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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여행(1998~사는날)/1998 아시아횡단

인도(1) 9903

by 함피 2008.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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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0개월간의 인도 - 네팔 - 파키스탄 - 이란 - 터키 - 이집트 - 태국 - 캄보디아 - 태국 - 대한민국

으로의 여행을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이부분은 여행의 시작이자 인도여행의 시작입니다.


                                                              1 USD = 42 Rs. (인도루피)

1999. 3. 24 수. BangKok Thailand -> Delhi India

드디어 인도로의 출발 날짜가 되었다.

만남의 광장에 앉아있는데 한국여자가 방콕 관광에 대해 물어와

사원들과 왕궁을 쉽게 돌아볼 수 있는 코스를 가르쳐주고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냈다.

15시에 동행하게된 일행과 만나기로 되있어 작별을 하고 길을 나섰다.

여행은 늘 아쉬운 작별과 반가운 만남이 교차하며 내 마음에 수많은

사연들을 남기고 또 그렇게 잊혀져간다.

Aeroflot 좀 작은 비행기다 러시아 승무원들은 등치도 큰데다 웃지도 않았지만

뒷좌석이 흡연석이고 승객들도 많지 않아 담배를 피우고 싶으면

뒷좌석에 가서 피울 수 있었다.

통로를 사이에 두고 바로 옆 좌석에 일본여자 두명이 앉아있어 얘기를 했는데

인도는 이번이 처음이라서 무척 겁이 난단다.

인도여행 경험담을 얘기해주며 걱정말라하고 같이 택시를 타고

파하르간지까지 가기로 했는데 둘은 1주일간 인도여행을 온 것이라 하여

우리 일행들을 놀라게 했다.

드디어 델리에 도착.. 아 다시 인도 속으로 들어왔구나....

나는 인도냄새를 한번 깊숙이 들이마시며 빨리 인도를 다시 느끼려고 했다.

밤이 깊어가고 있어 서둘러 택시를 잡아타고 파하르간지로 향하는데

왠지 좀 엉뚱한 길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늘어 다시 한번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려하는지를 확인시키고 밤길이라 내가 착각을 하는 거겠지 하며

마음을 놓았는데...

역시.. 이놈이 엉뚱한 메인바자르의 Tourist office앞에 차를 세우는 게 아닌가.

그때부터 택시기사, 여행사 인도인들, G, 나 이렇게 모두 소리를 높여가며

말싸움을 하게된 것이다.

스님은 뒤에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애초부터 목적이 다른 사람들이니

말이 통할 리 없었다.

그런데 여행사인도인은 여행자들이 죽은 사진과 신문기사들을 스크랩 해놓고

그것을 일본여자들에게 보여주며 겁을 주고 밤이 깊어 위험하니

일단 여행사안으로 들어오라고 하고 이 얘기 저 얘기 뒤죽박죽이 되어

도대체 정신이 없게 된 것이다.

그 와중에 히데코는 스님을 붙잡고 두려움에 떨며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정말 신고식은 제대로 한 것인가..

어느새 시간은 밤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아무튼 숙소를 잡아야 하겠기에 그 난장판을 벗어나 숙소를 구하러 다녔으나

주변엔 비싼 호텔 뿐인지라 조금 헤멘 끝에 겨우 triple 200 Rs. 하는 호텔을

잡을 수가 있었다.

일본여자들은 방에 들어가더니 문을 걸어잠갔고 우리일행 3명은

그 밤에 또 welcome India 파티를 한다고 한국에서 갖고 온 팩소주와

비행기에서 갖고 온 포도주를 마시며 인도여행의 시작을 자축했다.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겁에 질리고 기가 죽은 히데코가 1주일동안 어떻게 견뎌낼지

걱정되지만 치예는 영어도 할 줄 알고 믿음직스러워 둘이 그런대로 잘 버티리라 생각한다.

아무튼 인도여 내가 다시 왔다!!!

1999. 3. 28. 일. Delhi -> Manali

마날리로 떠나는 날이 되었다.

델리는 거의 변한 게 없었다. 그 동안 뉴델리 역앞 파하르간지로 숙소를 옮겼고

치예와 히데코가 아그라를 하루만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바람에 또 우리를 놀라게 했다.

작년에 보지 못했던 꾸뜹미나르와 바하이사원등을 돌아다녔고,

작년에 사진 찍은 노점상을 하는 "상"이라는 친구의 사진을 건네주고

또 사진을 찍었지만 다음에 다시 와서 건네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매일저녁 위스키파티를 즐겼다.

19시에 출발한 버스는 밤새 북쪽을 향해 달린다.

공기가 점점 차가워진다.

운행도중 서너번의 휴식시간을 갖었는데 그 시간은 단잠만 깨우는 것이어서

심심한 입을 달래주는 단 짜이도 별 맛을 느끼지 못하며 입안에 털어넣을 뿐이다.

아침 9시쯤에 쿨루계곡에 닿았는데 저 멀리 눈덮힌 히말라야자락이 보인다.

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점점두터워진다.

계곡을따라 마날리까지 난 길이 군데군데 유실돼 있어서 사람들이 돌을 쌓고

자갈을 만들어 보수공사를 하고 있다.

11시에 마날리에 도착. 역시 중심지는 소란스럽고 매연과 먼지로 가득하다.

적당히 방을 잡고 주변을 산책했다.

사방이 산으로 막혀있는지라 조금 답답한 기분이 들었지만

히말라야가 지척으로 보이니 상쾌하다.

필시 히말라야 눈이 녹아 흐르는 강물은 정말로 차가워서

발을 담그자마자 뼛속까지 차가움이 느껴진다.

내일쯤엔 조용한 곳으로 숙소를 옮기기로 했다.

1999. 3. 31. 수. manali

마날리의 날씨는 새벽과 밤에는 아주 추워서 침대 속으로 나를 가두고

해가 나는 낮에는 적당히 더워져 외투를 벗게 만든다.

스님은 그냥 마날리 중심가에 있겠다고 해서 G와 Vashisht 사원근처로

숙소를 옮긴 후부터는 매일아침 게스트하우스 바로 옆에 있는

온천으로 목욕을 하러 간다.

새벽6시에 나가도 많은 인도인들이 벌써 자리를 잡고 있지만 그리 비좁지만은 않아

아침에 모든 씻기를 마치기에는 정말 편하고 좋다.

물에는 많은 부유물이 떠 있어 조금은 지저분하지만 물은 정말 따듯해서

탕속에 10분정도만 몸을 담그고 있어도 땀이 흐른다.

상쾌한 목욕을 마치고 게스트하우스 뒤로 보이는 산에 올랐다.

폭포를 거쳐 샘물이 흐르는 곳에 가보려 했으나 체력 때문인지

산이 가파라서인지 폭포까지 가자 그만 지쳐버려 큰 바위 위에 앉아

양옆으로 보이는 계곡과 눈덮힌 히말라야 자락을 즐기는 것으로 등산을 마쳐야 했다.

오후엔 우연히 알게된 Raja의 악세서리 가게에 가서 밥도 얻어먹고

짜이도 얻어마시며 얘기를 나누게 되어 작년에 얼핏들은 얘기를 Raja한테 물어보았다.

- 무슬림들은 정말 자기나라보다도 종교를 제일 중요하게 여기느냐??

그의 대답은 그렇다! 였다.

종교가 나라를 만든다. 종교는 가족과 같다.

그렇지만 전쟁을 하는이유는 바로 국가라는 것 때문이다.

머 대충 이런 예기들을 했는데 굳은 신념과 믿음으로 얘기를 했기에

그것에 대해 어떠한 토를 달거나 반대의견 한마디조차 꺼내질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인간의 생각이란 늘 거기에서 거기로 한길인데 왜 저 옆에 서서

걸어가느냐 하는 것으로 싸운다.

그렇지만 발자국을 같이 남길 수는 없다.

내가 너가 아니듯.

1999. 4. 7. 수. Dharamsala (Mcleodganj)

마날리를 떠나 계속되는 계곡길을 거쳐 Mandi에서 2틀정도 머물고 이곳 다람살라에 왔다.

스님은 계속 마날리에 머물겠다하여 작별했다.

다람살라오는길은 계속 산길이었는데 저 멀리에는 평원이 보이는 아름다운 길이었지만

아슬아슬한 절벽길을 전속력으로 내달리는 버스는 순간순간 마음을 조이게 하는 것이었다.

티벳인들이 많으니 티벳에 온거 같고 음식도 수제비,칼국수등을 입맛에 맞게

먹을 수 있으며 묵고있는 도미토리도 25Rs.로 부담이 없으니 지내기에 정말 좋다.

길거리를 어슬렁 거리다 Sunrise 짜이가게 앞에서 여행객들과 이런저런 수다떨며

짜이 마시는것도 좋았고 할 일이 없을땐 박수폭포쪽으로 산책을 갖다오던가

왕궁앞 남걀사원에서 티벳승려들이 기도하는 모습, 오체투지라고 하던가..

보고만 있어도 내가 허리가 다 아픈, 온몸으로 절을 하며 기도하는

정성스런 티벳인들의 모습, 손뼉을 마주치며 따지는것같은, 토론하는 장면도

구경하고 네충사원에서 은은히 퍼지는 아름다운 풍경소리를 들으며

잠깐 눈 붙이고 있으면 하루는 금방 가곤 하였다.

왕궁의 반대편에 있는 St, John 성당은 버려진 성당같이 외벽은 낡고

주위의 무덤들은 을씨년스러워 보였지만 안엔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아

흠뻑 분위기에 취할 수 있었고 성당의 스테인글라스 창문이 보기에 좋았다.

Nadi라는 작은 마을로의 산책은 더욱 다람살라가 마음에 들게하는 것이었다.

앞마당에 원숭이들이 놀고있는 Tushita Meditation Center를 지나

TCV라는 티벳어린이 학교를 거쳐 Dall 호수에 다다랐는데 호수엔

큰 물고기들이 한가하게 놀고 있다.

조금 먼길을 걸어 Nadi라는 마을에 도착했지만 히말라야가 가깝게 보이고

한발짝만 앞으로 다가서면 그만큼 앞으로 확 다가서는 히말라야를 보니

한번 올라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Dall 호수부터 따라오던 개는 중간중간 마을을 지나칠 때마다

마을 개들의 텃새 때문에 싸움을 해야했지만 결국 다람살라까지 따라와

다람살라에서 살기로 한거 같다.

이후 계속 그 개를 다람살라에서 볼 수 있었다.

1999. 4. 19. 금. Srinagar

스리나가르에 오는길은 정말 멀고도 험했다.

다람살라를 출발 파탄콧까지의 길엔 군인들과 부대들이 많이 보이고

도로에 다니는 차들의 반은 군용차들이었다.

파탄콧에서 잠무가는 표를 끊기위해 한차례 전쟁을 치르고 가까스로 표를 끊어

잠무에 도착, 숨돌릴 새도 없이 Tourist Reception Center에 가서

다음날 새벽에 출발하는 버스표를 끊고 계속 길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다.

TRC주변엔 스리나가르의 하우스보트 삐끼들이 진을 치고 있었지만

직접 가서 보고 결정하겠노라 단호한 맘을 먹고 있어서 그들의 입에바른 달콤한 말들,

먹히지 않자 몹시 위험하다는 협박성 말들이 귀찮을 뿐이었다.

오는길에 검문도 있었는데 버스에서 모두 내려 검문을 받아야했고

버스하체까지 거울을 이용해 조사를 했다.

검문이 끝나고 길이 2,547m 의 굴을 통과하는데 희미한 노란 불빛이 비추고 있고

바닥엔 물이 차 있어서 땅굴같은 느낌이었다.

이윽고 산을 내려와 꽃이 만발한 벌판을 달려 스리나가르에 도착해

한참을 걸어 Dal lake에 도착, Lotus House보트를 잡아 묵기로 했다.

더블에 340Rs. 다소 비싼듯하지만 잘해주려고 하는 주인과 깍듯한 Servant가 맘에 든다.

외국여행자들은 가끔 한두명만 눈에 뛸뿐 거의 여행자들은 가족동반 인도여행객들이다.

외국여행자들이 많은것도 문제지만 없는것도 문제여서 길만 나서면

하우스보트 주인들이 따라붙어와 호수주변 걷는게 여간 어려운일이 아니었다.

시내곳곳에 진을 치고 군인들이 경계를 하고 있고 건물마다 입구에선 검문을 한다.

같이 왔던 일본인이 먼저 스리나가르를 떠났고 나는 남아서

스리나가르의 구시가지에 있는 사원들과 호수주변에 있는

무굴정원들을 자전거를 타고 돌아보았고 시카라를 두시간정도 빌려 호수를 돌아보았다.

자전거로 달호수를 가로지르는 좁은길을 가로질러 Nagin lake로 향하는길 주위는

마치 시골에 온 듯 작은 마을들이 보이고 스치는 작은 집안에선 꼬마들이 손을 흔들고...

나도 손을 흔든다.

나긴호수 에 다다르자 역시 HouseBoat주인들이 길에나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 하지만 난 내일 여길 떠나.. 그냥 호수 구경 온거야....

아쉬운 눈빛을 보이는 아저씨를 뒤로하고 페달을 밟는다.

매일같이 달호수에선 여러사람들이 시카라 위에서 수초를 걷어내고 있고

인도관광객을 태운 시카라들이 느릿느릿 움직이고 숄이나 잡화, 보석등을 파는

장사치들이 시카라를 타고 장사를 하고 있다.

거리엔 수시로 코란 외우는 소리가 사원에서부터 울려퍼지고

온몸을 검은천으로 감싸고 눈만 망사로 되어있는 옷을 입은 여자들이 지나다니고,

신문엔 테러로 인도군인들이 죽었다는 기사가 가끔 실린다.

저녁마다 푸짐하고 맛있는 저녁식사에 배가 터지도록 먹는다..

내가 어디서 이런 음식을 푸짐히 먹어보리....

1999. 4. 23. 금 Srinagar -> Jammu

간단하게 아침을 때우고 Tourist Receprion Center 로 향했다.

7:30에 잠무행 버스는 떠났다.

어제 5명의 군인이 폭탄테러로 죽었단 소식 때문인지 출발한지 얼마 안되어

차에서 내려 검문을 받아야했고 군인들의 모습도 예전보다 더 날카로워진 모습들이다.

10시간 동안의 버스여행동안 많은 생각들을 했고

그 생각을 다시 영어로 번역해 생각하다 막히는곳이 있으면

사전을 찾아 메꾸는식으로 10시간을 금방 때웠다.

17시쯤 Jammu에 도착해서 버스터미널 근처에 숙소를 잡고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술파는곳을 찾아 맥주를 사다 마셨지만 밤새 더위와 모기에 시달렸다.


1999. 4. 24. 토 Jammu -> Patankot -> Kagil -> Dharamsala (Mcleodganj)

새벽5시 30분에 숙소를 나와 다람살라행 버스를 찾으니 우선 파탄콧으로 가란다.

파탄콧근처에 내려 템포를 타고 버스정류장까지 가야했다.

다시 까갈까지 가는 버스, 까갈에서 다람살라, 다람살라에서 맥레오드간지.

한번도 쉬지않고 바로바로 연결되는 버스를 운좋게 타고 왔건만

잠무에서 다람살라까지 꼬박 7시간이 걸렸다.

오랜만에 다시 다람살라에 오니 역시 한국인들이 있어 맥주와 위스키로 목을 축이고..

다시 Paljor Gackil G.H. 에 도미토리를 잡았다.

1999. 4. 25. 일 Dharamsala Mcleodganj

우연히 청전스님을 만나게 되어 인사를 했다.

스님도 이곳에 왔다고 하여 다시 만나게 되겠구나 생각했는데

역시 예상대로 길에서 만나게 되었다.

오래간만에 다시 만났으니 술한잔 않할 수 없다.

맥주를 마신후 다시 양주 큰병을 다 마셔버려 나중엔 정말로 오랜만에 취하게되었다.

엉망으로 취하고 어떻게 들어와 잠을 잤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1999. 4. 26. 화  Dharamsala

5월1일에 달라이라마의 Public Audiance (공동 만남의 시간)이 있다고 하지만

4월 30일에 델리로 행해야 한다.

G와 만나기로 약속했으니 만나서 또 어디로 갈지 상의 해 봐야겠다.

델리에 간다하니 청전스님이 유서라도 서놓고 가라고 농담하실정도로

델리는 불화덕이다.

청전스님께서 커피를 직접갈아 두잔 대접해 주셨다.

Pune에서 공부하시는 두 경우, 박경숙씨 부부도 만났는데

작년에 인도여행중 만났던 김미성누나를 예기하니 미성누나한테

내예기를 많이 들었는데 이곳에서 나를 다시 만나니

무척 재미있어 하신다.

1999. 4. 28. 수  Dharasala

오전에 우체국에 가서 Srinagar의 하우스보트에서

하루치 방값을 잊고 치루지 않았던 130Rs.에 조금 더 보태 150Rs.를 보내주었다.

잘 도착하길 바란다.

우체국에서 masumi라는 일본여자를 만나 남걀사원에 산책가서 오후시간을 보냈다.

더운날씨지만 그곳은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몇일전부터 시작된 집단 기도소리와

이름모를 악기소리가 어우러져 평화롭고 아늑한 분위기를 느끼며 편안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티벳인들은 또 오체투지(섰다가 주욱~ 덮드리는 식으로 하는 기도)를 하루종일 하고 있다.

보기에도 힘든데.... 저들은 무엇을 빌며 저리도 열심히 기도 할까....

1999. 4. 30. 금 Dharamsala Mcleodganj -> Delhi

짐을 정리하고 숙소값을 치뤘지만 버스는 오후 출발이라

계속 숙소에서 낮잠자거나 강아지와 놀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 6시30분쯤 델리행 버스가 출발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붉은달이 해처럼 떠오르고 있다. 오늘이 보름 이던가...?

날은 어두웠지만 지대가 낮아지니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뜨거운 바람이다.

뜨거운 대지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느낌이든다.

무슨이유에선지 중간쯤 오래 정차를 했고 잠에취해 어리버리 하던 나는

그동안 모기에 물려 내가 내팔 만지는 것이 징그러울정도로 울퉁불퉁해졌다.

껌껌한 대지를 버스는 또 달린다.

1999. 5. 1. 토 Delhi (Pahar ganj)

새벽 6시에 Delhi에 도착했다.

아침이라 그러지 아주덥진 않다. 물론 낮엔 돌아다니기 힘들정도로 덥겠지.

작년에 인도땅을 처음밟은것도 5월3일 델리에서였다.

그때도 더워서 숙소 옥상에서 계속 자야했고 하루에 몇통씩 물을 사 마셔야 했다.

그 더운땅을 어떻게 5개월동안 빨빨대며 돌아다녔는지 지금 생각하면 그땐 참 용감했다.

지금은 작년처럼 그렇게 다닐 수는 없을 것 같다.

Navrang G.H.를 100Rs.에 잡았는데 더워서 도저히 방에 있을 수가 없다.

더군다나 5층방이라 더 덥다.

fan에서는 더운바람이 불고 물조차 데워져있어 따뜻한물이 나온다.

창문이라곤 없는 감옥같은 방에서 샤워를 하고 젖은몸으로 바로 침대에 눕는다.

몸이 물에 젖은 상태에서 바람을 맞으면 그런대로 시원해지기 때문이다.

침대도 뜨거워 물을 뿌린다.

한시간이면 젖었던 모든 것들은 바짝 마르기 때문에 베게도 적시고,

수건도 적셔 몸에 얹어놓는다.

잘때는 룽기를 물에 담궜다가 덮고 잔다.

자다보면 바짝말라 방금 다리미질이라도 한것같이 따뜻해진다.

그러면 다시 룽기를 물에 담궜다 덮고 잔다.

거리는 이글대는 햇볕과 수많은 사람들과 릭샤,

자동차, 소, 개들과 쓰래기들, 소똥,

장사치들의 수레 그리고 끝내 없어질 것 같지 않은 먼지와 소음으로 가득하다.

1999. 5. 2. 일 Delhi

새벽에 갑자기 더워져 깨어나 보니 fan이 돌지 않는다.

더운날씨에 새벽 6시부터 정전이라니..............

할수없이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섰다.

새벽이라 방보단 밖이 조금 견딜만 했다.

짜이 한잔 마시고 숙소 앞에 망연히 앉아 있었다.

온통 일본인들 뿐이다.

뜨거운 도시가 다시 깨어나기 시작한다.

Golden Cafe에가서 샌드위치로 간단히 아침을 때웠다.

거리는 다시 장사치들의 소음과 먼지로 가득차기 시작한다.

그속을 쓸쓸히 걸어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후끈한 공기와 뜨거운 침대가 나를 맞는다.

만져지는 모든 것들이 뜨뜻하다.... 계속 뜨뜻하다.

저녁식사후 숙소로 돌아와 보니 다시 정전이 되있었다.

방에 가봤자 fan도 돌지 않고 거리보다 더 뜨거울 것 같아 뉴델리역쪽으로 걸었다.

역시 많은 사람들, 그보다도 더 많은 쓰레기들이 거리에 가득하고

발전기 돌리는 소리와 오토바이, 차들의 경적소리가 더욱 정신없게 만드는 데다가

인도인들의 Hello~~ Japanese~~ 곤니찌와~~ 소리들이 더욱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숙소로 돌아왔더니 어제도 맥주를 마시고 있던 라자스탄에서 왔다는 인도인이

또 맥주를 마시고 있길래 40Rs.에 한병 얻어 마셨다.

권수는 오지 않을 모양이다.

1999. 5. 4 화 Delhi -> Goa

새벽에 MainBazaar에 나가 서서히 시작되고 있는 혼돈을 바라보며 달고 뜨거운

짜이 한잔과 비리 한 개피로 또 하루를 시작한다.

간단히 아침을 때우고 니자무딘역으로 향했다.

화염속을 기차는 달린다.

오후 1시쯤되자 U.P.(우타프라데시)주의 중앙으로 향하기 시작하는데

기차밖에서 불을 때고 있는 듯 더운공기가 불어온다.

모두들 햇빛 가리개용 창문을 닫고 수건을 물에 적셔 머리에 엊어놓는다.

기차안의 온도는 40.1도.

더위란 무엇인가 절실하게 느낀다.

사막에서 그 더위에 긴팔 긴바지를 입고 몸을 가리는 이유를 이제 알겠다.

무엇이든 시원한 것이 없으면 미쳐버릴것만 같다.

기차는 방금 화로에서 나온 쉿덩이 같고 살에 닿는 공기 또한 너무 뜨거워져 있다.

1999. 5. 5. 수 Delhi -> Goa

새벽에 잠시 멈추는 듯 하더니 기차는 계속 달린다.

남쪽으로 내려오니 조금은 시원해 졌고 새벽에 바람을 맞으니 서늘함까지 느낀다.

밤 10시쯤 고아의 Madgaon에 도착했다.

베나울림 해변으로 가기로 하고 그곳의 Parm grove cottage에 방을 잡았다.

바람이 시원하게 분다.

지옥같던 어제의 그 불화덕을 생각하며 시원하게 맥주한병하니 정말 천국이 따로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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