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껏 부푼 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피해를 입은 분들에겐 정말 죄송한 얘기지만
나는 하늘에서 비가 양껏 온 다음날 강에 나가보는걸 즐기는 편이다.
어릴 때는 내가 아는 한 절대 범람하지 않는 원주천에 나가서
그 전보다 확연히 많아진 강물을 바라보곤 했다.
물론 지금은 한강에 나가본다.
한껏 부푼 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뭔지 모를 숙연함이(까지도) 느껴진다.
상류로부터 온갖 허접쓰레기와 잡풀들을 이끌고 강은 군말 없이 흐른다.

해가 채 뜨기 전 일어나
집 앞 홍제천을 따라 한강으로 나가보았다.
비가 예상외로 많이 와서 홍제천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에 설치된 다리가 잠수되어 있었다.
별 것 아니지만 물이 넘쳐 길이 끊긴걸 보면 좀 서글픈 기분이 든다.
홍제천의 난간이 설치된 구간과 옆 뚝에는 잡풀이 얽혀 있었다.
군데군데 떨어져 나간 난간도 있다. (설치한지 한 달도 안된 새것인데)
바닥을 겨우 가렸던 홍제천이 힘찬 계곡물 흐르듯 흐르는 것을 보니
어제 정말 비가 많이 오긴 많이 왔구나 하고 새삼 깨닫는다.
뚝의 1/3까지 물이 올라왔던 흔적을 볼 수 있다.
불광천과 홍제천이 만나는 작은 다리는 거의 부서지기 직전까지 간 것 같았다.
다리 난간의 반은 거의 쓸려나가 있었고
어디서부터 떠내려 온 것인지 심히 궁금해지는 작은 소파들이 여럿 걸려있었다.
오늘 날씨가 개어 다행이다.
오늘도 어제처럼 비가 왔다면 홍제천이(뿐만 아니라 한강도) 범람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강에 물이 많아지면 낚시하는 사람들도 많아진다.
성산대교 서편으로 릴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새벽부터 나와 있다.
낚시 도구를 들고 이제 막 자리를 찾아보는 사람들도 많다.
심지어 홍제천에서 찌낚시를 하는 사람도 있다.(그제까지만 해도 쫄쫄쫄 물이 흐르던 그 홍제천에서!!)
예상외로 이곳에서 낚시하는 사람은 연거푸 30Cm가 넘는 붕어를 낚아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늘 낚시꾼이 있는 한강에서 고기를 낚아 올리는 모습은 아직 보지 못했다.

오늘 한강은 유난히도 묵묵히 흐르고 있었다.
서울에 이렇게 큰 강이 흐르고 있다는 것에 대해 새삼 자부심이 느껴졌다.
유유히 흐르거라 한강.
쓰래기를 품고, 우리 고민과 걱정도 다 품고서 흘러가거라.



hampi 민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