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집트로 왔습니다.


 1us 달러 = 약 3.4 이집트 파운드

1999. 10. 20.  수  Turkey, Istanbul - Egypt Cairo

예약해놓은 공항행 미니버스가 왔다.
손님은 나 혼자.
Ataturk 공항에 도착해 보니 카이로 행 비행기가 1시간 30분 delay 되었다한다.
항공사측에서 버커킹에서 간단히 식사할 수 있는 식권을 주긴했으나
공항에서 1시간 30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항상 공항에서 이렇게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했으므로 공항만 생각하면
지루한 기다림만 생각날 뿐이다.

드디어 보딩이 시작되고 짐을 첵크 하는데 x-ray를 거친 가방을 모두 열어서
내용물을 확인하고 비행기 문앞에서도 다시 가방을 열어 검사를 했다.
어제 있었던 비행기 납치사건 때문에 그런다고 이해는 하지만
내 배낭은 한번 까발리면 다시 추스르기가 쉽지 않아 욕이 절로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낭옆쪽 그물망 안에 있던 큰 맥가이버 칼조차 찾아내지 못하고
단지 작은 손톱깍기를 갖고 이걸 들여보내느냐 마느냐 생각하며
요리조리 돌려보는 모습이 웃겼다.
17시 15분 출발 예정이었으나 21시가 다 되어서야 이륙을 한다.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어 조금 하늘로 오르니 이내 육지의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1시간 30분의 짧은 비행이 끝날무렵 드디어 Cairo가 보인다.
또 다시 새로운 땅에 도착했다.
항상 그렇듯 새로운 땅에 도착하면 설레임과 두려움과 기대감이 한꺼번에 밀려오며
살아있는 나를 온몸으로 느낀다.
visa fee 15달러를 은행창구에서 내고 우표같은 것을 받아 여권에 붙이고
얼마를 환전할까 고민했다..
버스비와 오늘하루의 숙박비, 약간의 여유돈만 있으면 되겠다 생각하고
5달러만 환전하기로 했다.
환전해주는 놈이 한번 더 쳐다본다.   " 그래 5달러만 환전 한다구!! "
모든 심사를 마치고 공항에서 나오니 더울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시원한 바람이 분다.

400번 버스타는곳을 경찰한테 물어 기다렸는데 영 오지 않는다.
택시기사가 옆에 붙어앉아 버스는 끊어졌으니 택시를 타고 가라고 한다.
택시를 탈 수 있는 돈조차 환전하지 않았으니 일단 버스를 계속 기다렸다.
밤 11시가 넘어서고 있었고 외국인 여행자는 나 혼자였고
이집트인조차 몇 명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낯선 이집트의 버스승차장에서 5달러어치의 이집트 파운드를 든채
버스를 기다리는 꼴 이라니....
기다리고 기다리던 버스가 드디어 왔다.
Maidan Tahir까지 가서 Sultan Hotel을 찾아야 한다.
한참을 달려 마이단 타히르에 도착했다.
엷은 밤안개가 끼어있고 주변은 이리저리 뻗어있는 고가도로 때문에
황량해 보이는대다가 고가도로 넘어로 보이는 높이 솟은 Hilton Hotel이
괴기스러워 보였다.
밤거리를 물어물어 40분쯤 걸어 술탄호텔을 찾아내었다.
론리플래닛의 지도가 그나마 정확해서 길찾는데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만
낯선곳에서 밤12시가 넘은 시간을 헤맨다는건 그리 쉬운일은 아니었다.
도미토리를 잡았다. 숙소엔 키부츠에서 일했던 한국인이 여러명 있다.


1999. 10. 21.  목  Cairo

이집트에서의 첫 아침을 맞이했다.
숙소에서 그리멀지 않은 고고학 박물관을 가기로 했다.
가는길에 여행사에 들러 방콕행 비행기표 가격을 대충 알아보았다.
대충 400달러 정도에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박물관에 카메라를 갖고 가면 돈을 더 내야 했지만
표검시관이 카메라를 보지 못해서 그냥 들고 들어갈 수 있었다.
무척이나 넓고 전시품목이 많은 박물관이었다.
한참을 중간에 쉬고서야 다 둘러 볼 수가 있었다.

연구원이 드나들다 문을 살짝 열어놓은듯한 방 안에서
사람들이 미이라를 놓고 작업 하는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유명한 투탄카멘의 황금마스크도 보고 원숭이와 개의 미이라도 보고..
숙소로 돌아와 저녁에 찌개와 밥을 해 먹기 위해 쌀과 야채를 샀다.
이스탄불에서 한국인커플이 고춧가루와 다시다를 주어서
그것으로 충분히 찌개를 만들수가 있다.
술탄호텔에선 간단한 취사도구와 가스랜지가 있어서 밥을 해 먹을수가 있다.
한무리 있던 한국인들이 Aswan으로 떠났고..
또 다른 한국사람들이 오고..  이곳에선 한국인을 자주 만난다.
이집트는 다른 사람들이 말했던것처럼 그리 지저분하지도 않았고
여행하기에도 크게 불편하지 않아 괜찮다.
거리의 사람들에서 아프리카를 가끔 느낀다.


1999. 10. 22.  금  Cairo

늦게까지 게으름을 피우다 아침10시쯤 일어나 또 밥과 찌개를 만들어 먹었다.
이렇게 밥과 찌개를 만들어 먹으니 밥먹는 시간이 정말 좋다.
카이로의 유명한 시장인 칸칼리 수크를 가보기로 했다.
30분정도를 걸어 칸칼리 시장에 닿았다.
시장이야 어디나 비슷하다.
사람이 매우 많고, 시끄럽고, 활기차다.
나는 쇼핑할 물건도 없고 돈도 없어 눈에 들어오는 상점이나 물건도 없었지만
돌아오는길에 이집트냄새가 물씬 풍기는 편지지와 편지봉투를 샀다.
저녁엔 역시 밥과 찌개를 끓여 한국인 2명과 함께 먹고
설거지는 그들에게 시킬 수 있었다.
2틀동안 2팀의 한국사람들을 배웅했다.


1999. 10. 23.  토  Cairo

기차역에 가서 내일밤에 떠나는 Aswan행 기차표를 예매했다.
처음엔 full이라 그러더니 다른창구에 물어보니 표를 준다.
기차표엔 영어라곤 없어서 어느칸의 어느자리인지 다시 물어서
따로 적어놔야 했다.
이집트에 오면 외국인 등록을 해야한다고 해서 Mogamma 빌딩까지 가서
알아봤지만 그것은 3-4개월전에 없어졌다고 한다.
괜히 빌딩 찾아 걷느라 힘만 뺐다.
드디어 피라미드에 가기로 했다.
버스 타는곳을 찾지못해 한참을 헤매다 엉뚱한 미니버스를 2번이나
갈아타는 바람에 시간을 많이 허비 했다.
어쨌든.. 피라미드가 보이기 시작한다...
높이... 솟아 있다.    크다..
피라미드 주위에는 온통 사막이고 낙타몰이꾼들이 낙타를 타고 돌아다니며
손님을 끌고, 경찰도 낙타를 타고 순찰을 다닌다.
단체 관광객이 많아 혼자 다니는것이 조금 궁상맞긴 했지만
말로만 듣던 피라미드를 직접보는 것이 너무 좋다.
피라미드 주위의 낙타몰이꾼이나 말 주인들은 하나같이
do you know how much? 로 물어온다.
인도에선 how much do you want? 로 물어왔었다..

한 낙타 몰이꾼이 한시간동안 피라미드를 돌아보는데 5파운드에 하자그래서
좋다고 하고 탔는데 타고 조금 가려니 멀리 사막까지 가고
하루종일 타는걸로 하자는둥 한시간에 5파운드는 너무 싸다는둥 다른말을 해 온다.
이 쓰바~  내가 젤 싫어하는게 나중에 딴말 하는거야.
인도에서 낙타사파리중 낙타에서 내려 뛰어본적이 있어서 바로 뛰어내렸다.
그러니 또 낙타주인이 따라오며 OK OK 그냥 한시간에 5파운드 하자..
미안하다... 그럼 4파운드에 하자... 하며 계속 따라다녔지만
한번 딴말 한 넘 한테는 아무것도 않한다.
돌아올때는 Sphinx 앞쪽에서 913번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1999. 10. 24.  일  Cairo - Aswan

저녁을 지어 먹으려고 하는데 한 일본인이 식당에 있길래
같이 먹을래? 하니 좋단다.
어짜피 쌀과 야채가 남으므로 밥을 많이 하고 찌개도 많이 끓여
함께 먹고 남은 쌀과 야채를 그에게 주었다.
저녁을 다 먹고 숙소 쇼파에 앉아 얘기 하는데 그가 내 카메라를 보더니
삼발이가 필요하지 않냐고 묻는다.
있으면 좋겠지만 살 입장이 못된다 하니 자기한테 있으니 그걸 준단다.
괜찬아보이는 Tripod 였는데 선뜻 나에게 준다니 놀랍다.
자기 카메라는 좋지 않은거라 이 삼발이는 나한테 어울릴꺼라 한다.
그는 암스텔담으로 일을하러 떠날꺼라 한다.
얘기를 주고받다 헤어져 기차역으로 향했다.
기차에 올랐는데 다리를 쭉 피고 앉아도 충분할 정도로 좌석이 꽤 넓고
에어콘도 시원해서 반바지를 입은 다리에 소름이 돋을 정도 였다.
무슨 생각인가를 하다 곧 잠이 들었다.


1999. 10. 25.  월  Aswan

아침 10시쯤 아스완에 도착했다.
역시 키부츠에서 일을 했다는 한국여자 2명을 만나
숙소를 구하러 여기저기 헤메다 Al orabi 호텔에 묵기로 했는데
Triple 룸이 있어 묵자니깐 어떻게 방을 같이 쓰냐고 한다.
그런거에 익숙해지지 않아서 그런거겠거니 생각하며
아깝지만 돈을 더 주고 싱글룸에서 묵기로 하고 펠루카를 알아보기로 했다.
펠루카는 작은 배를 말하는데 모터 없이 바람으로만 움직여 조용한 것이 참 좋다.
1박2일이나 2박3일간 코몸보 등지로 항해를 한다.

그런데 이 한국여자들,  육로로는 아부심벨에 갈 수 없게된지 오래됐는데도
아부심벨 투어를 할거라고 한다..
아부심벨로는 비행기로밖에 갈 수 없다고 하니 분명히 책엔 투어가 있다는데
무슨말이냐고 따진다.. 나 참.. 키부츠에서 일을 했음에도 정보에 그리도 무지하다니..
숙소주인은 아부심벨을 간다는 소릴 들어서 계속 붙잡고 아부심벨 비행기표를 싸게
끊어주겠다느니 헛소리만 하고 또 한국여자들은 계속 숙소주인에게 붙잡혀 있다가
45파운드면 충분한 펠루카 2박3일을 60파운드나 주고 계약 한 것이다.
펠루카를 같이 탈려고 마음 먹었던 나는 얘기도 없이 먼저
계약한 그들을 황당해 하며 스스로 펠루카 선장을 찾아나섰다.
동행을 찾아 유리한 입장으로 계약하려고 여기저기 숙소마다 찾아가
펠루카 탈 사람이 없나 찾아 보았지만 관광객은 많지않아서 관광객조차 잘 보이지 않는다.

계속 길거리를 헤메며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역시 한 펠루카 선장이 접근해 왔다.
펠루카 선장이 접근하길 기다리고 있던차라 반가운 마음이었지만
짐짓 관심없는척 하고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얼마냐고 물으니 40파운드란다.
1시간의 흥정 끝에 25파운드에 1박2일간 모든 식사포함, 코몸보까지 가기로 했다.
일단 25파운드에 계약 하고 펠루카 구경을 했다.
배위를 평평한 마루처럼 나무로 고정시킬 수 있어서 편하게 갈 수 있을 것 같다.
숙소로 돌아와 그녀들에게 25파운드에 계약했다고 말하자 왜 우리한텐
말하지 않고 바가지쓰게 나뒀냐고 따진다.
정말 기가막혀서.. 말이 안나왔다.
나한텐 아무런 말도 안하고 숙소주인과 얘기하다 먼저 계약한게 누군데..
정말 이해 안가는 처녀들이다..
저녁때엔 나일강변으로 나가 시원한 바람을 맞았다.


1999. 10. 26.  화  Aswan - Comombo

아침을 대충 때우고 시간이 되어 펠루카 있는곳으로 향했다.
원래 6명이 함께 가기로 되어 있다고 하더니 2명은 오지 않아
나를 포함 4명이 가게 됐다.
호주 남여 커플과 오스트리아 남자 1명이 동행이다.
엔진이 없어 너무 조용하고 좋다.
바람은 반대방향에서 부는 것 같은데 지그재그로 강을 오가며 앞으로 나아간다.
동행이 된 사람들과 얘기하다 음악을 틀어놓고 조금 잤다.
저녁때가 되어 코몸보 건너편 선장의 고향마을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저녁과 맥주를 마시며 얘기좀 하다 배 위에서 잤는데 새벽엔 무척 추웠다.
작년에 라오스에서 메콩강을 따라 2박3일간 보트를 탄적이 있었는데 그땐 엔진소리가
너무 크고 보트도 편하지 않았는데 이번 펠루카는 엔진이 없어 정말 좋았다,
강에 물고기들이 정말 많다.


1999. 10. 27.  수  Comombo - Luxor

펠루카에서 아침을 먹고 건너편 코몸보로 향했다.
코몸보 신전을 보고 올 동안 펠루카는 강가에서 기다린단다.
기둥과 문양이 아름다운 신전이었다.
언젠가 어떤 영화에서 본적이 있는 신전이다.
기차역을 향해 좀 더 펠루카를 탔고 10시에 기차역에 도착 했는데
다행히 10시30분에 룩소르가는 기차가 있다고 한다.
룩소르까지 2등칸이 2.2파운드.
기차가 왔는데 바닥은 먼지가 많은 콘크리트로 되어있고
좌석엔 먼지가 수북히 쌓인 완전 고물 기차다.
오후2시쯤 룩소르에 도착했는데 앉아있는동안
검은 반바지가 회색으로 변할 정도로 먼지가 쌓여있다.
날씨가 알맞게 더웠다.

숙소를 잡고 강의 서쪽에 왕가의 계곡등 옛 이집트 왕과
왕비들의 무덤을 둘러보는 WestBank Tour를 신청하려고
숙소에서 일하는 애와 흥정을 시작했다.
65파운드라고 하는데 40파운드면 되는걸 알고 있었다.
결국 40파운드에 하기로 하고 대신 다른사람들이 물어보면
학생할인하여 65파운드에 계약했다고 말하는 조건이다.
그애를 잡고 맥주파는곳에 가자하니깐 길 안내를 하는데
맥주파는곳 못미쳐 가서 가르쳐주며 사오라 한다.
자기는 무슬림이니 맥주파는곳에 가지않겠다고 하며 남들이 보니까 또 안된단다.
오늘도 저녁을 쿠샤리로 먹고 맥주를 마셨다.


1999. 10. 28.  목  Luxor

아침식사포함 숙박비가 5파운드 답게 아침식사가 정말 간단하게 나왔다.
숙소비도 2파운드나 깍은것인데 안깍았으면 정말 배아팠을 것 같다.
8시30분에 투어용 버스가 왔다.
15명쯤 이곳저곳에서 태우고 Westbank로 향했다.
Guide가 딸린 투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왕비의 계곡, 핫셉수트 신전, 왕가의 계곡 등을 둘러볼 것이다.
어떤 양놈이 버스를 타더니 얼마에 계약했냐고 물어본다.
갑자기 물어와 흠칫 놀라 얼마로 얘기해야하나 잠깐 생각하다가
Secret이라 하니 이 버스가 비밀버스냐고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뒤에서 60파운드라고 하니 자기는 왜 65파운드냐고 하고
학생증이 있으면 60파운드라고 하자 그때서야 그가 돈을 지불한다.
크흑~ 만약 내가 40파운드에 계약했다고 말했다면 모든사람들이
다 난리가 났을꺼였다.

무덤이 참 많았는데 무덤을 장식한 그림이나 글씨등엔 모두 의미가 담겨있었다.
누구의 무던인가가 무덤에 들어서면 벽에 새겨져 있고
왕이 신에게 꽃등을 바치고,  그가 죽은 후 배에 자신의 육신과 영혼을 싣고 떠난다.
핫셉수트 신전에선 5000년전에 무역을 했던 그림도 볼 수 있는데
오래되었지만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 있다.
설명을 듣는 도중 지금 이 자리가 몇 년 전 테러범들이 총기를 난사해
관광객들이 죽었던 곳이라 한다.
오후 2시쯤 투어가 끝났다.
점심을 먹고 곧 잠에 빠졌다.
저녁때에나 일어났더니 옆 침대에 일본넘이 들어와 있다.
룩소르 템플에 가보았는데 조명이 괜찬아서 temple이 멋있게 보였다.
만약 낮에 보았다면 더 멋없게 보였을 것이다.
숙소로 돌아와 옆에 있던 일본넘에게 맥주 마실꺼냐니깐
엄청 좋아한다.
맥주를 같이 사와서 마시며 얘기하다 잠이 들었다.


1999. 10. 29.  금  Luxor - Cairo

Temples of Karnak으로 향했는데 미니버스 운전사가 좀 먼곳에 세워주고
다 왔다고 거짓말을 하는 바람에 조금 걸어야 했는데 아침부터 뜨거워 지는지라
짜증이 난다.
덕분에 당나귀 마차를 얻어타고 즐겁게 갈수 있었지만 치사하게 그런 거짓말을 하다니..
Temple은 정말 컸다.
수많은 큰 기둥, 오벨리스크, 예전엔 정말 규모가 굉장했을 것 같다.
숙소로 돌아와 Check Out 하고 계속 숙소에서 시간을 보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내다 기차역에 나갔다.
23:30 정확하게 기차가 왔다.
언제나 그렇지만 혼자 마땅히 할게 없으므로 무슨 쓸데없는 생각인가를 하다
잠이 들었다.


1999. 10. 30.  토  Cairo

아침 9시30분에 카이로에 도착했다.
역에서 술탄호텔까지 걷는데 배낭이 무거워 팔이 다 저렸다.
역시 술탄호텔엔 한국인들이 있어서 그럭저럭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시장에도 다니고 수피댄싱을 알아보러 여기저기 다니다
저녁때엔 오랜만에 한국말로 떠들며 맥주를 마셨다.


1999. 10. 31.  일  Cairo

한 한국여자가(황씨) 여권과 돈을 모두 잃어버려 같이 한국대사관에 가기로 했다.
한참을 헤맨 끝에 대사관을 찾았는데 나는 어느정도 대사관의 불친절과
기계적인 인간대면에 대해, 또 한국인이, 더군다나 그런 공관에 있는 한국인이 한국인을 어떻게 대하는지
몇번 경험을 한적이 있어서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황씨는 태극기를 보자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했고 여권과 돈을 잃어버린데 대해
어느정도 문제 해결의 기대를 걸고 있던 터라
행정관의 태도에 너무 기가막혀 했고 울음까지 터트리게 되었다.
내가 보아도 정말 그 여자 행정관은 너무하다 싶다.
어려운일을 당해 찾아온 사람인데 따듯한 말한마디는커녕
어떻게 해주길 바라냐는 되물음과 밥먹다가 급히 나왔다고 하며
어려운걸음 한 듯 구는 모습이 정말 외국에서 한국인 만나 기뻐하다
뒤통수 맞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결국 그 여자 행정관하고는 말을 하지 않고 예전에 전화통화한 영사가 있는데
그 영사와 말을 하기로 했지만 안에 있으면서 나오지는 않고
전화로 밖에 통화할 수 없는데다 그 여자 행정관과 일을 끝마치라는
말에 또 황씨는 기가막혀 했다.
아스완에서 전화통화를 시도 했을땐 친절하게 대해주며 카이로에 오면
자기를 찾아오라는 말에 또 기대를 걸었다고 하는데
안에 있으면서 나오지는 않고 자기가 나와봐야 문제가 해결 되는 것은 아니니
일단 여자 행정관과 일을 보라고 하니 앞이 더 깜깜해 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여행증명서를 발급받기로 하고 서류작성을 했다.
이스라엘에 가서 계속 키부츠에서 일하며 여권을 다시 만든단다.
우울한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라면을 사서 같이 끓여 먹었다.
위로를 해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같이 웃고 떠드니 괜찬아진 듯 하다.
얘기하고 있는데 옆에 일본넘들이 무슨 계획을 짠다.
오늘새벽에 피라미드 정상에 오를계획은 짠다한다.
나도 같이 끼기로 했다.
경찰에게 걸렸을 때의 구체적인 행동요령과 피라미드까지의 잠입 위치 등 작전을 세우고
일본인 3명과 나 이렇게 4명이 새벽3시30분에 떠나기로 했다.


1999.  11. 1.  월  Cairo  피라미드의 정상

새벽3시 알람시계가 도미토리에 울려댔다.
준비를 하고 나오니 덥던 낮과는 달리 선선하고 추위를 느낄정도다.
택시를 잡고 피라미드로 향했다.
피라미드 근처 마을에 내리며 10파운드를 주니 더 달라고 한다.
10파운드를 던지듯 택시기사에게 주고 빠른걸음으로 마을로 들어섰다.
개들이 어찌나 짖어대는지 한참을 피라미드에 접근하지 못하고 숨어있어야했다.
경찰들이 순찰을 돌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주위가 잠잠해지고 피라미드가 밤중에도 육중한 모습으로 앞에 보인다.
조심조심 발길을 옮겨 등반할 포인트까지 움직였고 드디어 등반을 시작했다.
피라미드의 바위들이 조금 높았으나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거의 다 올라왔나싶어 고개를 들어보면 아직 저 멀리 정상이 보이고
밑을 보니 까마득한게 현기증이 난다.
피라미드 아래에서 개들이 몰려와 짖어대기 시작한다.
속도를 더해 헐떡거리며 올라갔다.
땀이 등을 적시고 다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한참을 올라 드디어 정상!!
기자 마을이 저 아래 멀리 보인다.
밤안개가 엷게 끼어있다.
별이 잘 보였으며 바람이 쌀쌀하게 분다.
모두들 손을 잡고 피라미드 등반 성공을 자축했다.
이집트 기자의 3대 피라미드중 가장높은 쿠푸왕의 것에 오른것이다.
드디어 조금씩 날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이제 후레쉬를 사용하지 않고 사진을 찍을 수 있겠다 싶어
사진을 찍으려고 할 때에 갑자기 경찰이 불쑥 올라와
권총을 뽑아들며 STOP 하며 외친다.
설마 이곳까지 경찰이 올라오리라곤 생각을 못했으므로
모두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빨리 내려가라는 경찰과.. 해뜨는 장면을 보지도 못하고 내려가야하는 아쉬움,
그 와중에도 사진한방 찍고 내려간다하여 사진 한방 찍고,
힘들여 올라왔던 피라미드를 쫓기듯 내려왔다.
밑에 내려오니 경찰이 몇 명 기다리고 있다.
여권을 내놓으라고 한다.
미리 모든 물건들을 빼놓고 왔던지라 모두들의 몸엔 몇파운드의 돈밖에는 없었다.
같이 갔던 여자가 돌아갈 차비를 숨겨 놓았었고 남자들은 가지고 있던
몇파운드의 돈을 다 내놓을 수 밖에 없었다.
제법 겁을 주려고 소리도 지르고 협박도 하지만 속으론 웃기기만 했다.
피라미드를 벗어나 마을에 도착해 서로 웃으며 50%정도 성공한
피라미드 등반을 얘기했다.
숙소로 돌아와 부족한 잠을 다시 청했다.
아침 8시다.

저녁을 먹고 쉬고 있는데 터키에서 만났던 유타까와 마리코가 왔다.
서로 반가워하며 지나간 여행 얘기를 했고 나에게 줄 선물이 있다고 하더니
방에 들어가 신라면 한봉지를 갖고 나타난다.
키부츠에서 다른 한국인한테 얻은 모양이었다.
내일 모래 Siwa Oasis로 유타까와 함께 떠나기로 했다.


1999. 11. 2.  화  Cairo

주변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다 찌개와 밥을 해 먹고
맥주와 함께 마리코와 유타까와 얘기하며 밤시간을 보냈다.


1999. 11. 3.  수  Cairo - Alexandria - Marsa Matruh

아침을 해 먹고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알렉산드리아까지 20파운드나 했지만 에어콘버스라 편하고 시원하게 갈 수 있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와 행 버스는 이미 끊어진 상태였고 마르사마트루에 가서
하룻밤 잔다음 시와로 가기로 했다.
4시간쯤 걸려 마르사마트루에 도착해서 숙소를 잡고 저녁을 먹으러 시내를 헤맸지만
마땅히 싼곳이 없어 8파운드나 주고 그릴치킨 반마리와 밥을 먹었다.
이집트인들이 신혼여행으로 이곳에 온다고 하더니 모든게 비싸다.


1999. 11. 4.  목  Marsa Matruh - Siwa

새벽6시30분에 일어나 시와로 떠날 준비를 했다.
버스를 타고 달리기 시작하는데 곧 사막이 나타났다.
끝없는 사막을 달린다.
정오가 되기전 시와에 도착했다.
작은 마을, 사막의 마을답게 거의 모든 건물이 흙색이다.
Yousef 호텔의 도미토리를 4파운드에 잡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의 모든 식당이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식당이라 그리 싼편은 아니었다.
마을의 중간엔 예전에 살았었고 지금은 낡은 흙벽과 골목만이 남은
작은 마을이 있어서 예전의 생활 모습을 어림잡아 짐작할 수 있다.
마을의 작은 언덕에 올라보았다.
저 멀리 사막과 오아시스가 보인다.
오아시스보단 호수라고 하는게 맞겠다.
인도의 자이살메르와 비슷하지만 조금 더 작고, 더 시골스럽다.
이곳에서도 예외없이 시간이 되자 사원에서 "알라~ 아크바르~ ~"를
외쳐대기 시작한다.
한가지 나쁜점은 이곳에선 맥주를 팔지 않는다는 것이다.


1999. 11. 5.  금  Siwa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갔더니 Gas가 떨어졌다고 한다.
다른식당에 갔더니 마찬가지다.
너무 동떨어진 마을이다보니 내일이나 모래에 가스가 온다고 한다.
대충 딱딱한 빵으로 만든 샌드위치를 먹었는데 너무 먹기가 힘들다.
먹을것과 물을 챙겨 근처 Fatnas Island로 향했다.
가는길에 당나귀마차도 얻어타고 한참을 걸어 오아시스 중간에 위치한
섬 같은곳에 도착했다.
쉬기에 좋게 꾸며놓고 티나 음료수를 파는 작은 가게가 있다.
함참을 쉬다가 사막으로 향했다.
한참을 걸으니 폭4미터 정도의 수로가 나타났다.
차가 다니는 다리를 건너 또 걸었다.
이윽고 나무라곤 없고 온통 고운 모래뿐인 사막에 서게 됐다.
막막한 리비아 사막이 끝없이 펼쳐져있다.
너무 막막하여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을 것 같았다.
외로움은 다른사람의 여지가 있어야 느낄 수 있는것일게다.
한참을 아무도 없는 사막에서 방황하다 되돌아오는 길을 걸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는데 마을까지 가는 길을 너무나도 멀었다.
다행히 사막투어 갔다오는 짚차를 얻어타고 마을로 돌아올 수있었다.
짚차를 얻어타지 못했다면 깜깜한 밤까지 걸어야 했을 것이다.
저녁을 먹고 오니 숙소에 5명의 일본인이 더 와 있었다.
내일은 자전거를 빌리기로 했다.


1999. 11. 6.  토  Siwa

아침을 먹고 자전거를 빌렸다.
주위의 몇군데 볼거리들을 둘러보기로 하고 출발,
작은 언덕 자체가 무덤인곳에 갔는데 여기저기 사람의 뼈가 뒹굴고 있었고
몇 개의 미이라도 부분적으로 보았다.
다음엔 Oracle temple and Alexander, 무너진 벽돌 건물들이 언덕위에 있다.
언덕 위에서의 경관이 괜찮았다.
아래 마을에선 꼬마들이 따라와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역시 시골 아이들이라
부끄럼을 탄다.
아래보이는 시골길로는 계속해서 당나귀마차가 오가고 저 멀리에선
당나귀들이 꽥꽥~ 울어댄다.
Temple of Umm Obayda Amon을 거쳐 Spring of Cleopatra에 있는 찻집에서
차한잔 마시며 높은 하늘에 떠 다니는 뭉게구름을 보며 시골의 여유를 즐겼다.
Dakrour Mountain에 다다랐을때는 해가 거의 질 무렵이 되어 산이라기보단
언덕 정상에 올랐을땐 해가 지고 있었다.
사막 너머로 해가 진다.
해가 보이지 않게되자 온통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과 그 위에 또 끝없이 펼쳐진 붉은 하늘.
내일은 또 사막위로 붉은 해가 뜨겠지.
50파운드나 하는 Desert tour를 내일 떠나기로 신청했다.


1999. 11. 7.  일  Siwa

아침을 먹고 사막투어 준비를 했다.
저녁으로 먹을 음식과 물을 준비하고 비스켓도 챙겼다.
12시쯤 짚차가 왔다.
또다른 짚차엔 서양에서 온 6명의 여행객이 우리와 같은 투어를 떠난다.
항상 그렇듯 떠나기전 마을을 이리저리 돌며 무언가를 준비하더니 이윽고 출발.
곧 사막을 달리기 시작한다.
한참 사막을 달리더니 조그마한 호수에 도착했다.
사막 한가운대에 물고기가 헤엄치는 호수가 있다니..

조금 머물다 다시 사막을 달렸다.
Jeep 지붕위에 올라 광할한 사막을 달리는 기분이 무척 상쾌하고 색달랐다.
사막 가운대에 온천이 있다고 하더니 정말 계란 비린내가 나는 따뜻한 물이
솟아나는 Hot Spring에 도착했다.
우리나라의 목욕탕처럼 되어있어서 물에 들어갈 수 가 있는데
짧은 반바지로 갈아입고 몸을 담그니 조금 더운 날씨였지만 따뜻한물이 기분 좋았다.
한참을 물속에서 놀다가 조그마한 언덕에 올라보았다.
조개화석과 조개껍질이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예전엔 이곳도 바다였나보다.
해 질 시간이 되자 Jeep을 타고 석양을 감상하기 좋은곳으로 이동해서
석양을 감상했다.
오늘도 사막 저 너머로 해가 진다.
온천과 조금 떨어진곳에 천막을 쳐 주어서 모닥불을 지피고 얘기하며
가져간 도시락을 먹었다.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모닥불의 분위기가 썩 그럴 듯 했다.
Sleeping bag을 모닥불 옆에 깔고 누워 가끔씩 떨어지는 별똥별을 헤어렸다.
오늘밤은 달조차 뜨지 않고 구름도 한점 없어 별이 더욱 많아 보인다.
그렇게 별속에 파묻혀 누워있다가 잠이 들었다.
별 지붕이 좋아 천막 안으로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또 별똥별 하나가 떨어진다.


1999. 11. 8.  월  Siwa

새벽에 일어나 어제 졌던 해가 다시 떠오르는걸 감상했다.
역시 광활한 사막위로 해가 떠오른다.
새벽부터 온천에 몸을 담그고 우아하게 tea도 한잔 했다.
다시 Jeep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사막에서 별을 세며 보낸밤이
무척 인상깊은 Jeep 투어였다.
머리가 좀 긴듯하여 머리를 잘랐는데 이발사가 대충대충 머리를 자르기 시작할때부터
내가 왜 이 촌구석에서 머리를 자르려 했나 후회되기 시작한다.
대충자른 머리는 역시 대충 이상하게 되었다.
한국에 갈때까진 좀 길어지겠지.
낮잠좀 자고 내일 아침7시 Alexandria행 버스를 예약했다.


1999. 11. 9.  화  Siwa - Alexandria

7시에 버스가 출발했다.
그동안 정들었던 이 작은 마을, 마을의 교통 수단인 당나귀들,
조그만곳에 모여 복작거리는 사람들, 저멀리 보이는 황량한 사막과 이별하고
또 지평선이 양쪽으로 보이는 곧게뻗은 길을 따라 알렉산드리아로 향한다.
중간 휴식시간에 어제 준비해논 Rice with meat 도시락을 먹었다.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하자마자 기차표를 끊었고 저녁 8시쯤 카이로에 도착했다.
금방 눈을 비비게 만드는 먼지들, 보행자를 아랑곳 않는 차들,
귀청을 울리는 경적소리, 바쁘게 걸어 다니는 사람들.
시골에서 도시로의 이동이 실감났다.
복잡한 거리를 걸어 Sultan 호텔에 오니 집에 온 듯 마음이 푸근하다.
라면을 끓여 내내 차만 타느라 허기진 배를 꽈악~ 채우고
시와에서 마시지 못했던 맥주를 들이켰다.


1999. 11. 10.  수  Cairo

14일 방콕행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쿠웨이트 항공이라 쿠웨이트에서 3시간정도 기다려 Transit 해야한다.
이제 이집트에서 4일의 시간이 남았고 여행은 8개월째, 조금씩 지쳐간다.
수피댄스를 보기위해 칸칼리수크 근처 모스크로 향했다.
저녁 7시30분부터 입장이라 조금 기다린후 입장할 수 있었는데 꾸역꾸역 사람들이
모여들더니 거의 9시가 다 되어 시작한다.
북들과 현악기, 손바닥만한 심벌즈등으로 연주가 시작되고
한사람씩 나와서 재주를 부리기도 한다.
남자무용수가 화려한 옷을 입고 등장하고 주위를 악기든 사람들이 돌며 춤을 춘다.
가운데 무용수는 빙글빙글 제자리에서 돌며 걸쳤던 치마를 돌리며 위로 벗겨낸다.
작은 사원에서 하는 연주라 소리가 박력있다.
무료 입장이지만 모두들 아주 만족하고 박수가 끊이질 않는다.
숙소로 돌아와 맥주를 마시는데 한국여자 2명이 유럽에서 오는길이라며 들어온다.
그중 한명이 인도에 너무 가고 싶다며 이것저것 물어와서
그녀에게 큰 인도 지도를 주었다.
의욕이 넘치는 그들을 보니 보기에 좋다.
새벽 5시가지 그들과 마리코와 얘기 했다.


1999. 11. 11.  목  Cairo

저녁때 마리코와 유타까가 떠나는걸 배웅하고 호텔에서 일하는 Hussain과
차를 마시며 얘기했다.
후세인의 신에 대한 얘기는 아주 재미있었는데 그는 카이로 대학을 나와
변호사를 하다가 그만두고 호텔에서 일 한단다.


1999. 11. 12.  금  Cairo

한국애들과 시내를 걷기로 하고 게지라섬으로 향했다.
게지라섬은 고급 주택가와 Sports Club등이 많이 보인다.
해질무렵 라이온 다리를 건너 이집션 박물관 앞 공터에서
시간을 보내다 돌아왔다.
저녁을 먹고 맥주를 마시며 또 하루가 가고...


1999. 11. 13.  토  Cairo

숙소주변을 빈둥대고 다니면서 이집트 사람들과 거리를 구경 했다.


1999. 11. 14.  일  Erypt, Cairo - Kuwait,  KuwaitCity - Thailand, Bangkok

드디어 이집트를 떠나는 날이 되었다.
정들었던 시장통, 언제나 복잡한 거리, 사람들, 숙소에서 일하는 후세인과 작별했다.
모두들 살람 알레이쿰~
356번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면세담배가 무척 싸서 10달러에 2보루를 샀다.
이제 아시아로 다시 날아간다.
저녁때에 쿠웨이트시티에 도착했는데 갈아타고 갈 비행기는 계속 무슨 작업중이고
태울 생각을 않는다.
방콕을 거쳐 마닐라로 가는 비행기라 승객의 대부분이 필리핀 사람들이다.
지루한 기다림 끝에 수리가 끝났는지 3시간이 더 지난 새벽 3시에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승무원들은 빨리빨리 먹고 마시게 하고 빨리 재우려고 하는 것 같았다.
이륙한지 1시간도 안돼 동이트기 시작한다.
하늘이 아름답게 물들었다.

                                                                          이제 태국을 거쳐 캄보디아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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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서 터키로 들어왔습니다.
이란에서 목말라하던 맥주를 마실 수 있어서 정말 좋았죠..^^
약 1달 정도의 여행기 입니다.


                                                                          1 USD = 약 450,000 TL (Turkish Lira)


1999. 9. 12.  일  IRAN Maku - Bazargan  -  TURKEY Dogubeyazit

나는 왜 항상 국경을 넘을 때 나 혼자일까.
인도에서 파키스탄 넘을때도 다른사람들은 그곳을 넘는 여행자가 많으니
분명 여행자를 만날 수 있을거라 했지만 나혼자 넘었고,
파키스탄에서 이란국경을 넘을때도 나혼자 였다.
지금 이란에서 터키를 넘는데도 나혼자... 난 왜 이럴까.....
이란측 이미그레이션과 터키측 이미그레이션이 한건물에 있는데
완전 시장통이었다.
이란과 터키사람들로 꽉차있고 줄을 길게 서 있는데다 짐들도 많아서
자리잡고 서있기도 힘들다.
이란쪽에서 외국인이라고 빨리 통과시켜주어 조금 빨리 통과했다.
터키쪽에서도 여권을 막흔들어대며 이미그레이션 직원에게 보이니
먼저 앞으로 오라고 한다.
> 어디에 가냐?
> 터키.
> 이곳이 터키인데?
> 터키 여기저기 다 갈꺼다.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통과하긴 했으나 2시간은 걸렸다.
터키측 국경을 빠져나오니 미니버스가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두바야짓까지 가서 숙소를 잡고 처음으로 터키에서 밥을 먹었는데
맛없는 빵은 항상 큰 바구니에 담겨져 있어서 맘껏 먹을수가 있었고
밥에 고기나 야채로 만든 스프같은 것을 곁들여 먹었는데
난 빵이 익숙치 않아 밥만 먹느라 양이 좀 적은 듯 했다.
환전을 했는데 1달러에 45만 리라 정도 된다.
돈의 단위가 크니 밥한번 먹으면 80만 리라정도... 대단한? 액수다.
터키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달러가 오른다고 한다.
조금 있으면 곧 1달러에 50만 리라가 될거라고 한다.

국경마을이라 군인들이 참 많은데 그들은 영화속의 엑스트라처럼 걷고있고
이 동네도 어찌보면 영화셋트처럼 어딘가 모르게 엉성한 분위기다.
우리나라와 같이 헌병이 있어서 지나 다니는 군인들의 용모등을 검사한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날씨가 싸늘하고 오늘은 구름이 끼어 Ararat 산이 보이지 않는다.

저녁 6시쯤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계속들리고 있어 그리로 가보니
결혼파티가 열렸다.
사람들이 손을잡고 원을 크게 만들어 춤을 추고 있다.
나이많은 아저씨부터 어린소녀까지 춤을추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Tea에 관해 재미있는게 하나 있는데 인도에선 짜이라 부르며
좀 진하고 우유까지 첨가한 tea 이고
이란에선 차이라고 부르고 맑은 tea.
터키에선 샤이라고 부르고 역시 맑은 tea 이다.
서로 엇비슷하며 어느 자리에 앉기만 하면 tea를 마시는 모습들이 또 비슷하다.
 

1999. 9. 13.  월  Dogubeyazit - Erzurum

두바야짓에서 하루 더 머물까 하다가 에르즈람으로 향했다.
중간중간 마을에 들려 사람들을 태우고 가는데 마을에서 떠나는 사람들을 전송할 때 양쪽볼을 맞대고 가볍게 키스하고 떠나는 버스에 손을 흔들어 전송한다.
에르즈람에 도착하자마자 고등학생2명이 따라붙어 숙소비를 조금 띵겨 먹을 요량으로 계속 따라다녔지만 중심지까지 길 안내만 한 꼴이 되었고 난 그들을 따돌리고 겨우 숙소를 잡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계속 싼 나라만 다녀서 숙소값이 정말 비싸게 느껴진다.
별로 좋지도 않은 방이 거의 4달러정도가 되다니..

이 도시에 여행자는 나 혼자인듯하다.
길을 거닐다 대학생이라고 하는 터키청년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의 아버지가 대사관에서 일해서 파키스탄,인디아,러시아등 여러나라를 가 보았다고 한다.
내가 인터넷을 쓰고 싶다하니 에르즈람엔 인터넷까페가 아주 많고 값도 싸댄다.
길 안내 받고 그와 헤어진후 메일확인을 했다.

인터넷을 끝내고 옆에 청바지가게가 있어 들어섰더니 주인이 나를 너무 반긴다.
음... 살거 아니고 쫌만 둘러보겠다고 했는데도 너무 친절하게 대해준다.
사실 이런 깨끗한 청바지가게를 본지가 너무 오래된 것 같아 들어서게 된 것이다.
주인아저씨는 이쁜 유리잔에 담긴 tea를 한잔 내주고 이런저런 얘길 물어본다.
바지는 25달러정도 되는데 질은 괜찬은 것 같다.
그가 말하길 터키에서 알아주는 브랜드라고 한다.
즐겁게 얘기하고 나와 밤길을 걸어 숙소로 향했다.
딱히 볼것도 없는 도시인데다 썰렁하기도 하여 내일은 다른곳으로 이동해야겠다.
 


1999. 9. 14.  화  Erzurum - Usufeli

버스정류장을 찾느라 한참을 헤멘후 미니버스로 유스펠리로 향했다.
가는 길 중간에 Tortum이라는 곳이 있는데
작은 시골이라 갑자기 내려서 구경하고 싶어졌다.
차에서 내리니 동네 꼬마와 학생들이 다 몰려든다.
빨리 앞에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가서 일단 피한 후 밥을 시켜 먹었다.
밥을 먹고 나와 동네를 주욱 돌아보니 이건 작아도 너무 작고
외국인 여행자는 내가 처음인지 모두들 신기한 눈빛으로 구경한다.
유스펠리로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옆 찻집에서 샤이를 마시던 사람이 들어오라고 막 손짓한다.
샤이를 한잔 사주며 이런저런 얘길 물어본다.
유스펠리로 간다고 하니 곧 미니버스가 올테니 여기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잠시후 미니버스가 나타나니까 그 아저씨가 나가서 버스를 잡고
내가 갈곳을 설명해주고 나를 태운다.
빠이빠이하고... 곧 유스펠리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숙소를 잡고 주변을 거닐었다.
작은 동네지만 앞에 계곡물이 흐르고 산이 보이는 아름다운 동네다.
여름에는 이곳에서 트레킹을 하지만 지금은 겨울이라 트레킹은 없단다.
동네를 한바퀴 돌아본후 숙소앞에 앉아 있는데 트레킹 가이드라고 하는 사람이 말을 걸어온다.
지금은 시즌이 아니라서 쉬고있다고 하는데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자기도 한국에 아는 친구가 있는데 이름은 "비야 한" 이라고 한다.
나도 그녀를 책을 통해 안다고 했다.
그의 집에 같이 가자고 하여 따라나섰다.
트레킹때 찍은 사진들도 보고 Tea도 한잔 하며 얘기 했는데
이녀석 결국 내 카메라를 사고 싶어한다.
미놀타 카메라를 보여주며 이것을 주고 돈도 더 얹어 줄테니
카메라를 팔라고 한다.

> 너 카메라도 좋은데 왜 내것을 살려고 하냐?
> 너 카메라가 정말 좋아보여 난 좋은 카메라를 살려고 벼르고 있었어
> 이건 내가 네팔에서 정말 큰 맘먹고 산거고 내가 정말 아끼는 카메라야
  그리고 그동안 여행하며 찍어서 정도 많이 들었어 미안해.
> 그래.. 할수없지..  나중에라도 다시한번 잘 생각해봐.
> 그럴게... 하지만 난 내 카메라가 좋아,,, 미안.
숙소로 돌아와 낮잠을 즐긴후 저녁을 먹었는데 말이 안통해 한참을 헤메야만 했다.
 


1999. 9. 15.  수  Usufeli - Trabzon

아침에 계곡 건너편을 돌아본후 12시에 트라브존으로 가기로 했다.
우선 미니버스를 타고 Artvin으로 향하고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는
큰 버스로 갈아탄다고 한다.
그런데 아트빈에 너무 늦게 도착한 때문인지 버스가 떠나버렸고
2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서두를 것 없는 입장이기도 하고 아트빈을 돌아볼수 있어서 괜찮았지만
짐짓 화난 표정으로 여행사에 앉아있는 아가씨한테 막 따졌지만 영어도 안통하는데다
여행사의 이쁜아가씨는 내가 막 따져도 생글생글 웃고 있어서 나도 따라 웃을 수밖에.....

평평한 길이라곤 없는 언덕마을인데 인도의 다르질링과 비슷하단 생각이 든다.
이리저리 마을을 둘러보다가 전화국인듯한 곳에 들어가서
아저씨한데 인터넷 써도 되냐고 하니깐 그 사람의 사무실로 데려가서
자기의 업무용 컴퓨터를 쓰라고 하고 tea까지 준다.
내가 잘못찾아 들어온 것을 알았지만 일단 이렇게 된거 인터넷을 조금 이용하고.....
돈을 내야 하냐니깐 그냥 가라고 한다.
우체국으로 간다고 하니 계단 밑에까지 내려와서 우체국이 있는곳을 가리켜준다.
언제나 그렇듯, 환하게 웃는 표정과 고맙다는 손짓 등으로 인사를 하고 우체국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집에 전화한번 하자.. 전화카드사서 간단히 잘 있다고 통화했다.
여기저기 옷가가에 들려 구경하다가 결국 청바지를 한 장 사게 되었다.
계속 반바지만 입기엔 날씨도 춥고, 하나 있는 긴 면 바진 찢어져서 입을 수가 없다.
드디어 버스가 와서 트라브존으로 향한다.

얼마쯤 가니 흑해가 나오고 흑해를 따라 계속 서쪽으로 달린다.
흑해가 왜 흑해인가 했더니 해변가가 지저분해서 바위들이 모두 검은색이고 해변가에 쓰레기들도 많아서 그런가보다....(농담)
밤이라서 그런지 바다는 정말 검은색으로 출렁이고 있다.
버스가 중간에 고장이 나서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10시가 다 되서야
트라브존에 도착했다.
한참을 걷다보니 러시아 시장이 나오고 숙소가 많이 보여 싸 보이는 곳에 들어섰더니 러시아 창녀들이 진을 치고 있다.
숙박을 위한곳이 아닌듯했다.
다행히 창녀가 없는 한 숙소를 잡아 짐을 풀었다.


1999.  9.  16.  목  Trabzon

기독교인들이 이슬람교의 박해를 피해 절벽위에 건물을 짓고 살았다는
스멜라 유적지가 트라브존 근처에 있다.
그곳까지 갔다오는 투어가 있는 버스정류장에 갔더니 이미 오늘은 끝났고 매일 10시와 11시 두차례 있단다.
할 수없이 내일 가기로 하고 Russian bazzar를 둘러보았다.
긴 통로식으로 된 시장에 없는게 없을정도로 많은 물건들을 팔고 있다.
두꺼운 대학노트로 여행하기 몇 일 전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 했는데
벌써 몇장밖에 남지 않아 일기장으로 쓸 노트를 하나 샀다.

같은가격에 도시의 중심부와 가까운 maydan 근처로 숙소를 옮겼다.
시내의 중심부는 돌로 포장 해놓아서 더욱 운치가 있고 넓은 마이단 공원엔 음료나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거리를 거닐며 오랜만에 도시의 활기를 느낀다..
차들이 지나칠때마다 돌포장 길에서 두두두둑~~ 하는 소리가 들린다.
저녁으로 바로 앞에 보이는 흑해에서 잡았을 생선구이를 먹었다.
저녁 8시밖에 안됐는데 문닫은 상점들이 많다.
생선이 좀 니글거려 맥주한잔 하려했는데 맥주 파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아 콜라 한 캔 사서 마시고..


1999.  9. 17.  금  Trabzon

10시에 스멜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위해 여행사에 갔더니
인원이 3명밖에 되지 않아서 11시에 인원을 더 모아 출발한다고 한다.
할 수없이 11시에 다시 여행사로 나가 버스를 탔다.
페루인, 스위스인, 나 이렇게 외국인 3명과 나머지는 다 터키인이다.
미니버스로 50분쯤 달려 스멜라에 도착했다.

아래에서 보면 절벽에 건물이 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태국에서 만든 학생증이 파키스탄과 이란 그리고 이곳 터키에서도
많이 활용할 수 있어 정말 좋다.
모든곳은 아니지만 일부.. 입장료등을 학생할인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입장료를 끊어 스멜라로 가기위해 산길을 올랐다.
복원작업하는 곳이 많았는데 예전에 그렸을 벽화등을 볼 수 있다.
항상 느끼는것이지만 종교란 인간에게 상당한 힘을 주는 것 같다.
그것이 옳은것이든 그른것이든.

페루와 스위스에서 온 남자들과 얘기를 나누었는데 스위스남자는
한달의 휴가를 받아 여행 왔다고 한다.
휴가가 한달씩이나 되다니..  페루인은 인도에 갈것이라고 하여
인도에 대해 여러 가지 얘길 해주었다.
산을 내려왔지만 오후3시에 돌아간다고 한다.
시간이 남아 우체국에서 옆서를 사서 쓰고....  오는길에 otogar에서 내려달라하여
내일 저녁 Kaysery행 버스를 예약했다.
케이세리에서 다시 괴레메행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시내로 돌아와 밥을 먹고 Ayasofia Museum 으로 향했다.
입장료가 50만 리라나 했지만 오래된 성당이라는 것 외엔 별 볼 것은 없었다.
더군다나 입구에서 아이들이 버릇없이 까불어 대는 바람에 기분까지 좋지 않았다.
시내로 돌아와 흑해가 보이는 Kale park에 나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다.
연인들이 데이트를 하고 있었고..
숙소거실에서 터키인들과 이런저런 얘길 하며 시간을 보내다 방으로 들어왔다.
 


1999. 9. 18.  토  Trabzon - kaysery - Goreme

시내의 거리와 공원과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다 다섯시쯤 오토가르로 향했다.
오토가르의 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버스에 올랐다.
흑해연안을 따라 버스는 계속 달린다.
해가 지고 있었다.
하늘은 붉게 물들었고 바다는 보라색이 되었다.
중간에 버스에서 빵과 콜라를 주어 먹고 비디오를 틀어주었지만
난 잠이 들었다.
휴게소에 설때마다 화장실에 가는데 갈때마다 10만 리라나되는 돈을 내야해서
무척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곳이든 화장실에선 돈을 받는다.


1999. 9. 19.  일  Goreme

아침 7시쯤 Kaysery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괴레매행 버스에 올랐고 곧 괴레메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주변을 한바퀴 돌아보는데 서양 남자 두명이 있길래
어디 묵냐고 했더니 자기들 묵는 숙소에 한국인도 있으니 거기에 가보라 한다.
도미토리에 한명의 한국여자가 (정씨) 묵고 있었다.
일단 도미토리도 싸고 깨끗하지 않은 물이지만 작은 수영장도 있어서 괜찮았다.
오랜만에 한국인을 만나는데 그녀는 이스라엘의 키부츠에서 일을 끝마치고
여행 중이라고 한다.

같이 Open Air Museum에 갔는데 스멜라와 같이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의
박해를 피해 숨어살면서 통로속에 많은 벽화를 남겼다.
버섯처럼 생긴 기암괴석들이 볼만하다.
작은 시골마을 이지만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곳이라 식당이 도시보다도 비싸다.
해질무렵 숙소옆 언덕에 올라 마을을 바라보았다.
작고 조용한 마을주위로 기암괴석들이 주변에 둘러쳐져있는 아름다운 광경이다.
시즌이 되면 마을사람보다 관광객이 다 많이 보일 것이다.
아무튼 도시보단 좋은 느낌이다.

밤 11시30분에 디스코클럽에서 velly dancing show가 있다길래 정과 함께 가 보았다.
사람이 별로 없어서 오늘은 쇼가 없단다.
맥주마시고 춤추고 놀았다.
바위를 깍아 만든 디스코 클럽이다.
지금 묵고 있는 도미토리도 바위를 깍아 만든 숙소...


1999. 9. 20.  월  Goreme

박물관쪽으로 가다가 왼쪽으로 꺽어져 swards valley 라는곳으로 들어섰다.
기암들 사이로 샛길이 나 있는데 인적이라곤 없는 길을 혼자 걷자니 망망한 어느 별을 혼자 걷고 있는듯한 느낌을 준다.

한참을 여기저기 헤집고 돌아다니다 보니 길이 말이 아니었다.
땅은 저 밑에 보이는데 바위 위에서 어떻게 내려 서야할지 난감하다.
억지로 기다시피하여 포도나무가 심어진 경작지로 내려설 수 있었다.
목이 말라 포도를 따먹었다.
포도를 먹으면서 걷자니 토마토밭이 나타났다.
잘익은 토마토를 하나 따 먹었다.
저~ 쪽에서 농부가 나를 부른다.
언덕위의 좁은 토마토밭에서 토마토를 따고 있었다.
늙은 농부는 나에게 담배도 권하고 토마토도 권한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니 그냥 바라보며 웃을 수 밖에..

다시 기암 사이를 걸었다.
걷다보니 넓게 퍼진 기암들 사이에 떨렁 혼자인데 다시 돌아갈길이 걱정되었다.
포도나무 옆 그늘에 앉아 포도를 한알씩 따먹으면서 어떻게 돌아가야하나 생각하며
살랑살랑부는 바람을 친구삼아 지친몸을 쉬었다.
다시 한참을 걸어 아스팔트길을 찾아내어 돌아올 수 있었는데
오는 길이 너무 멀고 더워서 정말 힘들었다.

숙소에서 일하는 아흐메드가 수영을 하잔다.
그가 물위에 떠있는 지저분한것들을 걷어내더니 팔둑에 공기주머니를 차고 돌아왔다.
짜식.... 터프한척 하더니.. 물이 깊은데 수영을 못하니 공기주머니를 달아야한대나....
물이 너무 차서 1시간도 안돼서 몸을 덜덜떨며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옆에 있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축구를 하길래 내가 기웃거렸더니
아흐메드가 함께 가서 축구를 하잔다.
이리뛰고 저리뛰고.. 오랜만에 축구를 하고 있는데 축구공 주인인듯한 아이가 공을 갖고 집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축구는 끝나버리고 말았다.


1999. 9. 21.  화  Goreme

지하도시를 보러 Navsehir에 가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Kaymakli까지 갔다.
미로처럼 굴을 파서 거실, 방, 부엌 등을 만들어 놓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깊은곳에 개미굴 같고 미로같은 굴을 팠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숙소로 돌아왔는데 어제 축구할 때 만났던 아이린(13살 소녀)를 만났는데 자기집에 가자고 한다.  
숙소 바로 옆이었는데 집 마당엔 포도가 탐스럽게 열려 있었고
집안의 모든 바닥엔 카펫이 깔려있다.
아이린의 엄마와 언니가 반갑게 맞아 준다.
앨범을 보여주는데 그 집안은 독일에서 이사온 모양으로
엄마와 아버지의 젊은 시절과 아이들의 아기사진은 독일에서 찍은것들이다.
tea와 그집의 정원에서 땄을 포도등을 먹고 즐겁게 시간을 보냈는데
더욱이 아이린의 언니인 17살 짜리 처녀가 이뻐서 더욱 즐거웠다. ^^

아이린이 영문숙제가 있다고 도와달라고 한다.
영문숙제는 지진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잃어 버린것에 대한 것이었는데
생각해보니 터키에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 세계가 떠들석 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손짓발짓으로 겨우 알아들어 영문숙제를 도와줬다.
나도 인도의 델리에서 터키에 지진이 일어났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아직도 여진이 남아 약한 지진은 가끔 일어난다고 한다.

영문숙제
We are likely to think of the future.
We live dreaming of something.
Nobody knows what will happen tomorrow but something is bound to happen.
So, we have hope for the future.

Thousands of people went to bed on Aug. 16, 1999.
However, something terrible happened to them next morning.
All of a sudden, those who lived on the fourth floor got run into those
who then slept on the first floor.
Who in the word could think this would happen?
They lost all they got, such as lovers, families, houses, and so on.
God gave them their lives and then took them back again.

A lot of people got into sleep for good.
There remained nothing to turn back.
Once they got killed, we could not revive them, nor give them hope and love again.

Nevertheless, the world keeps going.
We have to figure out the source of problems and check whether or
not our environment or surroundings are safe.
We must construct building as strong and safe as possible,
and get ourselves prepared for disastrous accidents in advance.

We have our fingers crossed that horrible quakes like this never happen again,
with the deepest sympathy to those who were victimized by it.
 


1999. 9. 22.  수  Goreme - Kaysery - Malatya

말라티야의 근처 Nemrut Dagi 라는곳은 산꼭대기에 2000년전에 만들어놓은 조각상들로 유명한곳이다.
말라티야를 가기위해 먼저 케이세리로 향했다.
밤 11시 3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예약하고 케이세리 시내구경을 나섰다.
공원인듯한곳에 갔다가 여고 3년생들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는데 그들은 한국과 같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큰 걱정이라고 한다.
같이 사진 찍고 보내주기로 했는데 아이들이 모두 성숙하고 이뻐서 즐겁게 시간을 보낼수 있었다.
헤어질때는 6명이나 되는 아이들과 터키식 양볼 뽀뽀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공원 바로 옆 대형마켓을 한바퀴 돌고 식당에서 콜라 한 캔 마시며 시간죽이기를 했다.
밤 10시쯤 오토가르로 돌아와 버스를 기다리는데 예약한 버스회사의
사람들이 어찌나 재밌던지 시간가는줄 모르고 기다릴 수 있었다.
밤 11시 40분에 버스가 왔다.


1999. 9. 23.  목  Malatya

새벽4시쯤 말라티야에 도착했다.
너무 이른시각이라 근처 허름한 차이가게에서 잠과 추위에 시달리며
날이 새기를 기다려 아침 6시쯤에 숙소 하나를 잡을 수 있었는데
일하는 아이를 깨워 억지로 방에 들 수 있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배낭을 던져놓고 침대속으로 기어들었다.
정신없이 자다 일어나 tourist information center를 찾아
Nemrut Dagi 투어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투어는 미니버스로 산 정상 근처 호텔까지 미니버스로 이동,
일출과 일몰, 하룻밤의 숙박과 저녁식사, 아침식사포함 30 us달러 라고 한다.
내일 오후 12시 30분발 투어를 가기로 하고 말리티야 시내를 둘러보았다.

터키는 어느도시든 중심부에 공원과 야외찻집을 꾸며놓아서 보기에 좋고 그곳에서 여유롭게 차 마시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정말 잘 사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우리나라보다 잘 살지는 못하더라도 어딜 보던지 더 여유가 있어 보인다.
어디서건 가깝게 공원을 접할수 있고 그곳에 앉아 차를 즐기며 담소하는 모습은 우리나라에선 보기 힘든 것이다.
차도나 인도를 보더라도 쾌적하게 꾸며놓은 것은 우리나라와 비교 할 수 없을만큼 유로워 보이고 더 선진국화 되어있는 것 같다.
언젠가는... 우리도 여유를 찾을 수 있겠지.


1999. 9. 24.  금  Malatya

10시쯤 투어를 위해 나섰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Sabri란 사람이 왔는데 그 사람과
다른 또 한사람이 산 위의 호텔 주인이며 운전도 한다고 한다.
Korea에서 왔다고 하니 한국에 자기 친구가 있다고 한다.
이름은 비야 한.
유스펠리에서도 한비야 친구라는 트레킹 가이드를 만났는데
이곳에서도 만난다.
같이 얘기를 하다가 자기 여자친구와 함께 근처 호수로 Picnic을 가지 않겠냐고 한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 결국 Tour는 내일로 미루고 그들과 함께 호수로 향했다.
그녀의 여자친구는 삼랏 이라고 하는데 퉁퉁한 체격에 좋은 인상 이었다.
쇠고기와 닭고기, 야채등을 사서 호숫가에 앉아 바베큐를 해 먹고 맥주도 마셨다.
조용한 호수였다.
보트를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건너가 수영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나는 발을 조금 담근후 잠이 든 것 같다.

저녁 부렵이 되자 해가 지는 동시에 둥근 달이 떴다.
오늘이 한국에선 추석인가..
추석..... 2년째 추석을 타국에서 보내는구나.
말라티야에 돌아왔는데 내일이 군 입대일이라 빈방을 찾을 수가 없다.
군대에 들어갈 많은 젊은이들이 그들의 애인들과 또는 가족들과 걷는 모습이 보인다.
결국 빈방을 한 개도 찾지 못하고 나는 사브리의 집에 가서 자기로 했다.
사브리는 집에 가면 자기의 여자친구를 만났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한다.
그의 집은 조금 떨어진 시골에 있었는데 그의 집에도착해서
소개는 시켜주지 않았지만 그의 어머니, 부인, 아들, 여동생이 있었던 것 같다.
부인은 시골 아줌마였고 사브리의 말처럼 서로 이혼을 원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어쨌든 그는 내옆에서 잤다.


1999. 9. 25.  토  Nemrut Dagi

아침 6시반쯤에 일어나 대충 세수를 하고 그의 차로 다시 말라티야에 왔다.
그는 다른팀의 투어 가이드를 나가기 위해 어딘가로 떠나고 나는 아침 7시부터 시내를 헤매게 생겼다.
차이한잔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인터넷까페를 찾아 메일 확인하고
11시 40분쯤 돌아오니 Tour 떠날 사람이 나까지 7명정도 되었다.
12시에 드디어 출발, 중간에 점심식사후. 4시쯤 Nemrut 산 꼭대기 근처
Gunes 호텔에 닿았다.

4시 30분쯤 다시 차를 타고 산꼭대기로 올랐다.
산 정상은 자갈무덤이고 그 동쪽과 서쪽에 돌 조각상들이 흩어져 있다.
해질 무렵이 되자 다른 호텔에서 터키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왔다.
바람이 차서 1시간쯤 지나자 추위에 떨어야 했다.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관도 좋고 돌조각상들도 괜찮았다.
해가 지는 모습을 본후 호텔로 돌아오자 저녁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저녁을 먹고 맥주도 한잔하고 같이 간 관광객들과 카드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산꼭대기까지는 전기가 들어오지않아 밤 10시가 되자 발전기를 꺼서 주위가 암흑 이었다.
촛불을 켜놓고 일기를 썼다.
내일은 산 정상에서 일출을 봐야하기 때문에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한다.
 


1999. 9. 26. 일  Malatya - Antalya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일어나라 한다.
호텔에서 일하는 아이가 각각의 방을 두드리며 사람들을 깨우고 있었다.
5시 30분쯤 산에 올랐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몹시 추웠는데 벌써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6시쯤되자 해가 붉게 올라오기 시작한다.
산 정상에서 일출을 보긴 처음인 것 같다.
언제나 해는 뜨고 지는 것 일테지.
해가 완전히 올라오고 사람들이 모두 내려가는 것을 본후 내려왔다.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서둘러 내려갈 준비를 하고 다시 말라티야로 향했다.
11시쯤 도착해 관광안내소 앞에 가니 사브리와 그의 여자친구가 와 있었다.
같이 얘기좀 하다 헤어져 Antalya행 표를 예매 했다.
오후 3시쯤 안탈리야로 출발...
인도의 불편한 버스에서는 잠을 잘 잤는데
터키버스는 너무 편해서 그런지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어쨋든 버스는 달리고 밤은 깊어간다.


1999. 9. 27.  월  Antalya

새벽4시쯤 안탈리아에 도착했다.
원래 7시에 도착 예정인데 항상 이렇게 빨리 도착해서 새벽부터 떨게 만든다.
스낵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6시쯤 버스를 타고 Kaleici 지역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려 Kaleici 거리를 걷는데 골목골목이 모두 Pension(게스트하우스)
이었고 온통 꽃향기로 가득했다.
아무도 없는 골목길을 꽃향기를 맡으며 걷는기분이 너무 좋아 피곤함이 싹 가시는 듯 했다.
몇군데를 헤매다 겨우 도미토리에 아침식사 포함 2,300,000리라에(5달러) 숙소를 잡았다.
펜션의 정원에도 꽃향기가 가득하다.
주방도 쓸 수가 있어서 한국음식을 만들어 먹어야겠다고 생각 했다.
아침식사후 주변의 볼거리들을 둘러보고 tram을 타고 종점까지 가서
발 아래로 펼쳐진 바다와 Konyaalty해변을 보았는데 바닷물이 아주 파란색 이었다.
녹색은 보이지 않고 파란색만으로 된 바다.
지중해의 파란물결...
도시의 바다인데도 물이 너무 맑았다.

돌아올땐 배가 많이 몰려 있는곳으로 가보았는데 Tour에 참가하라고
각 배에서 나와 호객을 한다.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tour가격은 계속 내려가고.. 재밌다.
저녁때는 일본애들과 얘기하다가 닭죽을 해먹기로 하고
시장을 본후 마늘과 양파, 감자, 고추만 넣고 밥과 닭을 끓였는데
맛이 괜찮았다.
돈을 좀 많이씩 걷은 것 같아 미안했지만 맛있다고 다들 잘 먹으니 다행이다.
내일은 일본인들이 일본음식을 대접하겠다고 한다.

이 도시 근처엔 Perge, Aspendos 등 유적지와 폭포등 불것들이
주변엔 있는데 여행사의 투어는 너무 비싸고
이 숙소에서 그냥 차로 돌아보는 투어는 15us달러지만
승용차를 렌트해서 둘러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두명의 독일 남자와 한명의 오스트레일리안 중국여자가 있어
내일 차를 rent해서 둘러보자고 제안했다.
처음엔 양놈들이 좀 머뭇거리며 생각해 본다고 하더니
나중에 좋다고 OK 했다.
어린넘들이라 얘기는 잘 통하지 않는다.


1999. 9. 28.  화  Antalya (Perge) (Aspendos) (Manavgat 폭포)
                         (side 해변) (Kursunlu 폭포)

아침 10시쯤에 차를 렌트해서 우선 "페르게"로 향했다.
많은 기둥들이 있었고 예전엔 좋았을테지만 이제는 폐허가 된
목욕탕이 있었다.

"아스펜도스"는 자금도 가끔 공연을 한다고 하는 큰 원형 극장인데
입장료를 내지 않고 위쪽 언덕으로 올라가 담을 넘어 극장의 맨위에서
극장을 구경했다.
이곳에서 클래식 콘서트 한번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마나브갓 폭포는 폭포 주위로 레스토랑만 즐비하고
아무 기대도 않했던 쿠르순루 폭포는 산책할 수 있는길이
폭포 아래쪽으로 길게 나 있어서 쉬거나 걷기에 좋았다.

시데 해변은 온통 가게만 즐비했고 ....
돌아오는길엔 밤이 된데다가 시내에서 길을 잘 몰라 시내를
몇바퀴나 뱅뱅 돌고.. 아무튼 차를 렌트해서 여유롭고 싸게 돌아다닌 것 같다.
차 빌리고 기름까지 넣고 다 해서 1인당 10달러 정도가 들었다.


1999. 9. 29.  수  Antalya

아침에 숙소에 막 도착해 짐을 푼 다까시 가족을 다시 만났다.
파키스탄에서 처음 만나 이렇게 계속 만나게 되다니
정말 인연이 있는 모양이다.
다까시의 어린 딸 나나미도 나를 만나 너무 즐거워 하는 모습이다.
약속도 없이 어떻게 같은 숙소를 이리도 잘 찾아 만나게 되는지.
델리와 자이살메르에서 만났던 유타카도 다시 만났다.

다까시 가족과 함께 해수욕을 가기로 하고 코냘티 해변으로 향했다.
아주 작은 자갈이 깔린 깨끗하고 파도가 없는 해변이다.
많은 사람들이 수영이나 선텐을 하고 있었다.
수영하고 맥주마시고 낮잠자고.. 이게 분명 지중해라는 바다인데
어떻게 이렇게 파도가 하나도 없을수가 있는지 신기하다.
다른 일본인들이 닭죽을 먹었다고 자랑하는 바람에 다까시가 닭죽을 해달라고 조른다.
다 같이 시장으로 향해 이번엔 생강, 터키인삼, 마늘등을 더 사서
닭죽을 끓여 7명이 함께 먹었는데 모두들 맛있다고 좋아한다.
밤 늦게까지 다까시 가족과 함께 도착한 마리코와 이야기하고
게임하며 놀다가 늦게 잠이 들었다.


1999. 9. 30.  목  Antalya

오늘 아침식사는 어제사온 반찬과 빵을 사서 먹고..
머리를 짤랐는데 상체와 머리 마사지까지 시원하게 받았다.
점심을 굶은채 맥주를 마셨더니 취하는 것 같아 한참 자고 일어났더니
저녁준비를 하고 있다.
오늘 저녁은 마리코가 준비를 한다.
좀 기름지고 간장을 사용한 반찬뿐이라 조금 니글거렸지만 아주 많이 먹었다.
식당에서 사먹는 음식만 먹다가 이렇게 해 먹으니 너무 좋다.
오늘도 일본친구들과 밤늦게까지 떠들며 놀다가 늦게야 잠자리에 든다.

 

1999. 10. 1.  금  Antalya

요즘은 계속 다까시 가족과 유따가, 마리코와 함께 일본음식을 해 먹는다.
아침엔 김치를 만들었다.
오늘 저녁엔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오후에 나가 환전을 하고 계속 숙소에서 빈둥대며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혼자 저녁을 먹었는데 다까시 가족이 저녁준비를 하길래
또 저녁을 먹었다.   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애들도 김치를 아주 좋아한다.
오늘도 밤늦게까지 체스게임하며, 맥주 마시며,, 놀다가
새벽이 되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1999. 10. 2.  토  Antalya

아침을 먹고 숙소 옆 바위투성이인 해변으로 가서 낚시하며 놀다가
돌아와 맥주를 마시고...
항상 그렇다... 여기 저기 놀러다니고 맥주 마시는 것이 하루의 일이다.
내일은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 바다낚시를 하기로 했다.
 


1999. 10. 3.  일  Antalya - Bodrum

오늘밤 12시 보드룸행 버스를 숙소에서 예약하고 바다로 나갔다.
낚시배가 대기중이어서 곧 바다 가운대에로 나갔다.
긴 낚시줄 끝에 추가 달려있고 그 위로 올라가며 5개정도의 바늘이 달려있어
새우미끼를 끼우게 되어있다.
낚시줄을 늘어뜨리고 고기가 미끼를 물면 그 진동을 손가락으로 느끼는 것이다.
모두들 몇마리씩 고기를 쉽게 잡았다.
낚시가 실증날때가 되자 모두들 바다로 뛰어든다.
튜브를 타고 일행들과 같이 바다에서 수영하며 놀다가
보트위에서 누워 일광욕을 하고 이곳에서 장기투숙하는
유까의 비키니 몸매를 감상하다가 오후 2시쯤되어 돌아왔다.
잡은 고기가 다 합해 4Kg 정도 되었는데 고기 손질을 하느라
손에서 비린내가 가시지 않는다.

저녁때는 일본애들이 고기를 퀴겨서 맛있게 먹고 모여서 같이 놀다가
10시반쯤 작별을 하고 버스를 타러 나갔다.
오토가르에선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작별하고 서로 부둥켜안고 난리다.
24시가 되자 대기중이던 버스가 일제히 떠나기 시작했고 배웅나온 사람들과
떠나는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간다.
피곤했는지 곧 잠이 들었다.


1999. 10. 4.  월  bodrum

아침 8시 도착 예정이었으나 7시쯤 보드룸에 도착했다.
이곳저곳을 헤맨끝에 숙소를 잡고 보드룸 성으로 향했으나
월요일은 휴관이라 내일 다시 오기로 했다.
tour용 호화 여객선들이 즐비한 항구를 한바퀴 돌아보고
보드룸 성 사진을 찍기위해 언덕까지 먼길을 걸어 겨우 사진 한방찍고 숙소로 돌아왔다.
햇볕이 따갑다.
낮잠 한숨자고 부두 근처 거리를 걸으며 갖가지 배들을 구경하며 걷다가
오토가르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왔다.
내일 오후 1시쯤 떠나는 파묵칼레행 버스를 예약했다.
 


1999. 10. 5.  화  bodrum - Pamukkale

보드룸 성으로 향했다.
성에서 지중해가 보인다.
유럽의 단체 관광객들이 몰려와 내가 나갈때가 되자 성안과 입구가
꽤 혼잡해 졌다.
성 밖 바다에 호화 유람선이 몇척 떠 있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오토가르에 옮겨논후 한시까지 시간을 보내야 하므로
거리를 거닐며 시간을 보내고 점심을 먹은후 버스에 올랐다.
뭔가 이상하다 했더니 버스는 Denizli 까지 밖에 안가고
데느즐리에서 갈아타야 했다.
파묵칼레까지 direct로 가냐고 몇번을 확인 했었는데.....  화가 많이 났으나
어쩔 수 없었다.

작은 마을인 파묵칼레에 도착해 숙소를 잡았다.
수영장과 넓은 정원이 있는 괜찬은 숙소지만 손님도 몇 명 없고
싸서 지내기에 좋다.
주인은 이 숙소를 인수한지 얼마 안되는데 한국 가이드북에 E-mail을
보내 책에 나오도록 하려고 한다길래 도와서 E-mail을 보내주었다.
숙소에서 파묵칼레의 석회봉이 보인다.
하얀색이면 멋있을테지만 중간중간 노란색으로 변색되어 있어서
그리 깨끗해 보이진 않는다.

 

1999. 10. 6.  수 Pamukkale

아침을 먹고 석회봉으로 올랐는데 입장료가 백오십만 리라나 하여
다시 길을 돌아 뒷길로 석회봉을 올랐다.
가이드북에서 사진으로 보는것같이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신기한 모습들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석회봉보다는 뒤쪽 언덕에 있는 원형극장과 뭔지모를 오래된 건물이 조용하고 시간 보내기에 좋았다.
원형극장에서 Antalya에서 같이 차를 렌트했던 Julia 라고 하는
호주국적의 중국여자를 다시 만났다.
날씨는 따듯하고 나른한 우리나라 가을 날씨와도 같다.
저녁을 함께 먹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와
석회봉에서 내려오는 물을 써서 석회가 많이 묻어있는 수영장에서
수영을 조금 했는데 물이 따듯했다.
저녁때는 Julia가 묵고있는 숙소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먹었다.
 

 

1999. 10. 7.  목  Pamukkale - Denizli - selcuk

아침에 차이한잔하고 데니즐리를 경유해서 셀죽으로 향했다.
데니즐리에서 유스펠리에서 만났던 트레킹가이드를 다시 만났다.
그도 여행중이라고 하는데 제법 큰 배낭을 메고 여행중이다.
내 카메라를 보더니 또 카메라 팔생각 없냐고 묻는다.
셀죽에 도착해 숙소를 잡고 바로 옆에있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유적을 돌아보았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약 기원전 500년전부터 세우기 시작해서 완성 되기까진 120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하는데 헤로스트라투스라는 작자가 불을 질러버려 재건 했으며 그 당시 가장 유명했던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의
2배의 규모로 만들어 졌다 한다.
지금은 거의 무너져 예전의 웅장함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숙소로 돌아와 숙소주인들과 시간을 보냈는데
숙소가 편하고 좋긴한데 여자라면 주인 남자를 조심해야 할 것 같다.

 

1999. 10. 8. 금  Selcuk (Ephesus)

아침에 일어나 에페수스로 향했다.
에페수스는 소아시아 고대 이오니아지방의 12개 도시중 하나였는데
그리이스의 3대 건축 양식인 도리아식, 코린트식, 이오니아식중
이오니아식 건축양식이 탄생한곳이며 그것은 예전에 경제적으로
매우 부유했음을 말해주는것이기도 하다.
벌써 많은 단체 관광객들로 입구가 붐빈다.
배낭여행자도 가끔 보이지만 모두 다 Couple이라
혼자온 사람은 나 혼자인 듯 하다.
큰 원형극장과 아직까지 아름다운 도서관건물등 구석구석
돌아보고 입구쪽으로 나오니 단체관광객들로 꽉차있어
시장에 온 것 같다.
아직까지 발굴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곳도 있다.
다시 길을 걸어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쉰후 아르테미스신전과
에페수스에서 나온 유적들을 전시해놓은 박물관으로 향했다.
가슴에 수많은 유방이 있는 아르테미스상과
멋진 대리석조각들이 많이 보인다.
내일 밤 9시발 이스탄불행 버스를 예약했다.
 

 

1999. 10. 9.  토  Selcuk - Istanbul

하루종일 숙소에서 빈둥대며 시간을 보내다
시간이 되어 오토가르로 나섰다.
드디어 이스탄불로 간다.


1999. 10. 10.  월  Istanbul

아침에 이스탄불에 도착, 여행자들이 몰려드는 술탄 아흐멧 지역으로 갔다.
Konya pension을 잡았는데 그곳에 또 다까시 가족과 마리코가 있는게 아닌가..
헤어져있던 몇일동안의 여행 얘기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그들과 함께 갈라타 타워로 향했다.
타워에 올라서자 이스탄불이 한눈에 보이고
유럽과 아시아를 좁은 보스포루스 해협이 가르는 것이 보인다.
저멀리로 모스크의 아름다운 실루엣이 환상적이다.
돌아오는길에 갈라타교 밑의 배위에서 구워파는 고등어 샌드위치를 먹고
주변의 시장구경을 하고 돌아왔다.
시종 걸어다녀 다리가 무척 피곤하다.
저녁은 오랜만에 다까시가족과 마리코 몇몇 다른 일본인들과 함께
중국식 식당에 가서 여러 음식을 시켜 많이 먹었다.

 

1999. 10. 11.  월  Istanbul

숙소가 너무 춥고 시설도 않좋아 좀더 싼 Orient Hostel로 숙소를 옮겼다.
마리코와 이스탄불 대학에 갔는데 신분확인은 물론 가방검사까지 하고
들여보내 주지 않으려 했지만 어렵게 정문을 통과해서 대학을 둘러보았다.
그리 크지는 않았는데 각 건물마다 금속탐지기로 검사를 한다.
대학이 아니라 무슨 정보기관이라도 되는것인가...
밥을 싸게 먹을수 있다고 하여 식당을 찾았으나 식당까지 문을 닫은 후여서
대학을 나와 이집션 바자르로 향했다.
활기찬 시장을 둘러본후 Topkap 궁전을 구경했는데
화려한 보석과 그릇들이 많았고 특히 큰 다이아몬드 앞에선
여자들이 자리를 쉽게 뜨질 못하고 있다.

술탄아흐멧 지역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한국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오늘은 숙소의 디스코 바에서 밸리댄싱 공연이 있는날이다.
바에서 맥주를 마시며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가슴을 아슬아슬하게 가린 여자가 나와 밸리댄싱을 추기 시작하고 분위기가 고조되자 한명 한명 가운데로 끌어와 춤을 추게 하고
결국 나중엔 모두가 나와 춤을 추게 되었고 그 사이 댄서는 사라져 버렸다.
즐겁게 춤추고... 즐겁게 놀았다....

 

1999. 10. 12.  화  Istanbul

보스포로스해를 가로질러 흑해 근처까지 운항하는 배를 타고
Anadolu Kavagi까지 가면서 이스탄불의 여러 모습들을 감상하고
이번엔 버스를 타고 이스탄불의 아시아쪽인 Uskudar 까지 와서
유럽쪽으로 지는 해를 보고 아름다운 모스크의 실루엣을 감상한후
숙소로 돌아왔다.

밤에는 전구를 여러개 달아놓아 번쩍이고 있는 블루모스크 앞에서
맥주를 사 와서 마시며 마리코와 이런 저런 얘기하며 이스탄불의
밤은 깊어가는데 저쪽 앞에선 남녀가 너무너무나도 뜨거운 장면을 연출하며 볼거리까지 제공하고 있지만....
너무 추워 숙소로 돌아왔다.

 

1999. 10. 13.  수  Istanbul

이스탄불의 신시가지인 Taksim 광장과 Istiklal 거리를 가보기로 하고
에미노뉴에서 버스를 탔다.
현대적인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곧 탁심광장에 도착했다.
분수주위에 사람들이 앉아 얘기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곳에서 다까시를 만났는데 일본 대사관에 간다고 한다.
이스티크랄 거리를 거닐었다.
길 가운대로 이쁜 트램이 천천히 오간다.
번화가 답게 세련된옷을 많이 볼 수 있으며 자유스런 젊은이들을 느낄 수 있다.

술탄아흐멧 지역으로 돌아왔더니 장이 열려있다.
매주 수요일이면 장이 열린다는데 야채와 과일이 특히 많이 보인다.
귤이 보이길래 조금 사서 먹었는데 역시 우리나라 귤이 맛있다.
그저께가 터키에 온지 한달이 된날이라 얼마나 썼는지 확인을 해보았다.
540달러.   헉... 눈이 튀어나온다.
한달에 540달러라니 인도, 파키스탄, 이란에 비해 약 3배.

 

1999. 10. 14.  목  Istanbul

내일 아침에 마리코가 이스라엘로 떠난다고 하여 같이 이집션 바자르에가서 애플티를 사고 한국식당에가서 볶음밥을 먹었다.
이곳 터키에서 시리아, 요르단을거쳐 이집트를 가려고 했었지만
시리아, 요르단은 포기하고 바로 이집트로 가기로 했다.
돈도 거의 다 떨어져 가는데다 혼자의 여행이 지친것도 같다.
 

1999. 10. 15.  금  Istanbul

새벽에 마리코를 떠나보내고 다까시가족이 싸고 정말 좋은 숙소를 잡았다고 하여 술탄아흐멧에서 5분거리인 Galata hostel로 숙소를 옮겼다.
주방을 사용할 수 있고 옥상에서 바다가 보이는 숙소였는데
특히 주인인 이스마엘이 너무 좋아 맘에 든다.
이스마엘이 빵을 사와서 아침을 숙소에서 먹었다.
Tea는 무료여서 아무때나 마시고 싶을 때 마시면 되었다.
한국인커플이 한팀 묵고 있고 나머지 몇 명은 다 일본인이다.
한국인 커플에게 이집트에 대한 정보를 얻고 저녁으로 그들이 만든
찌개와 밥을 먹었다.
찌개와 밥,,,


1999. 10. 16.  토  Istanbul

지하궁전을 가보았다.
뭔지모를 스크린과 괴기한 소리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밑엔 물이 있고 그위를 다니며 구경하는것인데 지하에 이렇게
거대한 공간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저녁으론 일본애들이 일본음식을 만들어 맛있게 먹었다.
매일 이렇게 쌀밥을 먹으니 너무 좋다.


1999. 10. 17.  일  Istanbul

블루모스크 주위를 한바퀴 산책하고... 이렇게 저렇게 시간을 보낸다.


1999. 10. 18. 월  Istanbul

내일모래 떠나는 카이로행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저녁때 매블라나교단의 종교의식중 하나인 매블라나춤을 보러
한국인커플과 함께 공연이 있다는곳에 갔다.
관광객을 위한 공연은 아니었고 자기들끼리의 종교의식을 하는것인데
소수의 관광객이 관람하려고 찾아오기도 한다.

기도가 시작되고 춤을추는 사람들이 검은옷을 입고 천천히 인사를 하며 입장한다.
여러신도들의 기도가 계속되는 가운데 검은 망토같은 옷을 벗고 서서히 춤을 추는데 6명정도 되는 사람들이 스스로 돌면서 또 원을 그리며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 것이다.
양팔을 벌리고 한 손바닥은 하늘을,  한 손바닥은 땅을 향하는데 알라신한테 받아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의미 한다고 한다.
음악이 격렬해지면 기도하는 사람들의 소리도 격렬해지고
상체와 고개를 리듬에 맞춰 흔든다.
춤은 더욱 빨라져 점점 더 빨리 돌고... 돌고.. 보는 사람이 어지러울 정도 였다.
기도가 거의 끝날무렵 춤도 끝나고 한사람이 무언가를 낭송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에 맞춰 아민~ 아민~~ 한다.
모든 의식이 끝나고... 늦은 밤길을 오래도록 걸어 돌아왔다.


1999. 10. 19.  화  Istanbul

새벽에 한국인 커플이 떠났고 리라를 조금 남겨두고 달러로 바꾸었다.
저녁때는 닭을 3마리사서 닭죽을 끓여 15명이나되는 사람들이
함께 먹었다.

밥을 거의 다 먹었을때쯤 한 일본인 여자가 왔는데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를 찾아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남자는 이곳에 있다가 어제 다른곳으로 떠나버린 것이다.
이런 운명의 장난이..
아무런 약속도 없이 남자를 찾으러 이 먼 터키까지 찾아오다니...
만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그 남자가 떠난곳에 있는, 여행자들에게 유명한 몇몇 숙소에 이스마엘이 전화를 걸어 확인을 했지만 그 남자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여자는 또 그가 떠났다는 도시로 그를 찾아 떠날 것이다..
오늘 이스탄불 출발 런던행 이집트항공 여객기가 공중납치 당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내일 내가 타고 갈 비행기도 이집트항공인데 결항이나 되지 말았으면 한다.


1999. 10. 20.  수  Turkey, Istanbul - Egypt Cairo

예약해놓은 공항행 미니버스가 왔다.
손님은 나 혼자.
Ataturk 공항에 도착해 보니 카이로 행 비행기가 1시간 30분 delay 되었다한다.
항공사측에서 버커킹에서 간단히 식사할 수 있는 식권을 주긴했으나
공항에서 1시간 30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항상 공항에서 이렇게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했으므로 공항만 생각하면
지루한 기다림만 생각날 뿐이다.

드디어 보딩이 시작되고 짐을 첵크 하는데 x-ray를 거친 가방을 모두 열어서 내용물을 확인하고 비행기 문앞에서도 다시 가방을 열어 검사를 했다.
어제 있었던 비행기 납치 때문에 그런다고 이해는 하지만
내 배낭은 한번 까발리면 다시 추스르기가 쉽지 않아 욕이 절로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낭옆쪽 그물망 안에 있던 큰 맥가이버 칼조차 찾아내지 못하고 단지 작은 손톱깍기를 갖고 이걸 들여보내느냐 마느냐 생각하며 요리조리 돌려보는 모습이 웃겼다.
17시 15분 출발 예정이었으나 21시가 다 되어서야 이륙을 한다.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어 조금 하늘로 오르니 이내 육지의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1시간 30분의 짧은 비행이 끝날무렵 드디어 Cairo가 보인다.

또 다시 새로운 땅에 도착했다.
항상 그렇듯 새로운 땅에 도착하면 설레임과 두려움과 기대감이 한꺼번에 밀려오며 살아있는 나를 온몸으로 느낀다.
visa fee 15달러를 은행창구에서 내고 우표같은 것을 받아 여권에 붙이고 얼마를 환전할까 고민했다..
버스비와 오늘하루의 숙박비, 약간의 여유돈만 있으면 되겠다 생각하고
5달러만 환전하기로 했다.
환전해주는 놈이 한번 더 쳐다본다.   " 그래 5달러만 환전 한다구!! "
모든 심사를 마치고 공항에서 나오니 더울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시원한 바람이 분다.
400번 버스타는곳을 경찰한테 물어 기다렸는데 영 오지 않는다.
택시기사가 옆에 붙어 버스는 끊어졌으니 택시를 타고 가라고 한다.
택시를 탈 수 있는 돈조차 환전하지 않았으니 일단 버스를 계속 기다렸다.
밤 11시가 넘어서고 있었고 외국인 여행자는 나 혼자였고
이집트인조차 몇 명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낯선 이집트의 버스승차장에서 5달러어치의 이집트 파운드를 든채 버스를 기다리는 꼴 이라니....                      

                                                              이집트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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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에서 파키스탄으로 들어왔습니다.
이 여행기의 시작은 인도 입니다.


1 USD = 54 PRS.


1999. 8. 22.  일  India, Amritsar - Pakistan, Lahor

싱호이가 아파 선뜻 떠나지 못하고 있다가 10시쯤되어

조금 낳아진듯해서 작별을 하고 일어섰다.

벌서 햇빛이 뜨겁게 내리쬐고 있다.

버스스탠드에서 아~따리따리따리 라고 외치며 손님을 모으는 버스에 올랐다.

11시쯤 아다리 마을에 도착, 릭샤를 타고 Waghar Border,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에 도착했다.

파키스탄과 인도의 국기가 나란히 펄럭이고 있다.

그런데 국경이 너무 썰렁하다.

국경을 통과하는 사람이 3~4명 밖에 보이질 않고 외국인은 나 혼자다.

파키스탄 입국수속을 마치기도 전에 환전하라고 사람이 달려든다.

드디어 파키스탄 국경을 넘었다.

5개월간의 인도,네팔 여행이 머리속에서 죽~ 되살아났다 사라졌다.

동시에 이 낯선 나라에 대한 기대감과 공포와 설레임이 밀려왔다.

남아있는 100 인도 루피를  120 파키스탄 루피로 바꾸고

일단 20달러만 환전했다.

폐차같은 미니버스를 타고 어느마을 까지 가서 다른 미니버스로 갈아탄후

라호르역에 도착했다.

국경에서 라호르역까지 같은 미니버스를 탔던 젊은이가

자기집에 나를 초대하고 싶다고 같이 가자고 했지만

파키스탄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현지인의 집에 가는 것은

별로 안좋을 것 같아 그냥 숙소를 찾아가기로 했다.

역앞에서 릭샤를 타고 YWCA를 가려고 했지만 40Rs나 달라고 하여

미니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43번 미니버스를 찾아타고 American Center 근처에 내렸는데

YWCA를 찾을 수가 없다.

헤메고 있자니 길 건너편에서 젊은이들이 오라고 손짓을 한다.

너희들이 이리오라고 손짓을 했더니 길을 건너 한무리의 젊은이들이 몰려온다.

YWAC를 찾고 있다고 하니 미니버스를 타고 자기들이 가는길 중간에 내리면 된다고

같이 타자고 한다.

미니버스가 와서 탔는데 1분쯤 달리니 과연 YWCA가 나왔다.

미니버스의 차비 3Rs.를 내려고 하자 차장이 그냥 내리란다.

시설이 형편없고 물도 잘 나오지않는 도미토리가 125Rs. 나 한다.

파키스탄의 첫인상은 인도와 거의 비슷하지만

도로가 인도보다 넓고 정비도 잘 되있다.

사람들도 듣기와는 달리 좋은 인상이어서 마음이 놓인다.

배가고파 뭘좀 먹으려니 숙소근처가 원래 사람들이 없는곳인지

사람들도, 가게도 많이 보이지 않는다.

무척 무덥기도 하여 에어콘 바람도 맞을겸 올 때 보았던 McDonald에 갔다.

세금이 많이 붙어 비싸긴 하지만 시원한 것이 조아 계속 앉아 있다가

의사가족을 만나게 되어 콜라도 얻어 마시고 얘기도 많이 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의사의 아들에게 인도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니

인디아는 우리의 적이고, 인디아는 무척 나쁘고,

카시미리 지방에서 무슬림들을 많이 죽이고, 그들은 무슬림이 아니고

그러그러하니 인디아는 싫단다.

조그만 아이였지만 인도에대한 적대심이 확고했다.

숙소에들어가 샤워를 하려하니 물이 잘 나오지 않는다.

어렵게 샤워를 하고.. 이제 파키스탄에서의 첫밤을 보낸다.



1999. 8. 23. 월  Lahor - Rawalpindi


가이드북이 없는 여행이 이렇게 힘들줄이야.

여행객이라도 많으면 정보얻기가 쉬울텐데

어제 겨우 하루 Lahor 에 머무는 여행객을 만났을뿐이다.

라호르보다는 라왈핀디가 할인기차표 예약하기가 쉬울 것 같아

아침에 TDCP로 가서 라왈핀디행 버스를 탔다.

에어콘이 나오는 고급 버스, 정말 오랜만에 이런버스를 타 본다.

고속도로가 DAEWOO에 의해 만들어졌다더니 우리나라에 비해

손색없고 과연 휴게소에 들리니 DAEWOO 마크가 선명히 빛나고 있다.

고속도로는 왕복6차선인데 차는 별로 없어 한산한 고속도로다.

라왈핀디에 도착해 기차역으로 향했다.

숙소를 찾아야 하는데 찾을길이 막막하다.

기차역앞에 다다르니 택시들이 많이 있길래 택시기사들을 다 불러모았다.

이근처에 묵으만한 숙소중 제잎 가까운곳이 어디냐고 물으니

대충 길을 가르쳐준다.

길을 가는 도중 이곳을 떠나는 일본인 여행자를 한명만나

그가 묵었던 숙소를 가리켜주었다.

조금 헤맨 끝에 숙소를 찾아 방을 잡았다.

날도 덥고 방안도 못지않게 더워서 시내도 둘러볼겸

밖으로 나가 거리를 거닐었다.

파키스탄에 오기전엔 파키스탄에 대해 안좋은 말을 많이 들었는데

막상 와보니 사람들도 괜찬은 편이고 길이나 다른 편의 시설들도

인도에 비해 더 좋은 느낌이다.

오늘 사업을 한다는 한놈이 접근했는데 아무래도 사기꾼 같다.



1999. 8. 24.  화  Rawalpindi


역앞 Concession office에서 외국인 학생 할인 letter를 받았다.

방콕에서 만든 학생증이 많이 도움이 된다.

기차표 예약하는곳에 가서 Quetta행 기차표를 끊으려 하니

1주일 후에나 자리가 나올것이라 한다.

세상에 1주일 이라니...

1주일동안이나 이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어떻게 안되겠냐며 계속 서서 졸라대니까

내일 모래 군인용 자리가 하나 있는데 18시 이후까지

군인이 표를 끊지 않으면 그 표를 주겠단다.

일단 희망을 걸어본다.

숙소를 같은 가격에 좀더 좋은곳으로 옮기고 여기저기 다니며 구경하다가

일찍 예약소에가서 졸라볼 작정으로 17시 30분쯤 갔는데

아직까진 군인이 표를 끊지 않았다고 한다.

드디어 저녁6시가 넘어 기차표를 손에 쥐었다!

기쁜마음으로 시내를 돌아다니다 담배를 사려다가 88담배를 발견했다.

12Rs. 400원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두갑 사고 Max5집 카세트 테입도 하나 샀다.

700원 정도로 싸고 음질도 좋다.



1999. 8. 25.  수  Rawalpindi


근처에 괜찬은 유적지가 있다고 하여 Taxila라고 하는곳에 가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40분쯤 달려서 도착했는데 Taxila 박물관 까지는

또 통가를 타야만 했다.

박물관을 둘러본후 Sirkap유적지를 가려고 하는데

당나귀 마차가 가고있어 얻어탈 수 있었다.

길 주변에 나와있는 사람들이 모두 손을 흔들어주며 함성까지 질러댄다.

나도 같이 손을 마구 흔들어 주었다.

Sirkap유적지는 예전건물의 기초 터만 남아있었는데

인도, 스라바스티에서본 기원정사와 비슷한 분위기다.

풀 자르는 벙어리 영감님이 풀을 자르다 말고 절터를 안내하며 보여준다.

무척더워 물 한잔 얻어마시고 나무 그늘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쐬며

영감님과 시간을 보냈다.

햇빛이 내리쬐는,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는 한적한 유적지에

영감님과 나만이 나무 그늘에 앉아 담배를 피는 씬이다.

사진을 찍어주니 무척 좋아하신다.

Sirkap에서 조금 떨어진 Jandial에 갔으나 작은 규모의 돌 건물만 있을뿐이다.

큰 길가옆 구멍가게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대학생들과 잡담을 나누며

더위를 식히다가 돌아가는 길을 걸었다.

버스가 언제 올지 몰라 일단 걷고보자 했는데 마침 대학버스가 와서 선다.

Taxila까지 대학버스를 타고 나와 라왈핀디행 버스에 올랐다.

시골의 푸근한 분위기에 흠뻑 취해 있었던 것 같다.

어디를 가던지 시골사람들은 순박하고 인심이 좋다.

저녁을 먹는도중 비가 내렸다.

숙소로 돌아오자 본격적으로 천둥번개까지 치며 비가 내린다.

내일 새벽까진 그쳤으면 좋겠다.



1999. 8. 26.  목  Rawalpindi - Quetta


새벽 5시쯤 숙소를 나와 역으로 향했다.

역에서 다시 자리를 배정 받고 기차에 올랐다.

6시가 되자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4개의 침대가 있는 Compartment를 배정 받았는데

방도 넓고 침대를 앞으로 잡아당기자 싱글침대와 같은 크기가 된다.

쿠션도 좋고 에어콘도 나와 시원하고.. 이렇게 좋은 기차는

처음 타보는 것 같다.

50%나 할인을 받을 수 있었기에 에어콘 기차를 탈 수 있다.

밤이 될 때까진 내방에 아무도 들지 않아 넓은 방을 혼자 쓸 수 있었다.

점심은 닭고기가 들어간 도시락을 사 먹었는데 55Rs라 조금 비싸지만

닭고기가 거의 반마리에 식빵, 인도에서 먹었던 "난"이라고 하는

빵까지 있어 배는 충분히 채울 수 있었다.

에어콘이 강하게 나오진 않아 햇빛이 강한 낮에는

선풍기까지 틀어야했지만 밖에 나갔다오면 방이 얼마나 시원한지 새삼 느낀다.

기차에서 땀 안흘리며 자보긴 여행중 처음이다.

오히려 잘때는 조금 추워서 룽기를 몇번이고 고쳐 덮어야 했다.

같은 코치에서 일본인 가족을 만났는데

부부가 딸을 데리고 여행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1999. 8. 27.  금  Quetta


30시간 정도 달리자 사막이 끝없이 펼쳐져 평평한 대지가 끝없이 이어진다.

파키스탄 사람들에게 인도를 물어보면 인디아는 우리의 적, 이라는 말이

맨처음 나온다.

외국인은 일본인 가족과 나 밖에 없어서 기차가 정차 했을 때 밖에 나가면

그들은 신기한 듯 쳐다보지만 모두들 순한 눈빛이고 순진한 사람들이라

여행이 즐겁다.

언덕길이 나오기전 기관차를 기차의 맨 뒷부분에 하나 더 붙여서

기차의 맨 앞과 뒤에서 기차를 끈다.

모래와 바위뿐인 산을 힘겹게 넘고나니 Quetta에 도착했다.

오후4시 도착 예정이었으나 밤 8시에 도착했다.

38시간동안 기차에 있었으나 에어콘칸이라 편안했다.

Muslim 호텔은 빈방이 없어 근처에 조금 더 비싼 숙소를 잡고

저녁을 간단히 때웠다.

밤이라 그런지 시원하다.

내일은 이란돈을 환전해야한다.

이란돈은 이곳에서 환전하는 것이 가장 유리하기 때문이다.



1999. 8. 28.  토  Quetta - Taftan


아침을 간단히 때우고 일본인 가족과 함께 시장으로 환전을 하러갔다.

가게에 들어가서 하는것보다 환율을 높게 부르는 길거리에서

환전을 하려 했으나 아무래도 중간에 술수를 부리는 것 같아

그만두고 가게에서 환전을 했다.

1달러에 10,000리알 정도를 예상했으나 9,100리알 이상은 힘들었다.

Taftan 가는버스를 예약했고 일본인 가족은 하루 더 머문단다.

오후 5시에 떠난다던 버스는 오후7시가 되서야 출발했는데

큰버스에 10명도 안되는 사람을 태우고 곧 사막을 달리기 시작한다.

밤이지만 사막이라 건조하고 더워 입술이 트기 시작한다.

콧물이 나오는 것 같아 닦으니 코피가 나온다.

사방이 깜깜한 사막을 달리는데 예전엔 이구간에서 버스강도가

자주 일어났었다고 하여 좀 겁이난다.

중간에 저녁을 먹기위해 한번 정차 했지만 파키스탄 돈은 10Rs가 전부라

남이 먹는 것을 구경만 해야했다.

건조한 사막을 또 달린다.



1999. 8. 29.  일  Pakistan, Taftan -  Iran, Mirzaveh - Zahedan - Bam


아침 8시쯤 타프탄에 도착했다.

사막위에 썰렁한 마을과 썰렁한 국경이 있다.

남은 파키스탄 돈으로 짜이를 마시고 돈뭉치를 든 환전꾼들을 뒤로하고

이미그레이션이 문을열길 기다렸다.

8시30분이 되자 출국심사를 시작한다.

간단히 끝내고 드디어 이란땅에 발을 디뎠다.

입국심사를 끝내고 짐검사를 하는데 카세트 테입 6개를 모두 들어보고

봉해서 이란에 있는동안 뜯지 말라고 한다.

자헤단까지 가기위해 5인용차를 탔는데 검문소를 4번정도 지나쳤다.

그때마다 여권을 보여줘야 했는데 대충 앞장만 보고 통과..

자헤단 터미널에 내리자 마자 Bam에 가는 표를 끊었다.

시간이 좀 남아 바로 옆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뭐가 있는지 잘 몰라하니

날 끌고 주방으로 데려가더니 음식을 하나 하나 보여준다.

닭고기와 밥으로 이란에서의 첫 식사를 했다.

조금 비싼 듯 하지만 첫 식사라 바가지 쓰는셈 치고 그냥 먹기로 한다.

12시쯤 Bam으로 출발, 가도가도 사막이다.

5시간 반 정도 걸렸는데 덥고 건조하여 죽는줄 알았다.

사막을 하루종일 달렸다.

이란의 도로는 잘 닦여 있지만 주변이 삭막한 사막이라 마음까지 메마르는 것 같다.

Bam에 내려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는데 숙소의 방명록에 이곳에 사는

한국사람의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숙소주인과도 친구라 하여 전화를 걸어주어 통화 할 수 있었다.

저녁 7시쯤 숙소로 온다고 한다.

대우자동차 공장이 근처에 있는데 그곳에서 근무 한다고 한다.

과연 저녁때 김영룡 이라고 하시는 분이 오셨다.

그분집에 같이 가서 미역국에 된장찌개, 김치를 먹으니 너무 좋다.

집은 넓었지만 가족은 서울에 있고 혼자 산다고 한다.

넓은 공단을 한바퀴돌아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한국분을 만나 음식까지 대접 받으니 너무 기분이 좋다.

                                                                         계속 이란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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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8. 11.  수  Pushkar - Delhi

아침도 뷔페로 먹고 check out 한후 이스라엘친구의 방에 갔는데

MDplayer 2개와 앰프, 성능좋은 스피커가 있어서 큰 오디오를 튼것같이

숙소가 울릴정도다.

거리를 소다니며 시간을 보내다가 숙소로 돌아와 옥상에 올랐다.

오후 5시부터 일식이 시작되었다.

30분후엔 초승달처럼 해가 작아지더니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그름이 엷게 끼어있어서 눈이 부시지 않아 일식을 보기에 더 좋았고

사진을 찍기에도 더 좋았다.

짐을 챙기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는 정확하게 오후7시45분에 델리를 향해 출발했다.



1999. 8. 12.  목  NewDelhi

새벽녘에 델리에 도착했는데 표를 예약할때는

뉴델리역 앞까지 간다고 했지만 올드델리에 세워놓고 Last stop 이라한다.

우다이푸르에서 푸쉬카르 올때도 그러더니 꼭 마무리가 좋지 못하다.

할 수 없이 릭샤를 잡아 뉴델리역으로 향했다.

이번여행에 벌써 3번째 델리다.

릭샤를 내려 파하르간지 메인바자르로 들어서니 역시 호텔삐기가 붙는다.

버스 때문에 신경질도 조금 나 있는데다 피곤하기도하여 신경이 예민해져있는데

싫다고 해도 자꾸 따라붙길래 소리를 냅다 질렀더니 중얼거리며 물러난다.

정말 미치도록 덥던 5월초의 델리와는 달리 지금은 견딜만 하다.

델리는 역시 한국인이 많아서 몇 명의 한국인을 만났다.

이란비자를 받기위해 우선 한국대사관에 가서 추천장을 받았다.

그곳에는 바라나시 숙소에서 짐을 몽땅 도둑맞은 한국인 2명도 있어서

보기에 안타까웠는데 나중에 인도를 꼭 다시 오리라 한다.

추천장을 받고 이란대사관으로 가서 비자신청을 했다.

관광비자는 내주지 않고 1주일 통과비자만 내주는데

이란에서 비자연기가 잘 될지 모르겠다.

비자는 오는 월요일에 와서 찾아가라 한다.

저녁때는 Navrang G.H.에서 살고있는 하리씨가 돼지도리탕을 만들어

술과 함께 먹었다.

오랜만에 술과 함께 돼지고기를 먹으니 너무 좋다.



1999.  8.  13.  금  Delhi

13일의 금요일.

어젯밤에 바라나시에서 자이푸르로 가는 기차에서 만났던

캐나다 국적의 미얀마 아저씨를 다시 만났다.

그는 아그라에서 남현주와 함께 내렸었는데 오늘 파리로 날아간다한다.

캐나다 여권을 갖고 있어서 자유로운 여행을 할 수 있는데

자기는 미얀마 정부가 싫지만 자기 집안은 Royal Family라

대부분 가난한 미얀마 사람들한테 너무 미안하단다.

32살의 그는 앞머리가 벗겨졌는데 대머리에 어떤여자가 오겠냐고 농담도 한다.

평생 여행을 다닐것이라 한다.

저녁때 숙소옥상에 올라갔더니 수백개의 연이 하늘에서 날고 있다.

각 건물 옥상에서 연을 날리는데 우리나라의 가오리연과 비슷하지만

꼬리가 없어 중심을 잘 잡지 못한다.

가끔 연줄이 끊어져 숙소 옥상으로 연이 떨어지는데 날려보려고

시도 해봤지만 잘 되질 않는다.

수백개의 연이 도시의 하늘을 뒤덮은 모습은 어쨋든 색다르다.



~ 1999. 8. 18.  수  Delhi
그동안 한국사람들 많이 만나 술 마시고.. 얘기도 많이 나누며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냈다.

15일, 인도와 우리나라 독립기념일을 맞이했고,

16일, 이란비자 스티커가 붙은 여권을 찾았고

내일 암리차르로 간다.

인도비자 기간이 15일 남았다.



1999. 8. 19. 목 Delhi - Amritsar

낮시간은 여기 저기 한국사람들하고 시간을 보내다가

밤 8시에 뉴델리역으로 향했다.

기차는 30분쯤 연착한 21시40분에 도착했는데

내 자리가 있는 열차칸을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매야만 했다.

잠을 자려고 누웠더니 작은 나방이 유난히 많아 계속 나방과 모기에

시달리느라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1999. 8. 20.  금  Amritsar

아침9시쯤 암리차르에 도착했다.

시멘트바닥에 지저분한 메트리스가 20개정도 깔려 있는

황금사원 순례자숙소에 짐을 풀었다.

공동샤워장에서 인도인들과 함께 샤워를 하고 황금사원으로 향했다.

사원에 들어갈땐 물이 고인곳에 발을 담근채 지나쳐야 하고

계단을 조금 내려가면 연못중앙에 황금색 사원이 보인다.

홍콩에서 왔다는 싱호이라는 여자를 만났는데

항상 장난기가 있는 얼굴을 하고 있다.

그녀는 아프리카와 유럽을 거쳐 2년째 여행중이라 한다.

순례자식당인 Sri Guru Ranga 식당에 가서 공짜로 주는 짜파티를 먹고

숙소로 돌아와 낮잠을 잤다.

저녁때 파키스탄에서 넘어온 한국여자를 만났다.

파키스탄은 생각보다 안전하고 인도보다 더 깨끗하단다.

밤 10시에 사원에서 하는 간단한 의식을 보러 갔는데

특별히 볼 것은 없었다.



1999. 8. 21.  토  Amritsar

아침에 사원에서 들리는 노래소리에 깨어 잠을 설치다가

사원을 한바퀴 산책하고 다시 순례자식당으로 갔다.

아주 넓은 식당엔 사람들이 항상 만원이고

바닥에 천을 깔고 주욱~ 앉아 있으면 짜파티를 나눠준다.

다시 사원에 갔는데 싱호이가 있어서 같이 사원 안에서 행해지는

인도인들의 기부와 음악연주 하는 것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오후부터 싱호이는 배가 아프다고 숙소에 누워 배를 감싸쥐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1999. 8. 22.  일  India, Amritsar - Pakistan, Lahor

싱호이가 아파 선뜻 떠나지 못하고 있다가 10시쯤되어

조금 낳아진듯해서 작별을 하고 일어섰다.

벌서 햇빛이 뜨겁게 내리쬐고 있다.

버스스탠드에서 아~따리따리따리 라고 외치며 손님을 모으는 버스에 올랐다.

11시쯤 아다리 마을에 도착, 릭샤를 타고 Waghar Border,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에 도착했다.

파키스탄과 인도의 국기가 나란히 펄럭이고 있다.

그런데 국경이 너무 썰렁하다.

국경을 통과하는 사람이 3~4명 밖에 보이질 않고 외국인은 나 혼자다.

파키스탄 입국수속을 마치기도 전에 환전하라고 사람이 달려든다.

드디어 파키스탄 국경을 넘었다.

5개월간의 인도,네팔 여행이 머리속에서 죽~ 되살아났다 사라졌다.

동시에 이 낯선 나라에 대한 기대감과 공포와 설레임이 밀려왔다.

남아있는 100 인도 루피를  120 파키스탄 루피로 바꾸고

일단 20달러만 환전했다.

폐차같은 미니버스를 타고 어느마을 까지 가서 다른 미니버스로 갈아탄후

라호르역에 도착했다.

국경에서 라호르역까지 같은 미니버스를 탔던 젊은이가

자기집에 나를 초대하고 싶다고 같이 가자고 했지만

파키스탄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현지인의 집에 가는 것은

별로 안좋을 것 같아 그냥 숙소를 찾아가기로 했다.

역앞에서 릭샤를 타고 YWCA를 가려고 했지만 40Rs나 달라고 하여

미니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43번 미니버스를 찾아타고 American Center 근처에 내렸는데

YWCA를 찾을 수가 없다.

헤메고 있자니 길 건너편에서 젊은이들이 오라고 손짓을 한다.

너희들이 이리오라고 손짓을 했더니 길을 건너 한무리의 젊은이들이 몰려온다.

YWAC를 찾고 있다고 하니 미니버스를 타고 자기들이 가는길 중간에 내리면 된다고

같이 타자고 한다.

미니버스가 와서 탔는데 1분쯤 달리니 과연 YWCA가 나왔다.

미니버스의 차비 3Rs.를 내려고 하자 차장이 그냥 내리란다.

시설이 형편없고 물도 잘 나오지않는 도미토리가 125Rs. 나 한다.

파키스탄의 첫인상은 인도와 거의 비슷하지만

도로가 인도보다 넓고 정비도 잘 되있다.

사람들도 듣기와는 달리 좋은 인상이어서 마음이 놓인다.

배가고파 뭘좀 먹으려니 숙소근처가 원래 사람들이 없는곳인지

사람들도, 가게도 많이 보이지 않는다.

무척 무덥기도 하여 에어콘 바람도 맞을겸 올 때 보았던 McDonald에 갔다.

세금이 많이 붙어 비싸긴 하지만 시원한 것이 좋아 계속 앉아 있다가

의사가족을 만나게 되어 콜라도 얻어 마시고 얘기도 많이 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의사의 아들에게 인도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니

인디아는 우리의 적이고, 인디아는 무척 나쁘고,

카시미리 지방에서 무슬림들을 많이 죽이고, 그들은 무슬림이 아니고

그러그러하니 인디아는 싫단다.

조그만 아이였지만 인도에대한 적대심이 확고했다.

숙소에들어가 샤워를 하려하니 물이 잘 나오지 않는다.

어렵게 샤워를 하고.. 이제 파키스탄에서의 첫밤을 보낸다.

                                                                           .........파키스탄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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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5. 16.  일  Mysore


오전에 Chamundi Hill 다녀왔고 오후엔 Devaraja Market을 구경했다

오래간만에 Internet을 했는데 집에 전화 하라는 메일이 와있어 무슨일이 있는지

걱정이 되어 전화를 해봤더니 연락이 없어 걱정되었단다.

비싼 전화는 자주 못해도 옆서는 자주 보내야겠다.

오후 7시가 되자 과연 궁전의 둘레를 따라 설치해 놓은 수천개의 전구에 불이 들어왔다.

음....  정말 멋있다.

마이소르에서의 기쁨 또 하나는 탈리가 맛있다는 것이다.

특히 탈리를 좋아하는데다 깨끗하고 큰 탈리 전문식당에서 먹는

탈리맛은 정말 기가막히다.



1999. 5. 17.  월  Mysore - Ernakulam


다음 행선지는 에르나꿀람을 경유해서 코치로 가는 것이다.

21시 15분발 버스를 예약하고 12시에 게스트하우스 check out 하고

주변을 산책하거나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며 버스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인도에서 좋은 것은 시간보내기가 좋다는 것이다.

항상 길거리엔 많은 사람들이 있고.. 먹을거리, 볼거리들이 있어

지루한 시간보내기도 금방 때울 수가 있는 것이다.

21시15분 출발인 버스는 22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1999. 5. 18.  화  Ernakulam - Kochi


밤새 버스는 달려 오전 10시쯤 에르나꿀람에 도착했다.

녹색 융단의 땅 께랄라(Kerala)주에 도착한 것이다.

바로 Fort Kochi 지역으로 이동 하기위해 배타는곳(Jetty)로 향했는데

생각보다 멀고 길을 헤매게 되어 오래도록 걸어야 했다.

차가 아주 많아 길 걷기가 유쾌하지 않다.

배를 타고 Kochi로 향했다.

에르나꿀람의 도심지와는 달리 한적한 곳에 오니 한결 기분이 낳아지는 느낌이다.

중국식 어망 (Chinese Fishing Net)이 보이고 아라비아해가 출렁이고 있다.

해변에서 가까운곳에 Chiramel Residency (Heritage Inn) G.H.를 잡아 묵기로했다.

우선 바닷가를 거닐며 바닷바람을 쐬고 중국식어망을 올리는 사람들이

오라고 손짓해 가봤더니 거대한 어망에 비해 고기는 그리 많이 잡히지는 않는다.

나도 어망 올리는 작업을 조금 해보려고 했지만 생각외로 작업이 거칠고

힘과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라 뒤에서 지켜보다가 고기가 얼마나 잡혔나

세어 보는 것 밖에는 할 수가 없다.

한쪽 옆에는 싱싱한 생선을 많이 파는데 한국말을 하는 아저씨도 있다.

하나, 둘, 셋,  여기서 사서 저기서 먹어!

생선를 사서 가까운 공터앞 식당에 가져다 주면 약간의 요리비를 받고

요리 해주는 시스템이다.

저녁식사로 큰 생선을 사서 먹었다.

내가 묵고있는 게스트 하우스는 1층은 주인집이고 2층은 손님을 위한

방과 넓은 거실이 있는데 거실엔 그집 아들과 딸이 예전에 갖고 놀았을

장난감들과 인형들이 많은데 예쁜 한복을 입은 한국 인형도 있다.

여름철이라 손님이 없어 그 넓은 거실과 방을 나혼자 쓸 수 있는데다

좌변기와 깨끗한 욕조가 딸린 넓은 더블룸이 100Rs. 로

그리 비싸지 않아 지내기엔 정말 좋다.

여행기간 동안 정말 좋고 싼 숙소로 기억된다.

내가 비수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여름에 남인도는 덥다고 생각하지만 서쪽은 덥지도 않고 여행객이 없어

상대적으로 싼데다 한적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도 맥주 한잔 않할 수 없다.



1999. 5. 19.  수  Fort Kochi


아침식사후 잠이들었다가 깨어보니 비가오고 있다.

몬순이 시작 되려나보다..

거실에서 TV를 보거나 잡지를 뒤적이며 시간을 보낸다...

주인집의 하인은 2층에서 놋쇠 와인잔과 그릇들을 광택제로 윤이나게

하나하나 정성들여 닦거나 쪼그리고 앉아 TV를 보고 앉아있다가도

빠앙~ 하는 주인집 여자의 차소리가 들리면 어느새 차고로 나가 차고문을

열어준다.

내가 외출했다가 돌아올때도 잠긴 현관문을 열어주며 인사를 한다.

그와 얘기좀 하고 싶었지만 그는 영어를 못하는 듯 하다.



1999. 5. 20.  목  Fort Kochi


오늘도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넓은 거실에 앉아 MTV를 본다.

Tony Braxton 의 Unbreak my heart을 듣는다.

창밖으로 비가 내린다. 그런데도 새들이 지저귄다.

넓은 거실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

비가 조금 그쳐 Dutch Palace에 가 보았다.

말만 궁전이지 그냥 조금 큰 집에 박물관을 만들어 놓은 것

같았는데 벽화는 괜찬았다.

오래도록 걸어 돌아왔다.

 

1999. 5. 21.  금  Fort Kochi


포르투칼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인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St. Francis 성당에 가 보았다.

묵고있는 숙소와 공터를 마주하고 있어서 언제나 길을 나설때면

보이던 성당이다.

포르투칼 출신의 Vasco da Gama가 이성당의 마당에 임시로 묻혔다가

나중에 고국으로 옮겨졌다 한다.

매일 아라비아해를 보면서 산책을 한다.

내일은 수로유람(Backwater Trip)을 위해 알라뿌자로 향한다.



1999. 5. 22.  토  FortKochi - Ernakulam - Alapuzha


올땐 배를타고 왔지만 나갈땐 버스를 타고 에르나꿀람으로 향했다.

버스를 갈아타고 히프와 허리가 아프다고 느낄때쯤 알라뿌자에 도착했다.

ATDC에서 월요일에 Kollam을 향해 떠나는 Backwater trip을

150Rs.에 예약했다.

비수기라 월, 수, 금요일 밖에 운행을 하지 않는단다.

저녁내내 비가 내린다.



1999. 5. 23.  일  Alapuzha


어젯밤에 모기와 벌레들의 공격을 받느라 온몸을 긁으며 잠을 설쳤다.

덕분에 아침 9시가 넘어서까지 침대에서 뒹굴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마땅히 볼거리가 없는 도시인데다 시끄럽고 복잡스럽고 또 비 때문에

길이 질퍽거려 나다니기가 쉽지 않지만 아침에 낯모르는 현지인으로부터의

Good morning 소리는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

점심은 탈리식당에서 오랜만에 탈리를 먹었는데 종업원들이 사리입은 여자들이다.

여자종업원이 있는 서민식당은 처음이다.

거리를 걷다가 지금있는 룽기도 조금 싫증나고 하여

남인도 특유의 현란한 무늬가 있는 룽기를 하나 샀다.

수로주변으로 감자나 바나나, 각종 과일들을 즉석에서 튀겨파는 가게들이 있길래

포테토칩을 사서 맥주와 함께 먹었는데 방금 만든 포테토칩이라 정말 맛있었다.

내일은 Backwater trip을 하는 날이니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1999. 5. 24.  월  Alapuzha - Kollam


다행히 시바신이 돕는 듯 어제 밤새 억수로 비가 오고 오늘 아침엔 비가 그쳐 있다.

10시 30분에 보트가 출발했다.

크지않은 배였는데 지붕이 있고 지붕위엔 의자를 놓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경치를 감상할 수 있게 되있다.

여행인원은 모두 15명 이었는데 인도인 가족 4명과 나머지는 프랑스, 덴마크, 잠비에

등지에서 온 배낭여행자 들이다.

좁은 수로를 지나칠땐 주변의 집에서 나온 꼬마들이 손을 흔든다.

모두들 밝은 모습들이다.

계속 좁은 수로를 따라가다 넓은 호수가 나타난다.

넓디 넓은, 바다같은 호수위에 손바닥만큼 조그만배 위에 서서 노젖는 할아버지가

그림같은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육지엔 온통 코코넛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고 드문드문 집들이 보인다.

점심시간이 되자 육지의 식당이 있는 곳에 멈춰섰는데 식당이라기보단

수로유람 손님만을 위해 집을 짓고 음식을 파는 듯 보이고 주위에 다른집들은

보이지도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인 바나나 잎을 식탁에 깔고 그 위에 탈리를 주는데

다른 여행객들은 숟가락이 없다고 불평을 하며 숟가락을 구해 먹었지만

나는 항상 그렇듯 손으로 탈리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

다시 수로유람은 시작되고 한가한 오후 시간이 지나간다.

유럽에 체류하는 잠비에에서 왔다는 친구와 얘기를 많이 했는데

이렇게 싼가격에 이런 여행을 할 수 있는 인도가 너무 좋단다...... 그래, 나두 좋다..

넓은 호수가 다시 나타나더니 오른쪽 둑 위로 파도가 높게 치는 바다가 보인다.

그러다 이내 다시 수로로 접어들고...

저녁6시 30분쯤 Kollam에 도착했다.

가끔씩 비가 와서 조금 추운 듯 하였지만 정말 괜찬은 boat trip 이었다.

Kollam에선 가이드북과는 달리 G.H.의 가격이 많이 올라있었지만

배에서 내릴 때 명함을 주었던 Rakshimi Tourist Home을 70Rs.에

잡을 수 있었다.

오늘도 기어이 알콜숍을 찾아 맥주를 사와서 마셨다.



1999. 5. 25.  화  Kollam - Thiruvananthapuram - Kovalam


아침을 먹고 남인도의 유명한 해변인 꼬발람으로 향하기 위해

우선 티루바난다뿌람으로 향했다.

가는도중 가끔씩 비가 왔는데 창문이 없는 버스라 커튼같은 천을

내리는 것으로 대신하여 비를 막는다.

창문없는 버스의 창가에 1시간을 넘게 앉아 있으려니 손이 곱을 정도로

추위에 시달려야 했다.

티루바난다뿌람에서 다시 꼬발람행 버스를 갈아타고 또 어느정도 달리자

꼬발람 해변이 나타났다.

숙소삐끼들을 뿌리치고 바닷가에서 10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방에서 바로 바다가 보이는 숙소를 잡아 짐을 풀었다.

새삼 이정도의 방이면 한국에서 얼마나 할까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여기선 2,000원도 안되는 돈으로 골라 잡을 수 있다.

주위를 돌아다녀 보았는데 비수기라 어디나 썰렁한 모습들이다.

파도가 높게 치고 있고 비가 오락가락 한다.

오늘 저녁도 숙소옆 식당에서 맥주를 마셨는데 관광지 답게

70Rs.나 받는다.

맥주엔 비수기가 없는건가.....



1999. 5. 26.  수  Kovalam beach


오랜만에 해가 반짝인다.

등대쪽으로 난길을 따라 산책을 할 샘 이었는데

생각보다 먼길을 따라 다시 해변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맑은날씨여서 여전히 파도가 높게 쳤지만

바다로 뛰어들었다.

몇몇 여행객들이 나와함께 파도타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계속 물속에 있었더니 추워져 해변으로 나왔는데 티루반드럼에

써커스공연 왔다는 네팔인을 만났다.

나를 보더니 "한국사람 이세요?"  한다.

한국에서 5년간 일을 해서 한국말을 곧잘 하는 친구다.

이런저런 얘길하다 헤어지고 숙소로 돌아와 잠시 낮잠을 즐겼다.

저녁7시부터 한 식당에서 케에누 리브스 주연의 Matrix라는 영화를

틀어주길래 저녁을 먹으며 영화를 보고

숙소에 돌아왔는데 다시 배가 출출하여 맥주를 2병이나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1999. 5. 27.  목  Kovalam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해변의 식당에 인도서민들을 위한 탈리 같은 것이

있을리가 없기에 이리저리 돌아다녀 보다가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 위에

탈리집을 발견했다.

그 탈리집은 12시전엔 다른 것을 취급하다가 12시가 되면 탈리를 주는데

오랜만에 푸짐하게 먹는것이라 정말 맛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해변을 산책하고 오늘은 어제 그 식당에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틀어주길래 또 영화를 보며 저녁을 먹었다.

오늘도 파도소리를 안주삼아 맥주한잔하고.....

내일은 인도의 남쪽 땅끝,

벵갈만과 인도해협과 아라비아해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깐냐꾸마리를 향해 가기로 했다.



1999. 5. 28.  금  Kovalam - Kanyakumari


짐을 싸서 숙소를 나오니 해변가 식당에서 마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리는 남자친구가 오기로 했다며 몇일째 이곳에서 묵고 있는 일본여자다.

같이 아침을 먹고 사진한방 찍고 버스 타는곳으로 향했다.

3시간 30분쯤 걸려 깐냐꾸마리에 도착해 역시 기다리고 있던 숙소삐끼를

점심을 먹으며 따돌리고 숙소를 잡았다.

스와미 비베카난다의 기념관이 있고 성지 비슷한곳으로 인도인들에게 알려져 있어

우선 관광온 인도인들이 많이 눈에 뛴다.

동네는 크지 않고 걸어다니기에 적당하다.

바닷가에 간디기념관이 있어 가보았다.

2중 지붕에 구멍이 서로 떨어져 뚤려있는데 간디의 생일인 10월 2일에

간디의 유회가 놓여있던 자리에 햇빛이 든다고 한다.

비는 새지 않냐고 하니 구멍이 어긋나게 뚤려있어 비는 절대 안샌다고 한다.

꾸마리 가트에서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세 개의 이름을 가진 바다를 바라보았다.

수많은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그곳에서는 제법 큰 호텔의 야외식당에서 저녁을 근사하게 먹고 맥주도 마셨다.



1999. 5. 29.  토  Kanyakumari


자고 있는데 왠 날벼락같은 어떤여자의 주문외우는 것 같은 음악이

새벽5시부터 온 동네에 크게 울려퍼져 도저히 더 잠을 이룰 수 가 없다.

할 수 없이 밖으로 나가 일출을 보려했으나 구름이 많이 끼어 있어

일출은 보지 못하고 구름뒤로 밝은 그것밖에 보이지 않는다.

많은 인도 관광객들이 나와 일출을 보려고 했기에 해변은

거의 인산인해, 새벽부터 북적거린다.

아침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부족한 새벽잠을 더 잤다.

오후엔 관광객상대의 상점들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맛있는 탈리집이 많아 점심은 항상 푸짐하게 먹는다.

저녁무렵이 되자 또 확성기에서 노래소리가 울려퍼진다.

매일같이 이렇게 시끄러운곳에서 어떻게 사나싶다.

오늘저녁엔 위스키를 한병사서 위스키콕을 만들어 마셨다.



1999. 5. 30.  일  Kanyakumari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한다.

오늘새벽 5시에도 음악이 울려퍼졌는데 똑같은 음악인데도

어제와는달리 듣기가 좋았다.

비베카난다 기념관은 육지에서 500m 가량 떨어져 있는 섬에 세워져 있는데

항상 많은 인도인들이 줄을 서서 입장하고, 오가기 위해 배를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져 있어 선뜻 나서고 싶은 생각이 안든다.

점심은 항상 다른식당에서 탈리를 먹으며 맛을 비교해 보려고 하지만

커리맛은 크게 다르지 않아 비교를 할 수 가 없다.

거리는 항상 인도관광객들로 가득하고 그 틈에 잡상인들..

언제나 거리는 북적댄다.

신기한 것은 많은 관광객들이 머리를 밀어버린 사람들이 많은데

온가족이 다 머리를 밀어버린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심지어 어린 여자아이까지 머리를 밀어놨는데 정말 귀엽다.

왜 머리를 빡빡깍고 다니는지 모르겠지만 한가족이 모두 빡빡인걸 보면

나름대로 무언가가 있는듯하다.

오후에 사람들 틈에 이리저리 쓸려 다니다 얼떨결에 비베카난다 기념관에

가게 되었다.

조그마한 섬자체가 기념관이었는데 비베카난다의 큰 동상이 있고

많은 인도인들이 경의를 표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늘저녁엔 어제 미쳐 다 마시지 못했던 위스키를 마저 비웠다.



1999. 5. 31.  월  Kanyakumari


오늘도 거리를 쏘다니거나 낮잠을 자며 시간을 보내고

내일발 뱅갈로르행 버스를 예약했다.


1999. 6. 1.  화  Kanyakumari - Bangalore


마찬가지로 새벽 노래소리에 깨어 일출을 보려고 나왔는데

역시 구름이 끼어있어 선명하게는 볼 수가 없었다.

이제 서서히 북쪽으로 이동을 할 때가 왔다.

오후 3시쯤 뱅갈로르행 버스에 올랐다.

밤새 버스는 달린다.



1999. 6. 2.  수  Bangalore


아침 8시쯤 뱅갈로르에 도착했다.

버스만 꼬박 17시간을 탄 셈이었다.

역 근처에 숙소를 잡고 여느 인도와는 사뭇다른 MG Road에가서

밥먹고 보통의 인도와는 다른 세련된 도시와 건물과 사람들을 구경하며

거리를 배회했다.

작년에 이곳에 왔을때는 KFC가 있어서 비싼가격에도 불구하고 닭고기를

실컷 뜯었던 것이 생각난다.

이번에도 KFC에 들러 오랜만에 닭튀김을 뜯었다.

뿌네에 사는 김미성누나한테 메일이 와 있어서 전화를 했더니

내 옆서를 받고 방학기간동안 북쪽으로 여행 가려던 것을 포기하고

기다리고 있었단다.

내일은 뿌네행 기차를 예약해야겠다.



1999. 6. 3.  목  Bangalore


뱅갈로르는 인도의 실리컨밸리 답게 인터넷사용료가 아주 싸서

그동안 확인하지 못했던 메일들을 모두 확인하고 답장을 모두 보내주었다.

뿌네행 기차표를 예매했는데 자리가 없어 Waiting list에 일단 올랐지만

카르나타카주에선 tourist quota 가 확실하게 보장 되 있어서

자리를 확보하는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길어서 보기싫던 머리도 깍고...



1999. 6. 4.  금  Bangalore - Pune


체크아웃타임이 다른곳과는 달리 아침 9시 30분 이라 짐을 일단 역에 보관하고

다시 MG road에 나가 영화를 한편 보았다.

역으로 돌아와 waiting list인 기차표를 confirm 받았다.

오늘이 99 크리켓 월드컵, 인도와 다른나라의 시합이 있는 날이라

다들 크리켓을 보고 듣느라 난리다.

한 청년이 역 광장에 앉아 소형라디오를 듣고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계속

score를 물어보며 지나간다..

저녁8시30분에 기차가 왔다.

기차가 움직이자 배웅하는 사람들과 떠나는 사람들의 아쉬운 작별의 소리가 커지고

모두들 bye bye를 외치며.. 기차는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나는 그저 작별하는 인도인들을 보며 멍청히 앉아있을따름이다.

새삼 외로워진다.



1999. 6. 5. 토  Pune


밤새 기차는 달려 오후4시쯤 뿌네에 도착했다.

우선 미성누나한테 전화를 걸어 뿌네대학 정문에서 만나기로 하고 릭샤를 탔다.

매연이 심해서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은 강도처럼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만 내놓고 탄다.

누나는 작년 그대로 그 모습이다.

누나의 후배(이덕임)도 있어서 같이 술한잔 하기로 하고 시내로 나섰지만

괜찬은 맥주집들은 모두 입장료를 받고 있어 할수없이 맥주를 사서 집앞

공터에 앉아 마셨다.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꽤 많은 맥주를 모두 마셔 버렸다.

미성누나의 아파트는 스님이 살던곳이라는데 적당히 넓고 깨끗하여

지내기에 너무 편하지만 신세지는 것이 좀 미안하다.



1999. 6. 6.  일  Pune


아침밥을 김치와 김치국으로 먹었다.

위장이 반가워하는 소리를 듣는다. 얼마만의 김치 인가...

오늘이 두경우,박경숙님 부부 아이들의 생일이라 점심은 더 잘 먹을 것 같다.

바로 몇걸음만 걸으면 두경우,박경숙님의 집이다.

두경우님은 다람살라에 가 있어서 박경숙님과 아이들(두레, 두메) 그리고

수니따 라는 일하는 인도아줌마가 있다.

두경우,박경숙님 부부와 아이들은 지난번 다람살라에서 만났던지라 반갑게

인사를 하고 푸짐한 점심을 먹었다.

내가 아무리 탈리를 좋아한다고하지만 역시 뭐니뭐니해도 우리나라 음식만한게 없다.

한국사람들이 많으니 한국말로 얘기할 수 있어서 좋고

게다가 맛있는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 정말 호강한다.

저녁때는 집에만 있기가 심심하여 오토바이를 타고 밖으로 나섰다.

이곳에 유학온 한국인들은 모두들 오토바이로 자가용을 대신하고 있다.

큰식당엘 갔는데 언덕자체를 잔듸밭, 놀이터, 수영장,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정말 거대한 식당 이었다.

일요일밤이라 waiting list에 올려놓고 기다려야 식사를 할 수가 있단다.

그냥 시원한곳에 앉아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는데 박경숙님의 고향집 얘기는

정말 재미있었다.



1999. 6. 7.  월  Pune


가까운 호수주변으로 소풍을 가기로 하고 누나와 덕임님이 김밥을 싸고

나는 카메라 하나 달랑들고 나섰다.

뮬시레이크 라는곳으로 갔는데 마땅히 자리펴고 놀 장소가 없어 큰 호수가

내려 보이는 언덕위에 앉아 싸간 도시락을 먹고, 수다떨고, 잠도 조금잤다.

호수는 정말 아름다웠지만 주변에 공원이라던가 하는 사람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 전혀 없다.

쇼바가 마땅치 않은 스쿠터를 2대에 나눠타야 했고 포장은 됐으나

울퉁불퉁한 길을 빨리 달릴 수가 없어 30Km 남짓되는 길을 2시간이나 달렸다.

오는길에 뿌네대학 앞쪽에 우리나라 88담배를 싸게 판다고 하여

300Rs. 주고 한보루를 샀다.

저녁때는 닭죽인지 삼계탕인지 아무튼 닭과 양념, 밥을 넣고 푸욱~ 끓여

배불리 먹고 옆 아파트에 새로오신 한국 아저씨가 맥주도 갖고와서

숨이 막히도록 먹고 마셨다.

뿌네에 와서 영양보충한다.



1999. 6. 11. 금  Pune


그동안 찍었던 사진 5롤을 뽑았다.

보내준다고 약속했던 사진들을 정리하고 나머지는 앨범에 넣어

집으로 소포를 부쳤다.

이덕임님이 이제 뿌네를 떠난다고 저번에 갔던 큰 식당에서

근사하게 저녁 한끼를 내기로 했다.

고급 인도요리를 수영장이 딸린 정원에서 우아하게 식사한다.

그렇지만 두레와 두메가 가끔씩 칭얼거려 우아함이 조금 깨지긴 했다.

그리고 이덕임님은 Nepal을 가기위해 바라나시로 떠났고

나도 내일 엘로라 동굴군이 있는 아우랑가바드로 떠나기로 했다.

미성누나도 함께 갔다가 아잔타 동굴군에서 헤어져 나는 캘커타에 가고

미성누나는 다르질링 밑에 미릭 이란곳에 머물고 있는다고 한다.



1999. 6. 12.  토  Pune - Aurangabad


오후 12시쯤되어 시바지나가르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 주변에 여행사들이 진을 쳐놓고 버스예약을 받는다.

1시30분발 버스를 타고 아우랑가바드로 향했다.

언제나 버스여행땐 광할한 대지를 보며 참 넓기도 넓구나 감탄한다..

저녁 6시쯤 도착해서 YouthHostel에 방을 잡았다.



1999. 3. 13.  일  Aurangabad (Ellora)


아침일찍 Ellora로 향했다.

엘로라동굴군을 어떻게 구경 했냐하면..

먼저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쭉 걸어가서 1번 동굴부터

16번동굴을 향해가며 차례차례 구경을 했는데 사실 그것들은

동굴이라기보단 절벽의 면을 파서 만든 "공간" 이라고해야 맞을 것 같다.

1번 동굴부터 12번 동굴까지는 불교사원인데 공간의 정면 끝엔

우리나라 불상과는 사뭇다른 불상들이 조각되어 있다.

엘로라동굴군에서 유일하게 입장료를 받는 16번 동굴은 힌두사원인데

절벽을 위에서부터 깍아 내려가 만든 큰 기둥같은 사원이

가운데 버티고 서 있고 그주위를 또 파 들어가 공간들을 만들어 놓았다.

힌두사원 안에는 링가상이 모셔져 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옆으로 난 길을 통해 16번 동굴의 위쪽으로 올라갔다.

힌두사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코기리 네 마리가 사원의 옥상에 해당하는 부분에 조각되어져 있는데

그러고 보니 사원자체가 큰 링가상으로 보인다.

몇세기에 걸쳐 만들었다고 하지만 어떻게 이 거대한 사원을

이처럼 detail하게 조각해놓았는지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16번 동굴을 보고나자 왠지 17번부터 34번 동굴은 별 매력을 못느껴

보다가 그만두고 내려와 길옆 식당에서 탈리로 점심을 먹고

짜이를 마시며 더위를 식혔다.

오는길엔 10명이면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은 Jeep차에

21명이 짐짝처럼 구겨져 타고 왔는데 나는 갑자기 옆문이 열리지 않을까

걱정할 만큼 문에 납짝하게 달라붙어 겨우겨우 아우랑가바드로 돌아왔다.

저녁때는 같은 숙소에 머무는 3명의 일본인과 밤늦도록 카드 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1999. 6. 15.  화  Aurangabad - Fardapur(Ajanta)


아침에 아잔타 동굴군을 향해 버스를 탔다 3시간만에 조그만 동네인

Fardafur에 도착했는데 이곳이 Ajanta 동굴군을 구경할 기지가 된다.

마을에 내리자 마자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Korea 라고 했더니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빨리빨리" 한다.

점심을 먹고 아잔타로 향했다.

이번에도 Jeep차에 짐짝처럼 구겨타고 아잔타에 도착하니 특이한 돌을 파는

상점 주인들이 제일먼저 반긴다.

수정 같은 돌을 손에 쥐여주며 한국말로 "선물, 선물, 갔다가 와서 우리가게 와요"

라고 말한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오긴 왔었나보다..

계단을 오르니 아잔타의 29개 동굴군이 한눈에 보인다.

천여년동안을 숨어 빛내고 있었을..  놀라운 조각과 벽화를 품은 동굴들...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고 계곡아래로 보이는 빨간 꽃을 활짝피운 꽃나무들이

유난히 아름답게 보인다.

천천히 동굴들을 감상하고 계곡아래 그 꽃나무들이 서있는 산책길을따라 내려왔다.

숙소로 돌아와 작은 마을을 기웃거리며 구경하고 아이들과 놀면서

저녁시간을 보냈다.

큰 도미토리에 손님이라곤 누나와 나, 호주에서 왔다는 여자 이렇게 3명 뿐이다.



1999. 6. 16.  수  Fardafur(Ajanta) - Jalgaon - Bhusaval - Calcutta


누나와 Mirik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기차를 타기위해 잘가온까지 버스를 타고 간다음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부사발로 향했다.

부사발은 비가와서 그런지 상당히 지저분하고 질퍽질퍽한 도시다.

부사발 역에는 어느역이나 그렇듯 많은 인도인들이 기차를 기다리며

멀뚱히 앉아있고 염소들, 개들, 그리고 한 마리의 닭이 돌아다니고 있다.

나도 멍청히 앉아 동물들이 밥먹는 인도인들틈을 기웃거리는 꼴이나

나를 구경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기둥마다 붙어있는 SAMSUNG 마크가 외로움을 더욱 가중시킨다.

Waiting List 20번 이던 것이 6번으로 고쳐졌다.

오후1시30분에 드디어 캘커타행 기차가 도착했다.

기차안에서 자리배정을 받으라 했지만 끝내 난 자리를 배정받지 못했고

이리저리 눈치를 봐가며 엉덩이를 들이 밀어야 했다.

그나마 날씨가 그리 덥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그렇다해도... 가끔.. 과연 지옥이 따로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너무나도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1999. 6. 17.  목  Calcutta


14시간만인 오후 3시30분에 캘커타에 도착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지옥같은 시간을 보낸터라

캘커타의 Howrah역에 내리고선 고향에 온 듯 기뻐했다.

캘커타는 벌써 여러번 와 본터라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하우라역앞 배타는곳에서 배를 타고 후글리강을 건너 바부가트 까지 간다음

거기서 또 버스를 타고 Sudder St. 근처까지 갔다.

이 거리는 아무것도 변한게 없는 듯 보인다.

이번에도 Salvation Army G.H. 의 도미토리를 잡았다.

역시 캘커타엔 한국사람들이 많았다.


 ~ 6. 30.  수  Calcutta


나는 캘커타에서 한국책을 얻어 읽거나 사진을 찍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 여행과 인생을 얘기하고, 인도영화도 보고,

보태니컬 가든에 가서 세계에서 가장큰 나무도 보고, 사실 나무라기보단

숲 이라야 맞을 것이다.

멀리서 그 숲을 보고 어찌 나무라고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수시로 변하는 거리의 모습들도 재미있다.

배수가 잘 되지 않아 비가오면 강으로 변하고, 거지들의 잠자리,

거지나 여행객들의 식당, 쓰레기장 등, 그 모습이 정말 다양하다.

다람살라에서도 한명의 남자를 만난바가 있지만 한국인이면서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어밖에 할줄 모르는, 아니 한국어를 할줄 모르는

김가애 라고 하는 한국인을 다시 만났다.

2차대전 당시 아버지가 일본으로 건너갔다 한다.

한국이나 일본, 어느쪽 나라에서도 확실한 정체성을 갖지 못하는

그녀는 결국 일본이 싫다고 내년에 미국으로 건너간다고 한다.

그동안 목말라하던 한국책을 많이 읽었다.



1999. 7. 1.  목  Calcutta - NewJalpaiguri


친구들과 이별하고.....

저녁 7시 15분 출발 기차다.

뉴잘패구리역에서 파키스탄쪽의 행동으로 보이는 폭탄테러로

인도군인들이 많이 죽었다고 몇일전에 보도가 있었기에

군인들이 들어와 금속탐지기등을 이용해 검문을 한다.

기차안에서 편두통으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곧 잠이 들었다.

기차가 출발하면서 부터 계속 비가 오락가락 한다.



1999. 7. 2.  금  NewJalpaiguri - Siliguri - Mirik


오전 10시쯤 뉴잘패구리에 도착했다.

작년에 다르질링에 가봤던터라 이곳도 낯설지는 않다.

사이클릭샤를 타고 실리구리 버스스탠드에 도착하니

미릭으로 가는 Jeep차가 손님들을 불러모은다.

11시에 Jeep을 탔지만 사람이 다 차기를 기다려

12시 30분이 되어서야 출발했다.

시내를 빠져나오자 곧 차 밭이 펼쳐지더니 고갯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갑자기 구름속으로 들어가는가 싶더니 10m 앞도 분간할 수 없을정도로

짙은 구름속을 달리기 시작한다.

길 아래의 낭떠러지는 하얀구름으로 뒤덮여 가늠할 수가 없어서

만약 바퀴 한쪽이라도 빠져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한없이

밑으로 떨어질것만 같다.

드디어 미릭에 도착 했다.

다르질링보단 아주 작은 마을이어서 미성누나가 묵고있는

숙소를 찾는건 그리 어려운일이 아니었다.

호수가 보기에 좋은, 작고 평화스러운 마을이다.

누나는 책을 읽고 호수주변을 산책하며 신선같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한다.



1999. 7. 3.  토  Mirik - Siliguri - NEPAL Kakarbita - Kathmandu


오후1시에 실리구리행 버스를 탔다.

구불구불한 길을 내려가서 실리구리에 도착,

까까르비타가는 Jeep을 타고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작년엔 네팔쪽에서 다르질링쪽으로 왔지만 이번엔

길을 반대쪽으로 가게 된다.

곧 까까르비타 국경에 도착했다.

먼저 인도측 Immigration에가서 출국도장을 찍고

다리를 건너 네팔측 출입국 관리소에서 비자와 입국도장을 받았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비자피는 15일에 15달러.

국경앞의 버스정류장에서 바로 카투만두로 가는 버스표를 끊었다.

네팔에도 비가 많이 왔는지 도로에 물이 많이 차 있다.

저녁 6시에 출발한 버스는 밤9시에 저녁식사를 위해 잠시 멈췄고

또 다시 끝날 것 같지 않은 울툴불퉁하고 칠흑같이 어두운길을 버스는 달린다.


'''''''''''''''''''  네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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