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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여행(1998~사는날)/1998 아시아횡단

미얀마 2001/10

by 함피 2008. 10. 6.

정확히 28일간 미얀마를 여행했다.
미얀마의 비자기간은 들어간날로부터 28일이고 방콕에서 가장싼 항공편은
일요일밖에 없으므로 들어간 날로부터 4주후의 일요일에 나오면 딱 28일이 된다.
보통의 경우, 사람들은 남의 여행기를 읽으며 아~ 나도 여기에서 이런걸 해봐야지..
또는 나도 여기에서 이런걸 느껴봐야지.. 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나또한 다른사람들의 여행기를 읽으며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이미 갔다온 곳의 여행기를 읽으면 왜 나는 여기서 이런걸 안해봤을까...
이런걸 느끼지 못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여행은 자신이 하는 것이다.
다른사람의 여행이 아닌 스스로의 여행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느끼는것도 다르며 하는일도 다르다.
어떤사람이 느낌이 더 좋았는지, 어떤사람이 더 가치있는 일을 했는지에 대해선
정답이 없다.
본인 스스로가 여행을 하는이상 본인의 생각과 느낌, 행동이 가장 정답이다.
그것이 가장 가치있는 것이며 그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 내글을 읽고 이자식 여행을 뭐 이따구로 하구있어.. 또는
음 나도 이렇게 해봐야지, 이렇게 느껴야지.. 하는생각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는 알아두되 비어있는 마음으로 여행하고 자신의 느낌을
담아오는 것이 가장 훌륭한 여행일 것이다.


2001년 10월 13일

4개월 가까이 인도, 네팔 여행을 마치고 방콕으로 돌아왔다.
이번 인도, 네팔 여행은 그동안의 여행중 최악 이었다고 할만 하다.
모든 약속과 계획들은 엇갈리고 최소되었고 또 무산 되었다.
인도비자 기간 때문에 캘커타보다 항공권이 비싼 카트만두에 가서 비행기를 타는 것도 그러했고
내가 움직일때 마다 날씨도 심술을 부려 나갈콧에서는 히말라야 콧배기도 못본 것 또한 그러했다.

아무튼 방콕에 다시 왔다.
변함없이 번잡한 카오산로드지만 놀랄만한게 있었다.
고산족이 등장 했다는것이다.
진짜 고산족인지, 물건을 팔기위해 방콕주변에서 옷을 고산족처럼 입고,
몸치장을 그렇게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작은키에 얼굴 생김새등을 봐선
어찌됐던 시골에서 온 사람들 이라는걸 알 수가 있었다.
그사람들은 투박한 악세사리와 옷을 걸친채 최신팝송이 요란한 그야말로
현대 도시의 가장 번잡한곳에서 몇가지의 잡다한 악세서리등을 팔고 있다.
그 모습은 너무나 안어울리는것이고 또 그렇기때문에 잘 어울렸으며
코미디 같이 웃기기도 하였고 또한 서글프기도 했다.
핫팬츠에 나시티를 입고 활보하는 관광객들 사이로
100년전의 모습이었을법한 사람들이 물건을 팔러다니는걸 보면 그런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관광객들은 물건을 사고 꼭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한다.

또 한가지 변한게 있다.
카오산로드에 밤이 되면 방콕의 젊은이들이 다른나라에 관광 온듯 여기저기 기웃대며 다닌다.
예전에 현지인이 없었던것이 아니지만 그 모습이 완연히 바꼈다.
젊은이들에게 독특한 데이트 코스, 또는 독특한 구경거리를 제공하는 쇼핑장소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이번에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인도여행을 마치고 태국에 들어와 동남아 어느 한군데를 여행할 참이었다.
98년엔 라오스, 99년엔 캄보디아를 다녀왔으니 이번엔 미얀마를 가려고 벼르고 있었다.
라오스와 캄보디아와 마찬가지로 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지만 육로로는 갈 수가 없는 나라여서 좀 꺼려지기는 했지만 항공편이 그리 비싸지 않아 크게 문제될건 없었다.
아무튼 난 미얀마행을 결정했고, 방콕에서 여행준비를 하고 정보수집에 나섰다.

여권에 비자받을 공간이 없어 한국대사관에 가서 속지를 더 끼워 붙이고 비자신청을 했다.
비자가 나오는데 2박3일 정도 걸리므로 그동안 칸차나부리에 가서 지내다 오기로 하고
남부버스터미널에서 칸차나부리행 버스를 타니 2시간만에 도착,
게스트하우스가 몰려있는 지역까지 릭샤를 탔다.
사실 태국에 싸이클릭샤가 있었는지 몰랐는데 싸이클릭샤를 보니 반가운 맘이 들었다.
릭샤왈라는 커미션을 받는 숙소가 있는지 그리로 데리고 가려 했지만
일단은 JollyFrog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기로 했다.
넓은 잔디밭 정원과 야자수가 잘 어우러진 멋진 숙소였지만 왠지 나에겐
그리 편안한 장소가 아니고 혼자 어슬렁대려니 조금 머쓱한 기분이다.

아무튼 다음날  VN 게스트하우스로 숙소를 옮겼다.
훨씬 나에게 어물리는 숙소라고 생각한다.
특히 방이 콰이강 위에 떠 있어서 배가 지나치며 파도를 만들면 방이 같이 흔들거린다.
문을 열어놓고 침대에 누워 강을 보며 파도와 함께 출렁거리고 있자니
모든 세상이 이렇게 급할것 없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복잡한 일상에서의 사건들이나 문제거리들은 강건너에서 일어난 작은 대수롭지 않은 일일뿐이다.
하긴 여행을 떠나오면 세상이 어떻게 되든 그런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미국이 테러를 당하든, 보복으로 테러를 하든 그런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건 방이 무지하게 덥다는 것이다.

너무 더워 샤워를 계속 해야만 한다.
샤워를 하는데 작은 도마뱀이 문틈으로 들어왔다.
내가 바로 돌아서자 내 물건을 보고 놀랐는지 흠칫 하더니 도망가 버렸다.
그 작은 도마뱀 때문에 기분이 좋아졌다.
사람, 개, 고양이, 도마뱀들이 서로 어우러져(나름대로는 충돌이
없는것도 아닐테지만)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에 좋은가.
이방인의 관망이라해도 어쨋든 나는 그런 태국이 좋다.
주인없이 길거리를 헤메느라 온몸이 지저분해져 있는 개들도 나는 사랑스럽다.

예전 우리나라 TV에서 누군가 키우던 이구아나가 도망을 쳐서 이웃집 난간에 있었는데
119대원에게 빨리 치우던지 죽여버리던지 어떻게 해버리라고 진저리를 치는
아줌마의 모습을 보았다.
사실 난 그것을 보고 조금 충격을 받았다.
물론 이구아나가 흉칙하게 생기고, 처음봤을때는 많이 놀랄수도 있고,
물린다면 바로 죽겠다고 생각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공격 할 의사도 전혀 보이지 않고 특별히 피해를 입힌것도 아닌데
죽여버리라고 말하는건 좀 너무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지독한 휴머니스트나 동물애호자가 아니더라도 그건 좀 너무 하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처음 보는것이라도 나에게 해를 입힐것인지 아니면 그냥 살아볼려고 애쓰는 생물인지
잠깐이나마 관찰 해 볼 수는 있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나도 방에 들어온 벌레같은것들을 죽이기는 하지만
일단 밖으로 내보내도록 애는 써 본다.
같지 않으면 불편해하는 사람들, 같아지려고 쫓는 사람들, 그럴 수밖에 없는......
그런것들이 짜증난다.

그렇게 한가하게 2틀을 더 보내고 방콕으로 돌아왔다.
한국숙소에 꽂혀있는 가이드북을 보고 미얀마 공부도 조금 했다.
여행준비를 할 때마다 제일 처음 결정해야하면서도 제일 곤란한건 루트를 짜는 일이다.
누군가 중요한곳을 몇군데 찝어 주거나 루트를 대신 짜 주는것도 괜찮겠지만
그러면 왠지 남의 여행을 내가 대신하게 되는 것 같고 주관도 없어지는 것 같아
되도록 스스로 하려고 한다.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처음부터 내 여행에 책임을 지게되어 그만큼 여행에 충실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은 보편적인 루트를 그대로 따라하게되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불타는 도전정신이 부족하다고 생각되지만 나는 뭐 그냥 보통사람일 따름이니까......
어쨌든 보편적인 여행루트를 따라하게 되더라도(선배여행자들이 다녔던 곳이니 최선의 선택이겠지만)
직접 여행가이드북을 훑어본 후에 그렇게 결정짓는것과 모르는 상태에서
누군가가 그렇게 결정지어 주는건 많이 다르단 생각이다.

짐을 추려 작은쌕에 필요한걸 싸고 나머지는 한국숙소에 맏겨두었다.
한달후에 찾을거라 생각하니 조금 불안 했지만 무거운걸 들고 다니는것보단
잃어버리는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다.
32리터 배낭이어서 그리 무겁고 큰건 아니지만 이동이 불편한건 사실이다.
다음 여행땐 여행이 아무리 길지라도 쌕 하나 달랑들고 떠나리라 다짐 했다.
사실 매번 그렇게 다짐한다.  

 

 

 


- 아시아의 숨겨진 황금 미얀마.

방글라데쉬항공이 가장 싼것이라 어쩔 수 없이 타고 가긴 하지만
예전에 캘커타에서 다카를 경유해 방콕에 올때 다카에 비가 많이 와서
착륙할 때 세번이나 활주로에 거의 내리다가 다시 올라가고 하며
거의 죽음을 각오해야했었기 때문에 썩 내키지는 않았다.
다카공항 활주로에 비행기가 착륙 했을때 박수치며 환호하는 사람들이 생각난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었다.

어찌됐던 가난한 여행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래도 요즘엔 무슬림국가의 비행기를 타는게 오히려 안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1시간도 채 안되는 비행이라고 해도 맥주를 마시지 못해 조금 아쉬웠다.
비행기가 착륙하기전 내가 여행할 나라가 어떻게 생겼는지
열심히 창문너머로 지상을 구경했다.
어느나라나 비행기에서 내리기전에 그나라를 공중에서 쳐다보며 앞으로의 여행을
생각해 보는건 가슴 설레고 즐거운일이 아닐 수 없다.
미지의 땅으로 착륙을 한다는건 역시 흥분되는 일이다.
보통 낯선 이성에게 강한 호기심과 흥분을 느끼듯
그렇게 나는 낯선땅을 밟으며 호기심과 흥분을 느끼며 여행을 중단하지 못한다.
 
방콕과 마찬가지로 후덥지근한 공기를 마시며 비행기에서 내렸다.
생각했던대로 아담한 양곤의 공항. 큰 공항 보다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 진다.
공중에서 본 나무가 많고 시골스러운 평온한  느낌으로
미얀마 여행을 시작한다.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하자마자 FEC를 바꾸는곳이 있다.
FEC바꿔주는 여자가 말하는게 좀 웃겼다.
"너 원래 200달러를 200 FEC로 바꿔야하는데 얼마바꿀래??"
난 100달러만 바꾸겠다고 했다.
또 그여자 하는말 "I can help you, can you help me??"    
100달러짜리 여행자수표를 한 장 바꾸기로 했다.
여행자수표는 2달러를 수수료로 내야했고 자기에게 5달러를 달라고 하여
93달러를 받았는데 친절하게도 전자계산기에 100-2-5=93 이라고 보여주며
93 FEC를 내어준다.  
자기가 먹는 뒷돈까지 계산기에 쳐서 보여주는게 웃긴다고 생각했다.
여행 끝부렵에  200달러를 그냥 다 바꿀껄 하는 생각을 했다.
한달 여행에 FEC가 그정돈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선 시내에 있는 보리수님이 운영하는 현지 식당인 Global에 가기로 했다.
그곳엔 미얀마 여행정보를 적어놓은 책도 있고 현지인 매니저에게서
도움도 받을 수 있을것이다.
공항에 대기중인 택시를 비행기를 같이 탄 한국인과 함께 시내까지 3달러에 가기로 했다.
생각보다는 길도 넓고 정비가 잘 되어 있었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우측 통행인데
차는 일본마냥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으니 도대체 뭔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운전기사는 시내까지 가면서 계속 달러를 짯으로 바꾸라고 했고
나는 운전기사가 부르는 1 $ 에 670 Kyats 보다 시내에서 환전하면
더 많이 받으리라 생각했다.
보통의 경우 서투른 삐끼나 어떻게 좀 속여보려고 하는 사람들한테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최소한 670짯은 넘는다는걸 가르쳐주는 셈이 되는것이니
시내에서 환전할때 도움이 되는것이다.
나중에 예상대로 1달러당 705짯으로 바꿨다.
현지인을 대상으로 하는 Global 이라는 간판을 단 식당에 들어섰다.
보리수님은 캄보디아에 가셨고 삔예라는 매니저가 반갑게 맞아준다.

일단 몇일은 이 식당에서 머물기로 했다. 공짜아닌가!!
밤에 술레파야(파야=파고다) 쪽으로 산책을 나섰다.
대충 미얀마를 느껴보려고 길 잃어버리지 않을정도로 걷는다는게
나중엔 아주 엉뚱한 곳에 와버리게 되었다.
보수적일 것 같은 옷을 입고는 있지만 음침한곳에서
쌍쌍이 데이트를 하고 있어서 아주 의외였다.
낮에도 손을 꼭 잡고 걷는 연인들을 자주 볼 수 있으며
사원에서도 데이트 하는것을 볼 수 있으니 미얀마인들은
연애에 있어서는 참 개방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것 같다.
아무튼 물어물어 겨우 식당을 다시 찾았다.
천정이 낮아 고개를 숙여야하는 식당의 다락방에서 미얀마에서의 첫날을 보낸다.

2틀후 White House로 숙소를 옮겼다.
이름이 이름인지라 숙소에 처음 들어갈때는 부시가 처음 대통령이 된 후
백악관에 들어가는 심정을 헤아려보며 나도 멋지게 발을 들여놓아보았다
하지만 도미토리는 침대들이 빈틈없이 붙어 늘어서 있어서 만약에 사람이 많다면
짐은 어디나 놓을것이며 그 불편함은 어떻게 할것인가 걱정되었다.
다행히 도미토리에 손님은 4명정도밖에 없어서 오히려
내 침대 옆에 붙어 있는 침대를 내 침대인양 쓸 수 있어서 좋았다.
여행자는 역시 여행자가 있는곳에 있어야 마음가짐도 여행자가 되는것 같다.

 

양곤은 생각보다 큰 도시였다.
역시 영국 식민지 시절의 건물들도 많이 보이고 특히 시내중심부는 바둑판모양으로
도로와 건물이 잘 정리되어 있어서 조금만 익숙해지면 방향을 잡아 찾아가기가 쉽다.
생각외로 인도인들도 많아서 극장에선 인도영화를 상영하는곳이 많다.
영국 식민지 시절 인도인들이 이곳으로 이주 했다고 하는데
상업적인 마인드가 떨어지는 미얀마인에 비해 인도인은 이곳에서
장사의 수완을 보였다고 한다.
아마 미얀마 남자들이 씹는 '꼰야'라는것은 인도인이 들여온것이 아닐까 한다.
인도에선 '빤'이라고 불리는데 이 빤은 도로와 구석진곳을 온통 빨간색 침으로
더럽히는 원흉이다.
뻘건물이 입안가득 모이도록 빤을 씹다가 찍~ 하고 뻘건물을 뱉어내기 때문이다.

난 사실 도시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우선 양곤에서 만나보기로 한
범례형도 만나봐야 하고, 미얀마에 적응도 해야하고,
양곤의 볼거리도 봐야하기에 1주일정도 머물렀는데
도시에 머무르다 보면 시골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도시의 재미에
어느정도 빠질 수 있어 좋다.
새벽까지 미얀마친구들과 유럽축구를 보며 맥주를 마시거나,
늦은밤 양곤강 건너에 산책을 다녀 오거나, 길거리 찻집에 앉아
미얀마 특유의 밀크티 '라뻬예'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로 밤을 보내고
낮에는 시장을 둘러보거나 길거리의 갖가지 물건을 파는 노점들을 구경하며 다녔다.
사실 무척 더웠으므로 숙소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을것이다.

몇일을 여기저기 어슬렁 대면서 시간을 보낸 후 미얀마의 자존심! 쉐다곤파야를 구경했다.
'쉐' 라는 것은 황금, '다곤'은 양곤의 옛 지명이니 말 그대로 '황금양곤탑' 이다.
갖가지 보석이 잔뜩 들어있는 거대한 금탑이 100미터나 솟아있고
그 주위엔 여러 가지 불상들이 있다.
높고 넓은 탑 주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었는데 얼마나 경건하게 보이는지
아~ 정말 여기는 불교의 나라구나~ 하고 실감할 수 있었다.
스님들이 모여앉아 뭔가를 적고 있어서 옆에 가서 들여다 보았다.
뭔가 공부를 하는것 같았는데 내가 다가가자 하던일은 다 팽개치고 모여들어서
이것저것 말을 걸고 물어본다.
나중엔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농담도 하고 결국은 서로 농담따먹기에 열중했다.
계속 스님들과 웃고 즐기며 시간을 보내다 숙소로 돌아왔다.
참 재미있는 스님들이다.
미얀마 스님들은 담배도 아무데서나 피워문다.

"다나까"라고 하는 백단나무 가루를 얼굴에 바른 여인네들,
론지라고 하는 치마를 입고 꼰야라는 시뻘건 구장잎을 씹으며 활보하는 남정네들,
나무그늘에 여지없이 진을친 거리의 찻집,
음악이 흘러나오는 복권 판매소,
사람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달리는 픽업트럭,
어디서나 눈만돌리면 보이는 금색 파야(파고다),
뜨겁고 무거운 공기,
11월 초. 양곤의 거리 풍경이다.


- 파야의 고향 바간.

몇일 후 바간이라는곳으로 이동했다.
버스는 쇼바가 좋은 일본제 중고 고속버스라고 해도 16시간동안
그다지 좋지 않은 길을 달려야 하니
뭐 편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시골길을 달리며 주변의 작은마을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모습들을 바라보는 즐거움은 잘 뻗은 고속도로를
편안히 달리는것에 비교되지 못한다.
그나마 인도의 버스에 비한다면 슈퍼디럭스울트라우등버스이니까......

원래 맨뒷좌석의 가운데가 내 자리였는데 창문 옆자리에 앉아 나는 여기에 앉을께!! 하고
차장에게 말해두었더니 나중에 온 그 자리 주인인듯한 청년에게  여기! 하며
차장이 가운데자리를 정해주었다.
가운데 자리는 에어콘바람이 잘 미치지 않고 더군다나 맨 뒷자리는 밑에 있는 엔진에서
더운바람이 위로 솟구쳐 올라 그 청년이 좀 괴로운듯 했지만 그래도 어쩔것인가...
나쁜놈이 되기로 한 이상 그대로 갈 수 밖에..  - 미안해 청년..  
그래도 밤이 깊어가니 조금 시원해졌다.
 
바간에 거의 도착할때즈음 새벽잠에 취해 있는 나를 깨운다.
한 미얀마인이 버스에 올라와서 뭔가를 일본어로 나에게 말하는데
나는 어디서나 현지인들이 일본어로 뭔가를 얘기하면 상당히 짜증이 나는 편이어서
인상을 찌프리고 잠에 취한 실눈을 치켜떴다.
그제서야 영어로 10FEC와 여권을 달라고 한다.
바간은 고고학지대라 외국인은 입장료 10FEC를 내야하는것이다.
모든것들이 다 좋은데 외국인에 대한 2중가격제는 정말 짜증난다.
그래도 입장료가 전혀 아깝지 않았던곳이 바간이었던것 같다.

일단 바간은 양곤보다는 훨씬 시골스런 모습이어서 맘에 들었다.
덜컹거리는 마차를 타고 수많은 오래된 파야들이
아예와디강 옆쪽으로 넓게 퍼져있는 올드바간을 둘러보았다.
9세기경부터 미얀마의 고대수도였다고 하는데 사원과 파야를 둘러보면
예전에 누렸던 영화를 상상할 수 있다.

나는 바간에 대해 그리 많은 정보를 수집하지 못했기때문에
마차주인이 가는대로 맡겨두고 그대로 따라갔다.
여행자를 태우고 올드바간을 둘러본 많은 경험이 있을것이기때문에
어디어디를 가자고 하는것보다 더 효율적으로 둘러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마차가 처음엔 재밌기도 하고 뭔가 운치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계속 덜컹거리면서 달리니 나중엔 좀 피곤해진다.
그래도 차를 타고 다니는것보다는 훨씬 좋다는 생각이다.
수없이 산재한 파야도 자연의 일부인 이곳에서 차는 정말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다.
덜컹거리긴 하지만 자연과 같이 호흡하며 그곳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느긋하게 둘러보는건
에어콘을 틀어논 차를 타고 붕붕대며  다니는 그것과는 확실히 다른
뭔가 좀 더 바간에 가까운, 그러니까 말하자면 마차도
바간을 이루는 자연의 일부가 되는것이다.

오래된 파야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면서 2년전에 갔었던 캄보디아의 앙코르왓을 떠올렸다.
확실히 다른 느낌이긴 하지만 전체적인 여행을 생각해 본다면 가장 비슷한 느낌일것이다.
앙코르왓에선  세부적으로 건물하나하나 신경쓰며 본 반면
바간은 전체적인 조망의 느낌이 더 강했다.
조금 높은 파야에 올라 주변경관을 보면 히야~~  하는 감탄을 내는것이다.

 

 

 

바간이 맘에 든것은 숙소가 좋았다는 이유도 빼놓을 수 없다.
내가 묵은곳은 버스터미널에서 가깝고 시골의 집들이 한가하게 늘어서 있는
NewPark 라는 호텔인데 4FEC에 그만한 호텔에 묵을 수 있는건 바간뿐이라는 생각이다.
방문을 열면 숙소정원과 한가한 시골의 주택가가 바라다 보이고
새소리가 들리는 단층 방갈로같은 숙소가 참 좋았고
싸늘할정도로 에어콘을 켜놓고 담요속에 들어가
이불속의 따듯함을 느끼며 잠들고 깨는맛도  좋았다.
무엇보다 시골의 주택가를 거닐며 그들의 생활을 기웃대며 엿보는것이 즐거웠다.
집 주위에서 흙장난치는 아이들, 엄마한테 안겨서 멀뚱대며 쳐다보는 아기,
눈이 마주치면 선하게 웃는 시골 사람들, 그야말로 모든 평화가 여기에 있는것 같았다.

시골의 시장 구경 또한 놓치기 아깝다.
비가 계속 오길래 한숨 자고 났더니 날씨가 괜찮아진것 같아 시장구경을 나섰다.
T셔츠와 론지 등 갖가지 물건을 들고 서로 팔려고 달려든다.
론지는 인도의 룽기와 같지만 인도는 그냥 침대보 마냥 터져 있는반면
미얀아것은 원통형으로 박음질을 해 놓은것이 다르다.
미얀마식 론지를 사려고 마음 먹고 있었던지라 하나 골라 샀다.

시장을 둘러보고 이동네의 몇 안되는 싸구려 현지인식당인듯한
돼지고기 덮밥 하는곳에 가서 점심을 먹었는데 느끼하기가 이루 말 할 수 없다.
그 느끼함은 1년이 넘어가는 지금도 입안으로 상상할 수 있을정도다.
저녁엔 느끼함을 달래려는 변명을 붙이고 맥주를 마셨다.
근데 혼자 맥주 마시는것도 못할 짓 이구나.

바간에서 하루만에 다녀올 수 있는 뽀빠산에 다녀왔다.
난 처음에 이름이 맘에 들고 또 론리플래닛에 나온 사진이 아주 맘에 들어서
이곳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뽀빠이라는 이름에 익숙해서인지 뽀빠산 이라는 이름이 왠지 정감이 들었다.
두시간정도 픽업트럭을 타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을 태우며 비포장 시골길을 달리는데
돈을 좀 더 주고 앞자리 왕복으로 끊길 정말 잘 했다.
돌아올때엔 정말 피곤했으니 뒷자리였으면 정말 끔찍할 뻔 했다.

현지인에겐 토속신앙인 Nat 정령신앙으로 유명한 뽀빠산은
그 모양이 불뚝솟아 있어서 생김새 또한 범상치 않아 주목받기에 충분했다.
올라가는길은 계단과 지붕이 잘 되어있었다.
원숭이들이 아주 많아서 아무곳에서건 뛰어놀거나 길을 가로막고 있는데
만약 과일봉지같은걸 들고 있다면 분명히 원숭이한테 빼앗길것이다.
원숭이들을 재미있게 관찰하면서 천천히 계단을 밟아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 내가 올랐을때엔 하필 안개가 지나가는때여서 안개가 엷게 지나갈 때
슬쩍슬쩍 보았을뿐 꽤 괜찮을것 같은 아래 경관을 보지 못했다.


- 만달레이(밍군,핀우린)

바간에서 만달레이 가는 버스는 미니버스밖에 없다고 하여 그것을 탔는데
버스 중앙에까지 작은 의자를 놓아 사람들을 꽉 채우고 출발한다.
8시간 반쯤 달려 만달레이에 도착했다.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이지만 나중에 생각 해 보면
버스를 타고 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을때가 많다.

만달레이는 역시 들은대로 먼지가 많고 큰 가로수가 많은 양곤에 비해
좀 황량한 느낌이 난다.
나는 거의 어디에든 도착하고 몇시간만에 그곳에 대한 내 마음을 정해 버린다.
만달레이에 대한 내 마음은 "썩 내키지 않는다" 였다.


- 잊혀진 거대 파야 밍군

만달레이에서 이라와디강 서쪽 상류로 1시간 반쯤  배를 타고 가면 밍군 이라는곳이 있다.
보타파야왕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파고다를 조성하려고 계획했지만
그 작업이 끝나기 전에 숨을 거두어서 미완성인채로 관광지가 되어있다.
세계의 많은 권력자들은 볼거리들을 참 많이 만들어 놓았다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뭐니뭐니해도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것 보다
자연이 만든 풍경과 장대함에는 절대 미치지는 못할것이다.
어찌됐든 밍군에 가기위해 배를 탔고 이런 몇시간의 배 여행은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
다만 나는 현지인들과 함께 배를 타는줄 알았는데 외국인 여행자를 위한 배가 따로 있어서
그 전용 배를 타고 가는건 그다지 재밌는 일이 아니었다.
머 좀 더 편하게 여행 할 순 있겠지만 편하면 편한만큼 지루함이 없지않아 있다.

거대한 밍군탑위에선 이라와디강과 그 주변이 한눈에 들어왔다.
예전에 생긴 지진때문에 탑은 여기저기 갈라져 있었는데
그만큼 더 세월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소리가 나는 종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종이라고 하는 밍군종은
그냥 방치되어 있어서 종의 표면은 온갖 낙서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종 안쪽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는게 그곳에 온 사람들이 거쳐가는 의례여서
나도 들어가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을 찍는동안 종이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것인가 심히 걱정 되었다.
종 속에 갇힌채 굶어 죽기전까지 과연 그종을 들어 올릴 수 있을것인가......
90톤이나 하는 이 종을 과연 들어올릴 수 있긴 있는건가......
머 이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사진을 찍고는 빨리 나와버렸다.
종 안쪽에도 역시 낙서가 빼곡했다.

 

만달레이로 돌아오기전에 줄줄이 엮어놓은 엽서를 한묶음 샀다.
조그마한 아이가 학교 갈 돈이 없다고 슬픈 눈을 하고는 엽서를 내미는데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다.
정말 학교를 가고 싶어하는지 어쩌는지는 모르지만 어쨋든 그런 아이들이
여행지마다 항상 여행객을 기다리고 있다가 물건을 팔려고 하는
그런 모습을 보는건 좀 서글픈 일이다.

만달레이에선 꽤 유명한 Nylon IceCream Bar 라고 하는
좀 이상한 이름의 아이스크림 가게가 Nylon 이라고 하는
역시 좀 이상한 이름의 숙소 앞에있다.
예전에 "별로 좋지 않다" 라는 뜻으로 "나이론이야~" 하는 유행어가 한때
친구들 사이에서 나돌던때가 있었던 만큼 우리나라 사람들한테는
좀 웃긴 이름이라고 생각된다.
아무튼 이름이야 어찌됐든 아이스크림은 아주 싸고 맛있다.
한컵에 100짯, 그러니까 200원 정도이니 정말 싼 가격에 그 가게 특유의
여러가지 아이스크림이 아주 다양하게 있다.
저녁때 길가 아이스크림가게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것도 그런대로 괜찮을것이다.

 


- 만달레이의 휴가 핀우린

영국 식민지 시절 영국 대령 May의 이름을 따서 메묘(Maymyo)라고 불리우는
-Myo 는 "동네" 의 미얀마 어-
만달레이 근처의 "핀우린" 은 더위를 피해 몇일 쉬기에 좋은곳이다.
만달레이에 올때부터 만달레이를 구경하기 보다는 밍군과 핀우린을 가려고
맘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만달레이는 단지 밍군과 핀우리을 가기위한 기지로 활용했다.
사람들을 주렁주렁 메단 픽업트럭이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고갯길을 올라가야하는곳이다.
올라갈수록 날씨는 점점 쌀쌀해졌다.

역시 핀우린의 사람들은 제법 두꺼운 옷을 걸치고 있었다.
조그마한 동네가 맘에 드는 곳이다.
정원이 있는 조용한 숙소를 잡고 동네구경을 나섰다.
나름대로 멋지게 장식한 마차가 다니고 있어서 그걸타고 보태니컬 가든으로 향했다.
영국식민지 시절 터키 포로들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한 일본인이 가든을 샀다나 어쨌다나......
어쨌든 관리는 잘 되고 있었고 많은사람들이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입장료를 1000짯 그러니까 2000원이나 받고 있는데
입장료 받는 여자에게 미얀마어로 이쁘다고 하면서 깍아달라고 조르니
500짯으로 깍아주었다.
사실 미얀마 처녀들은 대체로 이쁘다.

밤이되자 맑은 하늘에 달이 선명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달에 토끼가 방아를 찟고 있다는 옛말이 있다고 얘기하니까
동행한 일본인 아저씨가 자기네 나라도 그런말이 있다며 신기해 했다.
어느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먼저 생각했는지에 대해선 논쟁을 벌이지 안았다.

이곳으로 주말을 보내러 오는 만달레이 사람들이 꽤 있어서인지
하룻동안 둘러볼만한곳을 돌아보는 일일투어 프로그램이 있다.
때가 아닌지 일본인이 떠나고 난 핀우린에 외국인이라곤 나 혼자인듯 했다.
몇군데의 사원과 폭포가 입구로 떨어지는 동굴등을 픽업트럭 뒤에
타고 다니는것인데 동굴은 꽤 괜찮았다.
투어 머 어쩌구 하는것들은 별로 좋아하는편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오기에는 무리가 있을테니 이렇게 둘러보는것도 나쁘지 않다.


- 아름다운 호반 냐옹스웨

냐옹스웨는 해발 1300미터가 넘는곳인데 아름다운 인레호수가
넓게 펼쳐진 시골마을이다.
호수에선 대나무와 흙을 이용해 물 위에서 토마토라든가 작물들을 재배한다.
땅을 이용하지 않고 수면을 이용하는것이 신기했다.
호수주변엔 고양이가 점프를 하는 사원이라든가
작은 파야들이 수없이 산재한 작은 동네라든가
거의 관광객을 위한 것이긴 하지만 호수주변의 장터등 볼것들도 충분했다.
뭐니뭐니해도 맑고 파란 호수 그 자체.

우리나라의 경운기용 모터를 단 모터보트(태국의 long tail boat)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호수를 내 달리고 있고
발을 이용해 노를 젖는(아마 이런 노젖기는 미얀마 밖에 없으리라)
조그마한 조각배가 한가하게 호수를 오간다.
산으로 둘러쌓인 호수는 아주 맑고 파랗다.
이런곳을 여행하다보면 마음이 흐늘흐늘해지고
머리로는 다른 잡생각들을 하지 않아도 괜찮아진다.
보통 머리로 뭔가를 생각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왠지 불안해질 수도 있는데
이런곳에선 그냥 아무생각없이 주변을 쳐다보고 있는것으로
할일을 충분히 다 하고 있는것이다.
이런저런 다른 일들은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과거도 미래도 없이
현재의 그곳을 그냥 받아들이는것으로 충분하다.

밤에 장이 시끌벅적해서 가보니 주사위를 이용한 돈놓고돈먹기를 하고 있다.
마을사람들이 다 모인것처럼 북적거리며 그런 놀음(?)을 하는곳이 늘어서 있다.
나도 몇번 돈을 걸어보았는데 역시 난 도박쪽으로는 기술도 없고 운도 없는것 같다.
밤에 오락거리가 없는 시골마을에선 꽤 재미있는 장소가 되기도 하겠지만
가난한 현지사람들이 이런 놀이에 빠져 돈을 다 날리면 어쩌나 하고 생각했다.

밤늦게 숙소로 돌아오다가 게이를 만났다.
여자용 치마를 입고 길게 머리를 기르고 곱게 화장도 한 남자가
다른 몇명의 남자들과 내 옆으로 걸으며 몸을 밀착 하는가 싶더니
손이 다리쪽으로 쓱~ 미끄러져 왔다.
깜짝 놀라며 꽥 소리를 지르니 손으로 입을 가리며 앞서 지나가 버렸다.
앞에서 나를 돌아보더니 눈을 깜박이는데 어찌나 소름이 돋던지
기분이 꿈틀거리는 지렁이처럼 되었다.
여자들이 지하철 같은곳에서 성추행당하는 기분이 이럴까 하고 생각했다.
맹세하건데 나는 지하철 같은곳에서 여자에게 추근거린적이 없다!

미얀마에서 특히 기억나는 식당이 있다면 이곳에 있는 Four Sisters Restaurant 다.
네자매식당! 얼마나 정감있는 이름인가.
이곳 샨 주의 원주민인 인다족의 음식이 나오는데
인다족이 한국과 관련이 있는것인지 반찬이 한국것과 거의 똑 같았다.
(사실 인도에서 오래 보내고 온 터라 한국의 음식맛을 잃어 버렸을수도 있다)
마룻바닥에 앉아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푸짐하고 맛난 음식을 먹었는데
밥을 한 세그릇쯤은 먹은것 같다.
가격이 문제인데 사실 이 식당에선 가격도 문제 되지 않는다.
자기 마음 내키는대로 내고 나오면 그만이니까.

 


- 트렉 미얀마 깔로

평화로운 냐옹스웨를 떠나 쾌적한 고산 휴양지인 깔로로 향했다.
깔로로 오는 길에 구릉을 따라 경작지가 아름답게 색색이 펼쳐져 있었다.
무엇을 기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능선을 따라 이어진
노랗고 푸른 경작지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 외국 관광객도 보았는데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곳인가 보다.
깔로에선 모두들 트레킹을 한다곤 하지만 내 신발은 인도에서 부터 신어서
다 떨어진 샌들 하나밖에 없었으니 트레킹은 포기하고 여기저기 가까운곳을 둘러보았다.
언덕위에 있는 사원에 오르니 깔로가 한눈에 보였다.
산의 모양새가 우리나라와 거의 비슷하다.

숙소에서 아침을 먹을때 영어를 곧잘하는 중년의 일본여자를 만났는데
여행을 아주 많이 다닌듯 했다.
아주 수다스러운 그녀는 유명한 인도 영화노래인 "꾸찌꾸찌호따헤"를 불러제끼고
아침식사를 유쾌하게 만들었지만 도대체 한번도 끊기지 않고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게
참으로 신기한 여자였다.
과거의 예제까지 들어가며 예감에 관한한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그녀의 얘기를 듣느라
오전 한때를 모두 보내버렸다.
동네를 한바퀴 산책하고 오니 그녀는 냐옹스웨가는 픽업트럭을 기다리고 있었다.
같이 앉아  얘기를 나누다가 그녀는 냐옹스웨가는 픽업트럭을 탔고
나는 숙소로 돌아와 바고로 떠날채비를 했다.
나와 그녀는 정반대로 여행하고 있으면서 한번 만날 수 있었지만
나와 같은 루트로 여행하는 사람과는 절대 만날 수 없을거란 쓸데없는 생각과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는것과의 연관성에 대한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며
바고로 향했다.


- 거대불상, 거대파야 바고

바고에 도착하자마다 두 숙소에서 나온 삐끼에 둘러쌓이는 신세가 되었다.
밤새 버스를 타고 와서 새벽에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내린지라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데 숙소 삐끼들이 양 옆에서 떠들어대니
이건 그야말로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결국 두 숙소 다 가보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부처님이 55m 나 되는 길이로 누워있는 사원에선
내가 미얀마인으로 보이는지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
하긴 론지를 입고 피부도 검게 그을렸으니 미얀마인과 다른건 하나도 없다.
열반에 들기 하루전에 길게 누워 세상 시름을 모두 포용하고 잊은 것처럼
은은히 미소짓고 있는 부처님.
그 앞에 앉아 부처님 얼굴을 계속 쳐다보았다.
그리곤 깨달았다.
아.. 나의 내공으론 쳐다보는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구나.
목과 허리가 너무나 아팠기 때문이다.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양곤의 쉐다곤파야보다 더 높은 파야가 바고에 있다.
쉐모도파야라고 하는 이 파야는 높이가 114m 에 이른다고 한다.
새벽에 공양을 위해 줄을지어 파야를 뒤로한채 마을로 향하는
스님들의 무리는 그것 자체로 볼거리였다.

여행을 하며 가끔 종교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는때가 많다.
그리고 가끔씩 도가 지나친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감히 상상도 못할것들을 만들어 놓는다던가
한 없이 존경스러운 이야기들뿐만 아니라 끔찍스러운 잔인한 짓까지
그것이 나쁜쪽이든 좋은쪽이든 종교적인 신념은
인간에게 상상도 못할 힘과 용기를 가져다 주는 것 같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꼭 탈이 나게 마련인것을.
미래는 불안을 의미하고 불안은 알지도 못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미래의 삶을 위해 현재의 삶을 희생하도록 강요한다.
그리하여 결국 현재의 삶도 미래의 삶도 파괴되어 버리는 아이러니.

이곳 바고에서 가까운곳에 온통 금으로 덮혀있는 바위가 있다고 한다.
짜익티요파야 라고 하는 이 신성한 파야를 꼭 봐야하지 않겠냐며
숙소에서 끈질기게 택시투어를 권유했다.
그렇지만 난 정말 보고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런건 보고싶은 마음이 생겨야 보러갈 수 있는거다.
신기하게도 바위가 떨어질 위치에서도 밑으로 굴러 떨어지지 않는다거나
미얀마인에게 신성시 된다고해서 꼭 보고싶어지는건 아니니까.
별로 가고 싶지 않다고 하니 처음 불렀던 투어가격이 떨어졌다.
가격은 떨어져도 바위는 떨어지지 않듯 보고싶지 않은건 보고싶지 않은거다.

길을 지나칠때 삐끼인듯한 사람이 오더니 한 숙소를 가르키며
여자가 있다고 한다.
난 무슨말인지 몰라 난 묵고 있는 숙소가 벌써 있다고 얘기를 했다.
그래도 옆에 붙어서 계속 여자가 숙소에 있다는것이다.
음... 숙소에서 매춘을 하는가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양곤의 미얀마 친구들이 바고는 매춘이 나름대로 유명하다고 알려줬다.
유일하게 바고만 숙소에서 아침식사 제공이 되지 않는다!!.

- 미얀마 여행을 마치며

이제 다시 양곤으로 돌아왔다.
화이트하우스의 빨래하던 자매중 동생이 반갑게 나를 반긴다.
언니는 다른곳으로 일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언제나 밝은 모습의 어린 동생이 보기에 좋다.

나중에 범례형과 연락이 되어 형집에서 몇일동안 신세를 졌다.
전기와 물이 좀 문제이긴 해도 번듯한 아파트로 이사한지 얼마되지 않았다.
외국에서 생활하기가 쉽지 않을텐데도 늘 씩씩한 형이 보기에 좋다.

항상 그렇듯 떠나올땐 늘 아쉬움이 남는다.
그동안의 여행동안 만났던 미얀마 사람들, 여행자들, 겪었던 많은 일들,
모든것들이 한번씩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그중에선 영원이 사라지는것들도 있을것이고 몇년이 지난 후에도
문득문득 떠오르는것들이 있을것이다.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무거운 마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벼운 마음으로 방콕에 착지 한다.
또 여행이 시작될터이니......


hampi 민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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