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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단상

'인도의 혼은 촌(村)에' 있다

by 함피 2004.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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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를 뒤적이다 2002년 봄 레이디경향에 실렸던 기사를 발견했다.
인터뷰 후 기자가 정리한 글이라 맞지 않는부분도 있지만 예전의 기억을 되살려보기엔 나쁘지 않다.


시골 터미널 같은 모습의 델리 공항
6만 km나 되는 철도는 인도의 대동맥

서울에서 10시간을 날아가 도착한 델리 공항은 공항이라기보다는 시골 터미널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뿌연 먼지와 뒤엉킨 공항의 외벽, 허름하고 지저분한 실내, 그리고 엉성한 입국심사. 간단한 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빠져나올 무렵 당황스러운 상황에 직면했다. 택시기사들의 포획망에 걸려든 것이다. 나를 중심에 두고 사방에 빙 둘러싼 택시기사들의 호객행위는 가히 '공격적'이었다. 고함에 가까우리만치 소리를 지르며 손을 흔드는 모습에 그전까지의 느긋함은 사라졌다. 첫번째 행선지로 향하기보다는 '일단 택시기사를 피하고 보자'는 심산에서 서둘러 공항을 빠져 나와야 했다.
인도에서 도시 여행을 즐긴다면 우선 델리, 자이푸르, 아그라 등을 찾으면 된다. 물론 인도에서 이름난 몇몇 도시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시골 마을처럼 보이기 때문에 '인도의 도시 여행'이란 말 자체가 조금은 엉성하게 들리지만 말이다.
우선 인도를 찾는 외국인이라면 가장 먼저 들르게 되는 인도의 대표적인 도시 델리. 황토빛이 온 도시를 뒤덮고 있는, 거리마다 걸인과 부랑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솔직하게 표현하면 '땟국물이 흐르는 도시'라고 말하고 싶은 곳이다. 적어도 인도의 진면목을 볼 줄 아는 시각을 키우기 전까지는...
모든 건물이 붉은 색을 띤 핑크색으로 통일되어 있는 자이푸르, 거대한 무덤 타지마할로 유명한 아그라, 이 세 도시를 사람들은 골든 트라이앵글이라 부른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도시 역시 바로 이 세 곳이다. 간디를 추모하는 성소 라지 가트, 무굴 왕조 시대에 빨간 사암으로 건축된 성 랄 낄라, 박물관으로 꾸며진 시티 펠리스, 천문대 잔타르만타르, 코끼리를 타고 오르는 암베르 산성 등은 모두 이 골든 트라이앵글 안에 있다.
이러한 도시를 돌다보면, 외국인에 대한 관심이 유달리 큰 인도인의 성향을 쉽게 알 수 있다. "어디서 왔느냐?" "이름이 뭐냐?" 등에 대한 대답은 하루에도 몇 번씩 해야 한다. 외국인과 이야기하는 자국인을 발견하면 약속이라도 한 듯 모여드는 게 인도인의 특성. 여행 중 인도인에게 길이라도 물을라치면 다른 인도인들이 순식간에 모여든다. 그리곤 대화에 끼여들어 다른 방향을 알려주는 사람이 꼭 있다. 서로 다른 방향을 주장하는 인도인들끼리 말싸움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 때문에 여행 도중 궁금한 사항이 생기더라도 사람 많은 곳에서 인도인에게 질문을 하는 것은 별 도움이 못된다. 소신껏 판단하고 행선지를 결정하는 게 상책.
관광객이 많다보니 인도라 하더라도 상업화된 도시로 변모하는 것은 당연한 일. 인도의 진면목을 보기 위해서라면 도시보다 마을 여행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인도의 혼은 촌(村)에' 있다는 간디의 말처럼 말이다. 인도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도의 대동맥 철도, 나흘을 꼬박 달리는 60,000km의 길고도 긴 철도를 따라 촌 여행을 시작한다.

손으로 집어먹는 인도의 전통 요리 탈리
인도 여행의 제 1수칙 '마음을 느긋하게'

인도에서 한 치의 오차 없이 여행 일정을 짜 두었다면 '말짱 도루묵'이 되기 십상이다. 정해진 시간에 제대로 이뤄지는 일도 없을 뿐더러, 느긋함을 미학으로 삼는 인도인의 습성 때문에 시간에 연연하다보면 피곤한 여행만 될 뿐이다. 인도 여행이 쉽지 않다고 정평이 난 이유는 인도인의 이러한 성향이 한 몫을 했으리라.
기차가 연착되는 것은 인도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 그런데 예정 시간보다 2~3시간 이상 연착되어도 불평하는 사람 하나 없다. 잘 달리던 버스 타이어에 펑크가 나도 1%의 조급함 없이 자연을 구경하며 버스가 정비될 때까지 기다린다. 여기서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은 모두외국인이다. 소를 숭배하는 힌두 문화 때문일까? 버스가 달리는 길을 막으며 소가 걸어가도 경적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소 뒤를 천천히 따라간다. 인도 여행 제 1수칙은 '느긋한 마음 갖기'. 따라서 인도 여행은 시간 많은 '백수'에게 권하고 싶다.
맨 처음 떠오르는 인도의 행선지는 자이살메르이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 한군데에 이뤄진 조그만 마을, 그 마을 중간에 자리한 웅장한 성... 황색의 흙담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의 모습은 진부하더라도 '예쁘다'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린다.
자이살메르에서 출발하는 낙타 사파리는 여행자에게 빼놓을 수 없는 여정. 낙타 위에 올라타고 사막을 걷다 보면 어느새 아라비안 나이트의 주인공이 된다. 날이 저물면 낙타를 세우고는 잠을 청하는데, 호텔이나 하다못해 텐트라도 기대하는 무지한 생각은 삼가시길. 사막에서의 취침이란 낙타에 싣고 온 담요 한 장에 의지해 잠드는 것이다. 하늘의 별을 이불 삼고 사막 한가운데서 잠에 취하는 것도 한번쯤 해볼 만하다.
남인도 한켠에 자리한 알라뿌자와 꼴람의 수로유람도 잊을 수 없다. 오전 10시에 출발하여 오후 6시까지 이어지는(물론 정해진 시간을 지키는 법은 없지만) 수로유람은 색다른 인도 여행의 맛을 음미하게 한다. 작은 배의 지붕에 의자를 마련해 놓아 높은 위치에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숲을 이루고 있는 코코넛 나무들, 저만치 손바닥 만한 배 위에서 노 젓는 할아버지, 그리고 여행객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꼬마들.
점심 시간에 맞춰 육지의 식당에 멈춰섰다. 수로 유람 손님만을 위해 마련된 식당에서 제공되는 메뉴는 탈리. 큰 접시를 의미하는 탈리는 쌀과 차파티의 주식과 몇 종류의 카레와 야채, 요구르트 등을 제공하는 인도식 정식이다. 오른손을 사용해 적당히 버무려 손으로 먹는 게 원칙. 하지만 여행객들은 모두 수저를 사용한다. 여행객이라 하더라도 손맛을 아는 사람들은 손으로 먹곤 하는데, 외국인이 손으로 먹으면 그것 역시 인도인들의 구경 대상이 된다. 탈리의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인도인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뒤로하고 손을 사용해 보기를. 이때 주의할 것은 반드시 왼손잡이라 하더라도 오른손만 사용해야 한다는 것. 인도인들에게 왼손은 볼일을 보고 뒤처리하는 손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화장실 없는 인도'라는 소리를 들어보았는지 모르겠다. 실제로 화장실이 없어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여행객들이 사용할 만한 마땅한 화장실을 찾기 힘들다는 얘기다. 배설물이 제대로 청소되지 않은 흔적들... 게다가 인도인들은 화장실에서 휴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일을 마치면 오른손으로 물을 뿌리고 왼손으로 씻어낸다. 그런 이유로 인도 여행에서 휴지는 필수품. 인도 화장실의 현실은 어느 정도 각오하고 여행하는 것이 좋다.

죄를 씻기 위해 갠지스 강을 찾는 사람들
인도 여행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화장실 문화

한겨울의 여행이 아니라면 더위와 모기와의 한판 전쟁은 인도에서 미리 각오해야 한다. 3월 중순이면 '더위님'은 벌써 인도 땅에 자리를 잡고, 9월이 되도록 그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그 사이에 호텔방 팬에서는 더운 바람이 불고, 물조차 데워져 있어 따뜻한물만 나온다. 하루에도 몇 통씩 물을 사 마셔야 하며, 갑갑한 방보다는 옥상에서 자는 날이 많아진다. 가급적 3월에서 9월 사이를 피해 인도를 여행하는 것이 비교적 쾌적한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날씨가 덥다보니 목욕은 인도인에게는 습관처럼 하는 행위인가보다. 캘커타에 가면 길거리에서 펌프로 물을 올려 목욕을 하는 인도인을 볼 수 있다. 목욕을 하다가도 외국인이 지나가면 손을 흔들어 보이고... 물론 길거리 목욕은 남자에게만 국한된다. 테레사 수녀의 활동지로 유명한 켈커타에서 또하나의 볼거리는 바로 릭샤이다. 사람이 자전거를 이용해 수레를 끄는 것이 바로 릭샤. 미터기 따위는 아예 없으며 요금은 얼마나 먼 거리를 가느냐보다는 얼마나 흥정을 잘 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릭샤를 타기 전에 미리 목적지를 말하고 흥정해 놓는 것이 상책이다.
갠지스를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도시 바라나시에 가면 영락없이 보게 되는 이색풍경이 있다. 바로 갠지스 강에 몸을 담그는 사람들이다. 힌두 신앙에 의하면 이 물에서 목욕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고, 죽어서 재를 강물에 띄우면 윤회에서 해탈을 얻는다고 전해진다. 종교에 대한 믿음이 강한 인도인인지라 갠지스 강에 몸 한 번 담그기 위해 2일, 3일은 족히 열차로 달려오는 사람들도 많다. 위생 상태도 점검 받지 못한 강이지만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 죽은 사람의 재를 흘려 보내는 사람들, 얼굴을 씻고 빨래를 하는 사람들이 모두 갠지스 강에 존재한다.
인도인들의 종교에 대한 믿음은 우리나라의 그것 이상이다. 마날리에서 만난 한 무슬림 친구에게 이슬람종교에 관해 물어봤었다. 그 간단한 질문 한마디에 국가보다 종교가 중요하다고 하는 종교적 설교를 30분 넘게 들어야 했다. 그 친구는 내게 종교를 물어보고, 나는 무교라고 대답했다. 그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곤 되물었다. 종교가 무엇이냐고. 나는 또 대답했다. "종교가 없다!" 그러자 아주 답답한 얼굴을 짓는 무슬림 친구.
인도를 이야기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곳은 이밖에도 많다. 8백 명 인구의 작은 마을 함피. 너무나 아름다운 마을 정경에 취해 '함피'를 인터넷 상의 닉네임으로 사용하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돌산의 정경을 한눈에 보기 위해 맞은편 언덕으로 올라가다보면 수많은 원숭이들을 만날 수 있다. 바나나라도 하나 가지고 올라갈라치면 영락없이 원숭이와 바나나 쟁탈전을 벌여야 한다. 달라이 라마가 살고 있는 티베트 문화의 중심지 다람살라, 히말라야 산이 보이는 다람살라에서 대강의 여행을 마무리한다.
'제때'를 모르는 교통과 미비한 숙박시설, 지저분한 화장실, 모기와 더위와의 쟁탈전... 여행지로서의 인도는 불편한 점이 하나 둘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불편함은 외국인들만 겪는 일일 뿐, 인도인들은 이러한 생활에 자족하며 살아간다. 자연과 더불어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유지하는 이러한 인도인의 삶에 매료된 것일까? 불편한 점을 셀 수 없이 꼽으면서도 또 다시 인도를 향해 여행 가방을 꾸리는 모습을 발견한다. 인도에서 보낸 10개월 가량의 여정은 어느 여행의 경험보다 뚜렷한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다.

박스

인도 여행 전문가 민병규씨는...
여행에 첫 맛을 느낀 것은 사실 인도가 아니라 태국이다. 직장 생활 3년이 지난 97년, 변화를 꾀한 민병규씨는 추석 휴가와 여름 휴가를 붙여 9박 10일짜리 휴가를 만들었다. 두 달간의 준비 후 떠난 태국 여행은 방랑자적 기질을 발견하게 하고,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으로 '먹고 살게' 만들어버린다. 6개월 일정으로 인도를 여행한 민병규씨. 다음해인 99년 인도를 시작으로 네팔, 파키스탄, 이란, 터키, 이집트까지 여행을 다녀왔다. 터키에서 이집트로 이동할 때를 제외하고는 육로를 따라 이동했다. 그 경험을 살려 현재 인터넷 사이트 '민병규의 인도 엿보기(www.indiascent.com)'를 운영하고 있다.

ㅁ정리/곽경선 기자 ㅁ사진/민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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