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에서 이란으로 들어왔습니다.
15일간의 이란 여행기입니다.

1 USD = 9,100 Rials (파키스탄 퀘타의 블랙마켓에서)


1999. 8. 29.  일  Pakistan, Taftan  -   Iran, Mirzaveh - Zahedan - Bam

아침 8시쯤 타프탄에 도착했다.
사막위에 썰렁한 마을과 썰렁한 국경이 있다.
남은 파키스탄 돈으로 짜이를 마시고 돈뭉치를 든 환전꾼들을 뒤로하고
이미그레이션이 문을열길 기다렸다.

8시30분이 되자 출국심사를 시작한다.
간단히 끝내고 드디어 이란땅에 발을 디뎠다.
입국심사를 끝내고 짐검사를 하는데 카세트 테입 6개를 모두 들어보고
봉해서 이란에 있는동안 뜯지 말라고 한다.
(속으로)"안뜯긴 뭘 안뜯어.. 나를 따라다녀라..."

자헤단까지 가기위해 5인용차를 탔는데 검문소를 4번정도 지나쳤다.
그때마다 여권을 보여줘야 했는데 대충 앞장만 보고 통과..
자헤단 터미널에 내리자 마자 Bam에 가는 표를 끊었다.
시간이 좀 남아 바로 옆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뭐가 있는지 잘 몰라하니
날 끌고 주방으로 데려가더니 음식을 하나 하나 보여준다.
닭고기와 밥으로 이란에서의 첫 식사를 했다.
조금 비싼 듯 하지만 첫 식사라 바가지 쓰는셈 치고 그냥 먹기로 한다.

12시쯤 Bam으로 출발, 가도가도 사막이다.
5시간 반 정도 걸렸는데 덥고 건조하여 죽는줄 알았다.
사막을 하루종일 달렸다.
이란의 도로는 잘 닦여 있지만 주변이 삭막한 사막이라 마음까지 메마르는 것 같다.
Bam에 내려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는데 숙소의 방명록에 이곳에 사는
한국사람의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숙소주인과도 친구라 하여 전화를 걸어주어 통화 할 수 있었다.
저녁 7시쯤 숙소로 온다고 한다.
대우자동차 공장이 근처에 있는데 그곳에서 근무 한다고 한다.

과연 저녁때 김영룡 이라고 하시는 분이 오셨다.
그분집에 같이 가서 미역국에 된장찌개, 김치를 먹으니 너무 좋다.
집은 넓었지만 가족은 서울에 있고 혼자 산다고 한다.
넓은 공단을 한바퀴돌아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한국분을 만나 음식까지 대접 받으니 너무 기분이 좋다.


1999. 8. 30.  월  Bam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준비를 하고 Arg-e Bam (밤 성)으로 향했다.
아침이 아니면 햇빛이 뜨거워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기 때문에
아침일찍 서둘러야 했다.
20분쯤 걸어서 도착했는데 입장료가 15,000Rials 나 했다.
흙벽돌의 성과 예전의 마을인듯한 건물들이 세월을 말해주듯
군데군데 허물어진채, 그러나 아직까진 볼만한 모습으로 서 있다.
벌써 햇빛이 강렬하게 비추고 있어서 흙담벼락들이 바짝바짝 말라가는 느낌이다.
성 안에 차이하네(찻집) 가 있는데 나이드신 할아버지가 혼자 앉아 있다.
성을 구경하는 사람도 나 혼자여서 더욱 적막하다.
차이를 한잔 마시고.. 돌아오는길에 아침으로 이란식 snadwich를 먹었다.
1,900Rials. 무척 싼가격에 아침을 때울 수 있어서 좋다.
쏘시지를 썰어 계란을 풀어 같이 튀기고 피클과 토마토를 넣은 길쭉한 샌드위치이다.
값에 비하면 괜찮은 것 같다.
머리도 시원하게 짤랐다.

낮엔 너무 뜨거워 움직일 수가 없고 도미토리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에어콘이 아니고 에어쿨러가 설치되어 있지만 인도와는 달리 소음도 없고
무척 시원하여 에어콘을 설치 해놓은 것 같다.
오후에 파키스탄 퀘타에서 헤어졌던 다까시 가족이 왔다.
가는길이 같으니 헤어져도 또 금방 이렇게 만나게 된다.
저녁때엔 김영룡님이 오셔서 저녁을 함께 하고..
내일은 다까시 가족과 함께 김영룡님의 집에 가서 저녁을 함께 하기로 했다.

 

1999. 8. 31.  화  Bam

아침일찍 Bazaar에 나가보았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상점들이 아직 문을 열지 않았고
몇몇 상점들이 문을 열고 청소를 하고 있다.
차이를 한잔 할까 하고 물어보니 나를 데리고 차이를 파는 골목길로 데려다 준다.
골목길 바닥에 버너와 주전자를 놓고 할아버지가 차이를 팔고있고
몇몇 아저씨들이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저씨들과 함께 차이를 마시며 어디서왔냐, 직업은 뭐냐, Good Morning,
등을 얘기 했다.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아 론리플래닛, 페르시아어가 나와있는 부분을 펴들고
그들이 얘기할것이 있으면 단어를 가리키며 나에게 보여준다.
아침 9시도 안됐는데 벌써 해가 뜨겁게 달아올라 더워지기 시작한다.
카셋트에 넣을 건전지를 사려고 했는데 파는곳을 쉽게 찾을 수가 없어
한 이란인에게 물어보니 나를 데리고 다니며 건전지를 살때까지 옆에서 도와주었다.
정말 친절한 사람들이다.

오늘도 구름한점 없이 파란 하늘이다.
건조하고 뜨거운 하루가 시작된다.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상점들도 문을 닫는다.
너무 뜨거워 거리에 사람들도 보이지 않으니 문닫고 낮잠자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오후 5시가 다 되어 늦은 점심을 또 샌드위치로 때우며 젊은 주인과 얘기를 했다.
>너희나라에선 마이클잭슨 볼수 있니?
>볼수 있지 물론.
>좋겠다. 이곳에선 볼수가 없어. 별로 좋지 않아. 여자들도 봐. 다 저런모습이야.
>......
>이곳이 난 싫어.
>앞으로 좋아지겠지. 좋아질꺼야...
이란인이 외국을 동경하며 이란을 안좋아할줄은 정말 몰랐다.
이런 저런 사람 다 있겠지.

오후8시쯤 김영룡님이 오셔서 다까시 가족과 함께 집으로가 한국음식을
만들어 먹고 집에서 만들었다는 밀주까지 한잔 마셨다.
이란에선 술 구경도 못하니 집에서 만들어 마실 수밖에..
저녁을 먹고 얘기를 나누고있는데 다까시의 딸 나나미가 열이 나고 아픈가보다.
산책을 나가려고 했으나 나나미가 아파 그냥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은 쉬라즈로 가야할 것이다.

 

1999. 9. 1.  수  Bam - Shiraz

물이 나오지 않아 대충 이만닦고 어제 갔었던 골목길의 차이파는곳에 갔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의자3개가 앞에 놓여져있고 가끔씩 손을 떠는,
곧 쓰러질것같은 주인 할아버지, 매일 차이를 마시는 것 같은 똑같은 손님,
구면이라 아침인사를 하고 말없이 차이를 마시고 일어섰다.
숙소에서 인도 델리에서 만났던 요시꼬와 사또미를 다시 만났다.
쉬라즈에 간다고 하여 오후3시에 쉬라즈행 버스를 같이 탔다.
교통비는 정말 싸다. 2달러 안쪽으로 모든 것이 해결이다.
다까시 가족은 나나미가 아파 좀더 머문다고 한다.
2번정도의 검문을 받고 새벽4시에 쉬라즈에 도착했다.
아직 어두운데다 낯선 도시라 이리저리 두리번대다가
한 이란인에게 Meidan Shohada에 어떻게 가냐고 하니 나도 지나치는 길이니
같이 택시를 타자고 한다.
그런데 그가 택시비를 지불하고 마이단 쇼하다에 같이 내리더니 잘 가라고 하고
또 택시를 잡는 것이 아닌가 그는 이곳까지 우리를 데려다주기위해 일부러 온 것이었다.

Toos 호텔에 3bed를 각각 15,000Rial에 잡아 머물기로 했다.
낮이 됐는데도 Bam에 비해 그리 뜨겁지가 않다.
역시 도시라 Bam보다는 활기차다.
큰 시장을 둘러보고 거리를 구경했다.
이곳의 여자들도 그리 답답한 모습은 아니고
겉옷은 칼라가 있는 옷을 입은 여자들이 많고 스카프도 화려한 칼라를 많이 했다.
밤이되니 시원하다.
숙소주인이 차이도 갖다주고 포도와 난도 갖다주었다.. ^^

 

1999. 9. 3.  금  Shiraz

이란의 공휴일이다.  이슬람국가는 금요일이 휴일이다.
쉬라즈에서 꼭 가봐야할곳. 페르세폴리스 (PersePolis) 에 가기로 했다.
아침일찍 미니버스정류장으로 가서 미니버스로 40분쯤 걸려 Marvdasht 에 도착
또 택시를 타고 페르세폴리스 앞까지 갔는데 택시에서 내려 택시비 때문에
요시꼬와 택시기사 아저씨가 한참을 싸웠다.

늙은 아저씨는 벼락벼락 소리지르는 요시꼬가 황당했던지 손을 벌벌 떠는게 보였다.
택시기사는 올 때 합승을 했어야하는데 우리 셋이 뒤에 다 타지 않고 한명은
앞에 타서 합승을 하지 않고 그냥 왔으니 조금 더 내라고 하고
요시꼬는 절대 그럴수 없다며 싸우는데 젊은 여자가 늙은 아저씨한테
그리도 소리를 지르며 대드는 것을 보니 나와 사또미는 질려서 말을 할 수가 없다.
하도 소리를 지르니 주변에서 이란인들이 모려들 정도였다.
결국 요시꼬가 이겨서 2,000Rial만 주었고 그 늙은 아저씨는 벌벌 떨며 떠났다.
사실 나는 그 택시기사 아저씨 편이라 아무말 없이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말은 정말 사실 이었고 거짓말을 하거나 돈을 좀더 받아보려고 수작을
부리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영어를 못했지만 이란말로 무엇을 말하려하는지 이해가 갔다.
여행자들이 상황파악을 재대로 하지 못한채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다투는 것을
그동안 여행하면서 많이 보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러고싶지 않다.
여행은 즐거워야하고 내가 마음을 열고 현지인을 대하면 상대방도 마음을 여는 것이다.
릭샤비 200원 때문에 싸우고 보석같은것엔 10배씩 바가지를 쓰는 여행객을 보면
안쓰러운 생각이 드는 것이다.

기둥과 벽에 새긴 부조들이 볼만한 페르세폴리스를 둘러보고 돌아왔다.
저녁으로 첼로케밥을 먹었는데 좀 짠듯하여 입안이 불편하고 물이 먹힌다.
밥을 먹고 오는길에 극장안을 보니 사또미가 울고있는게 아닌가.
극장에 들어가려고 하니 앞에서 막았는데 저사람의 친구라고 하니 그냥 들어가란다.
왜 우냐고 하니 요시꼬와 아까 택시기사와 싸운 것을 얘기했었는데
자기는 이란인들이 좋은데 요시꼬는 항상 그렇게 싸우며
얘기하면서 자기한테도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헤어지고 혼자 여행하는게 어떻냐고 하니 자기는 가이드북도 없으며 혼자는
여행을 하지 못하고 또 파키스탄을 거쳐 인도로 돌아가서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돈도 얼마남지 않았다고 한다.

마음이 맞지 않는사람과 여행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맘먹고 헤어지지 못하는 사또미가 참 바보 같기도 하고 가엾게도 보인다.
저녁때엔 다까시가족이 또 같은 호텔로 왔다.
신기하게도 다까시 가족과는 계속 같은 호텔에 묶게 된다.
나나미는 다 낳아서 활기차다.
내일은 비자연장을 해야한다.

 

1999. 9. 4.  토  Shiraz

론리플래닛 이란편은 틀린부분이 많아 비자연장 하는곳을 헤메다 결국
택시를 타고 찾아갔다.
예전에는 연장이 좀 더 됐지만 지금은 5일밖에 연장을 해주지 않는단다.
책엔 1,000Rial이 든다고 했지만 이것저것 14,000Rial이나 내야했다.
내일 아침 9시에 찾으러 오라고 한다.

숙소 프론트 앞에서 이란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영어를 하는 한 남자가 자기의 여자친구가 한국여자인데 연락이 안되니 도와달라한다.
한국에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하면 그여자와 통화할수 있는지
한국발음을 영어로 적어달라고 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한국말로 말을 해야겠단다.
그녀는 너를 남자친구라고 생각 않할지도 모르잖냐고 하니
그녀와는 몇 달전 이 숙소에서 만났는데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자기와 함께 방에서 담배도 피우고 밤도 같이 보냈으며 같이 테헤란으로 여행떠나자고
그녀가 제안을 했지만 일 때문에 자기는 가지 못했다고 한다.
할수없이 전화를 걸어 그녀를 바꿔달라는 말을 한국발음의 영어로 다 적어주었다.
현지인들이 거짓말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인도부터 여행하면서 한국여자와 연락이 안된다느니 하는말을 여러번 들었다.
여행하며 무슨일을 하건 내가 욕하거나 상관할바는 아니지만
만약 현지인들의 말이 사실이고 현지인을 정말 사랑한 것이 아니라면
그냥 하룻밤 상대였다고 나중에라도 그들에게 말해주길 바란다.

 

1999. 9. 5.  일  Shiraz - Esfahan

여권을 찾으러 갔다.
9일까지 연장이 되있었다.
단지 4일이 더 남아있을뿐이다.
5일연장해서 어떻게 터키까지 가냐고 하니 그건 너의 문제라고 한다.
다까시와 터미널에가서 밤9시 출발 에스파한행 버스를 예약했다.

낮에 할 일이 없어 영화관에가서 영화를 봤는데
느리고 재미없는 화면만 계속 이어져 잠이 들었다.
중간중간 휘파람을 불어대서 깨어보면 여자 주인공이 남자주인공의 뺨을 때리거나
얼굴을 가까이하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저런 장면에 휘파람을 불어대다니...
저녁9시 출발버스는 30분 늦게 출발했다.

 

1999. 9. 6.  월  Esfahan

아침 7시쯤 붉은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며 에스파한에 도착했다.
숙소를 잡아 조금 잔후 에맘 호메이니 (Emam Khomeini) 광장에 가 보았다.
넓은 광장이다.
주위엔 상점으로 둘러쳐져 있고 모스크가 붙어있고 다른쪽은 시장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 광장을 한바퀴 도는 마차도 있어서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저녁때엔 Shiraz에서 같은 방을 썼던 사또미와 요시꼬가 같은 숙소로 왔다.
그들은 내일 Mashad로 떠난단다.
같이 저녁을 먹고... 사또미는 다시 요시꼬와 친해진 것 같지만... 속이야 알수가 없다.

 

1999. 9. 7.  화  Esfahan

아침식사를 숙소에서 했는데 비싸기만하고 음식은 형편없었다.
숙소 방명록에 이곳에서 3일간 비자를 연장할 수 있지만
가끔 연장을 시켜주지 않는다고 한다.
저녁때는 sio se pol 다리 밑의 차이하네에가서 차이한잔하는데
주변에 이란인이 와서 여러명이 같이 앉아 시샤를 나눠피웠다.
같은 도미토리에 Jin이라는 일본친구가 있는데 5년간 여행중이라고 한다.
대단한넘.


1999. 9. 8.  수  Esfahan

터미널에가서 타브리즈행 버스를 예약했다.
또 Emam광장에 나가 바람좀 쐬고...
내일은 비자를 연장하고 타브리즈로 떠난다.


1999. 9. 9.  목  Esfahan - Tabriz

아침에 우선 비자를 연장하러 갔다.
내 여권을 보자마자 한번 연장했으니 더 이상 연장은 안된다고한다.
내 그럴줄 알고 일부러 기간을 꽉채워서 갔던거다..
터키까지 가야하니 갈 시간을 줘야할 것 아니냐며 계속 이런저런
말다툼 끝에 겨우 3일을 연장받을수 있었다.

비자연장 스탬프옆에 EXIT라고 써놓고 오는 12일안에 이란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한다.
그래... 나도 더 이란에 있고 싶지 않다..
숙소로 돌아와 일단 Check-out을 하고 빈침대에서 낮잠을 잔후
다까시가족과 작별한 후 터미널로 향했다.
버스비가 조금 비싼만큼? (사실 비싸지 않다, 3달러) 고급 볼보 에어콘 버스에다
빵과 음료수까지 준다.  게다가 14시간의 거리...
정말 싼 이란의 교통비 덕에 퀘타에서 환전한 90달러가 15일 여행하고도
조금 남게 생겼다.
에어콘을 너무 세게 틀어놔서 새벽에 보니 기온이 8도.
대단한넘들..  8도면 추울만도 한데.. 에어콘 끌 생각을 않한다.
황량한 사막을 또 달린다.


1999. 9. 10.  금  Tabriz

이란여행하며 가장비싼 3달러가 조금 안되는 숙소를 잡았다.
또 처음으로 도미토리가 아닌 싱글이다.
한숨자고 점심을 먹은 후 싸구려 T를 하나 사고
터키와의 국경마을인 마쿠까지 표를 예약했다.
이미 한국에서 갖고온 T는 다 늘어나서 못입게 되었다.
저녁때 숙소앞에 공원이 있어 가보니 작은 놀이시설들을 만들어놓았다.
둥근 원통형 나무구조물이 세워져있고 그 안에서 오토바이를 타는 묘기도 부리는데
내가 궁금해하며 기웃대자 그냥 올라가서 보라고 한다.
원통형 나무구조물에서 원숭이와함께 오토바이를 탄다.
원심력 때문에 떨어지지 않겠지만 아슬아슬하게 정말 잘 탄다.
구경하는사람들은 원통형 맨 위쪽에서 바라보고 있는데 그곳까지 올라온다.


1999. 9. 11.  토  Tabriz - Maku

아침을 간단히 달걀로 때우고 12시쯤 터미널로 향했다.
오후1시 버스였지만 그 버스는 취소되었고 2시30분으로 변경되었다 한다.
할수없이 차이한잔하며 기다린후 버스에 탔다.
마쿠에 저녁6시반쯤에 도착했다.
숙소를 잡고 여권을 보이려하는데 여권이 없다..
아..........  타브리즈의 숙소에서 여권을 맡기고 찾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어쩐지 나는 여권 맡기는걸 싫어하는데 숙소에서 우기는 바람에
억지로 맡긴 것이 잘못이었다.
숙소주인이 타브리즈의 숙소로 전화를 걸어 내일 아침 6시 버스로
내 여권을 보내달라고 전화를 해주었다.
내일 정말 잘 도착할지 걱정된다.
내일이면 이란 비자도 끝나게 되는데 만약 여권이 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된단말인가.
여권을 잃어버리고 마쿠까지 오도록 까맣게 모르고있었다니...
그동안 마음이 좀 헤이해져있었나....

노크소리에 잠이깨어 시계를 보니 밤 12시 30분.
호텔주인이 Passport 라고 한다.
얼른 내려가보니 한 택시기사가 타브리즈에서 내 여권을 가지고 온 것이다.
내일 버스로 보낸다더니 내일 비자가 끝난다고 했더니 서둘렀던 모양이다.
택시비로 80,000 Rial을 달라고 한다.
여권찾은 것으로 다행이고, 스스로 각성해야하기에 군소리없이 돈을 지불했다.
휴~~ 정말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래도 교통비가 싼 이란이었기 망정이지 터키였으면 아마 9달러정도가 아닌
90달러정도 였을 것이다.
암튼 여권을 다시 찾아 너무 기쁘다.

 

1999. 9. 12.  일  IRAN Maku - Bazargan  -  TURKEY Dogubeyazit

나는 왜 항상 국경을 넘을 때 나 혼자일까.
인도에서 파키스탄 넘을때도 다른사람들은 그곳을 넘는 여행자가 많으니
분명 여행자를 만날 수 있을거라 했지만 나혼자 넘었고,
파키스탄에서 이란국경을 넘을때도 나혼자 였다.
지금 이란에서 터키를 넘는데도 나혼자... 난 왜 이럴까.....
이란측 이미그레이션과 터키측 이미그레이션이 한건물에 있는데
완전 시장통이었다.
이란과 터키사람들로 꽉차있고 줄을 길게 서있는데다 짐들도 많아서
자리잡고 서있기도 힘들다.
이란쪽에서 외국인이라고 빨리 통과시켜주어 조금 빨리 통과했다.
터키쪽에서도 여권을 막흔들어대며 이미그레이션 직원에게 보이니
먼저 앞으로 오라고 한다.
> 어디에 가냐?
> 터키.
> 이곳이 터키인데?
> 터키 여기저기 다 갈꺼다.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통과하긴 했으나 2시간은 걸렸다.
터키측 국경을 빠져나오니 미니버스가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계속...............이제 터키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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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에서 파키스탄으로 들어왔습니다.
이 여행기의 시작은 인도 입니다.


1 USD = 54 PRS.


1999. 8. 22.  일  India, Amritsar - Pakistan, Lahor

싱호이가 아파 선뜻 떠나지 못하고 있다가 10시쯤되어

조금 낳아진듯해서 작별을 하고 일어섰다.

벌서 햇빛이 뜨겁게 내리쬐고 있다.

버스스탠드에서 아~따리따리따리 라고 외치며 손님을 모으는 버스에 올랐다.

11시쯤 아다리 마을에 도착, 릭샤를 타고 Waghar Border,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에 도착했다.

파키스탄과 인도의 국기가 나란히 펄럭이고 있다.

그런데 국경이 너무 썰렁하다.

국경을 통과하는 사람이 3~4명 밖에 보이질 않고 외국인은 나 혼자다.

파키스탄 입국수속을 마치기도 전에 환전하라고 사람이 달려든다.

드디어 파키스탄 국경을 넘었다.

5개월간의 인도,네팔 여행이 머리속에서 죽~ 되살아났다 사라졌다.

동시에 이 낯선 나라에 대한 기대감과 공포와 설레임이 밀려왔다.

남아있는 100 인도 루피를  120 파키스탄 루피로 바꾸고

일단 20달러만 환전했다.

폐차같은 미니버스를 타고 어느마을 까지 가서 다른 미니버스로 갈아탄후

라호르역에 도착했다.

국경에서 라호르역까지 같은 미니버스를 탔던 젊은이가

자기집에 나를 초대하고 싶다고 같이 가자고 했지만

파키스탄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현지인의 집에 가는 것은

별로 안좋을 것 같아 그냥 숙소를 찾아가기로 했다.

역앞에서 릭샤를 타고 YWCA를 가려고 했지만 40Rs나 달라고 하여

미니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43번 미니버스를 찾아타고 American Center 근처에 내렸는데

YWCA를 찾을 수가 없다.

헤메고 있자니 길 건너편에서 젊은이들이 오라고 손짓을 한다.

너희들이 이리오라고 손짓을 했더니 길을 건너 한무리의 젊은이들이 몰려온다.

YWAC를 찾고 있다고 하니 미니버스를 타고 자기들이 가는길 중간에 내리면 된다고

같이 타자고 한다.

미니버스가 와서 탔는데 1분쯤 달리니 과연 YWCA가 나왔다.

미니버스의 차비 3Rs.를 내려고 하자 차장이 그냥 내리란다.

시설이 형편없고 물도 잘 나오지않는 도미토리가 125Rs. 나 한다.

파키스탄의 첫인상은 인도와 거의 비슷하지만

도로가 인도보다 넓고 정비도 잘 되있다.

사람들도 듣기와는 달리 좋은 인상이어서 마음이 놓인다.

배가고파 뭘좀 먹으려니 숙소근처가 원래 사람들이 없는곳인지

사람들도, 가게도 많이 보이지 않는다.

무척 무덥기도 하여 에어콘 바람도 맞을겸 올 때 보았던 McDonald에 갔다.

세금이 많이 붙어 비싸긴 하지만 시원한 것이 조아 계속 앉아 있다가

의사가족을 만나게 되어 콜라도 얻어 마시고 얘기도 많이 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의사의 아들에게 인도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니

인디아는 우리의 적이고, 인디아는 무척 나쁘고,

카시미리 지방에서 무슬림들을 많이 죽이고, 그들은 무슬림이 아니고

그러그러하니 인디아는 싫단다.

조그만 아이였지만 인도에대한 적대심이 확고했다.

숙소에들어가 샤워를 하려하니 물이 잘 나오지 않는다.

어렵게 샤워를 하고.. 이제 파키스탄에서의 첫밤을 보낸다.



1999. 8. 23. 월  Lahor - Rawalpindi


가이드북이 없는 여행이 이렇게 힘들줄이야.

여행객이라도 많으면 정보얻기가 쉬울텐데

어제 겨우 하루 Lahor 에 머무는 여행객을 만났을뿐이다.

라호르보다는 라왈핀디가 할인기차표 예약하기가 쉬울 것 같아

아침에 TDCP로 가서 라왈핀디행 버스를 탔다.

에어콘이 나오는 고급 버스, 정말 오랜만에 이런버스를 타 본다.

고속도로가 DAEWOO에 의해 만들어졌다더니 우리나라에 비해

손색없고 과연 휴게소에 들리니 DAEWOO 마크가 선명히 빛나고 있다.

고속도로는 왕복6차선인데 차는 별로 없어 한산한 고속도로다.

라왈핀디에 도착해 기차역으로 향했다.

숙소를 찾아야 하는데 찾을길이 막막하다.

기차역앞에 다다르니 택시들이 많이 있길래 택시기사들을 다 불러모았다.

이근처에 묵으만한 숙소중 제잎 가까운곳이 어디냐고 물으니

대충 길을 가르쳐준다.

길을 가는 도중 이곳을 떠나는 일본인 여행자를 한명만나

그가 묵었던 숙소를 가리켜주었다.

조금 헤맨 끝에 숙소를 찾아 방을 잡았다.

날도 덥고 방안도 못지않게 더워서 시내도 둘러볼겸

밖으로 나가 거리를 거닐었다.

파키스탄에 오기전엔 파키스탄에 대해 안좋은 말을 많이 들었는데

막상 와보니 사람들도 괜찬은 편이고 길이나 다른 편의 시설들도

인도에 비해 더 좋은 느낌이다.

오늘 사업을 한다는 한놈이 접근했는데 아무래도 사기꾼 같다.



1999. 8. 24.  화  Rawalpindi


역앞 Concession office에서 외국인 학생 할인 letter를 받았다.

방콕에서 만든 학생증이 많이 도움이 된다.

기차표 예약하는곳에 가서 Quetta행 기차표를 끊으려 하니

1주일 후에나 자리가 나올것이라 한다.

세상에 1주일 이라니...

1주일동안이나 이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어떻게 안되겠냐며 계속 서서 졸라대니까

내일 모래 군인용 자리가 하나 있는데 18시 이후까지

군인이 표를 끊지 않으면 그 표를 주겠단다.

일단 희망을 걸어본다.

숙소를 같은 가격에 좀더 좋은곳으로 옮기고 여기저기 다니며 구경하다가

일찍 예약소에가서 졸라볼 작정으로 17시 30분쯤 갔는데

아직까진 군인이 표를 끊지 않았다고 한다.

드디어 저녁6시가 넘어 기차표를 손에 쥐었다!

기쁜마음으로 시내를 돌아다니다 담배를 사려다가 88담배를 발견했다.

12Rs. 400원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두갑 사고 Max5집 카세트 테입도 하나 샀다.

700원 정도로 싸고 음질도 좋다.



1999. 8. 25.  수  Rawalpindi


근처에 괜찬은 유적지가 있다고 하여 Taxila라고 하는곳에 가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40분쯤 달려서 도착했는데 Taxila 박물관 까지는

또 통가를 타야만 했다.

박물관을 둘러본후 Sirkap유적지를 가려고 하는데

당나귀 마차가 가고있어 얻어탈 수 있었다.

길 주변에 나와있는 사람들이 모두 손을 흔들어주며 함성까지 질러댄다.

나도 같이 손을 마구 흔들어 주었다.

Sirkap유적지는 예전건물의 기초 터만 남아있었는데

인도, 스라바스티에서본 기원정사와 비슷한 분위기다.

풀 자르는 벙어리 영감님이 풀을 자르다 말고 절터를 안내하며 보여준다.

무척더워 물 한잔 얻어마시고 나무 그늘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쐬며

영감님과 시간을 보냈다.

햇빛이 내리쬐는,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는 한적한 유적지에

영감님과 나만이 나무 그늘에 앉아 담배를 피는 씬이다.

사진을 찍어주니 무척 좋아하신다.

Sirkap에서 조금 떨어진 Jandial에 갔으나 작은 규모의 돌 건물만 있을뿐이다.

큰 길가옆 구멍가게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대학생들과 잡담을 나누며

더위를 식히다가 돌아가는 길을 걸었다.

버스가 언제 올지 몰라 일단 걷고보자 했는데 마침 대학버스가 와서 선다.

Taxila까지 대학버스를 타고 나와 라왈핀디행 버스에 올랐다.

시골의 푸근한 분위기에 흠뻑 취해 있었던 것 같다.

어디를 가던지 시골사람들은 순박하고 인심이 좋다.

저녁을 먹는도중 비가 내렸다.

숙소로 돌아오자 본격적으로 천둥번개까지 치며 비가 내린다.

내일 새벽까진 그쳤으면 좋겠다.



1999. 8. 26.  목  Rawalpindi - Quetta


새벽 5시쯤 숙소를 나와 역으로 향했다.

역에서 다시 자리를 배정 받고 기차에 올랐다.

6시가 되자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4개의 침대가 있는 Compartment를 배정 받았는데

방도 넓고 침대를 앞으로 잡아당기자 싱글침대와 같은 크기가 된다.

쿠션도 좋고 에어콘도 나와 시원하고.. 이렇게 좋은 기차는

처음 타보는 것 같다.

50%나 할인을 받을 수 있었기에 에어콘 기차를 탈 수 있다.

밤이 될 때까진 내방에 아무도 들지 않아 넓은 방을 혼자 쓸 수 있었다.

점심은 닭고기가 들어간 도시락을 사 먹었는데 55Rs라 조금 비싸지만

닭고기가 거의 반마리에 식빵, 인도에서 먹었던 "난"이라고 하는

빵까지 있어 배는 충분히 채울 수 있었다.

에어콘이 강하게 나오진 않아 햇빛이 강한 낮에는

선풍기까지 틀어야했지만 밖에 나갔다오면 방이 얼마나 시원한지 새삼 느낀다.

기차에서 땀 안흘리며 자보긴 여행중 처음이다.

오히려 잘때는 조금 추워서 룽기를 몇번이고 고쳐 덮어야 했다.

같은 코치에서 일본인 가족을 만났는데

부부가 딸을 데리고 여행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1999. 8. 27.  금  Quetta


30시간 정도 달리자 사막이 끝없이 펼쳐져 평평한 대지가 끝없이 이어진다.

파키스탄 사람들에게 인도를 물어보면 인디아는 우리의 적, 이라는 말이

맨처음 나온다.

외국인은 일본인 가족과 나 밖에 없어서 기차가 정차 했을 때 밖에 나가면

그들은 신기한 듯 쳐다보지만 모두들 순한 눈빛이고 순진한 사람들이라

여행이 즐겁다.

언덕길이 나오기전 기관차를 기차의 맨 뒷부분에 하나 더 붙여서

기차의 맨 앞과 뒤에서 기차를 끈다.

모래와 바위뿐인 산을 힘겹게 넘고나니 Quetta에 도착했다.

오후4시 도착 예정이었으나 밤 8시에 도착했다.

38시간동안 기차에 있었으나 에어콘칸이라 편안했다.

Muslim 호텔은 빈방이 없어 근처에 조금 더 비싼 숙소를 잡고

저녁을 간단히 때웠다.

밤이라 그런지 시원하다.

내일은 이란돈을 환전해야한다.

이란돈은 이곳에서 환전하는 것이 가장 유리하기 때문이다.



1999. 8. 28.  토  Quetta - Taftan


아침을 간단히 때우고 일본인 가족과 함께 시장으로 환전을 하러갔다.

가게에 들어가서 하는것보다 환율을 높게 부르는 길거리에서

환전을 하려 했으나 아무래도 중간에 술수를 부리는 것 같아

그만두고 가게에서 환전을 했다.

1달러에 10,000리알 정도를 예상했으나 9,100리알 이상은 힘들었다.

Taftan 가는버스를 예약했고 일본인 가족은 하루 더 머문단다.

오후 5시에 떠난다던 버스는 오후7시가 되서야 출발했는데

큰버스에 10명도 안되는 사람을 태우고 곧 사막을 달리기 시작한다.

밤이지만 사막이라 건조하고 더워 입술이 트기 시작한다.

콧물이 나오는 것 같아 닦으니 코피가 나온다.

사방이 깜깜한 사막을 달리는데 예전엔 이구간에서 버스강도가

자주 일어났었다고 하여 좀 겁이난다.

중간에 저녁을 먹기위해 한번 정차 했지만 파키스탄 돈은 10Rs가 전부라

남이 먹는 것을 구경만 해야했다.

건조한 사막을 또 달린다.



1999. 8. 29.  일  Pakistan, Taftan -  Iran, Mirzaveh - Zahedan - Bam


아침 8시쯤 타프탄에 도착했다.

사막위에 썰렁한 마을과 썰렁한 국경이 있다.

남은 파키스탄 돈으로 짜이를 마시고 돈뭉치를 든 환전꾼들을 뒤로하고

이미그레이션이 문을열길 기다렸다.

8시30분이 되자 출국심사를 시작한다.

간단히 끝내고 드디어 이란땅에 발을 디뎠다.

입국심사를 끝내고 짐검사를 하는데 카세트 테입 6개를 모두 들어보고

봉해서 이란에 있는동안 뜯지 말라고 한다.

자헤단까지 가기위해 5인용차를 탔는데 검문소를 4번정도 지나쳤다.

그때마다 여권을 보여줘야 했는데 대충 앞장만 보고 통과..

자헤단 터미널에 내리자 마자 Bam에 가는 표를 끊었다.

시간이 좀 남아 바로 옆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뭐가 있는지 잘 몰라하니

날 끌고 주방으로 데려가더니 음식을 하나 하나 보여준다.

닭고기와 밥으로 이란에서의 첫 식사를 했다.

조금 비싼 듯 하지만 첫 식사라 바가지 쓰는셈 치고 그냥 먹기로 한다.

12시쯤 Bam으로 출발, 가도가도 사막이다.

5시간 반 정도 걸렸는데 덥고 건조하여 죽는줄 알았다.

사막을 하루종일 달렸다.

이란의 도로는 잘 닦여 있지만 주변이 삭막한 사막이라 마음까지 메마르는 것 같다.

Bam에 내려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는데 숙소의 방명록에 이곳에 사는

한국사람의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숙소주인과도 친구라 하여 전화를 걸어주어 통화 할 수 있었다.

저녁 7시쯤 숙소로 온다고 한다.

대우자동차 공장이 근처에 있는데 그곳에서 근무 한다고 한다.

과연 저녁때 김영룡 이라고 하시는 분이 오셨다.

그분집에 같이 가서 미역국에 된장찌개, 김치를 먹으니 너무 좋다.

집은 넓었지만 가족은 서울에 있고 혼자 산다고 한다.

넓은 공단을 한바퀴돌아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한국분을 만나 음식까지 대접 받으니 너무 기분이 좋다.

                                                                         계속 이란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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