 굴리고 있었고
우체국이라도 들어갈라치면 속속들이 검문을 받아야했다.
신문에서는 몇명의 군인이 폭탄테러에 죽었다느니 하는 뉴스를 매일같이 볼 수 있었지만
적어도 시가지는 그런대로 안전한것 같았다.

내가 위험을 느낀것은(이런것을 위험이라고 하기엔 시시하지만)
우습게도 그런 심각한 상황에서가 아니었다.
부대옆을 지나가고 있을때 담벼락 위 초소에서 헬로~ 하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인도 군인이 손을 흔든다.
별수롭지 않게 대꾸를 하고 가려고 하니 이리로 오라고 손짓이다.
나는 언제나 그렇듯 너가 볼일이 있으면 너가 이리로 와라 하고 손짓을 보냈더니
총을 맨채 나한테 달려온다.
내려오더니 악수를 청한다.
악수를 하는데 기름기 있는 눈을 번뜩이며 손을 누굴누굴하게 더듬듯하는게 아닌가
으으윽~ 이 호모자식이 도대체 지금 무엇을 하는것인가!!!!!
얼른 손을 빼고 bye~ 하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른걸음으로 그곳을 벗어났다.
이것이다.
이 일이 스리나가르에선 가장 좋지 않은 일 이었다.

그리고 2002년.
이때가 죽음이 목앞 가장 가까이까지 왔었던 상황인데
이 이야기는 다음글에 써야겠다.

이젠 죽기로 결심하거나 죽어도 그리 나쁠건 없다는 그런 깡다구 있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것 같다.
나쁘게 말하자면 매너리즘에 빠져서 그냥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죽음을 생각한다는것 자체를 놓고 봐서는 그리 올바르지는 않은것 같다.
아무래도 그런 치기는 나이가 들수록 어려워 지는것이다.

아무튼 난 평화로운 삶을 원한다.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상황에서 한순간 한순간을 가치있고 뜻있게 보내는것도 좋겠지만
아마 이틀만 그렇게 지내고 나면 3일째는 예전의 생활과 거의 다름없어질것이다.
물론 어떠한 깨달음이 중요한것이겠지만.

나는 틀림없이 그렇게 절박한 마음이었다가 이틀만 지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리라 생각한다.
바로 다음날 4일째 진짜 죽음이 찾아오는것을 모르는채..  라고 해도.   모르니까!!

그리고 또 그렇게 절박하고 매사에 아주 열심히, 가치있고 뜻있게 (그것을 의식하며)
꼼꼼하게, 치열하게 사는것은..
머랄까.. 사실 좀 싫다.

맥주나 한잔 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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