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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여행(1998~사는날)/1998 아시아횡단

터키 9909

by 함피 2008. 8. 21.

이란에서 터키로 들어왔습니다.
이란에서 목말라하던 맥주를 마실 수 있어서 정말 좋았죠..^^
약 1달 정도의 여행기 입니다.


                                                                          1 USD = 약 450,000 TL (Turkish Lira)


1999. 9. 12.  일  IRAN Maku - Bazargan  -  TURKEY Dogubeyazit

나는 왜 항상 국경을 넘을 때 나 혼자일까.
인도에서 파키스탄 넘을때도 다른사람들은 그곳을 넘는 여행자가 많으니
분명 여행자를 만날 수 있을거라 했지만 나혼자 넘었고,
파키스탄에서 이란국경을 넘을때도 나혼자 였다.
지금 이란에서 터키를 넘는데도 나혼자... 난 왜 이럴까.....
이란측 이미그레이션과 터키측 이미그레이션이 한건물에 있는데
완전 시장통이었다.
이란과 터키사람들로 꽉차있고 줄을 길게 서 있는데다 짐들도 많아서
자리잡고 서있기도 힘들다.
이란쪽에서 외국인이라고 빨리 통과시켜주어 조금 빨리 통과했다.
터키쪽에서도 여권을 막흔들어대며 이미그레이션 직원에게 보이니
먼저 앞으로 오라고 한다.
> 어디에 가냐?
> 터키.
> 이곳이 터키인데?
> 터키 여기저기 다 갈꺼다.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통과하긴 했으나 2시간은 걸렸다.
터키측 국경을 빠져나오니 미니버스가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두바야짓까지 가서 숙소를 잡고 처음으로 터키에서 밥을 먹었는데
맛없는 빵은 항상 큰 바구니에 담겨져 있어서 맘껏 먹을수가 있었고
밥에 고기나 야채로 만든 스프같은 것을 곁들여 먹었는데
난 빵이 익숙치 않아 밥만 먹느라 양이 좀 적은 듯 했다.
환전을 했는데 1달러에 45만 리라 정도 된다.
돈의 단위가 크니 밥한번 먹으면 80만 리라정도... 대단한? 액수다.
터키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달러가 오른다고 한다.
조금 있으면 곧 1달러에 50만 리라가 될거라고 한다.

국경마을이라 군인들이 참 많은데 그들은 영화속의 엑스트라처럼 걷고있고
이 동네도 어찌보면 영화셋트처럼 어딘가 모르게 엉성한 분위기다.
우리나라와 같이 헌병이 있어서 지나 다니는 군인들의 용모등을 검사한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날씨가 싸늘하고 오늘은 구름이 끼어 Ararat 산이 보이지 않는다.

저녁 6시쯤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계속들리고 있어 그리로 가보니
결혼파티가 열렸다.
사람들이 손을잡고 원을 크게 만들어 춤을 추고 있다.
나이많은 아저씨부터 어린소녀까지 춤을추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Tea에 관해 재미있는게 하나 있는데 인도에선 짜이라 부르며
좀 진하고 우유까지 첨가한 tea 이고
이란에선 차이라고 부르고 맑은 tea.
터키에선 샤이라고 부르고 역시 맑은 tea 이다.
서로 엇비슷하며 어느 자리에 앉기만 하면 tea를 마시는 모습들이 또 비슷하다.
 

1999. 9. 13.  월  Dogubeyazit - Erzurum

두바야짓에서 하루 더 머물까 하다가 에르즈람으로 향했다.
중간중간 마을에 들려 사람들을 태우고 가는데 마을에서 떠나는 사람들을 전송할 때 양쪽볼을 맞대고 가볍게 키스하고 떠나는 버스에 손을 흔들어 전송한다.
에르즈람에 도착하자마자 고등학생2명이 따라붙어 숙소비를 조금 띵겨 먹을 요량으로 계속 따라다녔지만 중심지까지 길 안내만 한 꼴이 되었고 난 그들을 따돌리고 겨우 숙소를 잡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계속 싼 나라만 다녀서 숙소값이 정말 비싸게 느껴진다.
별로 좋지도 않은 방이 거의 4달러정도가 되다니..

이 도시에 여행자는 나 혼자인듯하다.
길을 거닐다 대학생이라고 하는 터키청년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의 아버지가 대사관에서 일해서 파키스탄,인디아,러시아등 여러나라를 가 보았다고 한다.
내가 인터넷을 쓰고 싶다하니 에르즈람엔 인터넷까페가 아주 많고 값도 싸댄다.
길 안내 받고 그와 헤어진후 메일확인을 했다.

인터넷을 끝내고 옆에 청바지가게가 있어 들어섰더니 주인이 나를 너무 반긴다.
음... 살거 아니고 쫌만 둘러보겠다고 했는데도 너무 친절하게 대해준다.
사실 이런 깨끗한 청바지가게를 본지가 너무 오래된 것 같아 들어서게 된 것이다.
주인아저씨는 이쁜 유리잔에 담긴 tea를 한잔 내주고 이런저런 얘길 물어본다.
바지는 25달러정도 되는데 질은 괜찬은 것 같다.
그가 말하길 터키에서 알아주는 브랜드라고 한다.
즐겁게 얘기하고 나와 밤길을 걸어 숙소로 향했다.
딱히 볼것도 없는 도시인데다 썰렁하기도 하여 내일은 다른곳으로 이동해야겠다.
 


1999. 9. 14.  화  Erzurum - Usufeli

버스정류장을 찾느라 한참을 헤멘후 미니버스로 유스펠리로 향했다.
가는 길 중간에 Tortum이라는 곳이 있는데
작은 시골이라 갑자기 내려서 구경하고 싶어졌다.
차에서 내리니 동네 꼬마와 학생들이 다 몰려든다.
빨리 앞에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가서 일단 피한 후 밥을 시켜 먹었다.
밥을 먹고 나와 동네를 주욱 돌아보니 이건 작아도 너무 작고
외국인 여행자는 내가 처음인지 모두들 신기한 눈빛으로 구경한다.
유스펠리로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옆 찻집에서 샤이를 마시던 사람이 들어오라고 막 손짓한다.
샤이를 한잔 사주며 이런저런 얘길 물어본다.
유스펠리로 간다고 하니 곧 미니버스가 올테니 여기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잠시후 미니버스가 나타나니까 그 아저씨가 나가서 버스를 잡고
내가 갈곳을 설명해주고 나를 태운다.
빠이빠이하고... 곧 유스펠리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숙소를 잡고 주변을 거닐었다.
작은 동네지만 앞에 계곡물이 흐르고 산이 보이는 아름다운 동네다.
여름에는 이곳에서 트레킹을 하지만 지금은 겨울이라 트레킹은 없단다.
동네를 한바퀴 돌아본후 숙소앞에 앉아 있는데 트레킹 가이드라고 하는 사람이 말을 걸어온다.
지금은 시즌이 아니라서 쉬고있다고 하는데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자기도 한국에 아는 친구가 있는데 이름은 "비야 한" 이라고 한다.
나도 그녀를 책을 통해 안다고 했다.
그의 집에 같이 가자고 하여 따라나섰다.
트레킹때 찍은 사진들도 보고 Tea도 한잔 하며 얘기 했는데
이녀석 결국 내 카메라를 사고 싶어한다.
미놀타 카메라를 보여주며 이것을 주고 돈도 더 얹어 줄테니
카메라를 팔라고 한다.

> 너 카메라도 좋은데 왜 내것을 살려고 하냐?
> 너 카메라가 정말 좋아보여 난 좋은 카메라를 살려고 벼르고 있었어
> 이건 내가 네팔에서 정말 큰 맘먹고 산거고 내가 정말 아끼는 카메라야
  그리고 그동안 여행하며 찍어서 정도 많이 들었어 미안해.
> 그래.. 할수없지..  나중에라도 다시한번 잘 생각해봐.
> 그럴게... 하지만 난 내 카메라가 좋아,,, 미안.
숙소로 돌아와 낮잠을 즐긴후 저녁을 먹었는데 말이 안통해 한참을 헤메야만 했다.
 


1999. 9. 15.  수  Usufeli - Trabzon

아침에 계곡 건너편을 돌아본후 12시에 트라브존으로 가기로 했다.
우선 미니버스를 타고 Artvin으로 향하고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는
큰 버스로 갈아탄다고 한다.
그런데 아트빈에 너무 늦게 도착한 때문인지 버스가 떠나버렸고
2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서두를 것 없는 입장이기도 하고 아트빈을 돌아볼수 있어서 괜찮았지만
짐짓 화난 표정으로 여행사에 앉아있는 아가씨한테 막 따졌지만 영어도 안통하는데다
여행사의 이쁜아가씨는 내가 막 따져도 생글생글 웃고 있어서 나도 따라 웃을 수밖에.....

평평한 길이라곤 없는 언덕마을인데 인도의 다르질링과 비슷하단 생각이 든다.
이리저리 마을을 둘러보다가 전화국인듯한 곳에 들어가서
아저씨한데 인터넷 써도 되냐고 하니깐 그 사람의 사무실로 데려가서
자기의 업무용 컴퓨터를 쓰라고 하고 tea까지 준다.
내가 잘못찾아 들어온 것을 알았지만 일단 이렇게 된거 인터넷을 조금 이용하고.....
돈을 내야 하냐니깐 그냥 가라고 한다.
우체국으로 간다고 하니 계단 밑에까지 내려와서 우체국이 있는곳을 가리켜준다.
언제나 그렇듯, 환하게 웃는 표정과 고맙다는 손짓 등으로 인사를 하고 우체국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집에 전화한번 하자.. 전화카드사서 간단히 잘 있다고 통화했다.
여기저기 옷가가에 들려 구경하다가 결국 청바지를 한 장 사게 되었다.
계속 반바지만 입기엔 날씨도 춥고, 하나 있는 긴 면 바진 찢어져서 입을 수가 없다.
드디어 버스가 와서 트라브존으로 향한다.

얼마쯤 가니 흑해가 나오고 흑해를 따라 계속 서쪽으로 달린다.
흑해가 왜 흑해인가 했더니 해변가가 지저분해서 바위들이 모두 검은색이고 해변가에 쓰레기들도 많아서 그런가보다....(농담)
밤이라서 그런지 바다는 정말 검은색으로 출렁이고 있다.
버스가 중간에 고장이 나서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10시가 다 되서야
트라브존에 도착했다.
한참을 걷다보니 러시아 시장이 나오고 숙소가 많이 보여 싸 보이는 곳에 들어섰더니 러시아 창녀들이 진을 치고 있다.
숙박을 위한곳이 아닌듯했다.
다행히 창녀가 없는 한 숙소를 잡아 짐을 풀었다.


1999.  9.  16.  목  Trabzon

기독교인들이 이슬람교의 박해를 피해 절벽위에 건물을 짓고 살았다는
스멜라 유적지가 트라브존 근처에 있다.
그곳까지 갔다오는 투어가 있는 버스정류장에 갔더니 이미 오늘은 끝났고 매일 10시와 11시 두차례 있단다.
할 수없이 내일 가기로 하고 Russian bazzar를 둘러보았다.
긴 통로식으로 된 시장에 없는게 없을정도로 많은 물건들을 팔고 있다.
두꺼운 대학노트로 여행하기 몇 일 전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 했는데
벌써 몇장밖에 남지 않아 일기장으로 쓸 노트를 하나 샀다.

같은가격에 도시의 중심부와 가까운 maydan 근처로 숙소를 옮겼다.
시내의 중심부는 돌로 포장 해놓아서 더욱 운치가 있고 넓은 마이단 공원엔 음료나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거리를 거닐며 오랜만에 도시의 활기를 느낀다..
차들이 지나칠때마다 돌포장 길에서 두두두둑~~ 하는 소리가 들린다.
저녁으로 바로 앞에 보이는 흑해에서 잡았을 생선구이를 먹었다.
저녁 8시밖에 안됐는데 문닫은 상점들이 많다.
생선이 좀 니글거려 맥주한잔 하려했는데 맥주 파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아 콜라 한 캔 사서 마시고..


1999.  9. 17.  금  Trabzon

10시에 스멜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위해 여행사에 갔더니
인원이 3명밖에 되지 않아서 11시에 인원을 더 모아 출발한다고 한다.
할 수없이 11시에 다시 여행사로 나가 버스를 탔다.
페루인, 스위스인, 나 이렇게 외국인 3명과 나머지는 다 터키인이다.
미니버스로 50분쯤 달려 스멜라에 도착했다.

아래에서 보면 절벽에 건물이 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태국에서 만든 학생증이 파키스탄과 이란 그리고 이곳 터키에서도
많이 활용할 수 있어 정말 좋다.
모든곳은 아니지만 일부.. 입장료등을 학생할인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입장료를 끊어 스멜라로 가기위해 산길을 올랐다.
복원작업하는 곳이 많았는데 예전에 그렸을 벽화등을 볼 수 있다.
항상 느끼는것이지만 종교란 인간에게 상당한 힘을 주는 것 같다.
그것이 옳은것이든 그른것이든.

페루와 스위스에서 온 남자들과 얘기를 나누었는데 스위스남자는
한달의 휴가를 받아 여행 왔다고 한다.
휴가가 한달씩이나 되다니..  페루인은 인도에 갈것이라고 하여
인도에 대해 여러 가지 얘길 해주었다.
산을 내려왔지만 오후3시에 돌아간다고 한다.
시간이 남아 우체국에서 옆서를 사서 쓰고....  오는길에 otogar에서 내려달라하여
내일 저녁 Kaysery행 버스를 예약했다.
케이세리에서 다시 괴레메행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시내로 돌아와 밥을 먹고 Ayasofia Museum 으로 향했다.
입장료가 50만 리라나 했지만 오래된 성당이라는 것 외엔 별 볼 것은 없었다.
더군다나 입구에서 아이들이 버릇없이 까불어 대는 바람에 기분까지 좋지 않았다.
시내로 돌아와 흑해가 보이는 Kale park에 나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다.
연인들이 데이트를 하고 있었고..
숙소거실에서 터키인들과 이런저런 얘길 하며 시간을 보내다 방으로 들어왔다.
 


1999. 9. 18.  토  Trabzon - kaysery - Goreme

시내의 거리와 공원과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다 다섯시쯤 오토가르로 향했다.
오토가르의 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버스에 올랐다.
흑해연안을 따라 버스는 계속 달린다.
해가 지고 있었다.
하늘은 붉게 물들었고 바다는 보라색이 되었다.
중간에 버스에서 빵과 콜라를 주어 먹고 비디오를 틀어주었지만
난 잠이 들었다.
휴게소에 설때마다 화장실에 가는데 갈때마다 10만 리라나되는 돈을 내야해서
무척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곳이든 화장실에선 돈을 받는다.


1999. 9. 19.  일  Goreme

아침 7시쯤 Kaysery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괴레매행 버스에 올랐고 곧 괴레메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주변을 한바퀴 돌아보는데 서양 남자 두명이 있길래
어디 묵냐고 했더니 자기들 묵는 숙소에 한국인도 있으니 거기에 가보라 한다.
도미토리에 한명의 한국여자가 (정씨) 묵고 있었다.
일단 도미토리도 싸고 깨끗하지 않은 물이지만 작은 수영장도 있어서 괜찮았다.
오랜만에 한국인을 만나는데 그녀는 이스라엘의 키부츠에서 일을 끝마치고
여행 중이라고 한다.

같이 Open Air Museum에 갔는데 스멜라와 같이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의
박해를 피해 숨어살면서 통로속에 많은 벽화를 남겼다.
버섯처럼 생긴 기암괴석들이 볼만하다.
작은 시골마을 이지만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곳이라 식당이 도시보다도 비싸다.
해질무렵 숙소옆 언덕에 올라 마을을 바라보았다.
작고 조용한 마을주위로 기암괴석들이 주변에 둘러쳐져있는 아름다운 광경이다.
시즌이 되면 마을사람보다 관광객이 다 많이 보일 것이다.
아무튼 도시보단 좋은 느낌이다.

밤 11시30분에 디스코클럽에서 velly dancing show가 있다길래 정과 함께 가 보았다.
사람이 별로 없어서 오늘은 쇼가 없단다.
맥주마시고 춤추고 놀았다.
바위를 깍아 만든 디스코 클럽이다.
지금 묵고 있는 도미토리도 바위를 깍아 만든 숙소...


1999. 9. 20.  월  Goreme

박물관쪽으로 가다가 왼쪽으로 꺽어져 swards valley 라는곳으로 들어섰다.
기암들 사이로 샛길이 나 있는데 인적이라곤 없는 길을 혼자 걷자니 망망한 어느 별을 혼자 걷고 있는듯한 느낌을 준다.

한참을 여기저기 헤집고 돌아다니다 보니 길이 말이 아니었다.
땅은 저 밑에 보이는데 바위 위에서 어떻게 내려 서야할지 난감하다.
억지로 기다시피하여 포도나무가 심어진 경작지로 내려설 수 있었다.
목이 말라 포도를 따먹었다.
포도를 먹으면서 걷자니 토마토밭이 나타났다.
잘익은 토마토를 하나 따 먹었다.
저~ 쪽에서 농부가 나를 부른다.
언덕위의 좁은 토마토밭에서 토마토를 따고 있었다.
늙은 농부는 나에게 담배도 권하고 토마토도 권한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니 그냥 바라보며 웃을 수 밖에..

다시 기암 사이를 걸었다.
걷다보니 넓게 퍼진 기암들 사이에 떨렁 혼자인데 다시 돌아갈길이 걱정되었다.
포도나무 옆 그늘에 앉아 포도를 한알씩 따먹으면서 어떻게 돌아가야하나 생각하며
살랑살랑부는 바람을 친구삼아 지친몸을 쉬었다.
다시 한참을 걸어 아스팔트길을 찾아내어 돌아올 수 있었는데
오는 길이 너무 멀고 더워서 정말 힘들었다.

숙소에서 일하는 아흐메드가 수영을 하잔다.
그가 물위에 떠있는 지저분한것들을 걷어내더니 팔둑에 공기주머니를 차고 돌아왔다.
짜식.... 터프한척 하더니.. 물이 깊은데 수영을 못하니 공기주머니를 달아야한대나....
물이 너무 차서 1시간도 안돼서 몸을 덜덜떨며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옆에 있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축구를 하길래 내가 기웃거렸더니
아흐메드가 함께 가서 축구를 하잔다.
이리뛰고 저리뛰고.. 오랜만에 축구를 하고 있는데 축구공 주인인듯한 아이가 공을 갖고 집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축구는 끝나버리고 말았다.


1999. 9. 21.  화  Goreme

지하도시를 보러 Navsehir에 가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Kaymakli까지 갔다.
미로처럼 굴을 파서 거실, 방, 부엌 등을 만들어 놓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깊은곳에 개미굴 같고 미로같은 굴을 팠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숙소로 돌아왔는데 어제 축구할 때 만났던 아이린(13살 소녀)를 만났는데 자기집에 가자고 한다.  
숙소 바로 옆이었는데 집 마당엔 포도가 탐스럽게 열려 있었고
집안의 모든 바닥엔 카펫이 깔려있다.
아이린의 엄마와 언니가 반갑게 맞아 준다.
앨범을 보여주는데 그 집안은 독일에서 이사온 모양으로
엄마와 아버지의 젊은 시절과 아이들의 아기사진은 독일에서 찍은것들이다.
tea와 그집의 정원에서 땄을 포도등을 먹고 즐겁게 시간을 보냈는데
더욱이 아이린의 언니인 17살 짜리 처녀가 이뻐서 더욱 즐거웠다. ^^

아이린이 영문숙제가 있다고 도와달라고 한다.
영문숙제는 지진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잃어 버린것에 대한 것이었는데
생각해보니 터키에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 세계가 떠들석 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손짓발짓으로 겨우 알아들어 영문숙제를 도와줬다.
나도 인도의 델리에서 터키에 지진이 일어났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아직도 여진이 남아 약한 지진은 가끔 일어난다고 한다.

영문숙제
We are likely to think of the future.
We live dreaming of something.
Nobody knows what will happen tomorrow but something is bound to happen.
So, we have hope for the future.

Thousands of people went to bed on Aug. 16, 1999.
However, something terrible happened to them next morning.
All of a sudden, those who lived on the fourth floor got run into those
who then slept on the first floor.
Who in the word could think this would happen?
They lost all they got, such as lovers, families, houses, and so on.
God gave them their lives and then took them back again.

A lot of people got into sleep for good.
There remained nothing to turn back.
Once they got killed, we could not revive them, nor give them hope and love again.

Nevertheless, the world keeps going.
We have to figure out the source of problems and check whether or
not our environment or surroundings are safe.
We must construct building as strong and safe as possible,
and get ourselves prepared for disastrous accidents in advance.

We have our fingers crossed that horrible quakes like this never happen again,
with the deepest sympathy to those who were victimized by it.
 


1999. 9. 22.  수  Goreme - Kaysery - Malatya

말라티야의 근처 Nemrut Dagi 라는곳은 산꼭대기에 2000년전에 만들어놓은 조각상들로 유명한곳이다.
말라티야를 가기위해 먼저 케이세리로 향했다.
밤 11시 3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예약하고 케이세리 시내구경을 나섰다.
공원인듯한곳에 갔다가 여고 3년생들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는데 그들은 한국과 같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큰 걱정이라고 한다.
같이 사진 찍고 보내주기로 했는데 아이들이 모두 성숙하고 이뻐서 즐겁게 시간을 보낼수 있었다.
헤어질때는 6명이나 되는 아이들과 터키식 양볼 뽀뽀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공원 바로 옆 대형마켓을 한바퀴 돌고 식당에서 콜라 한 캔 마시며 시간죽이기를 했다.
밤 10시쯤 오토가르로 돌아와 버스를 기다리는데 예약한 버스회사의
사람들이 어찌나 재밌던지 시간가는줄 모르고 기다릴 수 있었다.
밤 11시 40분에 버스가 왔다.


1999. 9. 23.  목  Malatya

새벽4시쯤 말라티야에 도착했다.
너무 이른시각이라 근처 허름한 차이가게에서 잠과 추위에 시달리며
날이 새기를 기다려 아침 6시쯤에 숙소 하나를 잡을 수 있었는데
일하는 아이를 깨워 억지로 방에 들 수 있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배낭을 던져놓고 침대속으로 기어들었다.
정신없이 자다 일어나 tourist information center를 찾아
Nemrut Dagi 투어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투어는 미니버스로 산 정상 근처 호텔까지 미니버스로 이동,
일출과 일몰, 하룻밤의 숙박과 저녁식사, 아침식사포함 30 us달러 라고 한다.
내일 오후 12시 30분발 투어를 가기로 하고 말리티야 시내를 둘러보았다.

터키는 어느도시든 중심부에 공원과 야외찻집을 꾸며놓아서 보기에 좋고 그곳에서 여유롭게 차 마시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정말 잘 사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우리나라보다 잘 살지는 못하더라도 어딜 보던지 더 여유가 있어 보인다.
어디서건 가깝게 공원을 접할수 있고 그곳에 앉아 차를 즐기며 담소하는 모습은 우리나라에선 보기 힘든 것이다.
차도나 인도를 보더라도 쾌적하게 꾸며놓은 것은 우리나라와 비교 할 수 없을만큼 유로워 보이고 더 선진국화 되어있는 것 같다.
언젠가는... 우리도 여유를 찾을 수 있겠지.


1999. 9. 24.  금  Malatya

10시쯤 투어를 위해 나섰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Sabri란 사람이 왔는데 그 사람과
다른 또 한사람이 산 위의 호텔 주인이며 운전도 한다고 한다.
Korea에서 왔다고 하니 한국에 자기 친구가 있다고 한다.
이름은 비야 한.
유스펠리에서도 한비야 친구라는 트레킹 가이드를 만났는데
이곳에서도 만난다.
같이 얘기를 하다가 자기 여자친구와 함께 근처 호수로 Picnic을 가지 않겠냐고 한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 결국 Tour는 내일로 미루고 그들과 함께 호수로 향했다.
그녀의 여자친구는 삼랏 이라고 하는데 퉁퉁한 체격에 좋은 인상 이었다.
쇠고기와 닭고기, 야채등을 사서 호숫가에 앉아 바베큐를 해 먹고 맥주도 마셨다.
조용한 호수였다.
보트를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건너가 수영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나는 발을 조금 담근후 잠이 든 것 같다.

저녁 부렵이 되자 해가 지는 동시에 둥근 달이 떴다.
오늘이 한국에선 추석인가..
추석..... 2년째 추석을 타국에서 보내는구나.
말라티야에 돌아왔는데 내일이 군 입대일이라 빈방을 찾을 수가 없다.
군대에 들어갈 많은 젊은이들이 그들의 애인들과 또는 가족들과 걷는 모습이 보인다.
결국 빈방을 한 개도 찾지 못하고 나는 사브리의 집에 가서 자기로 했다.
사브리는 집에 가면 자기의 여자친구를 만났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한다.
그의 집은 조금 떨어진 시골에 있었는데 그의 집에도착해서
소개는 시켜주지 않았지만 그의 어머니, 부인, 아들, 여동생이 있었던 것 같다.
부인은 시골 아줌마였고 사브리의 말처럼 서로 이혼을 원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어쨌든 그는 내옆에서 잤다.


1999. 9. 25.  토  Nemrut Dagi

아침 6시반쯤에 일어나 대충 세수를 하고 그의 차로 다시 말라티야에 왔다.
그는 다른팀의 투어 가이드를 나가기 위해 어딘가로 떠나고 나는 아침 7시부터 시내를 헤매게 생겼다.
차이한잔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인터넷까페를 찾아 메일 확인하고
11시 40분쯤 돌아오니 Tour 떠날 사람이 나까지 7명정도 되었다.
12시에 드디어 출발, 중간에 점심식사후. 4시쯤 Nemrut 산 꼭대기 근처
Gunes 호텔에 닿았다.

4시 30분쯤 다시 차를 타고 산꼭대기로 올랐다.
산 정상은 자갈무덤이고 그 동쪽과 서쪽에 돌 조각상들이 흩어져 있다.
해질 무렵이 되자 다른 호텔에서 터키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왔다.
바람이 차서 1시간쯤 지나자 추위에 떨어야 했다.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관도 좋고 돌조각상들도 괜찮았다.
해가 지는 모습을 본후 호텔로 돌아오자 저녁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저녁을 먹고 맥주도 한잔하고 같이 간 관광객들과 카드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산꼭대기까지는 전기가 들어오지않아 밤 10시가 되자 발전기를 꺼서 주위가 암흑 이었다.
촛불을 켜놓고 일기를 썼다.
내일은 산 정상에서 일출을 봐야하기 때문에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한다.
 


1999. 9. 26. 일  Malatya - Antalya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일어나라 한다.
호텔에서 일하는 아이가 각각의 방을 두드리며 사람들을 깨우고 있었다.
5시 30분쯤 산에 올랐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몹시 추웠는데 벌써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6시쯤되자 해가 붉게 올라오기 시작한다.
산 정상에서 일출을 보긴 처음인 것 같다.
언제나 해는 뜨고 지는 것 일테지.
해가 완전히 올라오고 사람들이 모두 내려가는 것을 본후 내려왔다.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서둘러 내려갈 준비를 하고 다시 말라티야로 향했다.
11시쯤 도착해 관광안내소 앞에 가니 사브리와 그의 여자친구가 와 있었다.
같이 얘기좀 하다 헤어져 Antalya행 표를 예매 했다.
오후 3시쯤 안탈리야로 출발...
인도의 불편한 버스에서는 잠을 잘 잤는데
터키버스는 너무 편해서 그런지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어쨋든 버스는 달리고 밤은 깊어간다.


1999. 9. 27.  월  Antalya

새벽4시쯤 안탈리아에 도착했다.
원래 7시에 도착 예정인데 항상 이렇게 빨리 도착해서 새벽부터 떨게 만든다.
스낵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6시쯤 버스를 타고 Kaleici 지역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려 Kaleici 거리를 걷는데 골목골목이 모두 Pension(게스트하우스)
이었고 온통 꽃향기로 가득했다.
아무도 없는 골목길을 꽃향기를 맡으며 걷는기분이 너무 좋아 피곤함이 싹 가시는 듯 했다.
몇군데를 헤매다 겨우 도미토리에 아침식사 포함 2,300,000리라에(5달러) 숙소를 잡았다.
펜션의 정원에도 꽃향기가 가득하다.
주방도 쓸 수가 있어서 한국음식을 만들어 먹어야겠다고 생각 했다.
아침식사후 주변의 볼거리들을 둘러보고 tram을 타고 종점까지 가서
발 아래로 펼쳐진 바다와 Konyaalty해변을 보았는데 바닷물이 아주 파란색 이었다.
녹색은 보이지 않고 파란색만으로 된 바다.
지중해의 파란물결...
도시의 바다인데도 물이 너무 맑았다.

돌아올땐 배가 많이 몰려 있는곳으로 가보았는데 Tour에 참가하라고
각 배에서 나와 호객을 한다.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tour가격은 계속 내려가고.. 재밌다.
저녁때는 일본애들과 얘기하다가 닭죽을 해먹기로 하고
시장을 본후 마늘과 양파, 감자, 고추만 넣고 밥과 닭을 끓였는데
맛이 괜찮았다.
돈을 좀 많이씩 걷은 것 같아 미안했지만 맛있다고 다들 잘 먹으니 다행이다.
내일은 일본인들이 일본음식을 대접하겠다고 한다.

이 도시 근처엔 Perge, Aspendos 등 유적지와 폭포등 불것들이
주변엔 있는데 여행사의 투어는 너무 비싸고
이 숙소에서 그냥 차로 돌아보는 투어는 15us달러지만
승용차를 렌트해서 둘러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두명의 독일 남자와 한명의 오스트레일리안 중국여자가 있어
내일 차를 rent해서 둘러보자고 제안했다.
처음엔 양놈들이 좀 머뭇거리며 생각해 본다고 하더니
나중에 좋다고 OK 했다.
어린넘들이라 얘기는 잘 통하지 않는다.


1999. 9. 28.  화  Antalya (Perge) (Aspendos) (Manavgat 폭포)
                         (side 해변) (Kursunlu 폭포)

아침 10시쯤에 차를 렌트해서 우선 "페르게"로 향했다.
많은 기둥들이 있었고 예전엔 좋았을테지만 이제는 폐허가 된
목욕탕이 있었다.

"아스펜도스"는 자금도 가끔 공연을 한다고 하는 큰 원형 극장인데
입장료를 내지 않고 위쪽 언덕으로 올라가 담을 넘어 극장의 맨위에서
극장을 구경했다.
이곳에서 클래식 콘서트 한번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마나브갓 폭포는 폭포 주위로 레스토랑만 즐비하고
아무 기대도 않했던 쿠르순루 폭포는 산책할 수 있는길이
폭포 아래쪽으로 길게 나 있어서 쉬거나 걷기에 좋았다.

시데 해변은 온통 가게만 즐비했고 ....
돌아오는길엔 밤이 된데다가 시내에서 길을 잘 몰라 시내를
몇바퀴나 뱅뱅 돌고.. 아무튼 차를 렌트해서 여유롭고 싸게 돌아다닌 것 같다.
차 빌리고 기름까지 넣고 다 해서 1인당 10달러 정도가 들었다.


1999. 9. 29.  수  Antalya

아침에 숙소에 막 도착해 짐을 푼 다까시 가족을 다시 만났다.
파키스탄에서 처음 만나 이렇게 계속 만나게 되다니
정말 인연이 있는 모양이다.
다까시의 어린 딸 나나미도 나를 만나 너무 즐거워 하는 모습이다.
약속도 없이 어떻게 같은 숙소를 이리도 잘 찾아 만나게 되는지.
델리와 자이살메르에서 만났던 유타카도 다시 만났다.

다까시 가족과 함께 해수욕을 가기로 하고 코냘티 해변으로 향했다.
아주 작은 자갈이 깔린 깨끗하고 파도가 없는 해변이다.
많은 사람들이 수영이나 선텐을 하고 있었다.
수영하고 맥주마시고 낮잠자고.. 이게 분명 지중해라는 바다인데
어떻게 이렇게 파도가 하나도 없을수가 있는지 신기하다.
다른 일본인들이 닭죽을 먹었다고 자랑하는 바람에 다까시가 닭죽을 해달라고 조른다.
다 같이 시장으로 향해 이번엔 생강, 터키인삼, 마늘등을 더 사서
닭죽을 끓여 7명이 함께 먹었는데 모두들 맛있다고 좋아한다.
밤 늦게까지 다까시 가족과 함께 도착한 마리코와 이야기하고
게임하며 놀다가 늦게 잠이 들었다.


1999. 9. 30.  목  Antalya

오늘 아침식사는 어제사온 반찬과 빵을 사서 먹고..
머리를 짤랐는데 상체와 머리 마사지까지 시원하게 받았다.
점심을 굶은채 맥주를 마셨더니 취하는 것 같아 한참 자고 일어났더니
저녁준비를 하고 있다.
오늘 저녁은 마리코가 준비를 한다.
좀 기름지고 간장을 사용한 반찬뿐이라 조금 니글거렸지만 아주 많이 먹었다.
식당에서 사먹는 음식만 먹다가 이렇게 해 먹으니 너무 좋다.
오늘도 일본친구들과 밤늦게까지 떠들며 놀다가 늦게야 잠자리에 든다.

 

1999. 10. 1.  금  Antalya

요즘은 계속 다까시 가족과 유따가, 마리코와 함께 일본음식을 해 먹는다.
아침엔 김치를 만들었다.
오늘 저녁엔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오후에 나가 환전을 하고 계속 숙소에서 빈둥대며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혼자 저녁을 먹었는데 다까시 가족이 저녁준비를 하길래
또 저녁을 먹었다.   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애들도 김치를 아주 좋아한다.
오늘도 밤늦게까지 체스게임하며, 맥주 마시며,, 놀다가
새벽이 되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1999. 10. 2.  토  Antalya

아침을 먹고 숙소 옆 바위투성이인 해변으로 가서 낚시하며 놀다가
돌아와 맥주를 마시고...
항상 그렇다... 여기 저기 놀러다니고 맥주 마시는 것이 하루의 일이다.
내일은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 바다낚시를 하기로 했다.
 


1999. 10. 3.  일  Antalya - Bodrum

오늘밤 12시 보드룸행 버스를 숙소에서 예약하고 바다로 나갔다.
낚시배가 대기중이어서 곧 바다 가운대에로 나갔다.
긴 낚시줄 끝에 추가 달려있고 그 위로 올라가며 5개정도의 바늘이 달려있어
새우미끼를 끼우게 되어있다.
낚시줄을 늘어뜨리고 고기가 미끼를 물면 그 진동을 손가락으로 느끼는 것이다.
모두들 몇마리씩 고기를 쉽게 잡았다.
낚시가 실증날때가 되자 모두들 바다로 뛰어든다.
튜브를 타고 일행들과 같이 바다에서 수영하며 놀다가
보트위에서 누워 일광욕을 하고 이곳에서 장기투숙하는
유까의 비키니 몸매를 감상하다가 오후 2시쯤되어 돌아왔다.
잡은 고기가 다 합해 4Kg 정도 되었는데 고기 손질을 하느라
손에서 비린내가 가시지 않는다.

저녁때는 일본애들이 고기를 퀴겨서 맛있게 먹고 모여서 같이 놀다가
10시반쯤 작별을 하고 버스를 타러 나갔다.
오토가르에선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작별하고 서로 부둥켜안고 난리다.
24시가 되자 대기중이던 버스가 일제히 떠나기 시작했고 배웅나온 사람들과
떠나는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간다.
피곤했는지 곧 잠이 들었다.


1999. 10. 4.  월  bodrum

아침 8시 도착 예정이었으나 7시쯤 보드룸에 도착했다.
이곳저곳을 헤맨끝에 숙소를 잡고 보드룸 성으로 향했으나
월요일은 휴관이라 내일 다시 오기로 했다.
tour용 호화 여객선들이 즐비한 항구를 한바퀴 돌아보고
보드룸 성 사진을 찍기위해 언덕까지 먼길을 걸어 겨우 사진 한방찍고 숙소로 돌아왔다.
햇볕이 따갑다.
낮잠 한숨자고 부두 근처 거리를 걸으며 갖가지 배들을 구경하며 걷다가
오토가르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왔다.
내일 오후 1시쯤 떠나는 파묵칼레행 버스를 예약했다.
 


1999. 10. 5.  화  bodrum - Pamukkale

보드룸 성으로 향했다.
성에서 지중해가 보인다.
유럽의 단체 관광객들이 몰려와 내가 나갈때가 되자 성안과 입구가
꽤 혼잡해 졌다.
성 밖 바다에 호화 유람선이 몇척 떠 있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오토가르에 옮겨논후 한시까지 시간을 보내야 하므로
거리를 거닐며 시간을 보내고 점심을 먹은후 버스에 올랐다.
뭔가 이상하다 했더니 버스는 Denizli 까지 밖에 안가고
데느즐리에서 갈아타야 했다.
파묵칼레까지 direct로 가냐고 몇번을 확인 했었는데.....  화가 많이 났으나
어쩔 수 없었다.

작은 마을인 파묵칼레에 도착해 숙소를 잡았다.
수영장과 넓은 정원이 있는 괜찬은 숙소지만 손님도 몇 명 없고
싸서 지내기에 좋다.
주인은 이 숙소를 인수한지 얼마 안되는데 한국 가이드북에 E-mail을
보내 책에 나오도록 하려고 한다길래 도와서 E-mail을 보내주었다.
숙소에서 파묵칼레의 석회봉이 보인다.
하얀색이면 멋있을테지만 중간중간 노란색으로 변색되어 있어서
그리 깨끗해 보이진 않는다.

 

1999. 10. 6.  수 Pamukkale

아침을 먹고 석회봉으로 올랐는데 입장료가 백오십만 리라나 하여
다시 길을 돌아 뒷길로 석회봉을 올랐다.
가이드북에서 사진으로 보는것같이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신기한 모습들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석회봉보다는 뒤쪽 언덕에 있는 원형극장과 뭔지모를 오래된 건물이 조용하고 시간 보내기에 좋았다.
원형극장에서 Antalya에서 같이 차를 렌트했던 Julia 라고 하는
호주국적의 중국여자를 다시 만났다.
날씨는 따듯하고 나른한 우리나라 가을 날씨와도 같다.
저녁을 함께 먹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와
석회봉에서 내려오는 물을 써서 석회가 많이 묻어있는 수영장에서
수영을 조금 했는데 물이 따듯했다.
저녁때는 Julia가 묵고있는 숙소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먹었다.
 

 

1999. 10. 7.  목  Pamukkale - Denizli - selcuk

아침에 차이한잔하고 데니즐리를 경유해서 셀죽으로 향했다.
데니즐리에서 유스펠리에서 만났던 트레킹가이드를 다시 만났다.
그도 여행중이라고 하는데 제법 큰 배낭을 메고 여행중이다.
내 카메라를 보더니 또 카메라 팔생각 없냐고 묻는다.
셀죽에 도착해 숙소를 잡고 바로 옆에있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유적을 돌아보았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약 기원전 500년전부터 세우기 시작해서 완성 되기까진 120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하는데 헤로스트라투스라는 작자가 불을 질러버려 재건 했으며 그 당시 가장 유명했던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의
2배의 규모로 만들어 졌다 한다.
지금은 거의 무너져 예전의 웅장함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숙소로 돌아와 숙소주인들과 시간을 보냈는데
숙소가 편하고 좋긴한데 여자라면 주인 남자를 조심해야 할 것 같다.

 

1999. 10. 8. 금  Selcuk (Ephesus)

아침에 일어나 에페수스로 향했다.
에페수스는 소아시아 고대 이오니아지방의 12개 도시중 하나였는데
그리이스의 3대 건축 양식인 도리아식, 코린트식, 이오니아식중
이오니아식 건축양식이 탄생한곳이며 그것은 예전에 경제적으로
매우 부유했음을 말해주는것이기도 하다.
벌써 많은 단체 관광객들로 입구가 붐빈다.
배낭여행자도 가끔 보이지만 모두 다 Couple이라
혼자온 사람은 나 혼자인 듯 하다.
큰 원형극장과 아직까지 아름다운 도서관건물등 구석구석
돌아보고 입구쪽으로 나오니 단체관광객들로 꽉차있어
시장에 온 것 같다.
아직까지 발굴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곳도 있다.
다시 길을 걸어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쉰후 아르테미스신전과
에페수스에서 나온 유적들을 전시해놓은 박물관으로 향했다.
가슴에 수많은 유방이 있는 아르테미스상과
멋진 대리석조각들이 많이 보인다.
내일 밤 9시발 이스탄불행 버스를 예약했다.
 

 

1999. 10. 9.  토  Selcuk - Istanbul

하루종일 숙소에서 빈둥대며 시간을 보내다
시간이 되어 오토가르로 나섰다.
드디어 이스탄불로 간다.


1999. 10. 10.  월  Istanbul

아침에 이스탄불에 도착, 여행자들이 몰려드는 술탄 아흐멧 지역으로 갔다.
Konya pension을 잡았는데 그곳에 또 다까시 가족과 마리코가 있는게 아닌가..
헤어져있던 몇일동안의 여행 얘기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그들과 함께 갈라타 타워로 향했다.
타워에 올라서자 이스탄불이 한눈에 보이고
유럽과 아시아를 좁은 보스포루스 해협이 가르는 것이 보인다.
저멀리로 모스크의 아름다운 실루엣이 환상적이다.
돌아오는길에 갈라타교 밑의 배위에서 구워파는 고등어 샌드위치를 먹고
주변의 시장구경을 하고 돌아왔다.
시종 걸어다녀 다리가 무척 피곤하다.
저녁은 오랜만에 다까시가족과 마리코 몇몇 다른 일본인들과 함께
중국식 식당에 가서 여러 음식을 시켜 많이 먹었다.

 

1999. 10. 11.  월  Istanbul

숙소가 너무 춥고 시설도 않좋아 좀더 싼 Orient Hostel로 숙소를 옮겼다.
마리코와 이스탄불 대학에 갔는데 신분확인은 물론 가방검사까지 하고
들여보내 주지 않으려 했지만 어렵게 정문을 통과해서 대학을 둘러보았다.
그리 크지는 않았는데 각 건물마다 금속탐지기로 검사를 한다.
대학이 아니라 무슨 정보기관이라도 되는것인가...
밥을 싸게 먹을수 있다고 하여 식당을 찾았으나 식당까지 문을 닫은 후여서
대학을 나와 이집션 바자르로 향했다.
활기찬 시장을 둘러본후 Topkap 궁전을 구경했는데
화려한 보석과 그릇들이 많았고 특히 큰 다이아몬드 앞에선
여자들이 자리를 쉽게 뜨질 못하고 있다.

술탄아흐멧 지역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한국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오늘은 숙소의 디스코 바에서 밸리댄싱 공연이 있는날이다.
바에서 맥주를 마시며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가슴을 아슬아슬하게 가린 여자가 나와 밸리댄싱을 추기 시작하고 분위기가 고조되자 한명 한명 가운데로 끌어와 춤을 추게 하고
결국 나중엔 모두가 나와 춤을 추게 되었고 그 사이 댄서는 사라져 버렸다.
즐겁게 춤추고... 즐겁게 놀았다....

 

1999. 10. 12.  화  Istanbul

보스포로스해를 가로질러 흑해 근처까지 운항하는 배를 타고
Anadolu Kavagi까지 가면서 이스탄불의 여러 모습들을 감상하고
이번엔 버스를 타고 이스탄불의 아시아쪽인 Uskudar 까지 와서
유럽쪽으로 지는 해를 보고 아름다운 모스크의 실루엣을 감상한후
숙소로 돌아왔다.

밤에는 전구를 여러개 달아놓아 번쩍이고 있는 블루모스크 앞에서
맥주를 사 와서 마시며 마리코와 이런 저런 얘기하며 이스탄불의
밤은 깊어가는데 저쪽 앞에선 남녀가 너무너무나도 뜨거운 장면을 연출하며 볼거리까지 제공하고 있지만....
너무 추워 숙소로 돌아왔다.

 

1999. 10. 13.  수  Istanbul

이스탄불의 신시가지인 Taksim 광장과 Istiklal 거리를 가보기로 하고
에미노뉴에서 버스를 탔다.
현대적인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곧 탁심광장에 도착했다.
분수주위에 사람들이 앉아 얘기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곳에서 다까시를 만났는데 일본 대사관에 간다고 한다.
이스티크랄 거리를 거닐었다.
길 가운대로 이쁜 트램이 천천히 오간다.
번화가 답게 세련된옷을 많이 볼 수 있으며 자유스런 젊은이들을 느낄 수 있다.

술탄아흐멧 지역으로 돌아왔더니 장이 열려있다.
매주 수요일이면 장이 열린다는데 야채와 과일이 특히 많이 보인다.
귤이 보이길래 조금 사서 먹었는데 역시 우리나라 귤이 맛있다.
그저께가 터키에 온지 한달이 된날이라 얼마나 썼는지 확인을 해보았다.
540달러.   헉... 눈이 튀어나온다.
한달에 540달러라니 인도, 파키스탄, 이란에 비해 약 3배.

 

1999. 10. 14.  목  Istanbul

내일 아침에 마리코가 이스라엘로 떠난다고 하여 같이 이집션 바자르에가서 애플티를 사고 한국식당에가서 볶음밥을 먹었다.
이곳 터키에서 시리아, 요르단을거쳐 이집트를 가려고 했었지만
시리아, 요르단은 포기하고 바로 이집트로 가기로 했다.
돈도 거의 다 떨어져 가는데다 혼자의 여행이 지친것도 같다.
 

1999. 10. 15.  금  Istanbul

새벽에 마리코를 떠나보내고 다까시가족이 싸고 정말 좋은 숙소를 잡았다고 하여 술탄아흐멧에서 5분거리인 Galata hostel로 숙소를 옮겼다.
주방을 사용할 수 있고 옥상에서 바다가 보이는 숙소였는데
특히 주인인 이스마엘이 너무 좋아 맘에 든다.
이스마엘이 빵을 사와서 아침을 숙소에서 먹었다.
Tea는 무료여서 아무때나 마시고 싶을 때 마시면 되었다.
한국인커플이 한팀 묵고 있고 나머지 몇 명은 다 일본인이다.
한국인 커플에게 이집트에 대한 정보를 얻고 저녁으로 그들이 만든
찌개와 밥을 먹었다.
찌개와 밥,,,


1999. 10. 16.  토  Istanbul

지하궁전을 가보았다.
뭔지모를 스크린과 괴기한 소리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밑엔 물이 있고 그위를 다니며 구경하는것인데 지하에 이렇게
거대한 공간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저녁으론 일본애들이 일본음식을 만들어 맛있게 먹었다.
매일 이렇게 쌀밥을 먹으니 너무 좋다.


1999. 10. 17.  일  Istanbul

블루모스크 주위를 한바퀴 산책하고... 이렇게 저렇게 시간을 보낸다.


1999. 10. 18. 월  Istanbul

내일모래 떠나는 카이로행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저녁때 매블라나교단의 종교의식중 하나인 매블라나춤을 보러
한국인커플과 함께 공연이 있다는곳에 갔다.
관광객을 위한 공연은 아니었고 자기들끼리의 종교의식을 하는것인데
소수의 관광객이 관람하려고 찾아오기도 한다.

기도가 시작되고 춤을추는 사람들이 검은옷을 입고 천천히 인사를 하며 입장한다.
여러신도들의 기도가 계속되는 가운데 검은 망토같은 옷을 벗고 서서히 춤을 추는데 6명정도 되는 사람들이 스스로 돌면서 또 원을 그리며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 것이다.
양팔을 벌리고 한 손바닥은 하늘을,  한 손바닥은 땅을 향하는데 알라신한테 받아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의미 한다고 한다.
음악이 격렬해지면 기도하는 사람들의 소리도 격렬해지고
상체와 고개를 리듬에 맞춰 흔든다.
춤은 더욱 빨라져 점점 더 빨리 돌고... 돌고.. 보는 사람이 어지러울 정도 였다.
기도가 거의 끝날무렵 춤도 끝나고 한사람이 무언가를 낭송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에 맞춰 아민~ 아민~~ 한다.
모든 의식이 끝나고... 늦은 밤길을 오래도록 걸어 돌아왔다.


1999. 10. 19.  화  Istanbul

새벽에 한국인 커플이 떠났고 리라를 조금 남겨두고 달러로 바꾸었다.
저녁때는 닭을 3마리사서 닭죽을 끓여 15명이나되는 사람들이
함께 먹었다.

밥을 거의 다 먹었을때쯤 한 일본인 여자가 왔는데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를 찾아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남자는 이곳에 있다가 어제 다른곳으로 떠나버린 것이다.
이런 운명의 장난이..
아무런 약속도 없이 남자를 찾으러 이 먼 터키까지 찾아오다니...
만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그 남자가 떠난곳에 있는, 여행자들에게 유명한 몇몇 숙소에 이스마엘이 전화를 걸어 확인을 했지만 그 남자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여자는 또 그가 떠났다는 도시로 그를 찾아 떠날 것이다..
오늘 이스탄불 출발 런던행 이집트항공 여객기가 공중납치 당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내일 내가 타고 갈 비행기도 이집트항공인데 결항이나 되지 말았으면 한다.


1999. 10. 20.  수  Turkey, Istanbul - Egypt Cairo

예약해놓은 공항행 미니버스가 왔다.
손님은 나 혼자.
Ataturk 공항에 도착해 보니 카이로 행 비행기가 1시간 30분 delay 되었다한다.
항공사측에서 버커킹에서 간단히 식사할 수 있는 식권을 주긴했으나
공항에서 1시간 30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항상 공항에서 이렇게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했으므로 공항만 생각하면
지루한 기다림만 생각날 뿐이다.

드디어 보딩이 시작되고 짐을 첵크 하는데 x-ray를 거친 가방을 모두 열어서 내용물을 확인하고 비행기 문앞에서도 다시 가방을 열어 검사를 했다.
어제 있었던 비행기 납치 때문에 그런다고 이해는 하지만
내 배낭은 한번 까발리면 다시 추스르기가 쉽지 않아 욕이 절로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낭옆쪽 그물망 안에 있던 큰 맥가이버 칼조차 찾아내지 못하고 단지 작은 손톱깍기를 갖고 이걸 들여보내느냐 마느냐 생각하며 요리조리 돌려보는 모습이 웃겼다.
17시 15분 출발 예정이었으나 21시가 다 되어서야 이륙을 한다.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어 조금 하늘로 오르니 이내 육지의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1시간 30분의 짧은 비행이 끝날무렵 드디어 Cairo가 보인다.

또 다시 새로운 땅에 도착했다.
항상 그렇듯 새로운 땅에 도착하면 설레임과 두려움과 기대감이 한꺼번에 밀려오며 살아있는 나를 온몸으로 느낀다.
visa fee 15달러를 은행창구에서 내고 우표같은 것을 받아 여권에 붙이고 얼마를 환전할까 고민했다..
버스비와 오늘하루의 숙박비, 약간의 여유돈만 있으면 되겠다 생각하고
5달러만 환전하기로 했다.
환전해주는 놈이 한번 더 쳐다본다.   " 그래 5달러만 환전 한다구!! "
모든 심사를 마치고 공항에서 나오니 더울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시원한 바람이 분다.
400번 버스타는곳을 경찰한테 물어 기다렸는데 영 오지 않는다.
택시기사가 옆에 붙어 버스는 끊어졌으니 택시를 타고 가라고 한다.
택시를 탈 수 있는 돈조차 환전하지 않았으니 일단 버스를 계속 기다렸다.
밤 11시가 넘어서고 있었고 외국인 여행자는 나 혼자였고
이집트인조차 몇 명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낯선 이집트의 버스승차장에서 5달러어치의 이집트 파운드를 든채 버스를 기다리는 꼴 이라니....                      

                                                              이집트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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